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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만나러 갑니다
이치카와 다쿠지 지음, 양윤옥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평점 :
집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 나는 종종 영화를 본다. 유독 일본 영화를 많이 보는데, 일본 영화가 가지는 특유의 감성 때문이다. 장면 속에서부터 느껴지는 청량감이나 인물 관계에서 오는 풋풋함들이 아름답게 그려지는 그 감성이 너무도 마음에 든다. 많은 일본 영화 중에서 내가 좋아했던 영화 중 하나는 다케우치 유코, 나카무라 시도 주연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였다. 배경 연출이나 분위기 등의 조화가 좋아 영화를 보고 난 뒤 절로 비 오는 날을 기다리게 만드는 영화였는데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손예진, 소지섭 주연으로 동명의 영화로 리메이크 되었다는 소식을 다시 듣게 되었다. 하지만 영화로 다시 보지는 못했고 영화의 원작 소설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읽게 되었다.
동명의 원작 소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영화와 같은 감성을 담고 있었다. 다쿠미는 순수했고, '그런 거야?'를 입에 달고 살았던 유지는 엉뚱하면서 귀여운 매력을 보여준다. 두 사람을 보면 괜스레 웃음이 난다. 기억을 잃어버린 미오가 두 사람에게 다시 빠진 것처럼.
비와 함께 찾아와서 당신과 유지가 씩씩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을 확인하면
나는 여름이 오기 전에 다시 돌아가기로 할래.
왜냐면, 나는 더운 건 영 질색이거든.
다쿠미와 유지는 미오를 떠나보내고 단둘이 살아간다. 두 사람은 미오는 죽은 것이 아니라 아카이브 별로 떠났다는 생각을 하며, 언젠가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비가 오는 일요일, 여느 때처럼 숲속의 술 공장을 찾은 다쿠미와 유지는 기억을 잃고 앉아있는 미오를 발견한다. 다쿠미와 유지는 미오를 데리고 집에 돌아간다. 다쿠미는 미오에게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그녀의 잃어버린 기억을 다시 찾도록 도와주고, 미오는 짧은 시간 동안 편안해진 다쿠미와 유지와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어느새 그들에게 허락된 비의 계절은 서서히 끝나가게 된다.
그렇게 1년의 세월을 두고 많이 어긋나버린 음정을 그녀가 하나씩 하나씩 조율해나가고 있었다. 기억도, 심지어 목숨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녀 쪽이 나보다 훨씬 똑똑하다는 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분명 그녀는 엄청나게 특별한 존재이리라. (p.142)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기적을 보여준다. 가족 구성원 중 한 사람의 죽음으로 만들어진 큰 공백은, 그 기적으로 인해서 많은 것들을 채운다. 미오가 죽고 1년 동안 다쿠미와 유지는 엉성한 생활을 한다. 다쿠미가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어 매일 저녁 카레라이스를 먹고, 밀린 빨래로 인해 스파게티 소스가 묻은 옷을 며칠씩 입고 다닌다. 무엇보다도 미오에 대한 그리움은 다쿠미와 유지, 두 사람의 큰 공백을 남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이 세상에는 없는 '아카이브 별'을 만들고 그곳에 살고 있을 미오를 그리워한다. 그러다 두 사람에게 일어난 기적은 공백을 크게 메워준다. 미오와의 재회로 인해 두 사람은 잃어버린 활기를 다시 찾는다.
그 활기 속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다쿠미와 미오의 사랑이다. 두 사람은 굉장히 느린 속도의 사랑을 보여준다. 자극적이고 강렬한 사랑의 모습과는 달리, 서로에게 잔잔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그들의 사랑은 순수하게 느껴진다.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언제 다시 만나도 그 마음 그대로를 간직한다. 그래서 더욱 두 사람은 운명적으로 보인다. 운명적인 두 사람의 사랑을 보다 보면, 연애 초기의 풋풋하고 설레는 감정이 몽글몽글하게 피어난다.
3년 동안 해마다 반이 바뀌었어도 우리는 항상 같은 반 같은 조, 나는 너의 오른편 옆자리거나 왼편 옆자리, 혹은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반경 1미터의 조그만 원 속에 함께 들어가 보내고 있었다. (p.104)
다쿠미와 미오, 유지가 다시 만난 비의 계절이 곧 다가온다.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나는 아마 ≪지금, 만나러 갑니다≫가 다시 생각날 것 같다. 느리지만 순수한 다쿠미, '그런 거야?'를 입에 달고 사는 엉뚱하면서도 귀여운 유지, 그리고 그 둘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미오. 세 사람의 비의 계절은 시원하면서도 따스하다.
언젠가 어딘가에서 또다시.
그때도 나를 당신 옆자리에 있게 해줘.
정말 마음이 편안하거든, 당신 옆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