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의 반전, 파이의 선전, 파이 화이팅!"
몇번을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정말 좋아하는 책인데, 정작 입밖으로 내어 할 수 있는 말이 거의 없는 경우가 있다. 이 소설도 그렇다. 그저 솔직하게, 짧게 말하자. 어린 소년(파이)이 사나운 호랑이와 함께 227일 동안 태평양을 표류한 이야기.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로 부풀었다가 사랑하는 가족을 한순간 잃고, 언제 자기를 해칠지 모르는 호랑이와 공존 아닌 공존을 하면서도, 끝끝내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한 소년의 이야기라니. 매혹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여러 사정이 겹치면서 3일에 끊어 읽었다. 사실 끊어 읽는 독서는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소설의 경우. 3부로 나뉘어진 이 책의 1부는 예상 외로 길다. 태평양에 홀로, 아니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난파한 이야기는 100여 페이지가 넘어가야 비로소 등장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마지막 3부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알지 못했다. 그저 재미있네, 흠. 이러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머리를 감다가 깨달았다. 아, 바로 그런 내용의 소설이었구나! 뒤통수를 퍽 얻어맞은 느낌(사실 아직도 얼얼하다). 이 소설의 구성이 의미하는 바, "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죠."라는 말의 의미. 살면 살수록 쉽지 않다는 걸 실감하는 우리네 삶을 지탱하는 '무엇'의 의미. 그러니까 희망, 혹은 이야기의 기능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책을, 소설을 계속 읽는 이유. 뭐, 이런 것들에 대한 선명한 깨달음이랄까. 아주 수월하게 빠르게 읽히면서도 그 안에 삶이 있다. 역시 정말 훌륭한 작품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씌어지는 법이다. 새삼 생각한다. (알라딘 입사 후 내 마음을 뒤흔든 몇 권의 책 중에 차오원쉬엔의 소설과 <내 생애의 아이들>이 있었다. 결국 또다시 소년(들)이다.)
오랜만이다. SF를 읽으며 인식의 변화, 아, 세상을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하고 놀란 것은. 이야기는 단단하고, 구성도 흠잡을 데 없다. 한눈 팔지 말고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지적 충만감을 느낄 수 있는 책. (공대생 개그 중에, '정의'라는 단어를 들으면 문과생은 'justice'라는 영어단어를 떠올리고 공대생은 'definition'을 떠올린다는 예가 있다. 정말 그렇다. 전형적인 문과생인 나로선 '네 인생의 이야기' 중 페르마의 최단시간의 원리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오, 이런 식의 인식이 가능하군, 하며 놀랐다. 과학과 종교가 잇닿을 수 잇는 지점이 무엇인지 얼핏 알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