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테크리스타
아멜리 노통브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세계사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길을 걸을 때 무심고 여린 가지를 꺽고 싶다거나, 작은 동물들을 괴롭히며 희열을 느낀다면, 스스로 앙테크리스타가 아닌지 되돌아 보라.

 

새 학기를 시작하는 상큼한 신학기의 광장. 블랑슈는 크리스타라는 이름을 가진 한 존재와 마주친다. 아니 멀찍이 떨어져서 보았으니, 목격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 생기 넘치고 아름다운 존재 크리스타. 그러나 크리스타와 가까워질수록 블랑슈는 사생활을 침해받고 그녀에게 조종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크리스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이. 그러나 현실은 사건을 항상 좀더 교묘하게 아울러서 뚜렷이 그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언구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 자체를 제 3자가 인정하기가 쉽지 않게 만든다. 블랑슈의 말처럼 번쩍하는 섬광 같은 행동이 아니고는 그 무엇도 누군가를 구해줄 수 없다. 말로 하는 변호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말은 오히려 공격의 실마리를 제공해줄 우려가 있다.

노통브는 위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통용될 만한 해답을 제시해 주지는 않는다. 블랑슈의 방법은 그녀의 방법일 뿐이다. 다만 작가 자신도 그런 고민을 품고 있었음을 짐작케 해주는 면은 있다.

 

사람은 각기 다른 성품을 지니고 태어나고 또 스스로 그것의 깊이를 만든다. 모두와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소수와 만나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똘레랑스. 노통브가 말하려고 했던 건, 단순히 힘든 사건에서의 탈출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인간성의 인정이자 이해는 아니었을까.

 

 

 

- 나는 우정에 대해 숭고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오레스테스와 필라데스,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 몽테뉴와 라 보에시 같은 우정이 불가능했던 것은 우정에 조금이라도 비열한 마음이나 경쟁심이, 일말의 부러움이나 한치의 의혹이 깃들면 나는 그 우정을 발로 차버렸다.

 

 

- 나는 적의 의도는 파악하고 있었지만 이해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그런 해로운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는 믿음이 그녀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을 것이다.

 

-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은 시련이었으며, 그것도 매우 견디기 힘든 시련이었다. 악을 얼싸안을 수 없었기에 힘든 시련이었다.

 

- 크리스타의 문제는 힘의 관계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그런데 나는 지배자니 피지배자니 하는 이야기들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따분하기만 했다. …중략…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나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중략… 불행이 가져다준 좋은 점도 있었다. 이 시기만큼 책을 열심히 읽은 적이 없었다. 과거의 결핍을 보충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앞으로 다가올 위기 상황에 맞서기 위해서도 나는 탐욕스레 책을 읽었다. 책읽기를 도피처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진리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다. 책읽기란 가장 정신집중이 된 상태에서 현실과 대면하는 것이다. 묘하게도 그것이 언제나 흐리멍텅한 상태로 현실에 뒤섞여 있는 것보다 덜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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