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과 내기한 선비 샘깊은 오늘고전 8
김이은 지음, 정정엽 그림, 김시습 원작 / 알마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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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천재 문인 가운데 <논어>에서 이름을 지은 사람이 있답니다. <논어>의 첫 구절,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에서 이름을 지었던 사람인데 혹시 누구인지 알겠나요? 이 사람은 어린 시절 시를 잘짓는다고 임금님께 불려갔다고 합니다. 어찌나 훌륭하게 시를 지었는지 임금님이 비단을 상으로 내렸습니다. 그 어린 아이가 어떻게 무거운 비단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갈까 했는데… 한쪽 끝을 손에 쥐고 끌고 갔다고 하네요.


이 천재의 재능을 어여뻐한 임금은 세종, 그 앞에서 시를 지어 뭇 사람을 놀래킨 사람은 ‘김시습’입니다. ‘학이시습’에서 ‘시습’을 그대로 따서 지은 이름이지요. 그러나 그는 이 훌륭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이를 크게 펼칠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불우한 시대를 만났기 때문이지요. 세종을 이어 왕위에 오른 문종은 젊은 나이에 죽고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오릅니다. 그런데 단종은 삼촌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날 뿐만 아니라 어린 나이에 죽게 되지요. 조카 대신 왕위에 오른 이, 바로 세조입니다.


불의한 시대에 등을 돌린 그는 금오산에 들어갔다고 해요. 오늘날 경주 남산이 그 산이랍니다. 금오산에서 엮은 새로운 이야기가 바로 ‘금오신화金鰲新話’라고 해요. 총 다섯편의 이야기가이 전해지는데 이 책도 글쓴이 김시습처럼 오랫동안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다고 해요. 일본에 전해졌던 것을 한참 뒤에나 다시 들여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읽혔다고 합니다.


이 책은 다섯 개의 이야기 가운데 두 개의 이야기를 옮겼습니다. 두 이야기의 본디 제목은 각각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이에요.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요? <만복사저포기>는 만복사라는 절에서 일종의 윷놀이같은 저포놀이를 했다는 내용입니다. 한편 <이생규장전>은 이생이라는 청년이 담을 넘어 어여쁜 처녀를 훔쳐보았다는 내용이에요. 그래서 각각 <부처님과 내기한 선비>와 <이생이 담 안을 엿보다>로 제목을 옮겼습니다. 제목을 풀어놓으니 내용이 궁금하지 않나요?


예전에 토요서당에서 초등학생들과 함께 읽었어요. 그때 초등학생이던 친구가 중학생이 되어 책꼬리를 써주었어요. ‘모태솔로 양선비의 결혼 프로젝트!’, ‘파릇파릇한 청춘들의 꽃피는 사랑,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글을 붙여주었네요. 그때 읽었던 이야기가 인상 깊었나봐요. 이제 곧 봄인데 봄과 어울리는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 쓸슬한 절 마당에 혼자 남은 양 선비는 소맷자락 안에 저포를 집어넣고는 법당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소매 속에 들어 있던 저포를 꺼내 불상 앞에 내려놓고는 불상을 쳐다보며 말했다.


“부처님, 오늘은 저와 함께 저포 놀이를 해 보시겠어요? 만약 제가 지면 정성을 다해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죠. 대신 만약 부처님이 지면 제게 아름다운 처녀를 구해 주셔야 합니다!”


양 선비는 소원을 비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냅다 저포를 바닥에 던져 한바탕 놀았다. 짝도 없이 외롭게 부처님과 저포 놀이를 한 양 선비. 결과는 놀랍게도 양 선비의 승리였다. 의기양양해진 양 선비는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큰소리로 말했다.


“자, 이제 결판이 났으니 제 소원을 들어주셔야 합니다. 부처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 59~61쪽.

http://ozgz.net/3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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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2-19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길동전의 명성에 가려서 그렇지 김시습의 소설도 생각보다 재미있습니다. ^^

내사랑취두부 2016-02-24 14:20   좋아요 0 | URL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홍길동전`보다 `금오신화`가 더 재미있어요.
 
흡수하는 마음 부글 클래식 boogle Classics
마리아 몬테소리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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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아쉽습니다. 예를 들어 `민감기`를 `감수성 민감한 시기`라고 한다든가. 민감기는 몬테소리 철학에서 중요한 개념입니다. 고전을 번역본으로 읽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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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좋아하시나요.

당신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는 시詩가 있는 세계인가요, 없는 세계인가요.

 

너는 네가 무엇을 흔드는지 모르고
너는 그러나 머물러 흔들려 본 적 없고
돌이켜 보면 피가 되는 말
상처와 낙인을 찾아 고이는 말
지은 罪에서 지을 罪로 너는 끌려가고
또 구름을 생각하면 비로 떨어져
썩은 웅덩이에 고이고 베어 먹어도
베어 먹어도 자라나는 너의 죽음
너의 後光, 너는 썩어 詩가 될 테지만

<너는 네가 무엇을 흔드는지 모르고>, 이성복


누군가에게는 증언이 되고, 위로가 되고, 연민이 되고, 고백이 되고, 비관이 되고, 아름다움이 되고, 추락이 되고, 계시가 되고, 침묵이 되고, 구원이 되고,... 혹은 영영 알아들을 수 없는, 그런 문장들이 있습니다.


이 시에는 아무것도 없다
네가 좋아하는
예쁜 여자, 통일성, 넓은 길이나 거짓말과 같은 것들이

다만

문을 열자 쏟아지는 창고의 먼지, 심한 기침 소리
네게 주려 했는데
실수로 꽝꽝 얼린 한 컵의 물
물밑의 징검다리, 쓰임을 알 수 없는
약들이 있다
쉽게 말할 수 있는 미래와
뭐라 규정할 수 없는 "지금 여기"
더듬거리는 혀들이 있고

<이전 詩들과 이번 詩 사이의 고요한 거리>, 진은영

 


아름다움을 읽어내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추락을 읽어내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에게 시詩란 무엇입니까?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뼈아픈 후회>, 황지우

 

 


시를 읽는 당신이 궁금합니다.
그러니 봄이 오기 전에, 우리 같이 석유난롯가 앞에 모여 앉아 시나 읽지요.
돌아가면서 소리내어 시를 읽으면 굉장히 멋지고 근사하지 않을까요.
매주 한 권의 시집을 읽어요. 다 읽고나서 이곳, 온지곤지에서 모입니다.

좋아하는 음악도 가져오세요.
시집에 대해 이야기 나눈 후에는 스피커 볼륨 크게 키워놓고 좋은 음악이나 듣지요.
같이 읽고 들으실 분, 누구든지 환영합니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


1월 23일 첫째 시간_ 『정본 백석 시집』, 백석
1월 30일 둘째 시간_ 『입속의 검은 잎』, 기형도
2월 13일 셋째 시간_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이성복
2월 20일 넷째 시간_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황지우
2월 27일 다섯째 시간_ 『이 시대時代의 사랑』, 최승자
3월 5일 여섯째 시간_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진은영

 


- 장소 : 책방 온지곤지 http://ozgz.net 

- 일시 :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30분
- 회비 : 매 시간 5천원 (전체를 참여할 경우 2만원)
- 책방에서 책을 구입하시면 별도의 회비 없이 참여하실 수 있어요.

- 참여하실 분은 홈페이지에 댓글을 남겨주세요. http://goo.gl/I13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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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대학교 - 기업의 노예가 된 한국 대학의 자화상
오찬호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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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학의 민낯을 보자. 대학을 나온 사람이건, 대학을 나올 사람이건, 대학을 권하는 사람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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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이 포 벤데타 - (정식 한국어판) 시공그래픽노블
앨런 무어 지음, 정지욱 옮김 / 시공사(만화)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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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촛불집회 사진을 찾아보았다. 역시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 사람들의 표정은 밝다. 복면도 마스크도 보이지 않는다. 어느 날인가 한국은행 앞 분수대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던 게 기억난다. 그들은 검은 망토에 똑같은 가면을 쓰고 있었다. 바로 이 책의 주인공 브이의 그 가면을 쓰고. 사람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를 부르며 그 앞을 행진했다. 그러나 MB는 그 유명한 컨테이너를 쌓은 명박산성으로 답했고, 나중엔 컨테이너 대신 차벽으로 사람들의 길을 막는 법을 터득했다. 


광장 자체를 없애버리기로 했을 때쯤이었을까? 마구잡이식의 채증, 물대포가 정말 '대포'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때가. 그와 함께 마스크와 복면이 등장했다. 그러고보니 이젠 촛불을 들지 않는다. 2008년 함께 웃으며 광장과 거리를 매웠던 사람들은 불과 10년이 채 안 되어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 게다가 이젠 소통조차 기대할 수 없는 대통령은 '복면시위'를 금지해야 한다며 핏대를 세운다. 사람들은 잘 알아야 한다. 그가 금지하고 싶어 하는 것이 '복면'이 아니라 '시위'임을. 


이 만화-그래팩노블은 1980년대에 출간되었다. 언론이 사라진 사회, 시민들의 삶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사회, 눈-코-귀-입이 모두 통제된 사회가 배경이다. 영화로도 제작된 이 작품은 그 사회에 균열을 내는 브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영화를 먼저 보았기 때문일까? 개인적으로는 기대만큼 만족스럽지는 않다. 생각보다 많은 분량, 그래픽노블이라는 형식이 아직 낯설기 때문이겠다. 익숙하지 않은 그림체 때문인지 등장인물을 구분하는 게 힘들더라;; 


영화에서 가장 명장면은 수많은 시민들이 브이의 가면을 쓰고 행진하는 장면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그런 장엄한 장면은 없다. 도리어 메시지는 모호하며 주먹을 불끈 쥐게 만드는 영화와 달리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아마도 이 지점이 흥행으로 성공한 영화와 그래픽노블의 대명사격인 이 작품의 호불호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이다. 내년 강의(링크)에서 이 작품을 다시 다루게 될 텐데, 그때에는 어떨지 궁금하다. 시위를 실명제로 하자는 아이디어가 난무하는 이 나라에서 이 책을 읽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 책방 온지곤지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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