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헤드 마운틴’이 있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이 영화를 말하면서 뺄 수 없는 말이다. 오랜만에 예매를 일찍 해서 ‘조망권’에 드는 뒷자리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근데 ‘조망’은 고사하고 ‘요상’한 꼴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가며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앞자리에서 발생한 검은 연기는 영화 3분의 1을 넘어서며 앞으로 점점 전진하기 시작해, 결국 내 시야의 10분의 1가량을 완전히 잠식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작은 것 같지만 중앙 하단에는 자막이 흐르고, 나는 영어를 잘 못하고, 마침 잠식당한 곳이 그 부분이었다는 것은 ‘치명적’이란 단어로 밖에 내게 설명이 안 된다는 사실을 인정해주기 바란다.
 
 
앞자리 마운틴 분에게 정중히 등을 붙여달라는 부탁을 하거나 좌석을 발로 차는 등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사실 속으로 몇 번이나 하고 싶긴 했다) 자꾸만 앞으로 나가는 내 몸을 끌어당긴 건 화면이 밝을 때 비치던 살짝 희끗한 머리카락을 품고 있는, 단정한 두상이었다. 오른쪽에는 그의 부인으로 추정되는 여성분이 앉아계셨다. 줄곧 생각했다. 내 아버지가 저 앞에 앉아계시다면 난 어떻게 했을까. 이 생각을 하니 오히려 내 등판이 자연스레 뒤에 붙어 비비적거렸다. 과연, ‘아저씨도 로맨스를 꿈꾸게 하는 영화’다.
 
 
지금 그녀는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여기 오기 직전, 5년 사귀었고 이제 스타가 된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지금 남자는 클럽에서 노래를 듣고 있다. 노래에 어우러지는 피아노, 드럼, 바이올린, 첼로, 더블베이스의 합주가 순식간에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오늘 아침 음반 회사에서 쫓겨난 프로듀서다. 영화는 한 번씩 그들이 만나기 전 과거를 간추려 주고 음반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을 하나씩 보여준다. 여자는 싱어송라이터, 남자는 프로듀서, 감독은 재간둥이다.
 
 
이 영화에서 뺄 수 없는 재미는 줄거리보다 음악 얘기다. 아바의 히트곡으로 만들어진 것이 ‘맘마미아’라면 ‘비긴 어게인’의 노래들은 분명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이상한 건 익숙하게 들어오던 아바의 노래처럼 새로운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음악들이 귀에 익숙하게 들린단 거다. 간드러지는 데이브(애덤 리바인)의 목소리보다는 담백한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 목소리가 더 좋았다. ‘라이크 어 풀(like a fool)’은 듣다가 정말 눈물 날 뻔했다.


가장 좋았던 장면은 그레타와 댄(마크 러팔로)이 서로의 감정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키스 따윈 하지 않고 헤어지는 장면이었다. 그때 키스를 했다면 예술이라는 포장지를 뒤집어씌운 치정극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각자 예전 짝에게 배신당했으니 둘이 이어지는 게 맞았던 걸까, 영혼을 울리는 음악을 공유할 수 있으니 잘 맞는 짝인 걸까. 다행히도 그들은 키스를 하지 않았고, 덕분에 오랜만에 15세 관람가(야한 액션영화는 전체 관람가면서, 왜?)다운 올바른 상업영화를 한 편 봤다. 좋은 음악은 단조로운 일상을 빛나게 해주고, 좋은 영화는 더 멋지게 살고 싶게 한다.
 
 
 
Keira Knightley - Like A Fool (Begin Again Soundt…: http://youtu.be/xk5GvfIZG-g
 
 
+다만, 음반회사와 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그레타에게 댄이 “마음대로 해. 그건 네 음반이야.”라고 하는 건 다소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투자를 받아온 댄은? 밴드 멤버들은 엄밀히 이야기하면 객원 형식 아니었나? 중간중간 공장제 아이돌을 꼬집는 댄의 말은 좋았지만 그와 같은 시스템 안에 있던 프로듀서가 없었다면 그레타의 노래가 하루에 10만장씩 팔릴 일은 없지 않았을까. 포인트가 ‘나쁜 음반업계, 정의로운 그레타’라고 양분되는 것 같아서 좀 중얼거려 본다. 한 사람만 많이 버는 양극화 사회가 되면 곤란하니 이것도 좋은 해결책 일수도 있겠다. 흥행을 하고 지분을 동등하게 나눴으니, 다시 모여 2집을 만들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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