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사전 - 설명할 수 없는 마음들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 위하여
김버금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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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 채 외면했던 마음들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너는 불안이구나. 너는 외로움이구나. 오랜만이야, 슬픔아. 모든 마음에게는 이름이 있었다.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마음에게 이름을 불러주고서야 알았다.



생각이 많아질 때면 나는 지인들을 만난다.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 주체하지 못한 채 입을 연다. 내가 겪은 일, 그래서 느낀 감정들을 털어놓았다고 생각하지만 어딘가 여전히 불편하고 간지럽다. 못내 뱉어내지 못한 마음들이 남아있는 것처럼. 머리로는 깨끗이 정리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다. 그리고 나는 이 마음을 애써 무시하려고 한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할수록 그러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기쁘다, 즐겁다, 재밌다, 행복하다…… 이런 마음들을 참 쉽게도 내뱉는다. 남들에게는 별거 아닐지 모르는 작은 일에도 나는 '좋다'라며 긍정한다. 반대로 슬프다, 괴롭다, 아프다, 외롭다, 불안하다…… 이런 마음들은 쉽게 내뱉지 못한다. 어디서 오는지 알 수도 없을뿐더러 괜히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더 심한 감정들이 물밀듯 밀려온다. 감당하기엔 내가 너무 나약한 것 같다는 생각에 최대한 마음 안으로 꾹꾹 눌러 담는다. 그리고 결국 병든 내 마음을 마주한다. 이 마음들을 어찌 다 감당할 수 있을까?



젖은 신발처럼 다시 마르기까지, 다시 아물기까지 유독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젖지 말아야 하는 것만은 아니었음을, 나는 온통 젖어본 뒤에야 알았다. 여러 계절을 돌아온 내가 그때의 나를 바라본다. 이제는 예고 없이 쏟아지는 빗방울에, 또는 예고 없이 빠지는 웅덩이에 조금은 너그러운 자세로 대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브런치북 6회 대상 수상작 《당신의 사전》의 김버금 작가는 다양한 마음의 이름을 노래한다. 책장 한편에 잠들어 있던 낡은 국어사전 속 천 개가 넘는 마음의 이름들을 적어 내려가며 흔들리지 않으려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마음들의 존재를 깨닫는다. 그 모든 것들이 마음 하나의 모습임을. 그리고 자신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위로와 공감의 글을 선사한다. 김버금 작가의 글을 읽는 동안 같은 마음을 가진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된다.







언제나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 언제나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 무릎에 얼굴을 묻으며 다짐했다. 그래. 인생이 설명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라면 설명할 수 없는 내 마음들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아도 좋겠다. 그러니 더 이상 나를 속이지 말자. 내가 오늘 한 일 중 좋은 일은 비둘기의 마지막을 지켜봐준 일. 그리고 비로소, 나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일이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요즘의 나는 아주 이기적이었다. 스스로도 알지 못한 마음을 다른 사람은 알아주길 바랐다. '나도 내 마음을 몰라.'라고 말하면서 마음을 들여다보기를 거부했다. 무서웠다. 두려웠다. 답답함에 깊어지는 한숨은 마음을 마주하고자 하는 의지를 꺾어버렸다. 그리고 매일같이 찢기고 상처받아 병든 마음은 나를 자책했다. "나약한 겁쟁이."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다.


《당신의 사전》를 읽으면서 지금 나는 내 마음에게 어떤 이름을 붙여줄 수 있을까 생각했다. 불안하다, 이상하다, 속상하다, 슬프다…… 현재의 나는 이렇게 아픈 이름들 밖에 붙여줄 수는 없는 건가. 그러다 '꿋꿋하다'라는 마음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불성실이 나에게 성실이면 되었고 쓸모없음이 나에게 쓸모 있음이라면 그만이라고." 모든 건 나에게 달렸음을, 나약한 겁쟁이라고 내가 만든 틀에 나를 가두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내 마음에게 미안했다.







파도가 밀려오기 전

당신의 마음에 좋아해요, 라고 쓰고서

뒤돌아 도망가던 일.

부서질 때까지 가슴 떨리던

그 순간이 좋았다.



조금 아쉬웠다. 이런 이름밖에 가지지 못한 마음일 때 《당신의 사전》을 만나게 되어서.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하지도 않고 들여다볼 시간도 없는 때에 이 책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온전히 그 이름들이 가진 느낌들을 음미할 수 없었으니. 그래서 시간이 지나 내 마음이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될 때 나는 《당신의 사전》을 다시 펼쳐 볼 생각이다. 그때에는 내 마음과 마주하고 지금과는 다른 이름들을 붙여줘야지.


든든하다, 고맙다, 설레다, 다정하다, 편안하다, 사랑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붙인 불안하다, 이상하다, 속상하다, 슬프다 와 같은 이름의 마음들은 오히려 더 안아주고 보듬어주고자 한다. 모든 게 다 소중한 내 마음이니까.(조금 여유가 생긴다면, 《당신의 사전》 속 마음의 이름들을 주제로 개인적인 글을 써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소중한 마음도 그렇게 아름다운 이름들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당신만의 마음 사전을 써 내려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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