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4월 1주
인간사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제도는 결혼이다. 기본적인 인간관계인 결혼이 그런데 요새 이런저런 이유로 위기를 겪고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의 결혼과 관계된 영화들이 주목을 받고 있고 의미심장하기조차 하다. 남과 여가 있어야 이루어지는 결혼, 그러나 사연도 많고, 갈등도 많다. 영화야 해피엔딩으로 끝나더라도 결혼 과정은 산 넘고 물 건너는 파란만장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재미있겠고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도 담고 있다. 그래서 결혼 이야기가 단순한 남녀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또한 한국영화에선 드물지 않게 결혼을 위기로 빠뜨리는 것은 남녀간의 사랑과 갈등이 아니라 남녀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 대다수다. 한국에서 결혼이 단순한 남녀의 문제가 아닌, 집안 대 집안의 관계를 만드는 것으로 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고 외국 영화가 꼭 예외는 아니다.
말들이 많은 결혼에서의 갈등 이야기, 최근의 영화에서 그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즐겁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이혼도 많아지고 아기들도 줄고 있는 지금, 한국은 미래의 고령화 위기 등으로 앞으로 큰 몸살을 앓게 될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면 영화라도 잘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멋진 해피엔딩이 정말 현실이 됐으면 한다. 사랑이 좋은 결실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한다.
못말리는 결혼 (2007)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전통화 현대의 충돌은 영화는 물론 소설 같은 예술에서도 자주 차용하는 갈등구조다. 좀 구태의연한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것만큼 갈등구조가 명확한 것도 없다. ‘못말리는 결혼’은 전통적인 가문과 현대적인 가문 사이에 벌어진 상견례에서의 진통을 보여준다. 웃음 코드를 삽입한 영화이지만 사실 내용은 그리 가볍지 않은 무거운 주제이기도 하다. 특히 결혼에 전제로서 부모의 경제력과 재산, 그리고 직업 등이 두 가문의 싸움의 빌미가 된다. 또한 강남과 강북의 대립 역시 새로운 지역주의의 갈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오늘을 사는 많은 청춘남녀들에겐 절실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는 것들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갈등, 이것은 신데렐란 영화로 언제나 봉학되긴 하지만 사실 양가 부모 이전에 결혼을 준비하는 남녀 둘 사이에서도 가장 큰 고민거리다. 아무튼 영화는 이런 것들을 갖고 돈 안 되는 전통이 과연 필요하냐는 문제로 티격태격 싸우는 재미가 이 영화의 볼거리다. 특히 주인공 남녀로 출연한 유진과 하석진의 연기력도 연기력이지만 김수미와 임채무의 뛰어난 연기력이 더욱 빛이 났다. 이 영화는 결혼에 관한 한 고전이 될 뛰어난 작품이란 평가를 들을 수 있는 영화다.
미트 페어런츠 3
마침내 3편까지 나온 이 영화는 1편부터 3편까지 결혼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웃음코드를 통해 그 모든 것들을 묻고 있는 것이다. 능력 없는 사위에 대해 영화는 정말 비현실적으로 장인의 온갖 저주를 보여준다. 결혼 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던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영화 3편에서도 전직 CIA 요원 잭이 사위 그레그를 탐탁하지 않게 여긴다. 그것도 10년이나 된다. 개인주의가 사회적 도덕 이념으로까지 자리잡은 미국이지만 이 영화에선 그런 미국적 통념이 통하지 않는다. <미트 페어런츠>(2000)에서 예비 신랑으로 고된 신고식을 치렀고, <미트 페어런츠 2>(2004)에서 위험한 상견례까지 무사히 마쳤으면 끝날 만도 한데 말이다.
그레그가 영화 속에서도 마음에 그렇게 드는 구석은 없다. 무엇보다 경제적 무능력이 가장 큰 원인인데 한국이나 미국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자는 경제력인가 보다. 영화에서의 갈등은 그런 무능한 사위를 어떻게든 자기 딸과 갈라서게 만들려는 장인의 어이없는 모략이다. 그런데, 사위, 이전 영화에서의 약함은 사라지고 이번엔 당당하게 장인에 도전한다.
영화의 웃음코드가 장인과 사위의 한판 대결 정도로만 볼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독립된 자아를 찾아가는 자유의지의 구체화 정도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 내용과 주제는 미국 영화의 대다수가 공유하는 것이겠지만 결혼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좀 흥미롭다. 미국사회에서도 결혼은 개인간의 관계가 아닌 집안이 결부된 것임을 이 영화로도 알 수 있는 것을 보면, 결혼, 참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기도 함을 느낀다.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력도 무척 반가운 영화다.
위험한 상견례
해방 이후부터인지 잘 모르겠지만 한국의 갈등 중 최대의 것은 단연코 지역주의다. 특히 경상도가 독재정권의 산실이 되고, 전라도를 왕따 시키는 전략으로 정권을 오래 유지해온 전략 덕분에 경상도와 전라도는 언제부터인가 태생적으로 경쟁하고 증오하는 관계로까지 발전했다. 작은 국토에서의 이 두 지역의 갈등은 한일관계만큼 악화되고 말았다. 여기에 광주 민주화 운동에서의 전두환 정권의 만행은 어쩌면 이 영화의 갈등구조까지 만든 지도 모르겠다. 어떻든 영화 ‘위험한 상견레’에서 그런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난다. 다행히 웃음코드였기에 망정이지 좀 더 심각한 영화에서 나왔다면 심각하게 분노가 드러날 수도 있었다.
전라도 사람과 경상도 사람의 결혼, 시작부터 만만한 결혼이 아니다. 그것도 21세기가 아닌 1980년대라면 지역간 갈등이 가장 심하던 시대였다. 다만 21세기의 특성이라면 당시의 남녀의 통념과도 다르게 여자가 적극적이고 남자가 어눌한, 당시의 남녀관계가 아닌 오늘의 관계를 빌린 것이 그나마 현대적이다. 아마도 과거를 빌려 오늘을 비추어 보려는 속내를 읽을 수 있다. 이 영화 역시 해피엔딩이기에, 아니 그런 것 이외엔 달리 마지막 구성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어떻든 전라도든 경상도든 작은 한반도, 그것도 반쪽인 상황에서 정치적 이권과 탐욕, 그리고 그에 따른 무시로 인해 갈라졌어도 다시 뭉쳐야 살 수 있는 운명을 지닌 곳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주제의식은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언제까지 지역주의 망령으로 갈등을 하고 살 수는 없어야 한다. 한국은 바야흐로 빈부의 격차로 인한 갈등이 심해지고 고령화에 따른 세대간의 갈등까지 더해지는 상황이다. 이럴 때,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현실 극복의 방법이 의미심장할 것이며, 그렇게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