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이란 이처럼 무서운 전승력을 갖고 있다. 민속은 끊임없이 계승된다는 점에 그 힘과 뜻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속의 또다른 특징은 변한다는 데 있다. 전승되지만 그대로 전승되는 것이 아니라 변하면서 계승된다는 것이다. - P317

수성당 할머니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면서 생긴 수호신이다. 옛날에는그 신을 믿는 겸손이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과학과 개발만 믿는 만용으로 그런 참사를 당했던 것이다. - P326

풀여치 한 마리 길을 가는데
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
풀여치 앉은 나는 한포기 풀잎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
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하늘은 맑고
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바람 속
나는 나를 잊고 한없이 걸었다. - P330

일주문에서 대웅보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숲과 나무와 건물과 돌계단을 거닐면서 어느덧 세속의 잡사를 홀연히 떨쳐버리게 되니 이 공간배치의 오묘함과 슬기로움에서 잊혀져가는 공간적 사고를 다시금 새겨보게 된다. 자연을 이용하고 자연을 경영하는 그 깊고 높은 안목을. - P334

천하의 이치도 사물이 아니면 들어붙지 아니하고, 성인의 도라도 섬기지 않으면 행해지지 않는다.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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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개라는 짐승은 밤을 지키지 낮을 지키지 않으며, 앞을 지키지뒤를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니 낮에 그 뒤쪽(북쪽)을 치시오. - P283

사리암 오르는 길을 따라 운문산 학소대 쪽으로 가면 산비탈마다 낙엽송이 즐비하거든요. 이른봄 낙엽송에 연둣빛 새순이 아련하게 피어오르면 얼마나 곱고 예쁜지 몰라요. 새 생명에 대한 예찬이 절로 나와요. - P289

치장이 많고 변화가 다채로우면 예술적으로 더욱 성공할 것 같지만, 그런 예술은 수천만가지의 치장과 변화의 하나일 뿐이며, 단순성을 제고하면 오히려 수많은 치장과 변화를 내포할 수 있다는 역설적 논증이 이렇게 가능한 것이다. - P298

서양미술사학의 할아버지격인 빙켈만이 ‘고전예술’에서 그리스의 예술정신을 단 한마디로 요약하여 "고귀한 단순과 조용한 위대"라고 말한 것은, 단순하다는 것이야말로 고귀한 감정을 일으키며 위대함은 조용히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을 설파한 것이다. 더욱이 빙켈만은 치장과 변화가 요란한 로꼬꼬시대의 말기에 살았으니 동시대의 경박한 문화풍토에 대한 경종의 의미로 "고귀한 단순과 조용한 위대"를 더욱 강조했으리라. - P298

"가난한 자가 참된 마음으로 바친 하나의 등은 부자가 바친 만 개의 등보다도 존대한 공덕이 있다" -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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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피안사 비로자나불 앞에 여러번 섰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저 쇳덩이가 나에게 침묵의 언어로 내려주는 낱낱 사항들을 남김없이 받아내기 위하여. 그러면서 한편으로 우리 시대의 불상은 무엇을, 어떤 이미지를 담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20세기의 대불(大佛)들, 낙산사의 해수관음은 화려한 의상이 빛난다. 법주사의 청동 미륵상은 혹시 육사 출신이 아닌가 싶으며, 동화사의 통일 약사여래상은 턱과 목이 돈깨나 벌게 생겼다. 불가에 계신 분들이 나를 방자한 놈이라고 한다 해도 할 수 없다. - P256

우리나라의 옛마을에는 서원이 있고, 산속에 절집이 있다. 절집은 아무리 허름해도 온정이 느껴지는데 서원은 아무리 번듯해도 황량감과 황폐감만 감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사실, 사람이 살고 안 살고의 차이다. - P270

고향을 쫓겨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연고도 없는 낯선 동네를 찾아가서 다시 농사짓는 일, 도회로 나아가 막노동 품을 파는 일, 신대천으로 이주하여 가게 하나 내보는 일, 그 이상의 선택은 없다.
오직 한 가지 이유, 운문면 대천리에서 태어났고 거기서 살았다는 이유 하나로 이들은 졸지에 캄캄한 바다에 던져진 조각배이고, 사막에 떨어진 씨앗 같은 미물이 되고 말았다는 데 아픔과 슬픔이 있는 것이다. - P272

하여 그해 가을 운문국민학교에서 열린 죄잔치로 치러졌다. 그러나 이들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이 진국들은 운동회날 원없이 뜀뛰고 원없이 춤추면서 서러운 인생은 팔자소관으로 돌리고 웃음을 잃지 않은 생의 달관자들이었다.
그들을 보고 있는 내 눈시울만이 공연히 붉어졌을 뿐이다. 이제 와 생각하니 그분들은 어쩌면 울고 싶어도 울 눈물마저 말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 P274

하기야 현실을 뛰어넘은 예술은 없다. 그 모두가 현실의 모방일 뿐이며 현실은 항상 예술가, 정치가, 학자를 앞질러 지나갔다. - P274

아리따운 자태로 말하든, 늘씬한 각선미로 말하든, 늠름한 기상으로 말하든, 연륜의 근수로 말하든 운문사 소나무는 가장 아름다운 조선의 소나무이며, 조선의 힘과 자랑을 가장 극명하게 상징한다. 뿐만 아니라 운문사 소나무는 조선의 아픔과 저력, 끈질긴 생명력까지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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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모습이란 곧 절대자의 모습이다. 그 절대자는 한가지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는 절대자의 상도 한 가지가 아니다. 모든 불상은 그것을 제작했던 시기와 발원했던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절대자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 P253

왕권과 중앙 귀족이 원하는 세계는 석굴암 본존불 같은 원만한 질서이다. 꽉 짜여진 틀 속에 모든 것이 종속하기를 바라는 보편성의 추구이다. 그러나 지방의 호족은 달랐다. 그 보편적 틀 때문에 자신의 인간적, 사회적 능력을 제약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 틀을 깨어버려야 했다. 능력있는 자가 부처라는 이미지로 몰고 갔던 것이다.
궁예는 그런 호족의 하나로 드디어 왕을 자처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점은 하대신라의 여러 불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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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들이 문화재와 토목사업에 두는 관심은 자기능력의 과시와 대국민 선전효과에 있어왔다. - P222

늘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군가가 돌보아주어야 좋은 효과를 내며 자극도 된다 - P228

나는 항시 관(官)이 하는 일보다도 민(民)이 하는 일이 빛날 때 그 문화는 성숙한다고 믿고 있다. 세상사람들이 알아주는 일에 매달리는 스테이지 체질들이 제풀에 사그라들고, 남들은 뭐라고 하든 곰바위처럼 자기가 생각한 일에 일생을 거는 쇠귀신 같은 분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소중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 4천만이 들떠서 레게춤을 흔든다 해도 단 한 명만이라도 그러지 않는 인생이 있다면 우리 문화는 죽지 않고 영원하리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지난 1세기 한국역사가 나에게 가르쳐준 값진 교훈이었다. - P228

그날 내게 다가오는 석불사 석굴의 조각은 맹목적 보편성을 드러내는 아카데미즘이 아니었다. 신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인간적이고, 인간적이라고 말하기엔 절대자의 기품이 강하였다. 엄숙하다고 말하기엔 온화하고, 인자하다고 말하기엔 너무 엄했다. 젊다고 생각하려니 너무 의젓하고 노숙하다고 말하기엔 너무도 탄력있었다. 남성으로 보려 하니 풍염하고 여성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건장하였다. 그리하여 혹자의 "아버지라고 보려 하니 너무 자비롭고, 어머니로 보려 하니 너무 엄격했다"는 말도 생각났고, 이 세상의 질서와 평화가 저 한 몸에 있다는 말도 생각났다. - P234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 P234

종소리는 때리는 자의 힘만큼만(에 응분하여) 울려지나니……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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