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밀리지 않고 진짜 인생을 살고 싶다 -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끝까지 지켜야 할 인생 키워드 35가지
가와기타 요시노리 지음, 이정환 옮김 / 예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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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생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나이 드는 건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다만 멋지게 살고 싶을 뿐!"

  젊었을 때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이가 들면서 꼭 지켜야 하는 소중한 대상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그러므로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반드시 정리해야 할 것들이 있다. 인생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기에.

  현명한 길을 택할 것인가, 어리석은 길을 택할 것인가? 그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의 인생을 결정한다.

- 책 소개 中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중년들의 인생에는 '버려도 되는 것, 버리면 안 되는 것'을 확실하게 구별 해야 할 일들이 생겨나게 된다. 혹은, 그런 일들이 생겨나게 된단다. 젊은 시절에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이가 들면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소중한 대상으로 바뀌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변화가 존재하는 것이 인생이다. 예를 들어, 적당한 '욕망'을 가지면 우리의 삶은 활기가 넘친다. 욕망이 없는 인생은 활기가 없고, 욕망이 없는 사람을 상대하면 재미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친 욕망은 주위에 피해를 끼치게 되고, 경멸을 당하기 쉽상이다. 어느 정도 선에서 이런 욕망을 억제해야 하는 것인지, 욕망에 따라 나름대로의 기준이 정해져 있어야 한다. 그럼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문제가 발생한다. 욕망의 적당한 기준, 즉 어떤 것은 버려도 되고, 어떤 것은 버리면 안 되는지 '구분짓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이러한 삶의 질문에 놓인 중년들을 위해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끝까지 지켜야 할 인생 키워드 35가지'를 정리한 책이 바로 <나이에 밀리지 않고 진짜 인생을 살고 싶다>이다. 일본에서 남성 인생의 스페셜리스트로 유명한 '기와기타 요시노리'가 중년들의 삶을 위해 '구별짓기'를 가르친다.


  작가 가와기타 요시노리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후 일본 메이저 언론사들의 문화부장과 출판부장을 두루 거치며 저널리스트로 명성을 쌓았다. 그가 집필한 <인생의 즐거움을 발견하는 방법>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대학생에서부터 대기업 CEO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에서 존경 받는 강연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그의 강연은 30~40대 비즈니스맨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데, 그건 바로 그의 강연이 '마흔 살'이라는 나이가 인생의 성장과 성공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철학적 사색과 매혹적인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시간으로 '마흔 이후 10년'을 꼽았다. 집필과 강연을 통해 수만 명에 이르는 성공 비즈니스맨들과 소통해온 그는 마흔 살은 은퇴를 생각할 나이가 결코 아니라고 강조한다. 인생의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뛰어야만 원하는 삶을 얻을 수 있다고 격려한다. 동양의 위대한 철학자 공자는 마흔을 두고 '불혹'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세상일에 어떤 흔들림도 없는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청춘보다 더한 열정과 도전정신을 통해 더 큰 목표를 세우고 일로 매진해야 한다고 그는 그의 책 <마흔 살의 철학>에서 조언한다. 그에 따르면 인생에 후반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에 2막이란 없다. 인생은 오직 단막극이며, 결코 무대에서 내려오지 않겠다는 신념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만이 결국 성공에 이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나이에 밀리지 않고 진짜 인생을 살고 싶다>를 통해 빛나는 마흔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을 선물 받게 될 것이며 흔들림 없이 당당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등불이 되어줄 매력적인 철학들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중년의 인생을 풍요롭게

  가와기타 요시로노리의 전작 <중년수업>으로 이미 수많은 중년들의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었던 저자는 새로운 책 <나이에 밀리지 않고 진짜 인생을 살고 싶다>를 통해서 "긴 인생에서 나이 드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진짜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 


  저자는 '인생을 잘 잊어버리는 삶을 살라'고 당부한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절대로 되돌릴 수 없다.과거의 한 장면을 돌이켜보고 반성하며 후회하다가 현재에 집중할 수가 없어서 또 다른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고 말한다. 누군가가 과거에 있었던 수치스러운 행동을 지적하면, 이런 식으로 사과하라고 조언한다.

  "그런 일이 있었나? 잊고 있었는데… 정말 미안하네."

이것으로 끝이다. 과거에 얽매여 있으면 앞으로 전진할 수 없다. 인생은 '잘 잊어버리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고 저자는 충고한다.



  이 외에도 <나이에 밀리지 않고 진짜 인생을 살고 싶다>에는 후회 없는 인생을 위해 기억해야 할 9가지, 매력적인 인생을 위해 기억해야 할 9가지, 능력 있는 인생을 위해 기억해야 할 9가지, 품위 있는 인생을 위해 기억해야 할 8가지 등 진짜 인생을 위한 조언들을 아끼지 않고 들려준다.

  다만 저자가 서문에서도 밝혔듯 이 책의 내용은,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그런 애매한 경우에 '이럴 때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을까?'하는 인생 선배의 '조언' 정도로 생각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조언'이다. 저자가 충고하는 바가 정답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다시 한 번 밝히지만, 이 책은 40대를 위해 쓰여진 책이다. 인생이 흘러감에 있어 과거에는 중요했던 것이 40대에는 중요하지 않게 되고, 과거에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 40대에는 중요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연령 별로 조언이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40대에 있어서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조언은 맞다.

  이제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현명하게 나이 들어감을 선택할 것인가. 다가올 40대, 현재의 40대를 잘못된 선택으로 흘려보낼 것인가. 그것이 40대 다음의 인생 품격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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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콘 - 진중권의 철학 매뉴얼
진중권 지음 / 씨네21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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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읽는 철학의 도구상자


 아이콘이 복잡한 명령어의 시각적 압축이듯, 개념은 복잡하기 그지없는 철학적 사유의 시각적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아이콘 덕분에 굳이 컴퓨터를 몰라도 그것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사용할 수 있듯이, 철학적 개념들을 알아두면 굳이 철학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이도 자신의 관심사에 관해 철학적 수준에 맞먹는 깊은 사유를 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의 목표도 거기에 있다. 결국 이 책은 철학이라는 운용체계의 아이콘, 즉 개념들의 용법을 다룬 일종의 매뉴얼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철학자, 대학교수, 교육자, 비평가, 문화평론가, 언론인 등의 다양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진중권씨가 철학의 38가지 개념을 소개한 책이 <아이콘>이다. '진중권의 철학 매뉴얼'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씨네21> 잡지에 [진중권의 아이콘]의 제목으로 2010년 4월부터 1년간 연재된 칼럼을 모아 수정, 보완해서 단행본으로 만든 책이다.

  이 책의 제목인 '아이콘'이 내포하는 의미는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이라는 symbol과 같은 뜻이 아니라, 컴퓨터 전원을 넣으면 윈도우와 함께 바탕화면에 주르륵 나타나는 시각적 기호들을 가리킨다. 아이콘을 이용해 도스 시절의 복잡한 명령어 없이, 간단하게 누구나 컴퓨터를 사용하게 될 수 있었듯, '개념어'라는 아이콘의 쓰임을 알고 있다면 전문적 철학 지식을 완벽하게 갖추지 않아도 깊은 사유의 장으로 출입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아이콘>은 38가지 철학의 개념을 담아내고 있다. 철학의 개념을 일상의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적용하여 설명한다는 것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개념어, 혹은 철학어에 대한 개념정의는 가지고 있는 사상 체계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사랑'이나 '용기' 등의 추상어를 개인마다 다르게 인식하고 정의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사랑'이라는 예를 들어보자. 사랑에 대한 개념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짝사랑'도 사랑의 범주에 포함시키느냐, '이성'끼리의 사랑만을 범주에 포함시키느냐 등의 자신의 생각에 따라서 개념에 대한 정의는 다르다. 하물며 철학 용어에 대한 개념 정의는 '정답'이라 부를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이에 대한 작가의 고백이 인상적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개념들은 한때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들이다. 그것들이 내게 인상을 남겼다 함은, 그것들이 현상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해주었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개념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이보다 더 훌륭한 정의는 다른 책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개념들을 현실의 구체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책의 목적은 언어학적인 것이다.

  철학의 도구와 연장을 일상언어로 끌어들이는 것은 아직 투박하기 짝이 없는 우리말을 지금보다 더 정교하고, 풍부하게 만드는 길이라 믿는다.

- <아이콘> 머리말 中


  그렇다. 작가의 고백에 따르면 <아이콘>은 개념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책이 아니다. 이러한 '개념들을 현실의 구체적 맥락 속에서 어떻게 사용하느냐'하는 것이다. 독일 철학자 헤겔은 자신의 저서 <법철학>에서 철학이란 '시대의 아들'이라고 정의했다. 그만큼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 철학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이콘>에 등장하는 개념어에 대한 진중권의 사용법을 보고, 독자 역시 '철학함'이 가능하다는 것. 그것이 어찌보면 이 책을 독서하는 목표가 아닐까 싶다.

  

  현실의 맥락 속에서 설명하는 개념들은 첫 장인 파타피직스(pataphysics)부터 거침없이 시작된다. 닌테도 위(WII)와 '허경영'을 동시에 '즐기는' 요즘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을 분석하면서 파타피직스(형이상학 위의 학문, 즉 초형이상학. 파타피직스는 형이상학을 구속하는 논리학마저 초월)를 설명한다. 저자는 "그들은(젊은이들은) 허경영이 보여주는 것이 '정치 패러디'라는 것을 안다"며 "허경영이 보통 정치인들과 너무나 달라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보통 정치인들과 너무 똑같아 열광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서 "젊은이들이 허경영에게 환호를 보낼 때, 그들은 실은 그로써 이 사회의 부조리에 야유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타피직스'라는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 철학적 용어를 이렇듯 현실의 도구(WII)나 정치적 사안(허경영에 대한 열광)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또한 '범주 오류(category mistake)'의 개념에서는 얼마전 인터넷을 떠들썩 하게 만들었던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사건을 설명했다. 타진요의 회원들이 타블로에게 해명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어떤 범주의 오류를 범했는지를 개념의 설명과 함께 예시로 사용했다. 

  진중권은 타블로의 학력을 둘러싸고 벌어진 '타진요' 논란을 들여다보며 "어떤 사물을 그것이 속하지 않는 집합에 집어넣는 실수"라며 "가수나 배우 같은 연예인과 총리나 장관 같은 공직자를 동시에 '공인'이라는 범주에 넣은 것, 개인적·주관적 궁금증과 사회적·객관적 의혹을 구별하지 못한 것이 모두 범주 오류다"고 풀이했다. 

  후반부로 진행되면서 개념에 대한 설명은 꼭 현실의 도구나 정치상황, 연예 뉴스 뿐만 아니라 영화 속 캐릭터를 통해, 역사 이야기를 통해, 건축물 등을 통해 최대한 많은 분야에서 개념 설명을 이끌어 간다. 그의 경험의 폭이 과연 넓다는 것을 여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책의 목적을 충실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잘 유지한 책이라고 느껴진다. 작가가 머리말에서 밝혔듯 이 책의 목적을 다시 상기시켜 보자.


  이 책에서 표명한 나의 주관적 견해나 주장들은 고스란히 잊어도 좋다. 그것들은 개념의 사용법을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범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이른바 '인식의 효소(fermanta cognitionis)', 말하자면 독자들의 머릿속에 들어가 그 속에서 새로운 생각을 숙성시키는 효모가 되었으면 한다.

- <아이콘> 머리말 中


  이 책이 독자의 것이 되려면, 저자가 제시하는 범례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개념의 사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한 개념들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다시 설명할 수 있다면 그 개념은 독자의 것이 되는 것이다. 처음 접하면 이름조차 어려운 개념들이 즐비한다. 그래도 도전해보자. 인문학 장르에 대한 책 시장이 커지는 만큼, 이러한 철학적 용어들의 개념 장착은 독자를 더욱 밝게 비추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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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부학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7
페데리코 안다아시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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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발견'인가, 불경스러운 '이단'인가?


  16세기 최고의 해부학자 마테오 콜롬보가 여성의 몸에서 찾아낸 천국과 지옥의 열쇠. 그것은 위대한 '발견'인가? 불경스러운 '이단'인가? 

   페데리코 안다아시는 이 작품에서 해부학, 종교, 인문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통해 역사를 재해석하고 재생산해낸다. 그는 특히 해부학자의 발견을 단순한 '이단'으로 규정해버린 가톨릭교회의 대응에 예리한 메스를 들이대며, 종교재판 과정에서 행한 마테오의 변론을 통해 당시의 폐쇄적인 도덕관념과 비합리성, 인간의 무지를 조롱한다. 독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남과 동시에, 숨겨져 있던 한 해부학자의 '발견'과 당시의 비뚤어진 종교권력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 <해부학자> 책 소개 中


  '타임머신'을 타보고 싶은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 사용은 불확신한 미래를 확인하기 위해 가기보다는, 머나먼 과거로 돌아가 이야기로만 듣던 과거 이야기를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가고 싶은 시대는 두 정도로 나뉘어진다. 첫 번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한참 활동을 하던 고대 그리스. 두 번째는 중세의 암흑기를 끝내고 알에서 나온 르네상스 시대이다. '발견하다'라는 동사가 지배한 르네상스 시대. 그 화려함과 이성적 사유의 환경이 너무 궁금했기 때문일 것이다.

  <해부학자>는 이러한 바람을 조금이나마 충족시켜준다. 소설의 배경이 르네상스 시대이다. 더구나 저자의 풍부한 상상력과 문장력이 더해져서 르네상스 시대에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당시의 종교적 상황, 당시 발달하지 못한 의료(해부학)적 상황, 여성의 지위, 도덕관념 등 여러 방면으로 르네상스 시대를 책 속에서 재현하고 있었다. 



  역사 소설? 문학 소설?


  "오, 나의 아메리카여, 나의 달콤한 신대륙이여!"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주인공 마테오 레알도 콜롬보가 자신의 저서 <해부학에 관해>에 쓴 표현이다. '마테오 레알도 콜롬보(이하 마테오 콜롬보)'는 실존 인물이다. 실제로 15세기 해부학자로 활동을 했다. 페데리코 안다아시는 역사적 실존 인물을 현대사회로 데려와 주인공을 시켰다. <해부학자>는 '역사 소설'인가? '팩션(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합성어) 소설'인가? 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작가의 말을 들어보면 내용은 이렇다. 르네상스 시대에 중요한 해부학자였던 마테오 콜롬보란 사람을 알게 되었다. 호기심 반 연민 반으로 그의 관한 기록을 찾는데, 중요성에 비해서 그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 것이 궁금했다. 마테오 콜롬보의 '발견'에 관한 정보가 없다는 데 놀란 저자는 발견이 아마도 검열을 받음으로써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이를 픽션화하기로 생각해서 쓴 소설이 <해부학자>라고 밝히고 있다.

 

  이야기는 복잡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16세기 최고의 해부학자 마테오 콜롬보의 독특하지만 위험스러운 '발견'에 관한 이야기다. 마테오 콜롬보가 발견한 그의 '아메리카'는 그와 같은 이름의 이탈리아 탐험가 크리스토포로 콜롬보(콜럼버스)가 발견한 '아메리카'보다 훨씬 가깝게 있고, 한없이 작다. 하지만 그의 발견은 당시의 시대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모든 남자가 한번쯤은 생각하는 여자의 마음을 얻는 도구이다. 여자의 마음을 여는 마술의 열쇠이며, 갈대와 같은 여자의 마음을 정복하는 도구. 해부학자는 자신이 이름을 붙일 권리가 있다면 그것을 '비너스의 사랑'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그 기관이 바로 '클리토리스'이다.

  사실 마테오 콜롬보가 '비너스의 사랑'을 발견하게 된 것은 두 여자에 의해 이루어졌다. 우연한 기회에 현존하는 비너스이자 고급 창녀 '모나 소피아'와의 만남을 계기로, 그녀의 마음을 얻고 싶은 욕망에 그는 사로잡힌다. 방법을 모색하던 중 '이네스 데 토레몰리노스'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일찍 결혼을 했지만 남편을 잃고, 딸 셋을 둔 과부. 성녀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정결하고 신심이 깊고 젊은 미망인. 그녀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처음 만났지만, 거기서 마테오 콜롬보는 자신의 '아메리카'를 발견한다. 그녀의 두 다리 사이에서 여자의 사랑과 쾌락을 지배하는 작은 기관인 '그것'을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해부학자의 이러한 발견은 당시의 도덕적인 관념과 종교관에 의해서 악마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여자의 마음을 지배하는 도구가 악마가 알게 된다면, 세상 모든 여자들이 위험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 시대를 지배하던 카톨릭 신앙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할 만한 발견인 것이다. 결국 마테오 콜롬보는 이단죄, 위증죄, 신성모독죄, 미신 숭배죄, 악마 숭배죄 등의 이유로 종교재판에 회부된다. 

  이러한 상황적인 측면에서 갈릴레이가 떠올랐다. 르네상스를 지배하던 동사가 '발견하다'이지만, 기존의 상식을 깨뜨리는 발견은 기득권층의 눈총과 억압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갈릴레이가 그랬고, 코페르니쿠스 등이 그랬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주장한 논문은 금서의 목록에 올랐고, 갈릴레이의 지동설 역시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지동설 주장의 포기를 명령받았다. 마테오 콜롬보 역시 그의 발견인 '비너스의 사랑'이 담긴 저서 <해부학에 관해>도 금서의 목록에 올랐다. 

  

  종교재판에 회부된 마테오 콜롬보의 변론이 3부에 등장한다. 필자는 여기서 작가의 역량에 크게 놀랐다. 3부는 흡사 백과사전과 같은 지식의 양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변론에서 작가 페데리코 안다아시는 르네상스 시대를 관통하는 방대한 지식과 시대상을 과감하게 표현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형이상학>에 등장하는 문장을 인용하며 인체에 대한 인식과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음경에 대한 언급과 더불어 그 당시의 과학적 지식이 등장한다. 또한 여자의 육체에 대한 당시의 인식과 해부학적인 지식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적인 교리와 연결된다.



  또한 마테오 콜롬보의 입을 통해 중세시대를 암흑기로 이끈 종교 권력을 희화화 시킨다. 그들의 권력에 도전함으로써 가톨릭 교회의 폐쇄적인 도덕관과 비합리성, 인간의 무지를 조롱한다. 물론 변론에서 마테오 콜롬보는 자신이 이단이 아니라고 열심히 변론한다. 그 과정에서 과학과 종교는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생한다는 주장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해부학의 발달로 인해) 신이 만든 육체를 잘 파악하는 것이 신을 넘어서려는 것이 아니라, 신의 뜻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함이라는 주장을 한다. 결국 과학의 발달은 모든 것을 만든 신의 뜻을 이해하는 도구로써 작용한다는 소리다. 오늘날 과학과 종교의 대립이 팽팽한 시점에서 마테오 콜롬보의 주장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종교재판 이후 마테오 콜롬보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 않는다. 우연한 기회에 교황의 주치의로 간택되어 로마로 떠나기 때문이다. 교황의 병을 치료함으로써 교황의 권력을 등에 엎은 마테오 콜롬보. 하지만 교황은 나이들어 죽게되고, 그의 후견인을 자처했던 추기경은 콘클라베에서 차기 교황으로 선출되지 않으면서 마테오 콜롬보의 지위는 하늘에서 바닥으로 추락한다. 

  '비너스의 사랑'의 발견에 일조한 두 여인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젊은 미망인 '이네스 데 토레몰리노스'는 감옥에서 보낸 마테오 콜롬보의 편지를 받게 된다. 편지에서 마테오 콜롬보는 '이네스 데 토레몰리노스'의 사랑은 마음의 사랑이 아닌  육체가 시키던 사랑, 즉 '비너스의 사랑'이 시킨 거짓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짝사랑도 서글픈데, 그 사랑이 거짓이라니. 결국 여자는 자신과 세 딸의 '비너스의 사랑'을 칼로 잘라 쾌감과 욕정을 잃어버린 여자의 몸이 되어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힘쓴다.

  자신을 사랑하는 여인을 내찬 마테오 콜롬보의 사랑 '모나 소피아'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녀는 창녀촌에서 지독한 매독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 위생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매춘의 결과는 참혹하게 다가온 것이다. 결국 '비너스의 사랑'을 발견함으로써 여성을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은 알았지만 사랑을 쟁취할 순 없었다.

  



  해부학자와 함께하는 여행


  실존 인물을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해부학자>는 흥미롭게 다가온다. "글을 쓴다는 것은 속이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가슴에 새긴 채 감춰진 역사적 사실을 문학적으로 확대 재해석하고 재생산해나가는 것이 작가의 태도라고 말한다. 역사가와 작가의 차이점은 작가 특유의 주관적인 관점과 해석이 들어 있는 '이야기'는 역사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부학자>는 팩트를 말하는 역사 소설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는 픽션 소설인 것이다. 해부학자인 마테오 콜롬보의 시점에 따라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외설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문학으로써 바라본다면 충분히 인문학적인 요소도 많이 숨어 있는 작품이다. 

  작가와 함께 떠나는 르네상스로의 여행, 즐겁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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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 한국사를 조작하고 은폐한 주류 역사학자를 고발한다
이주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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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배운 역사는 과연 진실이었나?

  이 책은 일제 식민사학계가 지난 100여 년간 모든 것을 동원해 사수해온 '부동의 정설'을 파헤치고, 그 역사적 뿌리와 맥락, 현실과 구조를 명징하게 드러내고 논증하기 위해 쓴 식민사학 추적 보고서다.

  1945년 조선총독부는 해체되었지만,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는 한국주류 역사학계로 승계되었다. 광복 후 독립운동가가 친일파의 손에 청산되면서 한국사 원형과 진실은 철저하게 부관참시(剖棺斬屍)당했다. 조선사편수회가 날조하고 왜곡한 역사는 이른바 '실증주의'로 치장되었고, 조선사편수회가 가장 두려워한 독립운동가의 과학적 역사학은 '신념이 앞선 관념론', '국수주의'로 전락했다. 그렇게 한국사는 죽었다.

  사실은 해석이 다양할수록 진실에 다가선다. 하지만 한국 주류 역사학계는 사실을 은폐하고 호도함으로써 역사 해석의 다양성 문제를 태생부터 부정했다. 한국 주류 역사학계가 일제 식민사관 시각에서 한국사 '정설'을 세우고, 정설과 다른 역사관을 이단시하면서 수립한 절대적인 도그마와 닫힌 해석은 진실과 거리가 먼 역사학이다.

- <저자 서문> 中에서


  어렸을 때 동화책으로 접했을 '단군신화'가 혹시 기억나는가? 단군신화의 내용은 이러하다. 하늘에서 내려온 환인과 그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 꼭대기에 내려와 인간 세계를 다스리게 되었다. 이 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찾아와 사람이 되고 싶다고 간청한다. 이에 환웅은 동굴에서 100일동안 쑥과 마늘을 먹으면 된다고 방법을 알려준다.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던 중, 호랑이는 참지 못하고 동굴을 빠져나가고 곰은 100일을 견디어 여자의 몸으로 변하게 된다. 환웅과 여자로 변한 곰 사이에서 나온 아이가 '단군'이다. 단군은 환웅의 뒤를 이어 평양성을 도읍으로 하여 나라를 창시하니, 그것이 조선이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이러한 '단군 신화'에 대해서 접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단군 신화'에 문제가 발생했다. 과연 신화를 어디까지 보아야 하는냐? 하는 문제가 남겨진 것이다. 신화를 소설처럼 픽션으로 생각하여, 허구로 만들것인가? 아니면 신화도 역사의 한 부분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인가? 라는 문제가 남겨진 것이다. 

  상당히 중요한 논의가 되어버렸다. 단군 신화, 즉 고조선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은 엄청난 역사를 갖게 된다.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보다 더 오랜 세월을 누린 민족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에 일본의 사학계는 이러한 '단군 신화'를 허구로 만들어버린다. 곰이 사람이 되는 것, 등의 신화의 이야기를 꼬집어 과학적으로 말이 되지 않기 때문에 '단군 신화'는 허구이다는 것이다. 결국 단군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이 우리나라의 처음 역사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역사는 저자의 말에 따르면 올바른 역사가 아니다. 비판하는 능력을 상실한 역사학은 학문이 아닐 뿐더러, 다양한 해석을 하지 못해 진실에 다가가지 못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한다. 과연 우리가 지금까지 배운 역사,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일 것인가? 



  논란이 되는 우리의 역사

  저자 이주한은 논쟁이 되고 있는, 아니 문제가 되고 있는 역사의 부분 4가지를 언급한다. 처음으로 고조선 건국신화이다. 

고조선 개국 신화는 여전히 신화적 범주에 속하며 역사적 사실이 아닌 것이 자명하다. 신화가 전하는 내용과 역사적 배경은 엄격히 분리해 서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중앙일보>, 2012년 9월 18일.

  윗 글은 한국의 동북아역사재단의 주장이다.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고 있는 동북아역사재단이 앞서서 고조선의 단군 신화를 허구로 만들어버렸다. 동북아역사재단만 이런 것이 아니다. 한국의 주류역사학계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그들의 멘토격인 이병도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고조선 건국신화는 '신화'이지 '역사'가 아니라고 일관성있게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신화를 역사로 바라보는 사람들에 대한 그들의 시선이다. 무엇때문이지 다양한 해석을 거부하는 그들. 1차 사료를 통해 '단군 신화'의 역사적 사실을 증명함에도 불구하고, 단군 신화는 허구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뚜렷한 논리가 없다. 

  두 번째로 한사군의 위치다. 한반도에 한사군이 위치했던 것인가? 라는 것이다. 무슨 이유인지 우리는 역사시간에 한사군의 위치를 암기하듯 외웠다. 시험에 출제가 되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한사군을 한반도에 위치한 것이라고 보았던 것일까? 다른 해석을 가능하지도 않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러고도 그들이 주류 역사학계라니. 

  세 번째로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둘러싼 논란이다. 일본의 역사학계는 그들의 역사를 위해서 우리나라의 역사가 눈에 가시처럼 느껴질 것이다. 자신들 역사의 완벽성을 위하여 우리나라 역사를 파괴하는 것. 그것이 일본 역사학자들의 임무였다. 그렇기 때문에 <삼국사기>는 파괴되어야 할 책이었다. 결국 일본은 <삼국사기>가 허구라는 주장을 펼쳤다. 초기기록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임나일본부설 등을 인정받기 위해선 <삼국사기>가 거짓이어야 한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미간이 찌그러졌다. <삼국사기> 초기 기록이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본 역사학자들이 아니라, 우리나라 주류 역사학자들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나라 역사를 도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를 기억하는 자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막연한 희망은 절망을 낳는다. 한국 주류 역사학계가 살면서 한국사는 죽었다. 그러나 대중이 역사의 진실을 알아채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여기에 희망이라는 사실이 있다. 

  역사와 나라를 잃은 고통은 이름 없는 민중이 온전히 떠안는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혹독한 현실을 살아가는 민중에게 식민주의는 무거운 족쇄 중의 족쇄다. 그렇기 때문에 식민사관 척결은 가장 낮은 곳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혁신하는 매우 중요한 관건이기도 하다.

  우리는 스스로 사필귀정을 이루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 물방울이 모여 시내가 되고, 멈추지 않고 흘러 큰 강에서 만나 바다로 간다. 모두 멈추지 않는 강물이 되어 심원한 역사의 바다에서 만나야 한다. 오늘날 우리를 있게 한 선혈들을 최후의 승자로 기록해야 할 의무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모두를 위한 역사는 없다. 술이부작인 이 책은 그들에 대한 경의요 헌사다. 기억은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끔 한다. 기억이 없는 인간은 인간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지키기 어렵다. 역사는 기억이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얼마든지 농락되고 누군가에 의해 지배당할 수 있다. 역사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그러나 역사를 기억하는 자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 <저자 서문> 中에서

  

  주루 식민사학계는 이른바 '현대사 연구금지론'을 내세워 자신의 치부를 은폐하고 선각자들의 역사를 지우려고 했다. 우리는 그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선각자들은 나라가 망국의 길로 들어서자 역사학자가 되고 총을 들었다. 그들이 목숨을 바쳐 지키고 밝힌 역사를 우리는 끝까지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후한은 기억을 지키기 위해 역사에 생을 걸었고, 잔혹한 인신 공격을 버텨내야 했다. 우리가 그들을 알아주어야 한다. 

  국사와 근현대사를 모르는 지금의 청소년들이 자라나면, 이와 같은 논쟁 자체도 의미가 없어질지 모른다. 역사가 무엇이든 현재만, 나만 잘 살면 되는 것이 아니냐? 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한국사라는 학문이 청소년들에게는 암기 해야만 하는 노동의 과목이 되어버린 탓이다. 5.18 광주민주항쟁을 모르고, 4.3 제주사건을 모르는 청소년들. '명성황후가 어떤 사람이냐?'라는 질문에 '이미연'(명성황후 OST 뮤직비디오에서 명성황후 역이 이미연이다.)이라고 대답하는 세대. 박정희의 무서움을 모르는 세대. 그것이 앞으로 한국을 이끌어나가는 세대의 자화상이다.

  인문학의 핵심은 비판이다. 비판적 사고의 출발점은 어떤 생각이나 주장을 의심하는 데서 시작한다.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그 자체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의 시각을 통해 해석된다. 모든 것은 새로운 시각으로 볼 여지가 있다. 비판은 모든 학문의 원칙이다. 그런데 한국 인문학은 비판을 용납하지 않고, 사실을 조작하며, 가혹한 인신공격으로 대응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만큼 역사학계에서는 인문학적 마인드를 찾아볼 수 없고, 고인물처럼 썩어있다는 말이다.

  역사의 중요성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앞으로 글로벌 시대에 한국인이 살아가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한국은 사라지고 중국인으로 특성을 바꿔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기억하자. 역사는 우리의 손으로 지켜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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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패밀리
고종석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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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금지된 사랑의 이야기

  『해피 패밀리』는 가족의 이름으로 묶인 개인들의 이야기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가족이라는 '이미 정해진 관계'의 일원이 된다. 가족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그 속의 개인들은 어떤 관계를 맺고 살 수 있었을까. 이 작품은 '가족이 아니었다면 한민희와 한민형은 누나와 동생의 관계가 아닌 다른 관계가 되어 살고 있지는 않았을까.'하는 물음을 독자에게 던진다. 

  독자는 이 소설을 통해 사회가 금기시하는 사랑과 현대사회 가족이라는 것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채널 예스_신혜정의 기사 中


  '해피 패밀리'는?

  채널 예스에 신혜정씨가 쓴 기사를 잠시 살펴보자. 작가와의 대화를 통해 작가가 생각하는 '해피 패밀리'에 대한 것을 엿볼 수 있다. 

  제목만 보면 어느 행복한 가족의 이야기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소설은 불행한 가족을 묘사한다.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속하나, 구성원은 서로 다른 개인이다. 개인 사이에서 충돌은 피할 수 없다. 그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가족 이야기라기보다는 외딴 섬에 사는 개개인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가족은 혈연으로 연결되니까 당연히 서로 사랑해주고 서로 위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이 아니라면 충분히 친해졌을 사람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섞이지 못하고 친해지지 못하고 있다. 또한 각자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맞부딪치며 불화가 일어난다."

 섞이지 못하는 그들은 책 속에서도 따로 생각하고, 따로 말한다. 같은 시간을 보내고 같은 일을 공유했던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융화되지 못한다. 작가는 관계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작중인물 한민형의 내면 부분을 낭독했다.

  그러나 그 친구들마저도 내가 마음속 깊이 사랑하는 것 같진 않다. 어쩌면 가장 가깝다 할 P마저도. 가족들에 대한 내 감정이 그렇듯. 그 친구들도 나를 그렇게 대할 것이다. 내가 그들을 그리 대하는데, 그들이 어떻게 나를 진정으로 대하겠는가?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를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친분과 우정이라는 그럴 듯한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착취하고 있는 셈이다. - 25 쪽.

  고종석 작가는 말했다. "세상에서 금지된 사랑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책에서 치과 치료 중에 술을 마셔도 되겠냐는 민형의 질문에 치과의사는 말했다. 세상에 금지된 것은 없다고. 여러분은 금지된 것을 해보신 적 있나요?"

  그는 같은 핏줄 내에서의 사랑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근친혼을 금기로 여기는 한국 사회에서는 너무 반도덕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종석 씨는 『해피 패밀리』가 지금의 가족제와 결혼 제도에 대한 문제제기라 말했다.

  한편, 임경선 작가는 유약하고 섬세한 지식인으로 대표되는 고종석 페르소나를 이 책에서는 한민형이 따르고 있다고 했다. 그 인물이 고종석 작가 자신과 비슷한 부분이 있느냐고 질문했을 때, 작가는 답했다. "아니요. 나는 허무하지도 않고, 허무주의자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작중인물 민희가 죽음에 앞서 썼던 일기에 대해 언급했을 때 작가는 동감하며 말했다.

  "깜짝 놀랐어요. 사실 저도 이걸 쓰면서 핑, 돌았거든요."

  짧지만 빛나는 삶을 살았던 민희, 보통 사람들이 작가를 두고 한민형의 내면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사실 민희에 투사된 부분이 많다.

  "나는 민희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져요. 제일 생돔감 있는 인물은 서현주라는 느낌이 들고요. 민희는 죽음으로써, 현주는 살아남음으로써 사랑을 완성하는 것이지요."


  가족이라는 울타리

  당신은 가족에게 얼마나 관심을 갖고 살아간다고 생각하는가. 고종석 작가의 말처럼 가족이기 때문에 무관심이 허용된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누나와 동생, 아들과 딸, 할머니와 할아버지, 혹은 아내와 남편으로 불리는 가족 구성원. 가족 구성원 안에서는 이처럼의 호칭을 갖고 살아간다. 이름으로써 개별 구성원임을 인정받지 못한다. 사람마다 각자의 개성을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우리'라는 이름의 폭력일지도 모른다.

  '가족'이라는 말에 들어있는 낭만과 따뜻함을 느끼려면 전제 조건이 필요한 듯 보인다. 가족의 개별 구성원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전제 조건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런 식의 배려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족'이라는 말로써, 모든 것을 합리화 시키려고 하는 문제가 있다. 아무 의미 없이 껍데기에 가까운 통념이 이미 충분한 설명을 전제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회에서 범죄시 되는 문제가 가족 구성원끼리 일어나도, '가족'이라는 말로 용서하라는, 용서 해야한다는 강요가 일어난다. 이것이 '가족'일까?


  고종석의 <해피 패밀리>는 한민형과 한민희를 위시한 가족 구성원과 주변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목차의 구성에서 한민형을 시작으로 전체 가족 구성원 각자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은 가족의 사연이다. 그들의 관계는 '가족'이기도 하지만, 민형과 민희라는 공통의 사연을 통해 해체되거나 이해되고 있다. 이야기의 전반에는 민희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가 느슨하게 엮여있을 뿐이다. 그가 이른 나이에 죽었다는 사실 정도만 기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희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누군가의 고백이 아니라, 가족들의 사연 안에서 조금씩 점층적으로 드러난다. 그것이 완전히 드러나는 것은 마지막에 이르러 민희의 일기장을 통해서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을 들어서 <해피 패밀리>가 반전이 있는 소설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즉, 반전의 묘미를 선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 이것은 소설을 읽어나가는 사람이라면 점층적으로 고백하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누구나 눈치챌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매우 느슨한 형태의 이야기이며, 이러한 이야기가 이 소설의 주요한 전략도 아니다. 

  각각의 챕터는 각자의 이름과 출생년을 기준으로 동명이인에 대한 의구심을 제거했다. 이 소설의 화자는 시종일관 '나'다. 챕터 이름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읽어나가는 독자들은 소설 속에서 많은 '나'를 경험하게 된다. 챕터의 성격 상 각각의 '나'는 서로 완전히 다른 '나'이기 때문이다. 가족 구성원들에게 개인성을 부여함으로써, 가족 이야기를 다루는데 적합한 이야기 방식이 아니었나 싶다. 그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떠들고 있을 뿐이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공통의 사건을 서술하고 있을 때도 각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본다. 결과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여러 관점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남'이 아닌 '가족 구성원'이라는 틀이 존재하지만.

  

  한국사회 가족 담론에 있어서 <해피 패밀리>가 보여주는 솔직함은 매우 드물다. 인터뷰에서도 이야기를 한 부분이지만, 금기시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우리사회는 금기시되는 이야기라면, 아예 입밖으로 내지 않는 것이 정설이다. 왜? 라는 질문은 구차하게 여겼다. 금기를 상식으로 만들어버리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작가가 치과의사의 말을 빌려 말했듯, 금지된 것이란 없다. <해피 패밀리>와 같은 작품세계를 통해서 금기시 되는 것에 대한 담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작가 고종석이 <해피 패밀리>를 마지막으로 절필 선언을 한 것이 너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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