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VS 80의 사회 - 상위 20퍼센트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
리처드 리브스 지음, 김승진 옮김 / 민음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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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20퍼센트인 중상류층은 상당히 많은 혜택을 받아 왔다. 이제는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유리하고 특권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인정해야 할 때다. 여기에는 겸손, 염치 그리고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하지만, 문제 자체를 인식하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미국 중상류층 사이에는 '나는 이만큼 누릴 자격이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중상류층이 1퍼센트를 비난하며 '우리가 99퍼센트'라고 외칠 때처럼, 사람들은 대개 자기보다 더 잘사는 사람과 비교하기 마련이라는 점이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나의 지위는 나의 능력 덕분이므로 마땅히 나의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2018년 인기 드라마였던 JTBC <스카이캐슬>에서는 명문 대학 입시를 위한 상류층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명문대 입학을 위한 커뮤니티를 조성하여 정보를 공유하고, 입시 코디네이터를 고용해 대입을 위한 전반적인 커리큘럼을 관리하는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은 다 안다. 그것이 결코 허구의 드라마 속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라고. 이 사회 어딘가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더 이상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세계 사람들에게 '기회의 나라'로 알려진 미국도 그러할까?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2016년 말에 미국 시민이 된 《20 VS 80의 사회》의 저자 리처드 리브스는 '기회의 나라'라는 표현은 더 이상 미국에 존재하지 않음을 지적한다. 영국에 존재하는 계급이 싫어 계급 없는 이상적인 나라를 꿈꾼 사람들이 만든 미국에도 계급이 있으며 우리가 흔히 아는 '1 vs 99'의 구도가 아닌 '20 vs 80'의 구도로 존재함을 밝혀낸다. 20%의 중상류층, 그들이 만들어 낸 유리바닥은 이전에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다는 사실은 이 사회에서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옛말이 옛 표현 그대로 느껴지도록 만든다.



중상류층 아이들은 보통의 아이들과 매우 다르게 자란다. 특히 그들은 노동 시장에서 높이 평가받는 기술, 재능, 자질, 학위 등을 쌓는 데 굉장히 유리하다. 공식적으로 술을 마셔도 되는 나이쯤 되면 앞으로 그들이 미국의 계급 사다리에서 어디를 차지하게 될지는 거의 명백해진다.



이전까지만 해도 계급은 돈으로만 규정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리처드 리브스는 돈뿐만 아니라 학력, 태도, 거주지, 그리고 삶의 방식에서도 생겨나는 차이가 계급을 만들어낸다고 이야기한다. 양친이 있는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라 높은 교육 수준을 가진 부모, 좋은 동네와 인근에서 가장 좋은 학교에 다녀 다양한 재능과 능력을 계발하고 학위와 자격증을 따는 아이들. 이미 사회에서 다른 출발선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자신들이 같은 출발선 상에 놓여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한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인적 자본 형성기에서의 격차를 좁히는 것이다. 특히 생애 첫 20년 사이에 생기는 격차를 줄여야 한다. 이는 화목하고 안정적인 가정, 헌신적인 양육, 양질의 교육 환경 등 중상류층 아이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것의 상당 부분을 더 많은 아이들이 누리게 해야 한다는 의미다. 중상류층 부모는 이런 면에서 잘못하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모범이 될 만하다.



《20 VS 80의 사회》에서는 '아메리칸드림 사재기'라는 독특한 표현을 사용한다. 잘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결집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고착화 되어가는 사회 불평등을 '사재기'라고 표현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이러한 사회 불평등이 해결되기 위해선 중상류층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저자는 강조한다. 노동 시장에서 조금 더 균등한 기회가 분배되어야 하며 80% 가정의 아이들이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사회의 불균형을 없앨 수 있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책을 읽으며 이 모든 것이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랜 과거 속에서 '음서'제도를 통해 관직을 세습 받았던 사회가 있었고, 능력을 중시하며 모두가 같은 신분이라고 주장했지만 현실적으로는 부모 세대의 신분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사회가 있었다. 반면에, 산업이 고속 성장하며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계층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사회의 모습도 있었다. 이제 당신이 놓인 사회의 모습을 직면할 때가 왔다.


과연, 우리는 어떤 사회의 모습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훗날 아이들에겐 어떤 사회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기회의 균등이 보장된 사회, 유리 바닥과 유리 천장으로 분리되지 않은 사회. 모두가 꿈꾸는 이상적 사회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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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설득
메그 월리처 지음, 김지원 옮김 / 걷는나무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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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순간이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 역시 그런 식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작은 깨달음이 처음에 중요한 인식의 방향으로 잡아주고 그다음에 거기에 대해 뭔가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가는 동안에 당신에게 영향을 미치고 여러 가지 방향으로 아주 살짝 돌아서게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갑자기 당신이 무엇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지 깨닫게 되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은 느낌이 사라진다.



미국 여성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 뽑히는 메그 윌리처는 《여성의 설득》을 통해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대학 신입생 그리어가 60대 페미니스트 페이스를 만나 그녀의 삶을 구축해가는 과정 속에서 숨겨진 여성의 야망, 우정, 권력을 드러낸다. 자신이 원하고 꿈꿔온 길을 먼저 걸은 '멘토'에게서 다른 의미의 멘토링을 받게 된 그리어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선택과 결정을 내린다.


대학 신입생이 된 그리어는 교내에서 여학생들을 추행하고 다녔던 대런 틴즐러의 또 다른 피해자가 됨과 동시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에 고민에 휩싸인다. 우연히 그리어의 학교에 페미니즘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페이스가 찾아오게 된다. 그리어는 용기내어 페이스에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묻고, 그 용기를 높게 산 페이스는 그리어에게 그녀가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준다. 많은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상처받지 않도록 돕는 페이스를 동경하던 그리어는 길을 잃어버린 듯한 방황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내 페이스가 자신에게 준 힘을 깨닫는다.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지가 원하는 거였다. 필요한 사람이 되거나 사랑받는 것. 둘 중 하나나 둘 모두를 원했다. 둘 모두면 더욱 좋지! 두 가지는 같지 않았지만 서로 연관된 범위에 있었다. 그녀에게도 사랑이 올 수 있겠지만, 어쩌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녀의 삶은 일에서든 사랑에서든 절대로 안정되지 않고, 절대로 순조롭게 해결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쨌든, 걱정할 거 없어!




"이게 내 삶이 될지 어떨지 잘 모르겠어. 어쩌면 난 이 일을 잘 하지 못할 수도 있어."

"잘 하는 법을 배우게 될 거야. 넌 많은 걸 잘 하잖아, 그리어. 글쓰기, 문학 읽기, 사랑."



그리어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해 쉽게 확신을 갖지 못한다. 그런 그리어에게 페이스는 동경의 대상으로서 그녀가 되고 싶은 모습을 보여준다. 언제나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의 모습. 메그 윌리처는 "모든 것의 시작에 서 있으면서 아직까지 형태를 갖지 않은 사람과 이미 많은 것을 보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비전을 가졌으며 다른 사람의 롤모델이 되는 사람"을 비교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두 사람을 통해 서서히 연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디서 일을 하든 나도 뛰어들어서 뭔가 진정한 일을 하고 싶어. 내가 정말로 열정을 가질 수 있는 걸로."



《여성의 설득》 속에서 그리어의 대학친구 지 역시 그녀의 길에서 선택과 결정을 반복하며 앞으로 천천히 나아간다. 저마다 꿈꾸는 바를 향해서, 이 시작이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씩 나아가다보면 완벽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서로가 서로에게 또 다른 영향을 주는 사이가 되어가며.


소설 밖 여성 독자들 역시 늘 자신의 길에서 선택과 결정을 반복하며 살아갈 것이다. 물론 나 역시 똑같다. 이상적으로 꿈꾸는 길을 그려놓고, 그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나는 여전히 수많은 선택과 결정 속에 놓였음을 알고 있다. 때로는 고집있는 선택을 해보기도 하고, 때로는 조금의 후회를 안고 다른 선택을 해보기도 하며 스스로 정한 길을 묵묵히 걸어가면 된다는 사실도. 웅크리고 앉아 있는다면 내 주변의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여성의 설득》은 삶의 문제 앞에 놓인 당신에게 어쩌면 응원의 목소리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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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전 - 설명할 수 없는 마음들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 위하여
김버금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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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 채 외면했던 마음들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너는 불안이구나. 너는 외로움이구나. 오랜만이야, 슬픔아. 모든 마음에게는 이름이 있었다.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마음에게 이름을 불러주고서야 알았다.



생각이 많아질 때면 나는 지인들을 만난다.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 주체하지 못한 채 입을 연다. 내가 겪은 일, 그래서 느낀 감정들을 털어놓았다고 생각하지만 어딘가 여전히 불편하고 간지럽다. 못내 뱉어내지 못한 마음들이 남아있는 것처럼. 머리로는 깨끗이 정리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다. 그리고 나는 이 마음을 애써 무시하려고 한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할수록 그러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기쁘다, 즐겁다, 재밌다, 행복하다…… 이런 마음들을 참 쉽게도 내뱉는다. 남들에게는 별거 아닐지 모르는 작은 일에도 나는 '좋다'라며 긍정한다. 반대로 슬프다, 괴롭다, 아프다, 외롭다, 불안하다…… 이런 마음들은 쉽게 내뱉지 못한다. 어디서 오는지 알 수도 없을뿐더러 괜히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더 심한 감정들이 물밀듯 밀려온다. 감당하기엔 내가 너무 나약한 것 같다는 생각에 최대한 마음 안으로 꾹꾹 눌러 담는다. 그리고 결국 병든 내 마음을 마주한다. 이 마음들을 어찌 다 감당할 수 있을까?



젖은 신발처럼 다시 마르기까지, 다시 아물기까지 유독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젖지 말아야 하는 것만은 아니었음을, 나는 온통 젖어본 뒤에야 알았다. 여러 계절을 돌아온 내가 그때의 나를 바라본다. 이제는 예고 없이 쏟아지는 빗방울에, 또는 예고 없이 빠지는 웅덩이에 조금은 너그러운 자세로 대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브런치북 6회 대상 수상작 《당신의 사전》의 김버금 작가는 다양한 마음의 이름을 노래한다. 책장 한편에 잠들어 있던 낡은 국어사전 속 천 개가 넘는 마음의 이름들을 적어 내려가며 흔들리지 않으려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마음들의 존재를 깨닫는다. 그 모든 것들이 마음 하나의 모습임을. 그리고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위로와 공감의 글을 선사한다. 김버금 작가의 글을 읽는 동안 같은 마음을 가진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된다.







언제나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 언제나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 무릎에 얼굴을 묻으며 다짐했다. 그래. 인생이 설명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라면 설명할 수 없는 내 마음들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아도 좋겠다. 그러니 더 이상 나를 속이지 말자. 내가 오늘 한 일 중 좋은 일은 비둘기의 마지막을 지켜봐준 일. 그리고 비로소, 나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일이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요즘의 나는 아주 이기적이었다. 스스로도 알지 못한 마음을 다른 사람은 알아주길 바랐다. '나도 내 마음을 몰라.'라고 말하면서 마음을 들여다보기를 거부했다. 무서웠다. 두려웠다. 답답함에 깊어지는 한숨은 마음을 마주하고자 하는 의지를 꺾어버렸다. 그리고 매일같이 찢기고 상처받아 병든 마음은 나를 자책했다. "나약한 겁쟁이."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다.


《당신의 사전》를 읽으면서 지금 나는 내 마음에게 어떤 이름을 붙여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불안하다, 이상하다, 속상하다, 슬프다…… 현재의 나는 이렇게 아픈 이름들 밖에 붙여줄 수는 없는 건가. 그러다 '꿋꿋하다'라는 마음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불성실이 나에게 성실이면 되었고 쓸모없음이 나에게 쓸모 있음이라면 그만이라고." 모든 건 나에게 달렸음을, 나약한 겁쟁이라고 내가 만든 틀에 나를 가두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내 마음에게 미안했다.







파도가 밀려오기 전

당신의 마음에 좋아해요, 라고 쓰고서

뒤돌아 도망가던 일.

부서질 때까지 가슴 떨리던

그 순간이 좋았다.



조금 아쉬웠다. 이런 이름밖에 가지지 못한 마음일 때 《당신의 사전》을 만나게 되어서.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하지도 않고 들여다볼 시간도 없는 때에 이 책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온전히 그 이름들이 가진 느낌들을 음미할 수 없었으니. 그래서 시간이 지나 내 마음이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될 때 나는 《당신의 사전》을 다시 펼쳐 볼 생각이다. 그때에는 내 마음과 마주하고 지금과는 다른 이름들을 붙여줘야지.


든든하다, 고맙다, 설레다, 다정하다, 편안하다, 사랑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붙인 불안하다, 이상하다, 속상하다, 슬프다 와 같은 이름의 마음들은 오히려 더 안아주고 보듬어주고자 한다. 모든 게 다 소중한 내 마음이니까.(조금 여유가 생긴다면, 《당신의 사전》 속 마음의 이름들을 주제로 개인적인 글을 써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소중한 마음도 그렇게 아름다운 이름들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당신만의 마음 사전을 써 내려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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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전이수.전우태 지음 / 김영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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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의 마음은 비록 한 조각의 작은 마음이라도 카멜레온처럼 수많은 색깔로 바뀌고, 때로는 남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보호색으로 덮는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고, 숨은그림찾기처럼 열심히 찾는다면 그 마음의 실체를 확실히 볼 수 있다.



마음. 누구에게나 저마다 다른 형태로, 다른 색깔로 존재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음이 어떤 형태와 색으로 이루어졌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 마음이란 건 그렇다. 무형의 것 중에서 가장 뚜렷하게 보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스스로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은 물론 타인의 마음도 쉽게 알아보기 어렵다. 그러니까, 우리는 '마음'이 어떤 건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내곤 한다. 찢기고 아무는 그 과정을 반복하며.


현실과 마주하기 시작하면서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솔직하게 마음을 내비치는 것이 어려워졌다. "내 마음대로 할래!"라고 호기롭게 외치며 모든 일들을 했던 때와는 달리 "나조차도 내 마음을 모르겠는걸."이라며 그 자리에 주저앉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내 의도와는 달리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다반사였다. '열두 살 동화 작가'로 불리는 전이수 군은 마음을 어떻게 바라볼까?



마음이 제일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사랑은 그 안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은 자기 자신만 바라보고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아니, 더 이상 사랑이 남아있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어른들을 위한 책이다. 스스로에게도 따뜻하지 못한 마음을 가진 어른들은 다른 이에게도 따뜻한 사랑을 나눠줄 여력이 없다. 전이수 군은 이 책을 읽는 어른들에게 잃어버렸던 따뜻한 사랑의 시선들을 노래한다. 






노키즈존이 만들어지고 아이들을 갈 곳을 잃었다. 더 이상 예전처럼 맛있는 음식을 즐겁게 먹었다는 좋은 추억을 만들 장소는 어느새 아이들에게 다시 갈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자신도 아이였다'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어른들은 아이들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아차 싶었던 건 그 이야기뿐이 아니었다. 자라고 자라 어른이 되어 버린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하나를 놓쳐버렸음을, 전이수 군은 자신의 글과 그림을 통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미처 자라지 못한 마음들을 하나씩 어루만진다.



그 기쁨이 언제 나를 즐겁게 해줄지 모르지만 말이다.

아직 슬퍼하는 것은

내가 그 노트를 마음에서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즐거움도 그 거리만큼

멀어져 가는 것 같다.



《마음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를 읽기 전의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열두 살이 마음을 논하다니. 귀엽네.' 정도였다. 그러나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길수록 나는 오히려 부끄러웠다. 마음도 모르면서 논하고 있던 건 나였으니까.






전이수 군의 동생 전우태 군의 생각도 형 못지않았다. 현실과 마주한 뒤 두려움에 떠는 나날들을 보내던 나에게 이보다 더 멋진 생각은 없었다.


어두컴컴한 길을 가야 한다면, 난 이렇게 생각할 거야.

'내 머리가 아니라 나의 발로 한 걸음, 한번 앞으로 가보자!'

그런데 다시 나의 마음은 쪼그라들기 시작하고

그때 난 생각하지. 난 그냥 쓸려가는 나뭇잎이라고.

용기를 내 한발 더 나아가면 약간의 두려움이 또 찾아오지.

그렇지만 나의 용기가 날 안아주면

어디선가 기쁨이 찾아오는 느낌이 들어.

그렇게 나의 두 발로 땅을 차고

용기로 덮인 나의 몸은 터벅터벅 발걸음을 내딛어.

그 어두컴컴한 좁은 길들은 내가 걸어갈 인생길이었던 거야.

《마음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p. 184



두렵고, 무섭고, 공허했던 마음은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랑을 잃어버린 마음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작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다시 바라보자. 그 속에서 잃어버린 사랑을 찾는다면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서로의 따뜻한 마음이 이어져 그 누구도 아프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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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살짝 비켜 가겠습니다 - 세상의 기대를 가볍게 무시하고 나만의 속도로 걷기
아타소 지음, 김진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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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다섯. 휴학 1년, 졸업 6개월 차로 취업 시장에 내던져졌다. 나름 목표도 갖고 꾸준히 해왔다고 믿었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취업 소식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리 조바심 내지 않아도 돼요, 취업 못하는 게 아니라고 여기지 말고 조금 더 여유롭게 즐겨봐요." 주변에서는 나에게 그렇게 위로했다. 그 말을 들으니 더 조바심이 났다. 조금이라도 빠른 경험을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다 《저는 살짝 비켜 가겠습니다》를 읽게 되었다. 여성성이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자학했던 저자 아타소는 여성성을 강요하는 사회를 향해 일침을 날린다. 외모에 자신이 없거나 연애와 결혼이 잘 안풀린다고 고민하는 여성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여성으로서, 사회초년생으로서 공감되는 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읽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도 모르는 콤플렉스들이 있었나 싶기도 하고.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자신감이 떨어지는 일도 없을 텐데 말이다. 어쩌면 마음 내키는 대로 생활하는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가진 모든 콤플렉스 또한 이겨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껏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왔다. '학생'이라는 편안한 울타리 속에서 보호받았다. '이런 직업을 가지고 살면 멋지겠다.'라는 이상 속에서 살았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러다 진짜 사회 속으로 뛰어든다 하니 무서웠다. 눈 앞의 현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이상과 현실들이 서서히 부딪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동안 내가 생각해 온 가치들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리는 느낌이었다.



거리에서 스치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자주 만나는 사람들도 사실은 평범한 어른이 되기에 여러모로 부족할지 모른다. 나와 똑같은 불안감을 품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모난 부분을 드러내지 않고 튀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뿐 일수도 있고 말이다. 그저 평범한 어른이 된다는 건 우리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저는 살짝 비켜 가겠습니다》를 읽으며 나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아직 어른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스스로 어리다 판단했다. 그러면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될지 생각했다. '불안과 걱정이 잠식해와도 우선 부딪혀보기.' 학생 때로 지레 겁먹었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 별 것 아닌 일이라는 것을 느꼈던 것처럼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기로 했다. 그 속에서 다시금 새로운 가치들을 찾고, 너무 늦었다고 여기지 않기로 스스로를 다독였다.



내 인생에도 운명을 바꾸는 순간이 언젠가 찾아올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서 주어지든, 스스로 쟁취하든 상관없다. 비록 어렸을 때부터 상상했던 어른이 되지는 못했지만, 내 인생을 확 바꿀 만한 운명이 찾아올 그때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준비운동을 하고 있을 생각이다.



훗날 내가 어떤 선택을 하던 간에 나는 그 선택을 존중할 테다. 생각했던 것들이 부서지고, 아파하고, 다시 단단해지는 과정을 몇 번이고 겪다보면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제 첫 발을 뗐다. 계속 나아가길 바란다. 속도는 중요치 않다. 힘들면 쉬어가도 된다. 저자 아타소처럼 살짝 비껴 나가도 좋고.



진정한 의미의 혼자가 되어 묵묵히, 당당히 살아가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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