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은 언제나 시작과 닿아 있음을."
밤의 피크닉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책을 읽기 전에 선입견을 갖는 건 좋지 않지만, <밤의 피크닉>은 처음부터 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제2회 서점대상 수상작이었기 때문. 서점대상은 일본 서점 직원들이 직접 뽑은 인기상으로, 제1회 수상작이 재미와 감동을 겸비-많은 사랑을 받은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다. 커다란 기대감을 안고 책장을 연다. (우리 나라에서도 이런 상이 있으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한다. 책을 만드는 사람과 읽는 사람들, 가운데에 놓인 것이 우리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니.)
이 책은 성장소설이다. 배경이 되는 고등학교에서는 수학여행 대신 '야간 보행제'가 열린다. 밤새 80킬로미터를 걷는 것이 전부인 특이한 이벤트. 흠, 일본적인 행사로군, 생각한다. 여러 친구들이 어깨를 마주하고 어두운 밤길을 걷는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이복남매가 등장하고 여기에 몇몇 친구들의 이야기가 어우러진다. 커다란 사건이라곤 일어나지 않는다.
처음엔 그냥 밋밋하네,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계속 읽을수록 아아, 탄복하게 된다. "모두 줄지어 함께 걷는다. 단지 그것뿐인데 어째서 이렇게 특별한 느낌인 걸까." 소설 속에 여러 번 등장하는 이 대사가 이 소설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아이들이 줄지어 함께 걸어갈 뿐인데, 그것만으로 충분히 소설이 된다.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놓인 열여덟, 열아홉 살의 아이들. 고요한 밤의 시간 동안. 각자 깊이 묻어둔 마음의 비밀들이 스며나온다. 어린 날의 떨림과 반짝거림, 가볍게 들떠 있다가도 곧 무겁게 가라앉곤 하는 10대 시절의 공기가 예리하게 포착된다.
그리고 나 역시 깨닫는다. "이렇듯 아무것도 아닌 밤이 몇번이고 지나가면, 아이들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는 것이다."
주변의 모든 사물, 내밀한 마음의 움직임이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밤의 시간, 예민한 감성의 아이들은 세상과 자신을 열린 눈으로 마주한다. 그 시간을 통해, 아이들은 모든 것의 끝이 언제나 시작과 닿아 있음을, 지금은 지금이라고-지금을 미래를 위해서만 쓸 수는 없다는 걸 깨닫는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 사소한 배려와 이해 속에 깊어가는 우정, 10대 시절의 복잡다단한 감정의 면면을 섬세하게 포착한 멋진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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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붙은 마이리뷰는 모두 진심이 담겨 있어 정말 좋다. 시간이 나면 한번 읽어보시길. 어떤 책을 읽고 같은 감정을 느낀 사람을 보면 몹시 반갑기 마련인데, '치니'님의 리뷰는 읽고 정말 놀랐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감정의 변화와 100% 똑같다. 일부를 발췌하자면,
"삼분의 일 정도 읽었을 때까지만 해도, 뭐 이런 소설이 전 일본 서점 주인들이 뽑은 최고의 소설이 되었다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았다. 내가 서점 주인이라면, 이런 책을 좋아하게 될까 공상도 해보고, 좋아하게 된다면, 그건 직업 탓일까 아니면 순전히 이 책의 공력 때문일까, 서점 주인이라면 그런 공력을 알아보는 눈이 일반인보다 깊은가, 등등…생각에 꼬리가 달렸었다.
중반에 이르자, 서점 주인이되, 일본의 서점 주인이라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정서를 아주 모르지는 않는다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인지, 이 책도 여타의 일본 소설 처럼 일본적 냄새가 짙다고 생각했던 거다. 특히나 현재 일본의 ‘청춘’에 속하는 사람들의 냄새.
그리고 후반에 이르자, 나는 항복했다. 이러쿵 저러쿵 의구심을 가진 거, 일본적 어쩌구 한 거, 다 취소하고 만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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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팀 전체의 '내맘대로 좋은 책'은 더디게 올라올 거 같아, 제 부분만 일단 써서 올립니다. 분위기가 약간 심란해서요. ^^; (아, 난 오늘 월차인데 왜 이러고 있는 거야.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