<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2월 4주


  극영화로 담기 힘든 진실된 사실을 더 잘 보여주기 위해 실생활을 담은 영화, 즉 다큐멘터리 영화는 많은 감독들이 관심을 갖고 시도하는 genre다. 가상의 캐릭터보다 정말 존재하는 인물들과 그들이 살고 생활하는 실재 배경, 그리고 실재 사건들을 통해 다큐멘터리 영화는 극영화보다 더 큰 감동은 물론 현실을 더욱 잘 알게 해준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현실에 대한 비판인식을 갖고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영화 속 배경과 내용은 보기 불편한 것들이 많다. ‘워낭소리’와 같은 감동을 지닌 작품들도 많지만 언제나 다큐멘터리 영화는 극단적이라 할 만큼 고통스럽고 조악한 화면 속에 보이는 인간의 탐욕은 외면하고 싶게 만든다.
  하지만 보다 아름답고 멋진 세상을 구현하려는 것이 예술가, 특히 영화제작자들의 목적이고 보면 우아하지 못한 현실을 까발리면서 더욱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그들의 진지한 노력과 성찰의 자세는 사회적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크리스마스에서 새해까지 즐거운 시간들의 연속인 이 때, 세상에 경종을 울리는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조용하지만 우렁차게 극장에서 상연되고 있다. 그들의 모험정신의 가치를 높이 사야 하고, 다른 한 쪽에서 소외된 자들에게 눈길을 돌리게 한다. 구세군 냄비의 온기가 그들에게도 가야 할 이유인 것이다.


하얀 정글

 


  그나마 한국에 있는 의료보험으로 서민들의 가계부담은 적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병원의 영리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그에 따른 의료비의 상승이 점차 두드러지면서 한국의 의료계도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문제점에 대해 직접 앵글을 댄 이 영화는 한국 병원과 의료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슬프면서도 무서운 진실을 쏟아내고 있다.
  영화 ‘하얀 정글’에서 지상과제는 돈이다. 물신주의가 병원과 의료계에 판을 치면서 벌어지는 각종 부작용은 한국사회의 서민의 위기와도 직접 연결되어 있다. 병원에 대한 각종 광고들은 넘쳐나지만 그것을 이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돈을 버는 서민들, 의료계에 만연한 리베이트, 고가의 의료장비를 구입하면서 그것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진행되는 불필요한 과도한 검사, 그리고 돈 되는 외래진료만을 물색하는 의사 등 영화 속의 의료계는 대형수술이 필요한 분야다. 거기에 환자들을 고압적으로 다루는 의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영화는 의료의 사유화가 얼마나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를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것을 통해 영화는 의료의 공공성 회복을 강조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를 찍은 이가 바로 의사라는 점에서 양심 있는 의사가 아직은 있다는 것에 안심을 가질 수도 있을 것만 같다. 비록 소수지만 말이다. 한국인이라면 한 번은 꼭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고 언젠가 자신에게 돌아올 위기이기에 놓쳐서는 안 될 문제다.


보라

 


  한국의 노동현장의 환경은 많이 개선됐다 하더라도 아직은 위험한 수준이다.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는 신자유주의의 만연과 IMF 이후 더욱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고 보면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산업현장은 바로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노동현장과 다르지 않는다. 그런 환경은 아직도 한국에서 인권이 얼마나 열악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정신이 한국에 얼마나 뿌리깊게 박혀있는지를 알 수 있다.
  영화의 시작은 피아노 공장과 마네킹 공장과 같은 산업현장을 중심으로 시작한다. 그곳에서의 현장보건관리를 통해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상태와 노동환경 상태들을 보여주면서 한국의 산업재해의 현 위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영화 카메라는 높은 곳에 고정되면서 매우 무미건조한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객관적인 사실성을 확보하면서 이 영화의 모든 장면들이 작위적이 아닌 사실에 기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미건조한 분위기 속에서 도리어 매우 감정적인 것들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다양한데 감독연출력에 대해 의문을 품은 전문가들도 있지만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사상 의미심장한 한 획을 그을 작품이라는 데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Jam Docu 강정

 

 

  이 영화는 지금도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제주도 서귀포시 최남단 강정마을에서의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담은 작품이다. 군사적 목적을 두고 건설되는 해군기지를 두고 정부와 지역주민은 물론 지역주민 간에 벌어지는 사회적 긴장과 충돌을 담은 이 영화는 한국의 지적 수준이 어느 정도까지 와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아름다운 자연을 보존하자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천혜 자연 보존지역으로 인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해군은 해군기지를 건설한다고 하면서 자연보존지역을 파괴하려는 정책을 발표한다. 국제정치적 목적이 우선이라는 속내를 읽을 수 있는 이 발표의 이면을 통해 한국 정부의 환경인식 수준이 여지없이 까발려지는 순간이다. 이런 정책에 대해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 참여한 8명의 감독들은 재능기부를 통해 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자고 의기투합하려는 이들로써 ‘우선 강정마을을 살리고 보자!’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8명의 감독이 담은 각자의 에피소드는 다양하다. 양윤모 평론가를 찾아가 강정을 왜 지켜야 하는가를 듣는 장면에서부터, 강정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은 장면, 강정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파괴된 강정마을의 실상 등 영화는 제주 강정의 슬픈 비극을 담으려 노력하면서 관객들에게 무엇을 우선해야 할 것인지를 넌지시 묻고 있다. 비록 8명의 감독들이 참여해서인지 체계는 없지만 다큐멘터리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인 현장감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중 안타까운 것은 마을 사람들끼리의 긴장인데 현장감 있는 그들의 반목의 구체적 사례는 환경보존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그래도 자연은 보존해야만 할 이유를 이 영화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자연은 현 세대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기에 현 세대의 탐욕으로 모두 허비돼선 안되기 때문이리라.


오래된 인력거

 


  이 영화와 ‘워낭소리’는 묘하게 매치된다. 영화 속 인물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어느 가장의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력거란 교통기구는 한국에선 매우 낯설지만 인도에선 아직도 운행 중이다. 인력거는 인간이 소가 되는 대중교통기관으로 인간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관광명소인 인도 콜카타에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인력거꾼 ‘살림’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가장 행복할 것만 같은 도시 뒤편의 그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반어일 것이다. 그의 아내는 병들었으며, 그의 자식들 6명을 먹여 살려야 한다. 마치 한국의 사실주의의 걸작인 ‘운수 좋은 날’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환경과 여건에서 그는 가난과 좌절을 주식으로 삼으며 오늘도 달린다. 특히 무더운 날씨 속에서 뜨거울 것만 같은 아스팔트 위를 맨발로 인력거를 끄는 그의 모습에서 처참하다 못해 숭고함까지 느끼게 한다.
  40년 이상 인력거를 끌고 있는 살림이 살고 있는 환경은 소외된 자들에겐 처참하기 그지 없다. 영화 속 내용 중, 많은 비가 내린 이후 비에 잠긴 도로 위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생존 싸움은 웃기면서도 슬프기 그지 없다. 비로 잠긴 도로 위에서 그래도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고 행인들에게 흥정을 하거나 택시와 인력거, 그리고 행인들까지 시비가 붙는 장면에서 그늘진 인생들이 살아가야 할 운명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오랜 역사를 지닌 인도의 카스트 제도의 의해 결코 현재를 벗어날 수 없게 된 살림은 가족의 생계를 진 책임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좌절한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 가족이 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힘을 얻기도 한다는 점에서 인생의 역설을 느끼게도 하는 이 영화는 인간의 섬세한 묘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감동을 통해 다큐멘터리 영화의 힘을 제대로 느끼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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