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학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7
페데리코 안다아시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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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발견'인가, 불경스러운 '이단'인가?


  16세기 최고의 해부학자 마테오 콜롬보가 여성의 몸에서 찾아낸 천국과 지옥의 열쇠. 그것은 위대한 '발견'인가? 불경스러운 '이단'인가? 

   페데리코 안다아시는 이 작품에서 해부학, 종교, 인문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통해 역사를 재해석하고 재생산해낸다. 그는 특히 해부학자의 발견을 단순한 '이단'으로 규정해버린 가톨릭교회의 대응에 예리한 메스를 들이대며, 종교재판 과정에서 행한 마테오의 변론을 통해 당시의 폐쇄적인 도덕관념과 비합리성, 인간의 무지를 조롱한다. 독자들은 이 작품을 통해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남과 동시에, 숨겨져 있던 한 해부학자의 '발견'과 당시의 비뚤어진 종교권력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 <해부학자> 책 소개 中


  '타임머신'을 타보고 싶은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 사용은 불확신한 미래를 확인하기 위해 가기보다는, 머나먼 과거로 돌아가 이야기로만 듣던 과거 이야기를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가고 싶은 시대는 두 정도로 나뉘어진다. 첫 번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한참 활동을 하던 고대 그리스. 두 번째는 중세의 암흑기를 끝내고 알에서 나온 르네상스 시대이다. '발견하다'라는 동사가 지배한 르네상스 시대. 그 화려함과 이성적 사유의 환경이 너무 궁금했기 때문일 것이다.

  <해부학자>는 이러한 바람을 조금이나마 충족시켜준다. 소설의 배경이 르네상스 시대이다. 더구나 저자의 풍부한 상상력과 문장력이 더해져서 르네상스 시대에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다. 더 나아가 당시의 종교적 상황, 당시 발달하지 못한 의료(해부학)적 상황, 여성의 지위, 도덕관념 등 여러 방면으로 르네상스 시대를 책 속에서 재현하고 있었다. 



  역사 소설? 문학 소설?


  "오, 나의 아메리카여, 나의 달콤한 신대륙이여!"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주인공 마테오 레알도 콜롬보가 자신의 저서 <해부학에 관해>에 쓴 표현이다. '마테오 레알도 콜롬보(이하 마테오 콜롬보)'는 실존 인물이다. 실제로 15세기 해부학자로 활동을 했다. 페데리코 안다아시는 역사적 실존 인물을 현대사회로 데려와 주인공을 시켰다. <해부학자>는 '역사 소설'인가? '팩션(팩트(Fact)와 픽션(Fiction)의 합성어) 소설'인가? 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작가의 말을 들어보면 내용은 이렇다. 르네상스 시대에 중요한 해부학자였던 마테오 콜롬보란 사람을 알게 되었다. 호기심 반 연민 반으로 그의 관한 기록을 찾는데, 중요성에 비해서 그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 것이 궁금했다. 마테오 콜롬보의 '발견'에 관한 정보가 없다는 데 놀란 저자는 발견이 아마도 검열을 받음으로써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이를 픽션화하기로 생각해서 쓴 소설이 <해부학자>라고 밝히고 있다.

 

  이야기는 복잡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16세기 최고의 해부학자 마테오 콜롬보의 독특하지만 위험스러운 '발견'에 관한 이야기다. 마테오 콜롬보가 발견한 그의 '아메리카'는 그와 같은 이름의 이탈리아 탐험가 크리스토포로 콜롬보(콜럼버스)가 발견한 '아메리카'보다 훨씬 가깝게 있고, 한없이 작다. 하지만 그의 발견은 당시의 시대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모든 남자가 한번쯤은 생각하는 여자의 마음을 얻는 도구이다. 여자의 마음을 여는 마술의 열쇠이며, 갈대와 같은 여자의 마음을 정복하는 도구. 해부학자는 자신이 이름을 붙일 권리가 있다면 그것을 '비너스의 사랑'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그 기관이 바로 '클리토리스'이다.

  사실 마테오 콜롬보가 '비너스의 사랑'을 발견하게 된 것은 두 여자에 의해 이루어졌다. 우연한 기회에 현존하는 비너스이자 고급 창녀 '모나 소피아'와의 만남을 계기로, 그녀의 마음을 얻고 싶은 욕망에 그는 사로잡힌다. 방법을 모색하던 중 '이네스 데 토레몰리노스'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일찍 결혼을 했지만 남편을 잃고, 딸 셋을 둔 과부. 성녀의 반열에 오를 정도로 정결하고 신심이 깊고 젊은 미망인. 그녀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처음 만났지만, 거기서 마테오 콜롬보는 자신의 '아메리카'를 발견한다. 그녀의 두 다리 사이에서 여자의 사랑과 쾌락을 지배하는 작은 기관인 '그것'을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해부학자의 이러한 발견은 당시의 도덕적인 관념과 종교관에 의해서 악마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여자의 마음을 지배하는 도구가 악마가 알게 된다면, 세상 모든 여자들이 위험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시 시대를 지배하던 카톨릭 신앙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할 만한 발견인 것이다. 결국 마테오 콜롬보는 이단죄, 위증죄, 신성모독죄, 미신 숭배죄, 악마 숭배죄 등의 이유로 종교재판에 회부된다. 

  이러한 상황적인 측면에서 갈릴레이가 떠올랐다. 르네상스를 지배하던 동사가 '발견하다'이지만, 기존의 상식을 깨뜨리는 발견은 기득권층의 눈총과 억압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갈릴레이가 그랬고, 코페르니쿠스 등이 그랬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주장한 논문은 금서의 목록에 올랐고, 갈릴레이의 지동설 역시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지동설 주장의 포기를 명령받았다. 마테오 콜롬보 역시 그의 발견인 '비너스의 사랑'이 담긴 저서 <해부학에 관해>도 금서의 목록에 올랐다. 

  

  종교재판에 회부된 마테오 콜롬보의 변론이 3부에 등장한다. 필자는 여기서 작가의 역량에 크게 놀랐다. 3부는 흡사 백과사전과 같은 지식의 양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변론에서 작가 페데리코 안다아시는 르네상스 시대를 관통하는 방대한 지식과 시대상을 과감하게 표현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형이상학>에 등장하는 문장을 인용하며 인체에 대한 인식과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음경에 대한 언급과 더불어 그 당시의 과학적 지식이 등장한다. 또한 여자의 육체에 대한 당시의 인식과 해부학적인 지식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적인 교리와 연결된다.



  또한 마테오 콜롬보의 입을 통해 중세시대를 암흑기로 이끈 종교 권력을 희화화 시킨다. 그들의 권력에 도전함으로써 가톨릭 교회의 폐쇄적인 도덕관과 비합리성, 인간의 무지를 조롱한다. 물론 변론에서 마테오 콜롬보는 자신이 이단이 아니라고 열심히 변론한다. 그 과정에서 과학과 종교는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생한다는 주장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해부학의 발달로 인해) 신이 만든 육체를 잘 파악하는 것이 신을 넘어서려는 것이 아니라, 신의 뜻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함이라는 주장을 한다. 결국 과학의 발달은 모든 것을 만든 신의 뜻을 이해하는 도구로써 작용한다는 소리다. 오늘날 과학과 종교의 대립이 팽팽한 시점에서 마테오 콜롬보의 주장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종교재판 이후 마테오 콜롬보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 않는다. 우연한 기회에 교황의 주치의로 간택되어 로마로 떠나기 때문이다. 교황의 병을 치료함으로써 교황의 권력을 등에 엎은 마테오 콜롬보. 하지만 교황은 나이들어 죽게되고, 그의 후견인을 자처했던 추기경은 콘클라베에서 차기 교황으로 선출되지 않으면서 마테오 콜롬보의 지위는 하늘에서 바닥으로 추락한다. 

  '비너스의 사랑'의 발견에 일조한 두 여인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젊은 미망인 '이네스 데 토레몰리노스'는 감옥에서 보낸 마테오 콜롬보의 편지를 받게 된다. 편지에서 마테오 콜롬보는 '이네스 데 토레몰리노스'의 사랑은 마음의 사랑이 아닌  육체가 시키던 사랑, 즉 '비너스의 사랑'이 시킨 거짓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짝사랑도 서글픈데, 그 사랑이 거짓이라니. 결국 여자는 자신과 세 딸의 '비너스의 사랑'을 칼로 잘라 쾌감과 욕정을 잃어버린 여자의 몸이 되어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힘쓴다.

  자신을 사랑하는 여인을 내찬 마테오 콜롬보의 사랑 '모나 소피아'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녀는 창녀촌에서 지독한 매독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 위생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매춘의 결과는 참혹하게 다가온 것이다. 결국 '비너스의 사랑'을 발견함으로써 여성을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은 알았지만 사랑을 쟁취할 순 없었다.

  



  해부학자와 함께하는 여행


  실존 인물을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해부학자>는 흥미롭게 다가온다. "글을 쓴다는 것은 속이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가슴에 새긴 채 감춰진 역사적 사실을 문학적으로 확대 재해석하고 재생산해나가는 것이 작가의 태도라고 말한다. 역사가와 작가의 차이점은 작가 특유의 주관적인 관점과 해석이 들어 있는 '이야기'는 역사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부학자>는 팩트를 말하는 역사 소설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는 픽션 소설인 것이다. 해부학자인 마테오 콜롬보의 시점에 따라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에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외설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문학으로써 바라본다면 충분히 인문학적인 요소도 많이 숨어 있는 작품이다. 

  작가와 함께 떠나는 르네상스로의 여행, 즐겁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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