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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은 소설이 아니다.소설을 다양하게 읽기를 바라는 일종의 쿤데라식 소설론이다.고전을 읽는 것이 재미있었진 것도 보여지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서인데,쿤데라는 그런 시각을 '커튼'이란 은유로 설명을 해 주고 있었다.순간 인상적이었던 영화 포스터 두장이 오버랩되었다.

 

 

커튼을 응시하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라고 생각 했던 영화 포스터였다.그런데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영화 제목은 '커튼'에서 쿤데라 선생이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던가? 돈키호테를 읽으면서 누군가는 그저 기사소설에 미친 시골기사 정도로 생각하니까 말이다.물론 소설을 읽고 느끼는 것은 오로지 독자 마음이니까..옳고 그름에 대해 말할 문제가 아니다.다만 진정 책 속으로 온전히 빠져들 생각이라면 커튼에 감춰져 있을 지도 모를  저 너머의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은 아닐까...

 

쿤데라 소설에 익숙했던 나는 소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에세이 형식의 '커튼' 이 결코 가볍지 않았다.해서 강연전 정독을 미처 하지 못하고 참석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강연 덕분에 '커튼'을 외면하지 않게 되어 다행이란 생각마저 들었다.소설을 쓰려고 하는 이들에게도,소설을 잘(?) 읽고 싶어하는 이들에게도 중요한 가이드가 될 책이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다소 난해하게 느껴질수 도 있는 이론을 따라갈수 없다면 '커튼'이란 상징 하나만 이해해도 좋을 것 같다.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커튼 안 속에는 우리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많은 상징들이..작가들이 하고 싶은 말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런 생각을 하고 소설을 읽는 다면..단순히 이야기 책이라며 소설을 폄하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한가지 더 생각이 났는데..<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특히 그랬던 것 같다 커튼 밖의 이야기는 단순히 '사랑'을 다룬 것 같지만 소설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것은 산업혁명이었다.물론 누군가는 사랑에 대한 소설로 받아들일수도 있다.다만 어떤 소설이든 다양한 시선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두고 읽는다면 좋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사라 델 주디체의 <커튼 뒤에서> 덕분에 쿤데라의 <커튼>을 다시 소환해 볼 수 있었다. '커튼'이란 제목에서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작품이 쿤데라..였던 까닭일터.그런데..정작 내용은 까마득하게 잊고..있었다는^^ 감상 중심으로 독서리뷰를 남기다 보니..정작 나중에 무슨 이야기였는지 기억 나지 않아 다시 읽어야 할 때가 많았는데..<커튼>역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다만 이 책의 정체성은 분명히 알고 있으니..다시 읽어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사라..의 <커튼 뒤에서>는 물론 쿤데라의 '커튼'과는 아무런 연결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커튼..뒤에 숨어 있는 저 영화 포스터와 비교하면.....커튼이 늘 숨는 이들에게 최적하 된 도구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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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처음 읽을 때는 몰랐다.계속 찾아 읽게 될 줄...

해서 에디터스 초이스로 기획된 시리즈정도만 읽어도 만족할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아무래도 푸아로셀렉션으로 넘어가게 될 것 같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가 고른 푸아로 셀력션은,푸아로가 등장하는 마지막 작품이었다. 덕분에 푸아로가 등장했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에서 다소 풀리지 않았던 죄에 대한 처벌방식에 대해 비로소 조금...이해의 틈이 보였다고 해야 겠다. 법이 심판할 수 없다면..정의의 이름으로 누군가 할 수도 있다? 어쩌면 판타지 같은 상상일수도 있겠지만..요즘 뉴스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사람들도 많이 하지 않을까 싶다...



 





 <커튼>을 고른 이유는 순전히 애거서 특집으로 꾸며진 미스테리아를 재미있게 읽고 싶어서였다.소개된 책들 가운데 읽은 책보다 읽지 않은 책이 더 많으니...미스테리아..는 아주 조금씩 천천히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읽은 내용을 서로 비교해 가면서.. 푸아로가 등장(?)하는 작품은 몇 작품 안된다.그럼에도 살짝 알게 된 건,소설의 중반이 흐를때까지 범인이 누구인지 잘 알 수 없다는 거다.그보다는 심리적인 요소들,혹은 다른 부분의 이야기들이 더 많이 언급되는 데..<커튼>역시 그랬다. 안락사문제,결혼과 이혼문제,자살문제,사랑문제,자식문제 그리고 사디스트에 관한 이야기까지..그러면서 헤이스팅스에게는 계속 다그친다.누가 x일지..."그래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일상적인 말다툼과 오해,적개심의 이면에는 진실되고 참된 애정이 존재할 수도 있는 법이지"/154쪽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제목을 커튼으로 정한 이유 한가지가 보였다. 겉모습과 다른 모습,커튼뒤에 가려진 모습들...그리고 마침내 커튼이였던 결정적 이유가 언급된다"자네는 아마도 '벨을 울려 커튼을 내리자'는 말을 하고 싶어 할 걸세...."/300쪽 나를 가리는 도구로서도 커튼은 필요하고,무언가로부토 빨리 막을 내리고 싶을 때도 커튼은 필요하다는 사실..그런데 이 소설이 재미있었던 건,아니 매력적으로 느껴진 건...누구일지 모르는 x 에 관한 대상을 셰익스피어 희곡 '오셀로'의 이아고 와 연결시켰다는 점이다. 겉으로 드러난 그의 잘못(?)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데스데모나를 죽인건 오셀로였지만,실은 이아고였다. <오셀로>를 여러 번 읽고 난 후 비로소 이 작품은 '오셀로'가 아니라 '이아고'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그러면 너무 노골적인 스포일러가 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커튼>뒤에 숨어 누군가를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 속 인물처럼..문제는 죄를 처벌하는 푸아로 탐정의 방식(작가의 생각일테지만..)인데,<애크로이드 살인사건>에서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커튼>에서의 앤딩은,적어도 살인범을 처벌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공감했다.그럼에도 이 부분은 여전히 논쟁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커튼 뒤에서>를 읽고 나서..오래전 읽었던 쿤데라의 <커튼>의 느낌을 찾아보고 싶었는데.. 애거서 작품에도 '커튼'이 있었다.. 심지어 셰익스피어와 연결(?) 할 만한 공통점까지.. 물론 커튼 뒤에서..는 단순히 이름이 등장할 뿐이지만... 애거서의 <커튼>도 다시 읽어 보고 싶어졌다. 쿤데라의 <커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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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가시나무 꽃말...가정의 행복, 평화

돌리는 이미 결혼식에 늦은 터라 축음기 바늘을 언제 음반에서 떼어내면 될지 가늠했다.
노파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중얼거림은 시든 호랑가시나무 덤불 사이를 지나는 저녁 바람만큼이나 나지막했다/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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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강의 소설이 언급되어..오래전 읽은 브람스를..다시 꺼내 보았다

마카베에 대한 히토미의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브람스...'를 다시 읽게 된 건 순전히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콘트라베이스' 때문이었다. '브람스'라는 작곡가가 등장한다는 이유말고는 공통점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사랑'이란 녀석이 툭 하고 튀어나와버렸기 때문에.물론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이야 샐수 없이 많겠지만..공교롭게 브람스의 로맨스는 세상이 다 아는 것처럼 아픈 구석으로 남아 있어서(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콘트라베이스 속 주인공처럼 짝사랑으로 힘들어 하는 모습에 브람스가 일 순위로 오버랩 되었고 다시,사강의 소설로 연결이...^^  2014년에 처음 읽었다는 것 말고 기억에 남는 것이 없어 다시 꺼내 읽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민음사의 표지는 나에게 또하나의 교감을 나누는 통로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생일'은 샤갈의 그림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다. 어쩌면 그림에 대한 스토리가 그림을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했는지도 모르겠다.연인이 자신의 생일을 축하한다며 찾아왔다는 사실에 행복했던 샤갈의 마음이 그림에 그대로 녹아들었다고 하지 않던가...비록 현실적으로는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다 해도 말이다.그런데 사강의 소설 속 인물들은 어떤가? 로제와 폴 그리고 시몽의 관계는 참으로 지리멸렬하다.문득 저들의 모습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으로 읽혀지기까지 했다.과거 속에서 여전히 헤어나오지 못하는 로제.미래만을 꿈꾸고 싶어하는 폴,그러면에서 시몽이 가장 현실적인 인물로까지 느껴졌다.누군가는 자신보다 한참 연상인 여인을 사랑하는 것을 두고 정신없는 녀석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그는 폴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그려지지 않았던가? 가장 답답했던 인물은 '폴'이었고 가장 이기적인 인물은 '로제'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뒤로가면 갈수록 누가 더 이기적인 것도.혹은 답답한 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을 했다.그저 자신의 감정을 특히 사랑이란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힘들었던 거라는 생각을 했다.해서 처음에는 왜 샤갈의 낭만적인 그림을 전혀 낭만적(?)으로 보이지 않은 사강의 소설에 입히게 되었을까 궁금했더랬는데..로제와 폴이 행복해지기를..혹은 서로의 감정에 솔직해 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상상해 보게 되었다.브람스가 클라라를 바라보기만 한 것을 누군가는 답답하다고..혹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수도 있겠지만..어차피 사랑이란 것은 무엇이다 라고 딱 하나의 말로 정의내릴수 없는 거니까 말이다.너무 솔직해서 문제가 되고.상처가 되기도 하지만 그 반대일 경우에도 상처가 되는 건 마찬가지인 듯 하다.소설의 줄거리는 다분히 통속적이라 어느 정도 예상이 되어지는 결말(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로 흘러갔다.그럼에도 이 소설을 재미나게 읽을수 있었던건 '사랑'이란 감정이 솔직하지 못했을 때 어떤 상황들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마주하게 해 주었다는 거다. 


주인공인 폴이 연하의 연인에게 젊어 보이려고 화장을 고치면서 ‘그렇게까지 꾸며야 한다는 것이 마치 자신의 약점처럼 느껴져서 싫었다‘라는 폴의 고백에 마카베를 만나는 날이면(...)동감하는 히토미씨입니다/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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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건 우스운 것,어떤 부질없는 목적을 위해 무자비한 논리를 불가사의하게 배열해 놓은 게 인생이라구.우리가 인생에서 희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우리 자아에 대한 약간의 앎이지 그런데 그 앎은 너무 늦게 찾아와서 결국은 지울 수 없는 회한이나 거두어들이게 되는 거야"/159쪽



 <로드 짐>을 읽고 있을 때, 작가의 또 다른 책이 언급되는 책을 보고 말았다. 버지니아울프 소설에서도 언급되었다는 <암흑의 핵심>.'로드 짐' 보다 압도적으로 적은 분량이라 망설임없이 읽게 되었는데..<로드 짐> 만큼 버거웠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매력적인 소설이기도 했다. 가볍지 않은 내용이란 건 감안할 수 있었는데..버지니아 울프도 언급한것처럼 맥락을 벗어나는 문장들..이 힘들었다.(번역의 문제일까 싶었는데 작가의 습관이 그러하다고 했다^^)  프루스트 소설보다 읽기에 몇배는 더 힘들었던 건 맥락을 벗어나는 상황이었다고 감히(?)말하고 싶다. 작가의 습관이란 표현에 더 추가적인 설명은 없었다. 무튼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바다를 묘사할 때와 '암흑'에 대한 핵심을 고찰해 내는 방식이 놀라워서...솔직하게 말하면 찔리는 기분이 들때가 자주 있었다. 밀림에 대한 묘사는 마치 현장을 보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로드 짐"이 바다의 모험에만 집중하지 않은 것처럼 '암흑의 핵심' 역시 백인이 원주민을 다루는 모습에만 집중하지 않았다.오히려 탐욕이 사람을 어떻게 망가뜨리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은 기분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 커츠에 대한 담론이란 생각까지 들었다. 동시에 말로라는 인물 또한 커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시에..커츠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 같은...암흑의 핵심은 눈에 보이지 않는 다는 뜻이 될까... 식민지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언제나 백인이 원주민에게 가하는 모습만을 보았다면, <암흑의 핵심>은 수탈하는 백인들이 점점 정신적으로  타락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지...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원작이란 사실도 이제서 알았다. 주제가 무거울 것 같아 지금까지 보지 못한 영화인데..원작으로 충분히 힘들었기 때문에 영화까지 도전하지는 못할 것 같다. 죽음의 순간, 무섭다는 커츠의 고백은 죽음에 대한 공포였을까,자신이 저지른 탐욕에 대한 반성이었을까...해설은 커츠가 자신의 삶에 대한 심판을 스스로 내린거라고 말하고 있다.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저지른 짓에 대해 사죄하지 않은 누군가가 떠올랐다.소설을 읽는 동아는 작가의 글쓰기 스타일에 버거웠다면, 책을 마무리하면서 힘들었던건, 깨달음의 순간이 언제나 늦게 찾아온다는 사실에 대한 원망이 깊어서는 아니였나 싶다.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에서 '암흑의 핵심' 한 구절이 언급되었다.. 읽은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덕분에..소개된 문장을 메모해 두었던 것 같아 찾아 보았더니... 역시나 크게 공감한 문장이었다. 영화에서 저 문장이 언급된 이유..는 해설에 대한 부분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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