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오리새끼의 출근
메트 노가드 지음, 안진환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4월
품절


12 나는 리더들과....연결되지 못한다.
나는 리더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에게는 네 가지 일관된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첫째는, 전문가들 대부분은 야망과 재능이 있고 근면하다. 둘째, 그들은 성공하는 데 필요한 단계나 규칙, 습성, 절차 등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 셋째, 그들은 더 나은 경영자나 리더, 배우자, 부모, 선수가 되기 위해 가혹하리만치 혹독하게 자신을 채찍질한다. 이러한 세가지 특성 때문에 그들은 늘 분주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다음 네 번째 공통점이 나타난다. 그들은 좀처럼 속도를 늦추거나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인간 존재의 핵심인 내면의 지혜에 연결되지 못한다.
-12쪽

16 실용주의와 이상주의가....시점이 된 것이다.
실용주의와 이상주의가 둘 다 유용하려면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타인의 기대가 우리의 내면 깊숙한 관심사보다 우선시되는 경향이 팽배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갈망을 비실용적인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자신의 잠재력보다는 조직의 목표에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 만약 당신이 그런 상황에 있다면, 당신의 일에 작은 지헤를 선사할 시점이 된 것이다.

-16쪽

55 자신의 위대함에 접근하는 것은....목도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위대함에 접근하는 것은 사실 두려운 일이다. 우리는 멀리 떨어진 채 뭔가 비범한 것을 볼 때는 안전을 느끼지만, 막상 그것이 가까이 다가와 "함께하자!"고 하면 겁을 집어먹는다. 그런 수준에 못 미치면 어쩌나, 망신이나 당하면 어쩌나 드려워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대개 우리는 그러한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기보다는 뒤로 물러서며 피하려 든다. 그러나 비범한 뭔가에 간여하거나 섞이지 않고 어떻게 우리의 진정한 본질을 목도할 수 있단 말인가.-55쪽

65 고유한 영역에 속해....때문이다.
고유한 영역에 속해 있을 때 우리는 우리의 강점을 나타낼 수 있다. 정의로운 일이나 훌륭한 일을 한다고 해서 우리의 일이 의미있는 그 무엇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일을 할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일이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뭔가 깊은 관심이 생기는, 그런 일을 해야 한다. 그런 식으로 일에 종사해야 놀라운 능력이나 심지어 비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65쪽

68 우리는 우선 삶에는....더 만족스러워 질 것이다.
우리는 우선 삶에는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담을 뛰어넘어 들판을 가로지르고 날개를 펼치는 우리에게는 인습적인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그렇게 한다면, 확실하게 보장되는 것이 잇다. 우리는 성장할 것이고, 삶은 더 풍부하고 더 심오하며 더 만족스러워질 것이다.-68쪽

92 우리는 모두....얘기이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꾸미는 얼굴을 가지고 있다. 말끔하게 면도한 얼굴이나 멋지게 화장한 얼굴, 품위 있는 표정을 지은 얼굴 등. 이런 얼굴을 갖추면 우리는 연기할 준비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이미지와 걸맞고 우리의 적응에 도움이 되는 말과 행동을 보여줄 준비가 된다는 의미다. 우리는 '옷감'이 보지 않을 때조차도 그것의 열렬한 지지자 역할을 수행하는 법을 알고 있다. 남들의 기대에 부응해 연기하는 법을 알고 잇다는 얘기이다.-92쪽

94 이렇게 우리가....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수행하는 역할은 종종 혼동을 야기할 뿐 아니라 때로는 자아를 완전히 장악해 정체성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모 기업의 인력개발 담당 부사장으로 재직 중인 내 친구가 다른 기업의 부사장과 나눈 대화를 들려준 적이 있다. 그 부사장은 전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일시적인 실업 상태에 있을 때 당한 수모라면서 이렇게 토로했다. "전에는 꼬박꼬박 날아오던 행사 초대장들이 글쎄, 딱 끊어지는 거예요. 사람들이 그럴 수가 있습니가?" 그래서 몹시 마음이 상했다는 한탄이었다. 솔직한 성격의 내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마음 상할 게 뭐 있나요? 그 사람들이 전부터 당신을 초대한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 사람들은 당신의 직위를 초대했던 거예요." 내 친구는 자신의 깊은 본질, 즉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의 직위나 자시의 역할을 혼동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것이다.
-94쪽

96 정직을 버리고 안전을 택함으로써....실수를 깨닫고 후회한다.
... 정직을 버리고 안전을 택함으로써 그들은 결국 믿을 만한 조언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실로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들 대부분이 이와 유사한 딜레마에 종종 빠지며, 도 대개는 안전을 택하는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실용적인' 것으로 합리화하기 때문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런 개인 매니저의 지나친 실용주의 경향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이 과도한 실용주의 경향은 때로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에서처럼 당면한 상황에 대한 임기응변식의 대응 형태를 띤다. 그렇지만 대개의 경우 그것은 좀더 전략적인 양상을 보인다. 보다 나은 경력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방법을 보색하는 우리, 조직의 용도에 부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포장하는 우리를 생각해 보라. 이런 형태는 꿈과 갈망을 포기하지 않는한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 대부분은 종종, 일시적인 합리성을 택하느라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희생시키곤 한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실수를 깨닫고 후회한다.-96쪽

110 팀이 처한 혼란스로운 상황에....반드시 거쳐야 할 것이다.
... 팀이 처한 혼란스런 상황(예컨대, 막대한 기회를 맞이할 준비가 전혀 갖춰지지 않은 상황 등)에 진정으로 호기심을 갖고 임할 때, 그 원인을 캐서 분명하고 숨김없이 밝힐 때,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낱낱이 실토하고 심지어 비웃을 수 있을 때, 필연적으로 팀의 효율이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준비가 갖춰지면 더 강한 팀으로 변모하는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이나 팀, 회사에 대한 착각을 떨쳐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성장을 원한다면 받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110쪽

141 당신이 자신의 능력을....판단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당신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는지 과소평가 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우선 당신의 장점과 단점 목록을 작성해 보라. 그리고 가까운 친구나 동료, 즉 당신에 대해 잘 알고 이스며 신뢰할 만한 의견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역시 이 같은 목록을 작성해 달라고 부탁한 다음, 그것을 자신이 작성한 목록과 비교해 보라. 이러한 비교 작업은 당신의 실제를 파악하는 데 훌륭한 수단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분명한 자기 인식을 통해 업무에 필요한 올바른 판단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141쪽

149 우리는 피드백을 보다 유능하고....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우리는 피드백을 보다 유능하고 보다 강인한 인간으로 거듭나는데 활용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온순하게 마늘어 조직의 정해진 틀에 밀어 넣는 데 이용할 때가 많다. 나를 화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 점이다. 만일 내가 쇠똥구리를 만난다면, 그에게 어떤 피드백을 제공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그의 놀라운 상상혁과 집중력, 그리고 자기 조장 능력을 북돋워줄 것이다. 단, 자기 환상을 고수하는 데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현실과 대면하라는 당부와 함께 말이다. 나는 '결코' 쇠똥구리를 길들여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며, 그를 안락의자에 기댄 채 달콤한 사탕이나 핥는 존재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나는 그가 암스트롱이 걸었던 길을 따르길 바란다. 또 미숙한 에너지를 통제하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끌어들임으로써 한층 강한 존재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자아 중심적이면서도 여전히 멋진'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신의 쇠똥구리적 에너지, 공격적 분노의 에너지를 억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에너지를 좀더 키워야 하는 사람들도 잇다. 착한 인간상을 강요하는 이른바 전통적 사회 속에서 자신의 송곳니와 발톱을 몽땅 빼앗긴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149쪽

154 자유직업인으로서....마케팅을 꼽는다.
'자유직업인(free agent)'으로서, 우리가 스스로의 안전을 보장받는 길은 전문 직업적 주체성 즉, 독특한 자기 브랜드를 계발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톰 피터스(Tom Peters)는 저서 [미래를 경영하라 Reimagine!]에서, 가치를 인정받는 전문 브랜드를 창조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전문 지식, 네트워킹, 마케팅을 꼽는다.-154쪽

181 우리들 리더십이나....경고한다.
우리들, 리더신이나 인사 관리, 조직 개편 분야의 전문가들은 인간 존재와 인간의 기능성에 대해 깊은 믿음이 있다. 그러나 에이브럼해 매슬로우(Abraham Maslow)는 자신의 저서 [매슬로우 경영학, Maslow on Management]에서, 우리 전문가들이 흔히 자신의 이론에 대해 독선적이고 자만적인 형태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매슬로우는 이런 전문가들에게 '가게'에서 시간을 보내보라고 권한다. 현장에 나가서 힘겨운 목표와 빠듯한 예산, 엄격한 마감 시간 등의 현실을 체험하며 이론을 시험해 보라는 얘기다.
-181쪽

187 우리는 작자 자신이....현명해질 것이다.
우리는 각자 자신이 성장 단계의 어디쯤에 와 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당신의 이상적인 삶은 활동적이고 의무가 줄서 있는 삶과 아예 분리되어 있는 것 같은가? 당신은 현실 세계에 심신을 소진시키고, 회복을 위해서는 다른 세계를 이용하고 있는가? 당신을 감동시키는 불멸의 이상은 무엇인가? 당신은 영속적인 사상의 도움을 활용해 일상적인 선택을 내리는가 현실과 이상 양족에 의존하면 할 수록 당신은 자신만의 해답을 더욱더 잘 창조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 둘을 통합하면 할수록 당신은 더욱더 현병해질 것이다.-187쪽

223 일터의 우리는....잘 해야 한다.
일터의 우리는 스트레스를 만들어내는 데는 전문가이면서도 제자리로 돌아와 회복하는 데는 젬병이다. 자신의 리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기를 즐기기 위해서는 자신의 한계를 정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성급하게 밀어붙이지 말고 페이스 조절을 잘 해야 한다.-223쪽

223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도움이 되는가?
생각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 우리를 끊임없이 현재의 삶에서 이탈시키는 비생산적이고 자잘한 고민들에 얽매이라는 게 아니라, 현재의 삶과 직결되는 진지한 질문들을 숙고해 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저 좀더 유능하게 보이고 싶어서 무조건 스케줄을 하나 더 추가하기보다는 그것이 정말 의미 있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에너지와 사고력과 젊음과 주어진 시간을 모조리 쏟아 부을 만한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인가? 내 삶이 좀더 알차지는가? 내가 꿈꾸던 인간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223쪽

231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것....내 쉴 수 있게 되리라.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것, 불만을 느끼게 하는 많은 원인들에 우리의 집중력과 에너지를 허비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현재의 삶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대상에 자신을 투신해야 한다. 그러면 마지막 순간에 깊은 만족감이 한숨을, 진정으로 '삶을 살았다'는 깨달음과 한숨을 내술 수 있게 되리라.-231쪽

263 이야기 속의....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이야기 속의 사람들 대부분은 나이팅 게일의 재능을 진심으로 알아보진 못하면서, 인기 있는 것이나 전문가가 말하는 것에는 쉽게 동조한다. 그들은 개구리가 개굴대는 소리에서 예쁜 멜로디를 찾아내지 못하고 잘 짜여진 공연에서 진정한 재능을 찾아내 평가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나이팅 게일은 이해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투덜대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그저 노래를 부를 뿐이다. 당신은 자신이 불안정한 노동 시장에서 과소평가되고 있거나 능력에 비해 저임금을 받고 있거나 이용당하고 있는 것 같은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불평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아니면 전문 기술을 개발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263쪽

281 재능과 열정은....좋겠다는 것이다.
재능과 열저은 동화의 주제만이 아니다. 경영학자 짐 콜린스(Jim Colins)는 자신의 베스트셀러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Good to Great]에서, 재능과 열정은 탁월한 성과의 필수 요소라고 말한다. 이는 바뀌 말하면 누구든 이 두가지만 갖추면 평범한 상태에서도 나이팅 게일 수준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짐 콜린스는 다음의 두 가지 중요한 질문을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한다.
"나는 위대한 경지를 목표로 삼기에 충분한 그 무엇에 열정을 쏟고 있는가?"
"나는 끝까지 추진력을 갖고 훈련과 노력을 기울일 만한 그 어떤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가?"
만일 당신이 형식적인 겉치레를 넘어 진정으로 뭔가에 자신을 바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두 가지 질문이 위대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내 자신의 열정을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사람들이 진심으로 우러나서 활기차게 일하며 진정한 직업 '인생'을 살도록 돕는 것이다." 내 자신의 희망을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인 [나이팅게일]이, 그 노래로 당신에게 감동을 주어 '당신이 즐거워지고, 또한 생각에 잠길 수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281쪽

자기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진정한 진보의 시작이다.
- 안데르센
-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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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 반양장
피천득 지음 / 샘터사 / 2002년 8월
구판절판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 문학이다.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나태하지 아니하고, 속박을 벗어나고서도 산만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18쪽

칼멘수도원 ~ 못했다.
칼멘수도원의 수녀는 갇혀 있다 하더라도 그는 죄인이 아니라 바로 자유없는 천사다. 해방전 감옥에는 많은 애국자들이 갇혀 있었다. 그러나 철창도 콘크리트 벽도 어떠한 고문도 자유의 화신인 그들을 타락시키지는 못했다.

거기 조롱속에 ~ 종달새다.
거기 조롱 속에 종달새가 있었다면, 그 울음은 단지 배워서 하는 노래가 아니라 작은 가슴에 뭉쳐 있던 분노와 갈망의 토로였을 것이다. 조롱 속의 새라도 종달새는 종달새다.-26쪽

집에 와서 ~ 서운하다.
집에 왓 꽃 사 가지고 오기를 기다리는 꽃병을 보니 미안하다. 그리고 그 꽃 일곱송이는 다 내가 주고 싶어서 주었지만, 장미 한 송이라도 가져서는 안 되는 것 같아서 서운하다.-41쪽

여성의 미는 ~ 구성한다.
여성의 미는 생생한 생명력에서 온다. 맑고 시원한 눈, 낭랑한 음성, 처녀다운 또는 처녀 같은 가벼운 걸음걸이, 민활한 일솜씨, 생에 대한 희망과 환희, 건강한 여인이 발산하는, 특히 젊은 여인이 풍기는 싱싱한 맛, 애정을 가지고 있는 얼굴에 나타나는 윤기, 분석할 수 없는 생의 약동, 이런 것들이 여성의 미를 구성한다.-43쪽

한 여름 ~ 입을 것이다.
한여름 '나일론' 거리에 문득 하얀 모시 적삼과 파란 모시 치마가 눈에 띈다. 뭇 닭 속에 학을 보는 격이다. 모시는 청초하고 섬세하고 톡톡하고 깔깔하다. 아마 천사도 여름이면 모시를 입을 것이다.
-46쪽

베이스볼 팀의~ .신이 나겠는가?
베이스볼 팀의 외야수와 같이 무대 뒤에 서 있는 콘트라베이스를 나는 좋아한다.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스케르초(scherzo)의 악장 속에 있는 트리오 섹션에는 둔한 코트라베이스를 쩔쩔매게 하는 빠른 대목이 있다. 나는 이런 유머를 즐길 수 있는 베이스 플레이어를 부러워한다.
<전원 교향악> 제3악장에는 농부의 춤과 아?오케스트라가 나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서투른 바순이 제때 나오지 못하고 뒤늦게야 따라 나오는 대목이 몇 번 있다. 이 우스운 음절을 연주할 때의 바순 플레이어의 기쁨을 나는 안다. 팀파니스트가 되는 것도 좋다. 하이든 교향곡 94번의 서두가 연주되는 동안은 카운터 뒤에 있는 약방 주인같이 서 있다가 청중이 경악하도록 갑자기 북을 두들기는 순간이 오면 그 얼마나 신이 나겠는가?-55쪽

도연명의 ~ 지나지 않는다.
도연명의 허실유여한(虛室有餘閑)이라는 시구는 선미(禪味)는 있을지 모르나 아늑한 감이 적다. 물 떠먹는 표주박 하나만 가지고 사는 디오게네스는 아무리 고답한 철학을 탐구한다 하더라도 명상하는 미개인에 지나지 않는다.

화려하여서가 ~ 않을 것이다.
화려하여서가 맛이 아니다. 오래가고 정이 들면 된다. 쓸 수록 길이 들이 길이 들어 윤이 나는 그런 그릇들이 그립다. 운봉칠기, 나주소반, 청도 운문산 오달솥, 밥을 담아 아랫목에 묻어 두면 뚜껑에 밥물이 맺히는 안성맞춤 놋주발, 이런 것들조차 없는 집이 많다. 이런 것들이 없다면 우리네 살림살이는 한낱 소모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66쪽

맛은 ~ 살아간다.
맛은 감각적이요, 멋은 정서적이다.
맛은 적극적이요, 멋은 은근하다.
맛은 생리를 필요로하고, 멋은 교양을 필요로 한다.
맛은 정확성에 있고, 멋은 파격에 있다.
맛은 그때뿐이요, 멋은 여운이 있다.
맛은 얕고, 멋은 깊다.
맛은 현실적이요, 멋은 이상적이다.
정욕 생활은 맛이요, 플라토닉 사랑은 멋이다.

그러나 맛과 멋은 반대어는 아니다. 사실 그 어원은 같을지도 모른다. 멋있는 것의 반대는 맛없는 것이고, 멋있는 것의 반대는 멋없는 것이지 멋과 맛이 반대되는 것은 아니다.
맛과 멋은 리얼과 낭만과 같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맛만 있으면 그만인 사람도 있고, 맛이 없더라도 멋만 있으면 사는 사람이 있다.
맛은 몸소 체험을 해야 하지만, 멋은 바라보기만 해도 된다.
맛에 지치가 쉬운 나는 멋을 위하여 살아간다.
-71쪽

우리가 제한된 ~ 있는가 한다.
우리가 제한된 생리적 수명을 가지고 오래 살고 부유하게 사는 방법은 아름다운 인연을 많이 맺으며 나날이 적고 착한 일을 하고, 때로 살아온 자기 과거를 다시 사는 데 있는가 한다.-80쪽

일단사 일표음 ~ 불안할 때가 있다.
'일단사 일표음(一簞食一瓢飮, 한 도시락 밥과 한 표주막 물)'으로 나는 도를 즐길 수는 없다. 나는 속인이므로 희랍 학자와 같이 자반 한 마리와 빵 한 덩어리로 진리를 탐구하기는 어렵다.

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물론 마음의 자유를 천만금에는 아니 팔 것이다. 그러나 용돈과 얼마의 책값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여 마음의 자유를 잃을까 불안할 때가 있다.
-84쪽

내가 아까 ~ 생각해 본다.
내가 아까 읽고 있던 노신의 글 <아버지의 병환>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연부인은 경문 사른 재를 종이에 싸서 아버지 손에 쥐어 드리며 나보고 "아버지"하고 불러 드리라고 재촉하였다. "어버지는 이제 숨을 거두실 거다. 어서!" 했다. 나는 "아버지! 어버지!" 소릴 내서 불렀다.
"더 크게, 어서."
"아버지! 어버지!"
평온하던 아버지의 얼굴은 긴장되고 눈이 약간 움직이며 괴로워했다.
"아 어서 또, 빨리!"
나는 "아버지!" 또 계속해 불렀다. 최후의 숨을 거두실 때까지.
지금도 오리려 그때의 내 목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문득 그것이 내가 어버지에 대한 최대의 잘못이었던 것을 깨닫는다.

엄마가 의식이 있어 내가 꼬집는 줄이나 아셨더라면 '나도 마지막 불효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을'하고 생각해 본다.
-106쪽

나는 남들이 ~ 행복한 부분이다. 안톤슈나크<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나는 남들이 술 마시느라고 없앤 시간, 바둑 두느라고 없앤 시간, 돈을 버느라고 없앤 시간, 모든 시간을 서영이와 이야기하느라고 보낸다. 아마 내가 책과 같이 지낸 시간보다도 서영이와 ƒˆ이 지낸 시간이 더 길었을 거이다. 그리고 이 시간은 내가 산 참된 시간이요, 아름다운 시간이었음은 물론, 내 생애에 가장 행복한 부분이다.-115쪽

한편, 과학자에게는 ~ 되기 바란다.
한편, 과학자에게는 철학 공부가 매우 유익하리라고 생각한다. 현재 과학은 광맥을 파 들어가는 것과 같이 좁고 깊은 통찰 깊은 통찰은 할 수 있으나 산 전체의 모습을 알기 어렵고 산 아래 멀리 전개되는 평야를 내려가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너는 시간을 아껴 철학과 문학을 읽고, 인정이 있는, 언제나 젊고 언제나 청신한 과학자가 되기 바란다.
-125쪽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 아름다울 것이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추천에 갔다 오려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137쪽

"말은 은이요 ~ 말로 깨어졌다.
"말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는 격언이 있다. 그러나 침묵은 말의 준비 기간이요, 쉬는 기간이요, 바보들이 체면을 유지하는 기간이다. 좋은 말을 하기에는 침묵을 필요로 한다. 때로는 긴 침묵을 필요로 한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이 아니요, 농도 진한 말을 아껴서 한다는 말이다. 말은 은같이 명료할 수도 있고 알루미늄같이 가벼울 수도 있다. 침묵은 금같이 참을성 있을 수도 있고 납같이 무겁고 구리같이 답답하기도 하다. 그러나 금강석 같은 말은 있어도 그렇게 찬찬한 침묵은 있을 수 없다. 클레오파트라의 사랑은 말로 이루어지고 말로 깨어졌다.
-205쪽

"이 돈 한 개가 갖고 싶었습니다."-222쪽

돈화문까지 나오다가 ~ 인식하지 못하였을거다.
돈화문까지 나오다가 꾀꼬리 소리가 한번 더 듣고 싶어서 나는 반도지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기다리기도 전에 저 리리 폰스보다 앳되고 더 명쾌한 꾀꼬리 소리가 들려왔다. 리리 폰스는 두 번 앙코르에 응해 주고는 그 다음에는 절을 몇 번씩 하고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나의 꾀꼬리는 연달아 울었다. 비는 내리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노란 꾀꼬리는 계속 울었다.
나는 다시 꾀고리 소리를 스무 번이나 더 들었다.
내가 본 무대에 이런 장면이 있었다. 아직 오월이 멀었는데 병든 남편은 뻐꾸기 소리가 듣고 싶다고 한다. 아내는 뒷산에 올라가 뻐꾸기 소리를 낸다. 남편은 그 소리를 들으며 운명한다.
폐를 앓는 젊은 시인 키츠는 한밤중에 우짖는 나이팅게일 소리를 들으면서 고통없이 죽는 것은 풍유하리라 하였다.
나는 오월이면 꾀꼬리 소리를 들으러 비원에 가겠다.
비원은 창덕궁의 일부로 임금들의 후원이었다. 그러나 실은 후세에 올 나를 위하여 설계되었던 것인가 한다. 광해군은 눈이 혼탁하여 푸른 나무들이 잘 보이지 않았을 것이요. 새소리도 귀담아 듣지 못하였을 것이다. 숙종같이 어진 임금은 늘 망므이 편치 않아 그 향기로운 풀냄새를 인식하지 못하였을 것이다.-237쪽

예전 내 책상 앞에는 ~ . 다시 다가오곤했다.
예전 내 책상 앞에는 날마다 한 장 씩 떼어 버리는 달력이 있었다. 얇은 종잇장이라 금요일이되면 바로 밑에서 기다리고 있는 파란 토요일이 비친다. 그러면 나는 금요일을 미리 뜯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가 되면 허전함을 느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희망에 찬 토요일은 다시 다가오곤 했다.

결혼식을 마치고 ~ 토요일이 있는 것이다.
결혼식을 마치고 퇴장하는 신부의 하얀 드레스는 금방 퇴색이나 된 듯하다. 사실 그 쑥스러운 상견례를 할 때, 그리도 기다렸던 결혼식은 이미 끝난 것이다. 그러나 허무도 잠깐, 그의 앞에는 새로운 희망이 있다. 행복할 가정, 태어날 아기, 시간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에 인색하지 않다. 그러기에 나에게는 언제나 다음 토요일이 있는 것이다.-242쪽

보스턴 근처에 있는 ~ 영국어머니의 통곡소리
보스턴 근처에 있는 콩코드(Concord)라는 고요한 읍은 미국 독립 전쟁의 발상지다. '콩코드 강'을 사이에 두고 격전이 일어났었다. 여기 하늘을 가리키고 서 있는 뾰족한 기념비는 미국과 독립과 자유의 상징이다. 그리고 애머슨의 <콩코드 찬가>는 숭고한 애국 충정의 표현이다. 이 시에서 우리는 자유의 존엄성을 체험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적에 대한 적개심은 조금도 없고 오히려 동정이 깃들어 있다.
또한 감격하게 하는 것은 그 기념비 가까이 놓여 있는 영국 병사들을 위한 조그마한 비석이다. 여기에도 미국 국민의 아량과 인정미가 흐르고 있다. 작은 그 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씌어 있다.

영국 병사의 무덤

그들은 3천 마일을 와 여기서 죽었다.
과거를 옥좌위에 보존하기 위하여
대서양 건너 아니 들리는
그들의 영국 어머니의 통곡소리-258쪽

인생은 사십부터 ~ 늙음도 괜찮다.
"인생은 사삽부터"라는 말을 고쳐서 "인생은 사십까지"라고 하여 어떤 여인의 가슴을 아프게 한 일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생은 사십부터도 아니요 사십까지도 아니다. 어느 나이고 다 살 만하다.
백발이 검은 머리만은 못하지만, 물을 들여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온아한 데가 있어 좋다. 때로는 위풍과 품위가 있기까지도 하다. 젊게 보이려고 애쓰는 것이 천하고 추한 것이다.
젊어, 정열에다 몸과 마음을 태우는 것과 같이 좋은 게 있으리오마는, 애욕.번뇌.실망에서 해탈되는 것도 적지 않은 축복이다. 기쁨과 슬픔을 많이 겪은 뒤에 맑고 침착한 눈으로 인생을 관조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여기에 회상이니 추억이니 하는 것을 계산해 넣으면 늙음도 괜찮다.-2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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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증보판 리라이팅 클래식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3년 3월
구판절판


우정론
연암에게 있어서도 우정론은 윤리학의 '알파요 오메가'였다. 이미 [방격각외전]의 [마장전]서에서 "벗이 오륜의 끝에 자리 잡은 것은 결코 낮은 위치여서가 아니라, 마치 흙이 오행중에서 끝에 있으나, 실은 사시의 어느 것에 흙이 해당치 않음이 없는 것과 같을 뿐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부자가 친함이 있고, 군신이 정의를 지니고, 부부가 분별이 있고, 장유가 차례가 있다더라도 붕우의 믿음이 없다면 아니될 것이다. 그러므로 벗의 위치가 비록 오륜의 끝에 있으나 실은 그 넷을 통괄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연암 특유의 우정론을 펼친 바 있다. 이 우정론은 단순한 우정예찬이 아니라, 우도를 중심으로 나머지 사륜의 윅계를 전복한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다.
이후 그의 우정론은 한결 깊고 넓어진다. 한 에세이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벗이란 '제2의 나'다. 벗이 없다면 대체 누구와 더불어 보는 것을 함께 하며, 누구와 더불어 듣는 것을 함께 하며, 누구와 더불어 냄새 맡는 것을 함께 하며, 장차 누구과 더불어 질혜와 깨달음을 나눌수 있겠는가? 아내는 잃어도 다시 구할 수 있지만 친구는 한 번 잃으면 결코 다시 구할 수 없는 법, 그것은 존재의 기반이 소욷리째 무너지는 절대적 비극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그는 우정의 성리학적 표상인 '천고의 옛날을 벗삼는다'는 말을 조문하고, '아득한 후세에 나를 알아주는 이를 기다린다'는 형이상학적 명제를 비웃는다. 즉 그가 말하는 바'우도'란초월적 원리에 종속된 도덕적 규범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생을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것이자 '나'의 경계를 넘어 끊임없이 다른 것으로 변이되는 능력의 다른 이름이다.-64쪽

돈키호테와 연암
...
마치 돈키호테가 시종 산초 판사와 애마 로시난테만을 데리고 천하를 주유하듯, 그 또한 '두 뒤가 쫑긋'하고 '정강이가 날씬한' 말과 우직한 하인 창대, 장복이만을 동반한다. 돈키호테는 머릿속에 온갖 '기사담'을 다 집어 넣고서 길을 나서지만, 연암은 이제 마주체게 될 미지의 세계를 낱낱이 담기 위해 붓과 먹, 공책 등을 들고서 여행을 떠난다. 전자는 텍스트를 구현하기 위해 떠나지만, 후자는 텍스트를 채우기 위해 떠난다. 전자의 여행이 이미 완결된 세계를 현실에서 확인하고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면, 후자의 혀앵은 예정도, 목적도 없이 낯설과 이질적인 모험 속으로 무작정 몸을 날리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연암이 더 '돈키호테적'인게 아닐까.
하긴, 그렇기도 하다. '돈키호테팀'과 '연암팀'이 겉보기에는 유사해 보이지만, 사실 이들은 매우 상이한 배치로 이루어져 있다. 전자의 경우, 돈키호테는 기사담의 세계에 푹 빠져 현실을 도통 보려 하지 않는 데 반해 산초 판사가 온갖 재치오 익살로 돈키호테의 엄숙주의를 깨뜨리는 구조라면, 후자의 경우 오히려 장복이나 창대가 철저한 소중화주의에 물들어 있고 연암이 그 경직된 선분을 라고지르며 온갖 '해프닝'을 일으키는 식이다. 기묘한 대칭!
그러나 아무리 몸이 가볍고 경쾌하다 해도 먼길을 떠나는 자의 심정은 착잡하다. 두려움 혹은 설레임이 어찌 없으랴.........
-149쪽

이별론
사람과 말을 점고해 보니, 사람은 발이 모두 부르트고, 말은 여위고 병들어서 실로 대어갈 것 같지가 않다. 이에 일행이 모두 마두를 없애고 견마잡이만 데리고 가기로 하여, 연암도 하는 수 없이 장복이를 떨어뜨리고 창대만 데려가기로 했다. '환상의 2인조'가 생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고지식학 융통성이 없어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기는 하나, 그래도 산전수전을 함께 겪어왔는데, 막상 떼어놓으려니 연암의 가슴이 미어진다. 장복이는 또 어떤가. 머나먼 이국땅에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두 사람과 생이별을 하게 되었으니 창자가 끊어질 듯이 서러워한다. "장복은 말 등자를 붙잡고 흐느껴 울며 차마 헤어지기 어려워한다. 내가 돌아가라 타이른즉 또 창대의 손목을 잡고 서로 슬피 우는데 눈물이 마치 비내리듯 한다."
연암은 문득 말 위에서 생각한다. "인간의 가장 괴로운 일은 이별이요, 이별 중에서도 생이별보다 괴로운 것으 없을 것"이라고. 하나는 살고 또 하나는 죽는 그 순가느이 이별이야 구태여 괴로움이라 할 것이 못 된다. 그거야 사람마다 겪는 것이고, 천하의 순리가 아니가. 또 죽은 이에겐 괴로움이 없을 터. 그러나 하나는 가고 하나는 떨어지는 때, 그것도 흘러가는 물을 사잉에 두고 헤어질 때의 그 애닯음을 무엇에 비할 것이가. 이런 식을 연암의 '이별론'은 시작된다. 어떤 소재든 그에 알맞은 리듬과 악센트를 부여하는 것이 연암의 장기 아니던가.
-180쪽

호삼다, 일흔세살노인
그 숱한 엑스트라들 중에 아역이 없을 리가 없다. 호삼다(胡三多)라는 꼬맹이 친구가 바로 그다. 나이는 열두살. 얼굴이 맑고 깨끗하며 예도에 익숙하다. 일흔 세 살된 노인과 함께 혹정 왕민호에게 글을 배운다. 매일 새벽이면 삼다는 노인과 함께 책을 끼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걸음을 맞추어 와선 혹정을 뵙니다. 혹정이 바쁠 때면, 노인는 즉시 몸을 돌려 동자인 삼다에게 고개를 숙이고 강의를 받고 선 간다. 돌아가선 여러 손자들에게 다시 배운 바를 가르쳐 준다고 한다. 노인은 스스럼없이 어린 삼다를 동학(同學) 혹은 아우라 부른다. 연암은 이들 짝궁을 보고, "늙은이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어린이는 업신여김이 없다"는 변방의 질박한 풍속에 감탄해 마지않는다.
-274쪽

판첸라마 대소동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판첸라마 대소동!'이다. 천신만고 끝에 열하에 도착한 일행에게 또 하나의 '불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티베트의 판첸라마를 만나 예를 표하라는 황제의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춘추대의(春秋大義)'로 무장한 그들로선 만주족보다 더 망측한 서버의 오랑캐에게 머리를 조아린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날벼락'이었다. "사신들은 얼굴을 수심을 띠었고, 당번 역관들은 황황히 분주하여 마치 숙취가 덜 깬 사람 같았다. 비장들은 성을 내어 "황저의 일 괴악하거든. 반드시 망할거야"라는 극단적 발언이 오고가는 그 아수라장 속에서 연암은 무얼 했던가?-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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