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書評, book review)이란, 사전적 의미로만 보면 "책 내용에 대한 평(評)"이다. 여기서 ‘평‘은 ‘비평과 평가‘를 아우르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독후감(讀後感)이라고 하는 독서 감상문이 책을 읽고 난 후 매우 개인적인 느낌을 적은 글이라면, 서평은 책 내용의 비평과 평가에 대한 글쓴이 나름의 판단을 밑받침할 수 있는 논리가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서평은 해당 도서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만이 쓸 수 있다. 해당 분야의 전문적 식견을 갖고 있는 사람, 곧 전문가들이 주로 서평을 쓰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나아가 서평가는 특정 전문 분야에 관한 양서(書)의 기준이나 필자에 대한 정보 등을 바탕으로 책의 가치에 대해 독자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서평은 또한 책의 결점을 찾는 작업인 동시에 장점을 찾아 정리하는 일이기도 하다. 책 속에 들어 있는 유익하고 흥미로운 요소들을 드러내어 다양한 해석을 곁들임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서평의 기능이기 때문이다. - P13

인류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구어시대에서 문자시대로, 필사매체에서 인쇄매체로, 그리고 전자매체로의 변화를 겪어 온 과정은 따지고 보면 커뮤니케이션 그 자체의 확장이라기보다는 커뮤니케이션 ‘전달 도구‘의 확장이라고 볼 수있다. 정보제공자가 수신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술 자체로서 이러한 매체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시공간적 확장이란 곧 기술적 측면의 확장이지 의사소통 즉, 커뮤니케이션의 확장과는 별개의 차원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 P15

출판은 오늘날 비교적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문화산업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문화상품이나 서비스가 산업 또는 상업 노선에 따라 문화 발전에 대한 관심보다는 경제적 고려에 입각한 전략 아래에서 대규모로 생산되고, 재생산· 축적 · 보급될 때 문화산업이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문화산업적 측면에서 볼 때 오늘날의 출판 역시 전통적 가치관인 문화성보다는 자본주의적 이윤 획득 방법인 기업적 · 경제적 측면이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현대와 같은 자본주의 경제체제 아래에서는 이념의 생산조차도 매체생산 기능에 있어서 경제학의 고리를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예컨대, 인쇄술의 등장으로 필사본을 대체하여 도서의 생산이 획기적으로 발달함으로써 문학작품의 보급에 엄청난 공헌을 하게 되었으며, 생음악을 대신하는 음반은 음악의 취향을 자극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곧 문화와 기업의 결합은 오늘날 풍부한 사회문화를 형성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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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칼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니라.
- 카타 우파니샤드 - P7

지금껏 이렇게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소설을 시작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이 글을 소설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단지 마땅히 붙일 다른 이름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줄거리다운 줄거리도 별로 없고 결말이 죽음이나 결혼으로 끝나지도 않는다. 죽음은 모든 것을 끝내며 따라서 포괄적인 결론이다. 결혼 역시 꽤 괜찮은 마무리 방식이지만, 고상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해피엔딩이라 부르는 것을 비웃어야 한다고 경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결혼으로써 이제 필요한 이야기는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정상적인 본능이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되면 그들은 생물학적 임무를 완수한 셈이고 이제 관심은 그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 - P9

이 책은 내가 이따금 만나서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던 한 남자를 회상한 내용이다. 나는 그가 나와 만나지 않았던 기간에는 어떤 일을 경험했는지 거의 아는 바가 없다. 나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 기간에 있었을 법한 일을 그럴듯하게 꾸며 내 좀 더 조리 있는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다. 단지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이야기를 쓰고 싶다. - P10

오래전에 나는 『달과 6펜스』라는 소설을 썼다. 그 책에서 나는 유명한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삼았다. 그리고 내가 창조한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서, 소설가의 특권을 이용해, 그 프랑스 화가에 대해 아는 빈약한 정보들이 주는 암시를 토대로 많은 사건을 만들어 냈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시도를 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허구로 꾸며 내지 않았다. - P10

조금 아까 나는 아무것도 허구로 꾸며 내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그 말을 약간 수정해야겠다. 나는 헤로도토스 시대 이후 역사가들이 그래 온 것처럼 내가 직접 듣지 못한 말들은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표현했다. 그렇게 한 것은 역사가들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다시 말해, 만일 그저 서술했다면 제대로 느낌을 살리지 못했을 장면에 생동감과 사실감을 더하기 위해서다. 나는 재미있는 책을 쓰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 그 정도의 융통성은 발휘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 P11

래리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저 얘기를 다 믿지는 마세요. 이사벨은 나쁜 여자는 아니지만 거짓말을 잘해요." - P39

어느새 우리는 미술관에 도착했기 때문에 자연히 관심도 그림으로 옮겨 갔다. 나는 엘리엇의 박학다식함과 예술적 안목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마치 관광객이라도 안내하듯 나를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데리고 다녔다. 그 어떤 미술교수라도 엘리엇만큼 훌륭하게 그림을 설명해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 P41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전 시행착오 따위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막다른 골목에도 들어가 봐야 제 목표를 찾을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자네 목표는 뭔가?"
그는 잠시 망설였다.
"바로 그게 문젭니다. 아직 목표를 모르겠어요."
나는 마땅히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잠자코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온 나로서는 몹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꾹 참았다. 나는 순간, 직감이랄까, 이 청년의 내면에서 어떤 혼란스러운 갈등이 요동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 P58

"난 증권 같은 걸 만지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어."
"알았어. 그럼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거나 의학 공부를 하는 건 어때?"
"아니, 그런 건 싫어."
"그럼 뭘 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그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 P80

"말로 표현하기가 참 힘들어. 표현하려고 하면 혼란스럽기만 하고, 어떤 땐 이런 생각이 들어. ‘이런 것 저런 것을 고민하는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내가 거만하고 몹쓸 인간이라서 그런 걸지도 몰라. 나도 남들 가는 길을 가면서, 그럭저럭 세상사에 순응하면서 사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 말이야. 하지만 한시간 전까지만 해도 쌩쌩하던 녀석이 죽은 모습으로 누워 있던 게 떠올라. 그러면 모든 게 얼마나 잔인하고, 얼마나 무의미한가, 하는 생각이 들어, 인생이란 대체 무엇인가, 산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가, 아니면 삶이란 눈 먼 운명의 신이 만들어 내는 비극적인 실수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 - P84

이사벨은 특정한 방식으로 교육받으며 자랐고, 또 그러면서 배운 원칙들을 받아들이고 지키며 사는 여자였다. 부족함 없이 원하는 것은 늘 가지며 살았으므로 돈에 목을 매지는 않았지만, 돈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돈은 곧 힘과 영향력을 의미했고 사회적 지위도 의미했다. 남자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남자의 필생의 과업이었다. - P87

그리고 언젠가 한 번은 전투가 끝난 뒤에 프랑스 병사들의 시체가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장면을 본 적이 있어. 그런데 마치 극단이 망한 후라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져서 먼지 가득한 구석에 쌓여 있는 꼭두각시 인형들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거야. - P89

"어쨌든 지금은 돌아갈 수 없어. 이제 막 뭔가 조금씩 보이려고 하니까.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드넓은 정신세계가 나를 부르고 있어. 난 그 세계를 여행하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해."
"거기서 뭘 찾고 싶은데?"
"내 의문에 대한 대답들." - P116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그런 질문을 던져 왔다는 것은 그런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해. 게다가 답을 찾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야. 다양한 대답들이 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만족스러워하는 대답을 찾아냈어. - P117

"당신은 정말 너무 현실감각이 없어. 내가 뭘 원하는지 전혀 모른다구. 나는 아직 젊고, 인생을 즐기고 싶어. 남들이 하는 것들을 하고 싶단 말이야. 파티에도 가고, 춤추러도 가고 싶고, 골프도 치고 승마도 하고 싶어. 예쁜 옷도 마음껏 입고 싶고, 친구들처럼 멋진 옷을 못 입는 게 여자한테는 얼마나 속상한 일인지 알아? - P121

"한마디로, 시카고에 자리를 잡고 헨리 매튜린 씨의 회사에 들어가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거지? 거기서 일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주식을 사도록 만드는 것이 사회에 커다란 기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증권 브로커는 사회에 필요한 존재야. 나무랄 데 없는 훌륭한 직업이고."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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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의 위대한 강연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진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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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학자이자 소설가로서 움베르토 에코의 명성은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에코의 소설은 첫 장편 소설『장미의 이름』에서부터 『프라하의 묘지』, 나아가 에코의 유작인 『제0호』까지 국내에 전부 번역되었다. 2009년에는 에코의 글을 한데 모은 총 25권짜리 전집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이 출판되기도 했다. 2016년 에코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간간히 에코의 책이 출간된다. 2년 전에도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 하는 방법』(2021)이 출간된 바 있다.


2022년 10월 국내에 소개된 『에코의 위대한 강연』은 2017년 이탈리아에서 출간된 Sulle Spalle Dei Giganti의 번역서이다. 편집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은 밀라노에서 열리는 문화축제 라 밀라네지아나(La Milanesiana)를 위해 에코가 2001년부터 2015년까지 렉티오 마지스트랄리스(대가의 강연) 형식으로 연재한 글을 엮은 것이다. 이 책은 총 2001년부터 2015년까지 에코가 준비한 12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마지막 글 '성스러움'은 2016년 준비 원고다) 


원제 Sulle Spalle Dei Giganti를 번역하자면 '거인의 어깨 위에서'이다. 이 책을 여는 0번째 글도 책의 원제에 걸맞게 「거인의 어깨 위에서」이다. 이어서 미, 추, 절대와 상대, 불, 보이지 않는 것, 역설과 아포리즘, 거짓, 불완전성, 비밀, 음모, 성스러움까지, 11가지 주제를 다룬다. 이 책은 00장 「거인의 어깨 위에서」를 포함해 총 12가지 테마에 관한 흥미로운 논의로 가득하다. 


이 책에 수록된 논의 대부분은 2000년대에서 2010년대 중반까지의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시대에 오히려 더 시의 적절한 테마들이 많다. 그 사례들을 들어보자.


에코가 세상을 떠난 후 대략 2010년대 후반부터 '가짜 뉴스'라는 말이 떠오르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진실 대신 '탈진실', '대안진실'이라는 말이 통용되기 시작했다. 미국과 브라질에서는 전임 대통령 지지자들이 선거가 조작되었다는 식으로 음모론을 제기한다. '딥스테이트'라는 비밀 집단이 배후에서 이 세상을 조종한다고 진지하게 믿는 음모론자들은 세상을 구원할 절대적이며 성스러운 존재를 갈구한다. 에코가 콕 집어 말하듯이 4원소 중에서 오로지 불만이 이 시대를 갈수록 불의 시대로 만들고 있다. 


이 책을 읽고난 후, 국제 뉴스에 나타나는 사례들을 돌이켜보면 에코의 논의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나가고 있었는지, 에코의 통찰력이 어디까지 뻗어 있었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번역 명에 걸맞게 '에코의 위대한 강연'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에코의 작품들 『장미의 이름』부터 에코의 유작인 『제0호』까지, 뭐든 하나 이상을 접해보았다면 이 책이 건네는 재미가 배가될 것이다. 특히 거짓, 비밀, 음모 같은 장은 에코가 소설(예컨대 『푸코의 진자』, 『프라하의 묘지)』)로 구체화한 관심사들이 무엇이었는가 알려준다. 에코의 소설을 얼마나 접하였는가에 따라, 이 책을 에코의 소설들과 연결하기 쉬울 것이다. 그 점에서 이 책은 국내의 '에코 마니아들'을 위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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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언제까지 책을 읽어야 하는 당위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책을 읽을 만한 환경 만들기에는 인색한 우리 사회의 모순을 탓하고 있어야 할 것인가? 이 책은 바로 그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급기야 한국서평학회를 창립하고 보니 더욱 다급한 일이 되고 말았다. 서평이란 무엇인가? 서평이 왜 중요한가? 독서와 서평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서평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그리고 서평은 학문이 될 수 있는가? 등등의 문제를 이론적으로 살펴보고, 서평의 실제모습을 담아내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목표다. 나아가 이 책은 궁극적으로 책 읽기를 좋아하고 책 읽은 느낌을 정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마음으로 기획되었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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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하고 싶은 문제나 전하고 싶은 가치관이 있다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확실히 쓰는 것, 불특정 다수의 존재를 주어로 삼아 마치 그 주장이 다수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처럼 속이지 않고 정확히 한 개인의 주장으로 글을 쓰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글쓰기 방식이지만 한번 도전해 보십시오. 성공 여부와는 별개로, 글에 책임과 각오가 생겨 점점 더 좋은 글을 쓰게 됩니다. - P101

가치를 전달하려면 자극이 필요합니다. 아무 맛도 없는 수프는 누구도 먹지 않습니다. 독자가 ‘어?‘ 하고 생각하게 하는 의외성 또는 ‘어, 정말 그럴까?‘ 반문하게 하는 장치 또는 ‘그건 생각도 못했는데‘ 하고 놀라게 하는 정보의 수준 등 글에 대한 궁리 없이는 메시지가 잘 전달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독자들이 글쓴이인 ‘나‘를 투명하게 지나치지 않아야 합니다. 지식, 경험, 착안점 등 어딘가에 ‘나‘만의 특징이 드러나도록 의식해 봅시다. 누구나 아는것, 누구나 경험해 본 것을 누구나 느낄 법하게 쓴다면 자극은 불가능합니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글을 쓰는 의미가 없습니다. - P113

‘누가 쓴 글인가?‘ 하는 질문은 단순히 글쓴이의 이름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글쓴이 정보에는 글쓴이의 성질이나 주의, 주장까지 담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P117

중요한 점은 모른다는 태도를 글쓰기의 결론으로 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쓰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생각했는데 모르는지 또는 어떠한 요소 때문에 모르는지를 분명히 글에 새기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인간의 관점에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글이 되어 떠오를 때, 읽는 사람은 거기로부터 자신의 생각이 어떤 경로로 이어질지 헤아릴 수 있습니다. 인간은 정보를 입력해서 금방 결론에 이를만큼 단순하게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헤매고 고민하는 과정을 추체험할 수 있는 글에는 상당히 이점이 있습니다. 읽고 나서 필자의 논의보다 진전된 결론을 도출해 내거나, 다른 관점을 확보하는 거점으로서 글을 소화하는 등 여러 가지 방향으로 읽을 수 있는 글이 뛰어난 비평이라 할 수있습니다. - P125

대명사로서 작동하는 ‘-하는 것‘은 언제든지 일반 명사로 바꿀 수 있습니다. ‘-하는 것‘에 감추어진 구체적인 말이있다면 그것을 분명히 밝힙시다. 그러면 어휘가 눈에 띄게 늘어납니다. - P133

우선 첫 번째 이유로 ‘어떻게 재미가 없었는지, 무엇이 재미없었는지, 왜 재미없었는지‘라는 여러 의문에 기껏 ‘재미없다‘라고 밖에 답하지 못한다면 옹색한 일입니다. 비평에는 글 쓰는 대상과 독자 그리고 글 쓰는 자신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킨다는 목적이 있기에 ‘재미없다‘를 상세히 밝히지 않으면 글을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의 미래를 변화시키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틀에 박힌 표현은 글쓴이가 대상 관찰을 게을리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잘 관찰하고 잘 분석하고 잘 생각하면 어떤 대상이라도 ‘재미없다‘는 한마디로 정리될 리 없습니다. 대상을 특별히 변호하려 하지 않더라도, 재미가 없으면 재미없는 특징 몇 가지는 있습니다. 틀에 박힌 말로 때우는 것은 그러한 특징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글쓴이는 게으른 겁니다. 타성에 젖은 글은 독자에게도 대상에도 불행입니다. - P139

제목에는 내용을 단적으로 정리하는 기능이 있고 이는 정말 필요한 것입니다. 한편 제목에는 독자를 매료시키고 고무할 역할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제목은 내용의 일부이자 첫 번째 페이지에 나오는 글이기 때문에 ‘다음 페이지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야 합니다.
제목으로는 독자를 여운에 잠기게 하는 말이 좋습니다. 그런 제목을 접하면 느긋이 취한 느낌이 들고, 깜짝 놀라기도 하면서 황홀에 빠져 페이지를 넘기게 됩니다. - P168

그러나 글을 쓰는 도중에 불안을 느낀다고 해서 바로바로 고쳐 쓴다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문장은 구조로서는 언어의 집합체이지만, 단지 언어가 모였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글의 윤곽이나 짜임새는 글을 통째로 볼 때만 보입니다. 작은 디테일이나 짧은 말 한마디에 위화감이나 반성하는 마음이 생기더라도 마음을 굳게 먹고 계속 써 나가야 합니다. 그 시점에서 하나하나 수정한다면 글 전체의 전경을 보기 어렵고, 글쓴이가 헤매는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 글발이 느려지고 둔해집니다. - P201

그렇다면 대상화되지 않은 장르, 더 정확히 말하면 비평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어떨까요? 이름 높은 비평가도 존재하지 않고, 비평의 장도 없는대상, 확정된 평가 기준도 갖지 못한 세계가 있다면, 그리고 그 세계가 갖는 가치를 널리 알릴 언어가 절실한 곳이라면 글을 쓰는 동기, 즉 생각하는 용기가 끓어오르는 듯합니다.
물론, 실행하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평가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은 세계란, 앞선 비평을 참조할 수도 없습니다. 어떠한 가치관이 어떠한 변천을 밟아 왔는지를 알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발로 뛰고, 자신의 눈을 믿고, 자신의 귀에 기대고, 머리를 움직이고, 온몸으로 그 세계에 뛰어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엄청난 작업이 되겠지만, 그로부터 생겨난 언어는 여러분 자신이 만들어 낸 가치가됩니다. 언젠가 그런 글을 저도 써 보고 싶습니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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