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증보판 리라이팅 클래식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3년 3월
구판절판


우정론
연암에게 있어서도 우정론은 윤리학의 '알파요 오메가'였다. 이미 [방격각외전]의 [마장전]서에서 "벗이 오륜의 끝에 자리 잡은 것은 결코 낮은 위치여서가 아니라, 마치 흙이 오행중에서 끝에 있으나, 실은 사시의 어느 것에 흙이 해당치 않음이 없는 것과 같을 뿐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부자가 친함이 있고, 군신이 정의를 지니고, 부부가 분별이 있고, 장유가 차례가 있다더라도 붕우의 믿음이 없다면 아니될 것이다. 그러므로 벗의 위치가 비록 오륜의 끝에 있으나 실은 그 넷을 통괄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연암 특유의 우정론을 펼친 바 있다. 이 우정론은 단순한 우정예찬이 아니라, 우도를 중심으로 나머지 사륜의 윅계를 전복한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다.
이후 그의 우정론은 한결 깊고 넓어진다. 한 에세이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벗이란 '제2의 나'다. 벗이 없다면 대체 누구와 더불어 보는 것을 함께 하며, 누구와 더불어 듣는 것을 함께 하며, 누구와 더불어 냄새 맡는 것을 함께 하며, 장차 누구과 더불어 질혜와 깨달음을 나눌수 있겠는가? 아내는 잃어도 다시 구할 수 있지만 친구는 한 번 잃으면 결코 다시 구할 수 없는 법, 그것은 존재의 기반이 소욷리째 무너지는 절대적 비극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그는 우정의 성리학적 표상인 '천고의 옛날을 벗삼는다'는 말을 조문하고, '아득한 후세에 나를 알아주는 이를 기다린다'는 형이상학적 명제를 비웃는다. 즉 그가 말하는 바'우도'란초월적 원리에 종속된 도덕적 규범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생을 능동적으로 구성하는 것이자 '나'의 경계를 넘어 끊임없이 다른 것으로 변이되는 능력의 다른 이름이다.-64쪽

돈키호테와 연암
...
마치 돈키호테가 시종 산초 판사와 애마 로시난테만을 데리고 천하를 주유하듯, 그 또한 '두 뒤가 쫑긋'하고 '정강이가 날씬한' 말과 우직한 하인 창대, 장복이만을 동반한다. 돈키호테는 머릿속에 온갖 '기사담'을 다 집어 넣고서 길을 나서지만, 연암은 이제 마주체게 될 미지의 세계를 낱낱이 담기 위해 붓과 먹, 공책 등을 들고서 여행을 떠난다. 전자는 텍스트를 구현하기 위해 떠나지만, 후자는 텍스트를 채우기 위해 떠난다. 전자의 여행이 이미 완결된 세계를 현실에서 확인하고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면, 후자의 혀앵은 예정도, 목적도 없이 낯설과 이질적인 모험 속으로 무작정 몸을 날리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연암이 더 '돈키호테적'인게 아닐까.
하긴, 그렇기도 하다. '돈키호테팀'과 '연암팀'이 겉보기에는 유사해 보이지만, 사실 이들은 매우 상이한 배치로 이루어져 있다. 전자의 경우, 돈키호테는 기사담의 세계에 푹 빠져 현실을 도통 보려 하지 않는 데 반해 산초 판사가 온갖 재치오 익살로 돈키호테의 엄숙주의를 깨뜨리는 구조라면, 후자의 경우 오히려 장복이나 창대가 철저한 소중화주의에 물들어 있고 연암이 그 경직된 선분을 라고지르며 온갖 '해프닝'을 일으키는 식이다. 기묘한 대칭!
그러나 아무리 몸이 가볍고 경쾌하다 해도 먼길을 떠나는 자의 심정은 착잡하다. 두려움 혹은 설레임이 어찌 없으랴.........
-149쪽

이별론
사람과 말을 점고해 보니, 사람은 발이 모두 부르트고, 말은 여위고 병들어서 실로 대어갈 것 같지가 않다. 이에 일행이 모두 마두를 없애고 견마잡이만 데리고 가기로 하여, 연암도 하는 수 없이 장복이를 떨어뜨리고 창대만 데려가기로 했다. '환상의 2인조'가 생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고지식학 융통성이 없어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기는 하나, 그래도 산전수전을 함께 겪어왔는데, 막상 떼어놓으려니 연암의 가슴이 미어진다. 장복이는 또 어떤가. 머나먼 이국땅에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두 사람과 생이별을 하게 되었으니 창자가 끊어질 듯이 서러워한다. "장복은 말 등자를 붙잡고 흐느껴 울며 차마 헤어지기 어려워한다. 내가 돌아가라 타이른즉 또 창대의 손목을 잡고 서로 슬피 우는데 눈물이 마치 비내리듯 한다."
연암은 문득 말 위에서 생각한다. "인간의 가장 괴로운 일은 이별이요, 이별 중에서도 생이별보다 괴로운 것으 없을 것"이라고. 하나는 살고 또 하나는 죽는 그 순가느이 이별이야 구태여 괴로움이라 할 것이 못 된다. 그거야 사람마다 겪는 것이고, 천하의 순리가 아니가. 또 죽은 이에겐 괴로움이 없을 터. 그러나 하나는 가고 하나는 떨어지는 때, 그것도 흘러가는 물을 사잉에 두고 헤어질 때의 그 애닯음을 무엇에 비할 것이가. 이런 식을 연암의 '이별론'은 시작된다. 어떤 소재든 그에 알맞은 리듬과 악센트를 부여하는 것이 연암의 장기 아니던가.
-180쪽

호삼다, 일흔세살노인
그 숱한 엑스트라들 중에 아역이 없을 리가 없다. 호삼다(胡三多)라는 꼬맹이 친구가 바로 그다. 나이는 열두살. 얼굴이 맑고 깨끗하며 예도에 익숙하다. 일흔 세 살된 노인과 함께 혹정 왕민호에게 글을 배운다. 매일 새벽이면 삼다는 노인과 함께 책을 끼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발걸음을 맞추어 와선 혹정을 뵙니다. 혹정이 바쁠 때면, 노인는 즉시 몸을 돌려 동자인 삼다에게 고개를 숙이고 강의를 받고 선 간다. 돌아가선 여러 손자들에게 다시 배운 바를 가르쳐 준다고 한다. 노인은 스스럼없이 어린 삼다를 동학(同學) 혹은 아우라 부른다. 연암은 이들 짝궁을 보고, "늙은이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어린이는 업신여김이 없다"는 변방의 질박한 풍속에 감탄해 마지않는다.
-274쪽

판첸라마 대소동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판첸라마 대소동!'이다. 천신만고 끝에 열하에 도착한 일행에게 또 하나의 '불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티베트의 판첸라마를 만나 예를 표하라는 황제의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춘추대의(春秋大義)'로 무장한 그들로선 만주족보다 더 망측한 서버의 오랑캐에게 머리를 조아린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날벼락'이었다. "사신들은 얼굴을 수심을 띠었고, 당번 역관들은 황황히 분주하여 마치 숙취가 덜 깬 사람 같았다. 비장들은 성을 내어 "황저의 일 괴악하거든. 반드시 망할거야"라는 극단적 발언이 오고가는 그 아수라장 속에서 연암은 무얼 했던가?-28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