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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11월 내맘대로 좋은책

 
"죽(이)는 방법은 너무 많다"
 
코핀 댄서 - 전2권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노블하우스
 
범죄는 언제나 흥미로운 소재다. 그러나 어설픈 캐릭터, 서투른 이야기 전개로는 범죄소설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독자들이야말로 최고로 까다로운 고객이니까. :)
 
전신마비 법의학자 '링컨 라임'이 등장하는 두 번째 책 <코핀 댄서>는 최고의 법의학 스릴러이다. 최고의 탐정과 최고의 범인이 대결한다. (최고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쓰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진짜 최고니까.;) 이틀 뒤에 열릴 대배심 재판에서 거물 무기 밀매상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게 될 증인 세 명을 제거하기 위해 '코핀 댄서'라는 킬러가 고용된다. 그를 잡기 위해 손발은 움직일 수 없지만 머리는 컴퓨터처럼 돌아가는 링컨 라임이 나선다. 탐정이 영리하면 킬러는 더 영악해진다. 킬러가 머리를 쓸수록 탐정 역시 사건 해결을 위해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발휘한다. 양쪽 다 한치의 양보도 없이, 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각자의 무기를 동원하여. 재판까지 남은 시간은 45시간, 미지의 암살자가 세 명의 증인을 살해하거나, 최고의 범죄학자 링컨 라임이 그를 저지하거나. 하나의 결론을 향해, 소설은 거침없이 나아간다.
 
서로 있는 힘껏 상대를 향해 공을 쳐내는 테니스 경기를 보는듯 한시도 방심할 틈이 없다. 두뇌 대결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치밀하고 빈틈없는 구성은 단연 최고. 째깍째깍 제한 시간을 두고 펼쳐지는 스릴 만점의 게임, 스케일과 박진감, 비현실적으로 영리하지만 그만큼 매력적인 캐릭터, 거기에 최고의 반전까지, 어느 하나 빠지지 않고 모두 마련되어 있다. 그러니까, 진짜로 재미있는 책이라는 이야기. 또다른 링컨 라임 시리즈를 빨리 읽고 싶다.
 
(시리즈의 첫 번째 책 <본 컬렉터>는 지난 여름 홍수처럼 쏟아진 추리소설 중에서 눈에 띄게 잘 씌여진 작품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에 걸맞게 충분히 프로모션하지 못한 것이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동명의 영화 '본 컬렉터'와는 다른 결말, 다른 분위기, 훨씬 더 나은 작품이다.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멋진 책. 물론, 이 책을 읽지 않아도 <코핀 댄서>를 읽는 데에는 거의 무리가 없다.)
 
 
 "시끌벅적, 키득키득, 인생은 사랑이 있어 아름다워."
사랑의 유산
루시 M. 몽고메리 지음, 오현수 옮김 / 대교베텔스만
 
<빨강머리 앤>의 작가 루시 몽고메리가 돌아왔다. 작가의 고향 '프린스 에드워드' 섬을 배경으로, 시끌벅적 한바탕 유쾌한 소동이 벌어진다. 줄거리는 단순하고 간명하다.
 
삼대에 걸쳐 60쌍을 배출해온 다크 집안과 펜할로우 집안. 거듭된 결혼으로 굳게 결속된 양가의 우두머리 베키 아주머니가 일대 파란을 일으키며 세상을 하직한다. 가보인 '다크 단지'를 상속할 수 있는 자격조건을 써놓은 유언장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것. 유언장은 1년 후에야 공개된다.
 
그 덕분에 조용했던 마을은 바른 생활의 광풍에 휘말리고 처녀총각들에게는 결혼이 절대절명의 지상과제가 된다. 사실 가보는 낭만적 사연이 깃든 낡은 단지에 불과하지만 이것을 차지하는 사람은 마을에서 존경과 예우가 보장된 삶을 살게 되기 때문. 1년의 유예기간 동안 다크 단지를 차지하기 위한 마을 사람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계속되고, 1년이 지났을 때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가 나온다.
 
내용 전개와 결말을 다 아는 드라마를 그래도 계속 보게 되는 심리처럼, 키득키득 웃게 만드는 소극이다. 인물들은 정해진 제 짝을 찾아가고 모든 것이 있어야 할 곳에 놓인다. 전형적이고 뻔하지만 남의 연애 이야기, 뒷담화처럼 재미있는게 또 있을까. <빨강머리 앤>의 몇몇 에피소드와 비슷한 장면을 발견하는 것도 또다른 재미.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이웃 사람들, 가족 내 미묘한 권력 관계, 다시 안볼 것처럼 다투고 성을 내지만 종내 마음을 열고 용서하는, 결국에는 선량한 사람들. 은근히 보수적이고 아줌마스러운 루시 몽고메리의 수다는 이 책에서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빼어난 문학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읽는 순간만큼은 기분이 좋~아지는, 재미있고 유쾌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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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은 언제나 시작과 닿아 있음을."
 
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책을 읽기 전에 선입견을 갖는 건 좋지 않지만, <밤의 피크닉>은 처음부터 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제2회 서점대상 수상작이었기 때문. 서점대상은 일본 서점 직원들이 직접 뽑은 인기상으로, 제1회 수상작이 재미와 감동을 겸비-많은 사랑을 받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다. 커다란 기대감을 안고 책장을 연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상이 있으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한다. 책을 만드는 사람과 읽는 사람들, 가운데에 놓인 것이 우리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니.)

이 책은 성장소설이다. 배경이 되는 고등학교에서는 수학여행 대신 '야간 보행제'가 열린다. 밤새 80킬로미터를 걷는 것이 전부인 특이한 이벤트. 흠, 일본적인 행사로군, 생각한다. 여러 친구들이 어깨를 마주하고 어두운 밤길을 걷는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이복남매가 등장하고 여기에 몇몇 친구들의 이야기가 어우러진다. 커다란 사건이라곤 일어나지 않는다.

처음엔 그냥 밋밋하네,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계속 읽을수록 아아, 탄복하게 된다. "모두 줄지어 함께 걷는다. 단지 그것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특별한 느낌인 걸까." 소설 속에 여러 번 등장하는 이 대사가 이 소설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아이들이 줄지어 함께 걸어갈 뿐인데, 그것만으로 충분히 소설이 된다.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놓인 열여덟, 열아홉 살의 아이들. 고요한 밤의 시간 동안. 각자 깊이 묻어둔 마음의 비밀들이 스며나온다. 어린 날의 떨림과 반짝거림, 가볍게 들떠 있다가도 곧 무겁게 가라앉곤 하는 10대 시절의 공기가 예리하게 포착된다.

그리고 나 역시 깨닫는다. "이렇듯 아무것도 아닌 밤이 몇번이고 지나가면, 아이들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는 것이다."

주변의 모든 사물, 내밀한 마음의 움직임이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밤의 시간, 예민한 감성의 아이들은 세상과 자신을 열린 눈으로 마주한다. 그 시간을 통해, 아이들은 모든 것의 끝이 언제나 시작과 닿아 있음을, 지금은 지금이라고-지금을 미래를 위해서만 쓸 수는 없다는 걸 깨닫는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사소한 배려와 이해 속에 깊어가는 우정, 10대 시절의 복잡다단한 감정의 면면을 섬세하게 포착한 멋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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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붙은 마이리뷰는 모두 진심이 담겨 있어 정말 좋다. 시간이 나면 한번 읽어보시길. 어떤 책을 읽고 같은 감정을 느낀 사람을 보면 몹시 반갑기 마련인데, '치니'님의 리뷰는 읽고 정말 놀랐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감정의 변화와 100% 똑같다. 일부를 발췌하자면,

"삼분의 일 정도 읽었을 때까지만 해도, 뭐 이런 소설이 전 일본 서점 주인들이 뽑은 최고의 소설이 되었다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았다. 내가 서점 주인이라면, 이런 책을 좋아하게 될까 공상도 해보고, 좋아하게 된다면, 그건 직업 탓일까 아니면 순전히 이 책의 공력 때문일까, 서점 주인이라면 그런 공력을 알아보는 눈이 일반인보다 깊은가, 등등생각에 꼬리가 달렸었다.

 

중반에 이르자, 서점 주인이되, 일본의 서점 주인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정서를 아주 모르지는 않는다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인지, 이 책도 여타의 일본 소설 처럼 일본적 냄새가 짙다고 생각했던 거다. 특히나 현재 일본의 청춘에 속하는 사람들의 냄새.

 

그리고 후반에 이르자, 나는 항복했다. 이러쿵 저러쿵 의구심을 가진 거, 일본적 어쩌구 한 거, 다 취소하고 만 거다."

 

- 편집팀 전체의 '내맘대로 좋은 책'은 더디게 올라올 거 같아, 제 부분만 일단 써서 올립니다. 분위기가 약간 심란해서요. ^^; (아, 난 오늘 월차인데 왜 이러고 있는 거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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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4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nda78 2005-10-24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의 피크닉, 사실 연애 소설 끼워주는 것 때문에 샀는데 정말 좋았어요. ^^

2005-10-24 1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10-24 2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10-25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ugg boots sale 2009-12-04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9월 내맘대로 좋은책

 
"위기의 주부들"
 
아웃
키리노 나츠오 지음, 홍영의 옮김 / 다리미디어
 
지난 여름엔 문자 그대로 미친듯이 추리소설이 쏟아졌다. 제아무리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나라지만, 제발 이제 그만 좀 나와! 라고 비명을 지를 정도로. 그러나 정말 많은 신간 추리소설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은 6년 전에 출간된 <아웃>이다.
 
이 책은 1998년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으로 2004년 미국 에드가상 최종 후보에 오른 작품이다.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사건과 인물, 짜임새를 잃지 않고 속도감있게 전개되는 내러티브를 지닌, 흡입력 100%의 추리소설. 한 권, 한 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를 읽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
 
도시락 공장에서 야간근무를 하는 네 여자가 있다. 구조조정으로 오래 다닌 직장에서 해고된 후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마사코, 없는 형편에도 빚을 내어 과소비를 하는 탐욕스러운 성정의 쿠니코, 자리보전한 시어머니와 딸, 손녀까지 부양해야 하는 고달픈 과부 요시에, 도박과 술집 여자에 미쳐 불성실해진 남편 때문에 고민이 많은 야요이. 네 여자 모두 각자 힘겨운 삶을 견디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더이상 남편을 참아내지 못하게 된 야요이가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다. 그녀는 늘 침착해 보이는 마사코에게 도움을 청하고, 마사코는 그녀를 돕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살인을 완벽하게 은폐하고 한 남자의 시체를 처리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 요시에와 쿠니코마저 이 일에 말려들고, 평범한 주부에 불과했던 네 여자는 잔혹하고 위험한 범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살인 전과가 있는 도박과 매춘업자가 살인자로 몰리는 가운데, 시체를 토막내어 유기하고 뒷처리하는 과정이 손에 잡힐듯 리얼하게 그려진다. (상당히 자세히 묘사되므로 비위가 약한 사람은 견디지 못할 수도 있다.) 얼핏 쉽게 덮고 넘어갈듯 보이던 사건은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복잡하게 뒤엉키고,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 또한 커다란 내적 변화를 맞는다.
 
얼핏 평온해보이는 일상 바로 곁에 폭력과 죽음의 세계가 놓여있다. 인간은 한없이 나약하지만 필요에 따라 한없이 잔인하고 이기적일 수 있다. 때때로 차마 감당하기 힘든 고난이 닥쳐온다. 가족의 무관심과 몰이해에 계속해서 상처입고 무릎이 꺾인다. 복잡한 세상에서 무사히 하루를 보내는 건 사실 기적과 같은 일이다.
 
그러나,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라고 말해야 하는 게 문학-예술이 아닐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끔찍한 시간을 견뎌낸 후에 "등 뒤에서 문이 닫혔다면 새로운 문을 찾아서 열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는 것. 거짓 이야기를 꾸며내든, 망각을 선택하든... 어떻게든 계속해서 '살아가야 한다'. 결국 그것만이 유일한 삶의 명제이다.
 
 
"나는 스밀라에게 반하지 않았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소년이 죽었다. 그러나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얼음과 눈, 숫자에 대한 남다른 통찰력을 지닌 스밀라 외에는. "나는 영웅이 아니다. 한 아이에 대한 애정이 있었을 뿐이다. 나는 그 아이의 죽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 손에 내 집념을 맡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말고는 아무도."
 
이웃에 사는 한 소년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스밀라의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이 책을 읽는 건 스밀라, 그녀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행위이다. 아니다. 곁에 서서 그녀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이다. 600여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 전체가 통채로 '스밀라'다.
 
스밀라는 정말 특별한 여자다. 그린란드인과 덴마크인의 혼혈인 그녀는 이전 어느 소설의 캐릭터보다도 독특하고 냉정하며 (자신에게조차) 탱크 같은 행동력을 지녔다. 동시에 놀랄만큼 다정하고 다분히 감상적이며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행위에 익숙하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않는 그런 사람이다.
 
중간에 읽기를 여러 번 멈추고 책 귀퉁이를 여러 번 접으며 생각에 잠기게 한다. 인간과 사물, 세계와의 관계 맺음에 대해 사유와 성찰과. 스밀라의 뒤에 바짝 붙어선 채, 차갑고 먼 북구의 바다를 헤매는 자신을 발견한다.
 
'살아있는 한 우리는 생존해나갈 방법 찾기를 그만두지 않는다.'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늘 노력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 스밀라에게 생존의 이유는 바로 '이해'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이해의 소설'이다. '이해하고 싶다는 것은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고자 하는 시도다.' 스밀라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희망' 때문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라 표현되는 무엇 때문에.
 
"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냉담해질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긴장할 수는 있겠지만 냉담해질 수는 없다. 삶의 본질은 온기다." 인간에 대한 고요하고 깊은 이해와 성찰이 담긴, 진심으로 일독을 권하는 매력적인 소설이다. 1993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책'. 소설가 김연수의 진심이 담긴 추천글을 꼭 읽어보시길. (추천글의 마지막 문단을 내 식으로 바꾼다면, 마지막 장면 속으로 잠시 들어가 그녀의 뺨에 가만히 손을 대고 '삶의 온기'를 전해주고 싶다. 간절하게.)
 
문학.예술담당 박하영
(zooey@aladin.co.kr)

"여름이여. 장르여."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케이트 윌헬름 지음, 정소연 옮김 / 행복한책읽기
 
아, 책이 너무 좋을 땐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좋은지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 지 막막하다. <영웅문>을 모르는 친구에게 스토리를 이야기해주다가 말을 더듬는 것도, 를 읽어보라고 하긴 해야겠는데 얼굴만 벌개지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게다.
 
언제인지 기억도 안나는 <바람의 열두 방향>이 SF 독서의 마지막이었는데, 이 책이 또다시 장르에의 애정에 기름통을 부었다. 케이트 윌헬름이 어슐리 K. 르 귄과 더불어 SF의 여성시대인 70년대를 풍미했다는 사실도, 테드 창이 그녀를 사사했다는 점도, 심지어 이 책에 주어진 온갖 수상 딱지와 찬사도, 이 책 그 자체보다 훌륭하지는 않다.
 
원폭, 불임으로 예견되는 인류의 종말, 클론이라는 무겁고 어두운 소재에 겁먹을 필요는 없다. 작가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사람'에 고정되어 있으니 말이다. 3편의 중편이 합쳐진 소설의 연결고리 하나를 건널 때마다 그녀는 속삭인다. 과학도, 사회도,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시적인 묘사가 가득한 짤막한 에필로그를 읽는다면, 이 책이 왜 SF 소설 중 가장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꼽히는지를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외국어.실용담당 김세진
(sarah2002@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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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드림~ 2005-09-06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좋은 글에 댓글이나 추천이 하나도 없다니... ^^
사실 어제 봤는데요. 자주 인사드리지 않은 관계로 댓글달까말까 망설이다 그냥 나왔걸랑요.^^;; 추천누르고 도망갑니다.~~

zooey 2005-09-28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punk님. ^^;

uggs 2009-12-05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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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8월 내맘대로 좋은책

 
알라딘 편집팀이 2004년 12월을 마지막으로 감감무소식이었던 '내맘대로 좋은 책 그리고 음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아무 일 없던 듯 조용히 재개하려 했지만 인사조차 않는 건 너무 능청맞겠지요. 한번 바쁘다고 넘어가니 서로 눈치만 보면서 계속 그렇게 되더라,는 게 변명입니다.
 
반년간의 좋았던 책과 음반과 영화를 돌이켜 적어보니 새록새록 떠오르는 생각들에 지나간 시간이 뿌듯하게도 여겨집니다. 이우일씨가 <옥수수빵파랑>에서 권한대로 일부러 멈춰서서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하는 일, 역시 즐겁군요.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의 마음에도 어떤 책들 떠오르고 있는 중일까요? ^-^
 
"2005년 상반기, 한국에서 출판된 최고의 외국 소설"
 
바람의 그림자 1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상반기 최고의 소설은 단연 <바람의 그림자>였다. 근래 외국에서 무슨무슨 상을 수상하고, 세계 몇십개 국에서 몇개 언어로 출간 예정이며, 100만 부 정도야 가볍게 팔아치웠고, 영화로 제작 중이거나 제작 예정이며, 누구누구 유명 작가가 격찬했다는 소설이 너무 많이 나온 탓에, (헉헉) 웬만한 수식엔 마음이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바람의 그림자>는 "2001년 스페인에서 출간된 직후 101주 동안 베스트셀러 상위에 머물렀으며, 미국.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를 비롯한 세계 30여 개 국에서 20개 국어로 번역되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소설. 아마존닷컴에서 단시일 내에 100만 부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고, 스페인 작가의 작품으로는 드물게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00년 스페인 '페르난도 라라 소설 문학상' 최종 후보작, 2002년 스페인 '최고의 소설', 2004년 프랑스에서 그해 출판된 '최고의 외국 소설'로 선정되기도 했다"라는 소개글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모든 이들에게 추천할만한 멋진 소설이다.
 
이 책의 내용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한 소년이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오래된 헌책방에 가게 된다. 거기서 '자신만의 책' 한 권을 얻게 된 소년은, 그 책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아픈 운명에 얽혀 들어간다. 내부에 수많은 미니어처를 담고 있는 '러시아 인형'같은 이야기. 책의 운명과 저주에 대한 소설처럼 시작했다가 추리소설인가 갸웃거리게 하고, 사건 속에 스페인 내전의 그림자가 가득 드리워져 있되 결국엔 죽음도 가라놓을 수 없었던 어떤 연인들의 이야기로 마감된다.
 
인물들의 운명은 소년과 책의 만남을 통해 다시 한번 반복되고 또 변주된다. 인생이란 결국 그러한 것. 반복과 변주를 통해 생은 조금씩 빛깔을 달리하고 아름답게 채색된다. 그때 그들 사이에 오가던 감정, 각자의 사연을 그 누가 온전히 되살릴 수 있을까. 소년은 흩어졌던 지난 인생의 조각들을 모으고, 그 과정을 통해 어른이 된다.
 
풍성한 내러티브, 경쾌한 전개, 지적이면서도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이다. 주변에 권해준 모든 이들 중 단 한 명도 실망했다 말하지 않은, 추천도 100%의 멋진 작품이다. 지극히 복고적이고 낭만적이며, '매혹'이라는 단어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매력적인 소설. (책을 다 읽고 나면 전쟁 중에도 도시에서 꽃을 팔았다던 낭만의 도시 바르셀로나에 가고 싶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 p.s. 2005년 상반기에는 이른바 '저주받은 걸작'이라 불리는 작품들이 재간되어 많은 이를 기쁘게 했다. 최고의 코믹 SF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재출간되었으며, 고려원에서 나왔던 미하엘 엔데의 훌륭한 단편집 <자유의 감옥>과,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가 출간됐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이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란 제목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이 책들을 찾아 헤매던 많은 사람들이 기뻐할 만한 소식. (그러나 유감스러운 건 지금까지의 예를 볼 때, 이렇게 재출간된 책들의 스코어가 썩 좋지많은 않다는 것이다.) 추리소설이 지나치게(!) 많이 쏟아져나오고 있는 이 여름이 지나면 가을엔 또 어떤 멋진 책이 나올까, 기대 반 걱정 반 가슴이 설렌다. (요즘엔 매일 추리소설만 읽어대서 정신세계가 날로 각박해지고 있다.;;)
 
문학.예술담당 박하영
(zooey@aladin.co.kr)
 
 
"올해의 첫 매미 울음, / 인생은 / 쓰라려, 쓰라려, 쓰라려"
 
바람의 그림자 1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한 명의 동료를 떠나보냈다. 고개를 들어보니 계절은 늦여름이다. 반년간 읽은 책을 궁리하다가 <바람의 그림자>를 꺼내들고 가만히 바라본다. 이 책에는 향기가 있어서 지금 주인공들의 운명은 다 잊었을지라도 향기만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 속에 남아 있다.
 
운명, 우연, 사랑, 인생, 고통을 낭만으로 견디는 것에 대한 이야기. 자신의 인생을 특별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고통까지 자초하는 인간들에게는 운명이나 시대가 친구인 셈이다. 어떤 리뷰어께서 "소설과 원수지지 않았다면 읽어보라"고 하셨는데 정말이다. (혹자는 지나치게 영화 시나리오 같다고 평하기도 했지만 좌우간) 그 어떤 이야기가 기척을 알리며 읽는이의 마음에 접어드는 것은 대단한 일. 묘하게 후각적인 이 책은 소설 읽는 재미를 상기시켜준다. (편집자 모씨는 책을 읽고 이상형이 '페르민'으로 바뀌었다고 토로하셨도다. 그이가 잊지 말라고 내가 여기 적어둔다.)
 
올 여름을 화끈하게 총정리해준 것은, 그런데, 주간지인 '한겨레21' 8월호 별책부록 '추리소설 가이드'다. 일부러 주간지를 사볼만한 재미가 있다. 아아 어느새 저 매미 울음 부쩍 시끄러운 것은 가을이 올 신호인가.
 
편집장 김명남
(starla@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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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06 1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8-06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zooey 2005-08-07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님. 잘 지내시죠. ^^ 네, 최근에 예술분야까지 맡게 되었어요. 요샌 정말 일복이 터져납니다.; 올려주시는 리뷰는 늘 잘 읽고 있어요. 리뷰나 페이퍼 읽으며 잘 계시려니 생각하곤 한답니다. 흐흐흐. 서재는 너무 오래 비워서 제 집이 아닌듯 민망할 뿐입니다. 올해 상반기엔 이런저런 일이 너무 많았어요. 되돌아봐도 무슨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잘 안나는군요. 하도 정신이 없어서.;
여기 사람들은 그럭저럭 잘 지냅니다. 정말정말 건강 잘 챙기세요. 언제 기회가 되면 뵈러 가고 싶네요. ^^
* <바람의 그림자>는 아마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거에요. <히치하이커>나 <우감일야>는 취향을 많이 타는 책이지만 <바람의 그림자>는 별로 그렇지 않거든요. 주변에 여러 사람에게 읽혀본 결과는 일단 그렇습니다. ^^;

기*양. 잘 갔다오시우. 갔다와서 <피마새>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선물 사와~

2005-08-20 02: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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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12월 내맘대로 좋은책!

 
"파이의 반전, 파이의 선전, 파이 화이팅!"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몇번을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정말 좋아하는 책인데, 정작 입밖으로 내어 할 수 있는 말이 거의 없는 경우가 있다. 이 소설도 그렇다. 그저 솔직하게, 짧게 말하자. 어린 소년(파이)이 사나운 호랑이와 함께 227일 동안 태평양을 표류한 이야기.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로 부풀었다가 사랑하는 가족을 한순간 잃고, 언제 자기를 해칠지 모르는 호랑이와 공존 아닌 공존을 하면서도, 끝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한 소년의 이야기라니. 매혹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여러 사정이 겹치면서 3일에 끊어 읽었다. 사실 끊어 읽는 독서는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소설의 경우. 3부로 나뉘어진 이 책의 1부는 예상 외로 길다. 태평양에 홀로, 아니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난파한 이야기는 100여 페이지가 넘어가야 비로소 등장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마지막 3부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알지 못했다. 그저 재미있네, 흠. 이러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머리를 감다가 깨달았다. 아, 바로 그런 내용의 소설이었구나! 뒤통수를 퍽 얻어맞은 느낌(사실 아직도 얼얼하다). 이 소설의 구성이 의미하는 바, "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죠."라는 말의 의미. 살면 살수록 쉽지 않다는 걸 실감하는 우리네 삶을 지탱하는 '무엇'의 의미. 그러니까 희망, 혹은 이야기의 기능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책을, 소설을 계속 읽는 이유. 뭐, 이런 것들에 대한 선명한 깨달음이랄까. 아주 수월하게 빠르게 읽히면서도 그 안에 삶이 있다. 역시 정말 훌륭한 작품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씌어지는 법이다. 새삼 생각한다. (알라딘 입사 후 내 마음을 뒤흔든 몇 권의 책 중에 차오원쉬엔의 소설과 <내 생애의 아이들>이 있었다. 결국 또다시 소년(들)이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오랜만이다. SF를 읽으며 인식의 변화, 아, 세상을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하고 놀란 것은. 이야기는 단단하고, 구성도 흠잡을 데 없다. 한눈 팔지 말고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지적 충만감을 느낄 수 있는 책. (공대생 개그 중에, '정의'라는 단어를 들으면 문과생은 'justice'라는 영어단어를 떠올리고 공대생은 'definition'을 떠올린다는 예가 있다. 정말 그렇다. 전형적인 문과생인 나로선 '네 인생의 이야기' 중 페르마의 최단시간의 원리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오, 이런 식의 인식이 가능하군, 하며 놀랐다. 과학과 종교가 잇닿을 수 잇는 지점이 무엇인지 얼핏 알 것도 같다.)
 
문학담당 박하영
(zooey@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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