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회에서 지젝과 라캉주의 좌파적 입장에 대해 간단히 정리했는데, 10월을 맞아 러시아 ‘10월 혁명’에 대한 지젝의 생각을 잠시 간추린다. 우리 여정의 마지막에서 다룰 주제를 미리 맛보기로 넘겨다보는 의미도 있다.

저명한 러시아 사학자 리처드 파이프스에 따르면, 러시아혁명 시 고위직에 있었던 몰로토프는 다른 어떤 볼셰비키보다도 더 오랫동안 레닌과 스탈린 두 사람을 섬겼다. 노년에 두 사람 가운데 누가 더 ‘엄격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물론 레닌이지. 레닌이 스탈린에게 너무 부드럽고 진보적이라고 꾸짖던 일이 생각나네.”  

 

 

 

이러한 일화에서 파이프스는 스탈린주의가 레닌주의의 거부를 뜻한다는 신화는 거부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끌어낸다. 즉 스탈린주의가 광기였다면, 그것은 레닌주의의 충실한 계승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사학자가 놓친 것을 지젝은 바로 잡는다. 그것은 ‘충실한’ 계승이 아니라 ‘현실 타협적인’ 계승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탈린주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였다. 너무 부드럽기 때문에 진보적이진 못했던 체제였다고 할 수 있을까. ‘현실 사회주의’란 말은 달리 ‘현실과 타협한 사회주의’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어떤 타협이었나?

지젝이 자주 드는 사례인데, 1953년 동독의 노동자 봉기 때 브레히트는 <해결>(1956년 발표)이란 짧은 시를 통해서 “정부는 인민을 해산하고 다른 인민을 선출하는 것이 더 쉽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브레히트로서는 이런 발언을 통해 체제에 대한 그의 지지를 공언하면서 동시에 노동자 인민에 대한 그의 연대를 은근히 암시하는 ‘기회주의적’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브레히트식 양다리 걸치기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문제의 핵심을 건드렸다. 지젝이 보기에 실제로 “인민을 해산하고 새로운 인민을 선출하는 것”이야말로 혁명정당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즉 낡은 기회주의적 인민, 곧 ‘타성적 군중’을 역사적 사명을 자각한 ‘혁명적 몸체’로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혁명정당의 유일한 의무이다. 다만 이것은 브레히트의 판단과는 달리 가장 어려운 과제다. 그것은 마치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육신과 피로 변화시키는 것만큼이나 기적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스탈린주의의 과오는 무엇이었나? 그러한 사명으로부터의 후퇴라고 말할 수 있다. 전체 인민을 혁명적 몸체로 변화시키는 일 대신에 스탈린 체제는 일정한 비율의 ‘반동분자’를 색출하여 수용소에 감금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무능력을 감추고자 했다. 공포정치를 통한 거대한 수용소 국가 체제의 건설이란 다른 한편으론 자신의 ‘불능’을 은폐하기 위한 ‘완력’의 행사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과 예술 또한 이러한 완력의 도구로 활용되었다. 그것이 20세기 ‘정치적 예술’의 대표적 몰락의 사례로 지목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오류에 근거하여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는 급진적 민주주의자들은 ‘대타자’나 ‘대의’를 상정한 모든 형태의 혁명적 정치에 회의적이다. 지젝의 ‘레닌주의’나 ‘프롤레타리아 독재’ 옹호론에 대해서도 미심쩍어한다.

하지만 지젝(혹은 지젝2)의 입장은 다르다. 대중적 퍼포먼스, 혹은 집체 공연을 예로 들자면 거기에 어떤 ‘원형적 파시즘’이 내재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파시즘적으로 만드는 것은 그러한 명명 자체이며, 특수한 접합 효과일 따름이다. “자발성과 과도한 자유 속에서 탐닉하는 ‘방임적’ 태도는 그것을 제공할 수단을 가지고 있는 자들의 것이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은 단지 그들의 기율만을 가지고 있다.” 자기 몸의 기율적 단련이야말로 부르주아 중산층의 조깅이나 보디빌딩과 달리 진정한 의미에서 노동자 계급의 이데올로기이다.

랑시에르의 <감성의 분할>(도서출판b, 2008)에 부친 발문에서 지젝이 들고 있는 사례를 보자. 때는 1920년 11월 7일, 혁명 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러시아혁명은 구력 10월 25일에 일어났으며 신력으로 환산한 날짜가 11월 7일이다). 이날 페트로그라드(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3년 전의 사건을 그대로 재연하는 ‘겨울궁전 습격’이 공연되었다. 수만 명의 노동자와 군인, 학생, 그리고 예술가들이 허름한 죽과 차, 얼린 사과들을 먹으면서 밤낮으로 준비한 공연이었다. 공연의 연출은 말레비치나 메이에르홀드 같은 당대 최고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군 장교들을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대다수 군인들은 실제로 1917년 사건에 참여한 경력이 있었으며 페트로그라드 부근에서 극심한 식량난 속에 벌어지던 내전에 참전 중이기도 했다. 한 동시대인은 이 공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미래의 역사가는 어떻게 가장 잔혹하고 난폭한 혁명 내내 러시아 전체가 어떻게 연기했는가를 기록할 것이다.” 형식주의 이론가였던 슈클로프스키는 “삶이라는 살아 있는 조직체가 연극적인 것으로 변모되는 어떤 기초적인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라고 적었다. 이것이야말로 낭만적 예술지상주의와 무관하면서도 삶이 예술을 모방한 전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대중적 집단성과 기율은 단지 흘러간 과거의 일일까? 지젝이 보기엔 그렇지 않다. 피어싱부터 복장 도착, 공개적 스펙터클에 이르기까지 포스트모던적 ‘저항의 정치’야말로 정치적인 것과 심미적인 것이 결합된 사례이기 때문이다. 가장 간단하게는 피어싱이나 옷 바꿔 입기부터 플래시몹 같은 공개적 스펙터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일례로 2006년 5월 벨로루시의 루카셴코 대통령이 3선에 성공한 직후, 한 네티즌이 이에 항의하는 표시로 수도 민스크의 광장에 나와 그냥 아이스크림이나 먹자는 플래시몹 제안을 인터넷에 올렸다. 벨로루시 경찰은 이에 과민 반응하여 아이스크림을 먹는 시민 몇 사람을 잡아갔다. 하지만 단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는 이유로 잡혀가는 시민들의 사진을 네티즌들이 인터넷에 올리면서 일은 더욱 커졌다. 더욱더 많은 시민이 참여하여 다양한 형태의 플래시몹을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저항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지젝이 인용하는 호피족의 옛 속담이 여기서 교훈을 준다.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들은 바로 우리다.” 이것은 우리 자신을 역사적 필연에 의해 예정된 행위자로 발견한다거나 고양시켜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우리가 의존해야 할 대타자는 없다는 것을 뜻한다. “역사가 우리 편에 있다”라고 믿는 것은 기만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요청하는 지젝의 입장은 대타자를 부정하는 급진적 민주주의와 화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대타자의 결핍을 가시화하고 제도화하려는 급진적 민주주의와 달리 지젝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이 ‘구멍’을 ‘우리’가 채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결정을 그는 ‘순수한 주의주의(pure voluntarism)’라고 말한다.  

 

   
 

“우리의 역사적 발전의 내적 추동력은 그대로 놓아두면 우리를 파국으로, 세계의 종말로 이끈다. 그러한 재앙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순수한 주의주의(主意主義), 다시 말해 역사적 필연을 거슬러 행동하려는 우리의 자유로운 결정이다.”(<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303쪽)

 
   

 

그러한 결정과 행동을 위해서라면, 저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도무지 알 수 없는 신비한 이유와 함께 단단히 단련된 체력과 강인한 정신의 근육도 필요하겠다. 이상이 호피족의 교훈을 되새겨본 짧은 간주곡이고, 우리는 다시금 물라 오마르의 교훈으로 넘어가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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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9주년을 맞은 지난 11일 미국 뉴욕의 테러 현장에서는 그라운드 제로 인근에 들어설 이슬람 사원을 둘러싼 찬반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졌다고 한다. 9·11 직후에 코란과 이슬람 관련서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과는 약간 대조된다. 자유주의적 관용의 태도도 그만큼 줄어든 것인가. 종교 간 갈등이 가열되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하나의 국가이자 하나의 국민”이라며 단합을 촉구하고, 9·11 테러가 이슬람이 아닌 테러 집단의 소행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젝은 그런 ‘생색내기’적 태도가 종교적 불관용보다 더 나은 태도라고도 보지 않는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9·11 이후 서방 매체에서는 ‘아이러니 시대의 종말’이란 말이 자주 등장했다고 한다. 포스트모던적 해체의 언어유희 시대는 끝났으며, 우리에게는 확고하고 명확한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우파 논객인 조지 윌은 미국의 ‘역사로부터의 휴가’가 끝났다고도 선언했다. 어떤 변화를 가져온 것인가?  

 

   
 

“자유주의의 관대한 태도라는 고립된 망루를 깨부수는 현실의 충돌과 문화 연구는 원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the impact of reality shattering the isolated tower of the liberal tolerant attitude and the Cultural Studies focus on textuality.)

 
   

 

원문을 병기한 것은 잘못 번역됐기 때문인데, 현실의 충격이 자유주의적 관용의 태도와 텍스트성 중심의 문화 연구라는 고립된 탑을 무너뜨렸다는 것으로 읽힌다. 텍스트주의 혹은 텍스트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은 ‘포스트모던적 해체의 언어유희(postmodern deconstructive sliding of sense)’라는 표현에 이미 실려 있는데, 지젝이 주로 겨냥하는 것은 데리다의 해체론, 혹은 그 아류이다. 흔히 영어권에서는 데리다와 라캉 모두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의 ‘원흉’으로 자주 지목되는데, 지젝은 둘의 입장을 분명하게 구별한다. 방한 시에 가진 한 대담에서 지젝은 이렇게 말했다.  

 

   
 

“적어도 앵글로 색슨적 관점에서 라캉은 “의미가 해체되어야 한다, 주체는 무의식적 메커니즘에 의해 지배된다, 등등……”을 입증했다고 간주되고 있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저는 데리다적인 해체의 영역과 라캉적인 정신분석의 영역이 총체적으로 양립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이에 대해 점점 더 커다란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두 사람이 “총체적으로 양립 불가능하다”는 것은 둘 중 누구 하나가 더 옳다는 게 아니라 그 둘 사이의 직접적 대화는 전혀 불가능하다는 의미에서입니다.”(‘철학과 정신분석의 만남’, <철학과현실>, 2003년 가을호)

 
   

 

요컨대 지젝이 보기에 데리다와 라캉의 대화 혹은 만남은 불가능하다. 이 불가능은 위상학적 불가능이다. 하이데거 철학 전공자로서 젊은 시절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의 일부를 슬로베니아어로 옮기기도 했지만 지젝의 입장은 데리다와는 비판적인 거리를 두며 말 그대로 ‘라캉주의’ 계보에 속한다. 그것도 조금 더 좁혀 말하면 ‘라캉주의 좌파’에 해당한다.

라캉주의 좌파란 무엇인가? 잠시 에둘러 가본다. 이름만 놓고 보자면, 프로이트 좌파가 그런 것처럼 라캉과 마르크스의 이론적 접합을 떠올릴 수 있다. 이것은 물론 혁명적 정치에 회의적이었던 프로이트나 라캉의 이론을 고스란히 계승한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새롭게 전유한 입장에 가깝다. 프로이트와 라캉 정신분석학의 잠재적 전복성을 헤겔-마르크스적 사유를 통해 선구적으로 전유한 것은 지젝과 슬로베니아라캉학파였다. 영어권 데뷔작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1989)에서 지젝이 목표한 것은 이데올로기 이론에 기여하고 싶다는 바람 외에 라캉 정신분석의 기본 개념에 대한 개설을 제공하는 것과 ‘헤겔로의 회귀’였다. 중요한 것은 이 세 가지가 서로 연계돼 있다는 점이다. 그는 ‘헤겔을 구출하기’ 위한 유일한 방안이 라캉을 경유하는 것이라고 믿으며, 이러한 라캉적 독법과 헤겔의 유산이 이데올로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렇게 하여 지젝은 라캉주의 좌파의 핵심 인물이 된다.

하지만 ‘라캉주의 좌파’란 말을 만들어낸 스타브라카키스에 따르면, 급진민주주의의 이론가 라클라우와 무페 또한 라캉 정신분석학을 중요한 이론적 모태로 삼고 있으면서 지젝과는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주변에 카스토리아디스와 버틀러 같은 인물들도 포진시킬 수 있다. 라캉주의 좌파는 지젝을 핵심으로 하여 일종의 이론적 동심원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치적 입장은 조금 달라서 라클라우와 무페가 ‘개혁가(reformist)’ 타입이라면 지젝은 ‘혁명가(revolutionary)’ 타입이다.

문제는 지젝 자신의 이론적․정치적 입장이 변화해왔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모든 가능한 체제들 중에서 최악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것도 그보다 낫진 않다는 것이다”라는 처칠의 주장을 반복하던 초기의 입장을 그는 철회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젝과 정치(Zizek and Politics)>(2010)의 저자들은 아예 급진민주주자로서의 지젝(지젝1)과 전위적 혁명가로서의 지젝(지젝2)을 구분하기도 한다. 정리하자면 라캉주의 좌파의 이론적 지형은 ‘라클라우-무페와 지젝1’ 대 ‘지젝2’의 대립 구도라고 말할 수 있다. 라캉주의 좌파 내의 ‘온건파’와 ‘강경파’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겠다. 물론 이것은 공시적인 구도이며, 발생론적 차원에서 보자면 ‘지젝1→지젝2’의 순차성을 갖는다. 그렇다면 라캉주의 좌파의 최초의 입장은 무엇이었나?   

 

 

지젝이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의 서두에서 동구권 변혁기의 ‘가장 숭고한 이미지’로 제시하고, <라캉과 정치>의 결론에서 스타브라카키스가 다시금 환기시켜주는 것은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정권을 무너뜨린 반란자들의 깃발 사진이다. 공산주의의 상징인 붉은 별이 잘려나가고 국기 중앙에 단지 구멍만 뚫려 있을 뿐인 국기다. 이 국기의 이미지는 이전의 주인 기표가 헤게모니를 상실했으나 아직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지 않은 중간적 국면의 ‘열린’ 특성에 대한 현저한 표지다. 지젝은 이 이미지를 실재라는 구멍을 둘러싸려는, 정치적 재현의 공간 안에서 정치적인 것을 보여주려는 정치적 시도의 가장 놀라우면서도 숭고한 표현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만약 오늘날 비판적인 지식인의 책무가 있다면, 그것은 특히 새로운 질서가 안정화되고 이 새로운 질서가 대타자 안의 결핍을 비가시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시도할 때 이 구멍의 자리를 점유하는 것이다.”

스타브라카키스의 부연 설명을 보태자면, “정치적인 실천이 관련되는 한, 우리의 윤리적인 책무는 단지 정치 현실 안에서 이러한 결핍의 제도화를 시도하는 것뿐이다. 이러한 책무는 진실로 그리고 급진적으로 민주주의적인 책무다”이다. 그 책무의 핵심은 모든 정치 제도와 정치 세력의 한계를 가시화하고, 모든 유토피아적 상징화와 그러한 상징화가 차지하려는 실재(구멍) 사이의 거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이 ‘급진적 민주주의’론의 요체다. 간단히 말하면 이 ‘구멍’을 끝까지 권력의 공백으로 보존하는 것이다. 동구권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성장한 지젝 또한 일단은 이러한 입장에서 출발한다. 슬로베니아라캉학파의 일원으로 지젝을 영어권에 처음 소개하면서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조차도 “포스트마르크시즘적 시대에 사회민주주의적 정치 프로젝트를 구축하는 문제”에 대해 ‘이론적’으로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필독서가 되리라고 지젝의 데뷔작이 갖는 의의를 한정했었다. 하지만 지젝은 이듬해 슬로베니아 대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이후에 더 본격적으로, 그리고 전방위로 열정적인 ‘이론 투쟁’을 개시한다. 그 투쟁은 간단히 도식화하면 ‘민주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순수정치에서 정치경제학으로’라는 이행의 궤적을 그린다. 이러한 이행의 중요한 계기는 레닌주의에 대한 그의 새로운 사유가 아닐까 싶은데, 이 경우 레닌은 “마르크스는 괜찮아, 하지만 레닌은 뭐야?”라고 할 때의 레닌이다.

<지젝이 만난 레닌>(교양인, 2008)에서 지젝은 한마디로 ‘레닌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고 다시 따져 묻는다. 그의 기본 문제의식은 무엇이었나? “우리가 양보할 수도 없고 양보해서도 안 되는 ‘레닌주의적’ 입장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오늘날 실질적인 사상의 자유는 현재 지배적인 지위에 있는 자유민주주의적이고 ‘탈이데올로기적인’ 합의에 의문을 제기할 자유를 의미하며, 그것이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다원적 경합을 허용하며 그것에 의해서 유지되는 체제지만, 지젝이 말하는 레닌주의적 제스처는 어떤 근본주의적 태도를 가리킨다. 오늘날 재발명되어야 할 레닌의 유산은 ‘진리의 정치’라고 그는 주장하며, 근본적 좌파의 목표는 ‘원칙 없는 관용적 다원주의’와는 정반대라고 선을 긋는다. 이러한 입장은 ‘좌익 소아병’에 대한 레닌의 비판을 상기시키는데, 그가 보기에 정치적 극단주의 혹은 과잉 근본주의는 항상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전치 현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국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투쟁하거나 국가로부터 거리를 두는 저항을 위해 후퇴한다”라는 식의 양자택일은 거짓된 것이라는 인식이다. 지젝이 보기에 양자는 동일한 가정을 공유한다. 즉 국가 형태는 거기에 그대로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장악하거나 그로부터 거리를 취하는 것뿐이라는 가정이다. 하지만 지젝은 <국가의 혁명>에서 레닌이 주장한 교훈을 상기시켜준다. 혁명적 폭력의 목표는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있지 않고 국가 권력을 변형시키고 그 기능 방식과 토대와의 관계 등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있다는 교훈이다. 그가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핵심이 거기에 있다. 지젝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민주주의의 철폐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사용하는 방식이다”라고 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을 인용하면서,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핵심은 민주주의라는 텅 빈 형식적․절차적 틀 자체에 ‘계급적 편향’이 기입되어 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급진적 민주주의에서 변화된 지젝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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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계 사막>의 2장은 ‘재도용: 물라 오마르의 강의’란 제목이 붙어 있다. 9·11 공격 이후에 벌어진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관한 분석이 주된 내용인데, 물라 오마르는 탈레반 지도자이다. ‘강의’는 ‘lesson’의 번역으로, ‘교훈’이란 뜻으로 읽는 게 더 낫지 않나 싶다. 알다시피 미국의 대테러 군사작전의 암호명은 ‘무한한 정의(Infinite Justice)’였다. 오직 신만이 무한한 정의를 행사할 수 있다는 이슬람 성직자들의 비난으로 나중에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지젝은 이 작전명이 더없이 아이러니컬하다고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인가?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무한한 정의’란 말은 중의적이다. 즉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한편으로 그것은 미국인들이 모든 테러분자들뿐 아니라 그들에게 물질적·정신적·사상적 등등의 지원을 해줬던 모든 사람들까지도 무자비하게 죽일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111쪽) 그런데 이것은 헤겔적 의미의 ‘악무한(bad infinity)’이다. 완수될 수 없고 종결될 수 없는 작전이기에 그렇다. 실제로 2002년 4월에 당시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는 테러와의 전쟁이 결코 끝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최소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는 말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정의의 행사는 또 다른 의미에서 무한한 과정이다. 지젝이 인용하는 것은 2001년 9월 데리다가 아도르노상을 수상하면서 한 연설이다. 데리다는 이렇게 말했다.  

 

“9월 11일의 희생자들한테 드렸던 저의 무조건적인 동정으로는 이렇게 외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범죄에 관하여 저는 어는 누구도 정치적으로 무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을 이 사건에 연루시키고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상황(그림) 속에 포함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유일하면서 진정한 ‘무한한 정의’이기에 그렇다. 같은 시기에 탈레반 지도자 물라 오마르는 미국민을 향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네들은 당신네 정부의 말을 진실이든 허위든 받아들입니다. (……) 당신네들 스스로 생각할 수는 없습니까? (……) 당신네들 자신의 의미와 이해를 이용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 충고는 “It would be better for you to use one's own sense and understanding”을 옮긴 것인데, ‘sense and understanding’은 ‘의미와 이해’보다는 ‘분별력과 지성’ 정도로 이해하는 게 낫겠다. 지젝이 보기에 오마르의 말은 아프가니스탄인들 자신에게도 되돌려줘야 할 ‘냉소적 속임수’에 불과하지만, 그러한 문맥에서 떼어낸다면 매우 적절하지 않느냐는 쪽이다. 그런 오마르의 충고가 곧 오마르의 교훈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사고하라는 정신분석적 교훈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2003년 말 당시 미국의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는 영국의 한 시민단체인 PEC(바른 영어쓰기 캠페인)로부터 ‘올해의 횡설수설상(Foot in Mouth)’을 받았다. 수상의 빌미가 되었던 2003년 3월의 한 연설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There are known knowns. These are things we know that we know. We also know there are known unknowns. That is to say, there are things that we know that we don't know. But there are also unknown unknowns. There are things we don't know we don't know.”

 
   

 

‘횡설수설상’을 받을 만한 명연설(?)인데, 이 대목은 지젝도 자주 인용하곤 한다. 지젝의 분석에 따르면, 럼스펠드는 여기서 일종의 지식의 유형학을 제시하고 있다. 즉 우리에겐 (ⅰ) known knowns(이미 알고 있는 걸 아는 것), (ⅱ) known unknowns(아직 모르고 있는 걸 아는 것), (ⅲ) unknown unknowns(아직 모르고 있는 걸 모르는 것)이라는 3가지 종류의 지식이다. 그런데 이 분류에서 논리적으로 가능하지만, 최강국의 국방장관이 (무)의식적으로 억압․배제하고 있는 마지막 한 종류의 앎이 있다. 바로 (ⅳ) unknown knowns(이미 알고 있는 걸 모르는 것)이다.

지젝은 이 네 번째 앎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지식(knowledge which doesn't know itself)”으로서 프로이트적인 무의식이라고 말한다. 즉 그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부인된 믿음과 가정들이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부시 행정부와 미국민들에게 간과된 이 ‘타자적 앎’으로서의 ‘무의식’은 최강국의 이성, 혹은 초자아가 놓치고 있는 어떤 앎이자, 실재의 중핵이다. 그리고 <실재계 사막>은 이러한 중핵을 건드리고자 하는 책이다. 미리 앞당겨 얘기하자면, 지젝은 이데올로기의 허위적인 종언 이후의 ‘그저 그런 삶(mere life)’을 ‘진정한 삶(real life)’과 대비시킨다. ‘그저 그런 삶’은 자신의 삶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하는 삶이며, 자신의 기득권이 아무 탈 없이 그대로 자자손손 보존되기를 매주 기도하는 삶이다. 그것의 정치적 버전이 자유민주주의다. 지젝이 보기에 자유민주주의의 최대 관심사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며,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곧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마하는 일이다. 그래서 아예 “자유민주주의는 무-사건의 당이다(Liberal democracy is the party of non-Event)”.

미국의 대테러 전쟁도 마찬가지다. 이미 20년간의 전쟁을 통해서 폐허가 된 아프간의 황무지를 다시금 최강국의 전투기들이 동원되어 폭격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던가? 애초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고 파괴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 아프간을 국가적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공격 목표로 설정하는 데 고려됐음직하다. 지젝은 자신의 잃어버린 열쇠를 가로등 밑에서 찾고 있는 한 광인의 일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알다시피 그 사내는 어두운 골목에서 열쇠를 잃어버렸지만, 환한 불빛 아래서 찾는 것이 더 쉽다는 생각에 가로등 아래를 두리번거렸다. “미국의 폭력 이전에도 카불 시내 전체가 이미 9월 11일 이후의 맨해튼 중심가와 비슷하게 보였다는 것은 결정적인 아이러니가 아닐까?”라고 지젝은 덧붙인다. 결국 테러와의 전쟁의 요점은 무엇인가?  

 

   
 

따라서 ‘테러와의 전쟁’은 그 진정한 목표가 우리를 속여서 실제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잘못된 확신을 갖게 하려는 하나의 행위로 기능하고 있다.

 
   

 

즉 9·11이라는 외상적 사건 혹은 충격 이후에도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주입하기 위한 ‘행동화’가 테러와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행동화에서 간과되는 것은 9·11이 갖는 진정한 충격이다. 이 충격은 오늘날 디지털화된 제1세계와 제3세계라는 ‘실재계의 사막’을 갈라놓는 경계를 배경으로 삼을 때만 설명될 수 있다. 그것이 지젝의 전제다. 우리가 뭔가 인위적으로 단절된 세계에 살고 있다는 인식은 어떤 불길한 행위자가 우리를 항상 위협하고 있다는 관념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편집증적 전망에서 테러와 테러리스트들은 ‘추상화’된다. 즉 구체적인 사회적-이데올로기적 네트워크에서 분리된다. 그리고 사회 환경을 환기시키는 모든 설명은 은밀하게 테러를 정당화하려는 것으로 기각된다. 그러는 가운데 등장하는 것이 자유주의적 관용의 태도다.  

 

   
 

9월 11일 이후 며칠 동안 매체들은 코란의 영어번역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이슬람 문화와 아랍문화에 관한 책들이 즉각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보도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이슬람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싶어했으며, 이슬람을 이해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반아랍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 이슬람에게 기회를 주려고 열망했던 사람들이라고 추측해도 무방한 일이다.(<실재계 사막>, 76쪽)

 
   

 

얼핏 긍정적인 변화로도 간주될 수 있는 이러한 태도․추세의 함정은 무엇인가. 문제는 그러한 태도가 여전히 이데올로기적 신비화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9·11 공격을 낳은 정치적 정세와 역학을 포착하는 데 실패한다. 지젝의 이어지는 설명은 이러한 실패를 교정하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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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계 사막>의 2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사랑의 폭력’ 혹은 ‘폭력적 사랑’에 관한 한 문단을 읽는다. 지젝의 <죽은 신을 위하여>(길, 2007)의 한 대목 읽기이며, 일종의 추석맞이 ‘선물’이다.  

 

사랑이 폭력이라는 말이 발칸의 저속한 속담―“나를 때리지 않는 남자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다”―과 관련되는 것(만)은 아니다. 폭력은 이미 자체로 사랑의 선택인데, 그것은 폭력이 사랑의 대상을 맥락에서 떼어내어 대상(Thing)의 자리에 올려놓기 때문이다.(57쪽)

 

 

인용된 발칸의 속담은 영어로 “If he doesn't beat me, he doesn't love me!”이다. 요즘 공개적으로 이런 말을 했다가는 공인의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울 테니 너무 진지하게 경청하진 마시길(속담은 속담일 뿐 오해하지 말자!). 이와 관련하여 얼른 떠오르는 영화는 발칸의 영화가 아니라 스페인 영화다. 페도르 알모도바르의 도발적인 영화 <욕망의 낮과 밤>(1990)이 그것인데, 이 영화의 원제목이 ‘Átame!’이고 영어 제목은 <나를 묶어줘! 나를 풀어줘!(Tie Me Up! Tie Me Down!)>이다. 그리고 물론 한국 영화로는 장선우의 <거짓말>(1999)을 떠올려볼 수도 있겠다(한국 영화로서는 ‘사랑의 폭력’ 혹은 ‘폭력적 사랑’을 다룬 드문 영화이지 않을까?).  

  

 

“폭력은 이미 자체로 사랑의 선택”이란 말은 무슨 뜻인가? 원문은 이렇다. “violence is already the love choice as such, which tears its object out of its context, elevating it to the Thing.” 곧 “사랑은 이러이러한 의미에서가 아니라 저러저러한 의미에서 폭력”이라는 구문이다. 우리말 번역은 이 대목을 “폭력은 이미 자체로 사랑의 선택인데, 그것은 폭력이 사랑의 대상을 맥락에서 떼어내어 대상(Thing)의 자리에 올려놓기 때문이다”라고 옮긴 것인데, 관계사 which의 선행사는 ‘폭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봐야겠다. 그리고 문장은 뒤집어서 이해하는 게 더 용이하다. ‘폭력은 이미 자체로 사랑의 선택’이 아니라 ‘사랑의 선택 자체가 이미 폭력’이라고 읽는 게 더 좋겠다는 말이다. 결국에 ‘사랑=폭력’이라는 것이니까 대차는 없는 것이지만 초점은 달라진다. ‘폭력이 곧 사랑’이라기보다는 ‘사랑이 곧 폭력’이라는 게 여기서는 초점이니까.

전체를 다시 옮기면 “사랑의 선택은 그 자체로 이미 폭력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그 대상을 원래의 맥락에서 떼어내어 ‘숭고한 대상’으로까지 고양시키기 때문이다.” 다른 자리에서 ‘사물/괴물’이라고 옮긴 ‘Thing’을 그냥 ‘대상’이라고 하면 의미 전달이 잘 안 되기에 여기서는 ‘숭고한 대상’이라고 옮겼다. 여하튼 이것이 ‘사랑의 폭력’, ‘사랑이라는 폭력’이 뜻하는 바이다. 가령 2007년의 추석맞이 영화로 개봉됐던 곽경택 감독의 영화 <사랑>의 주인공 주진모(채인호)의 경우를 보자. 한겨레 신윤동욱 기자의 리뷰를 잠시 따라가 보면 영화는 이런 구도다.   

 

   
 

태초에 한 남자가 있었다. 소년 채인호(주진모)는 첫눈에 소녀 정미주(박시연)에게 반한다. 그리고 끝까지 이야기는 통속성의 공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소녀는 예쁘고 소녀의 집은 부자다. 산동네 소년은 괜스레 소녀를 괴롭히는 또 다른 소년과 싸운다. 소녀는 소년을 생일에 초대하지만, 하필이면 소녀의 집은 그날 망한다. 그리고 첫 번째 이별. 고등학생 인호는 또 싸운다. 하필이면 싸우다가 인호를 병으로 찌르는 본드쟁이 복학생은 미주의 오빠다. 그렇게 남자는 인호와 미주의 끊어진 인연을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우연의 우연, ‘지나친’ 정공법이요 통속성의 기본이다. 미주의 본드쟁이 오빠는 노름쟁이 엄마를 껴안고 불살라버린다. 그리고 남겨진 자들의 사랑의 맹세. “니가 내 지키도. 나도 니 지키주께.” 인호와 미주는 서로에게 사랑을 맹세한다. 

 
   

 

 

여기서 순수한 사랑, 곧 순수한 폭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모든 맥락(학교와 가족사)에서 박시연(정미주)을 떼어내어 대문자 사물(Thing), 곧 ‘숭고한 대상’(이건 ‘괴물’이기도 하다)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시연을 바라보는 진모의 시선은 건달세 계에서 진모가 휘두르는 주먹보다 앞서는 근원적인 ‘폭력’이다. 영화 <사랑>은 그 맹목적인 사랑의 끝을 향해서 단순무식하게 돌진해나가는 ‘순정 영화’다.

다시 지젝으로 돌아오면 이어지는 내용은 이렇다. “몬테네그로의 민담에서 악의 근원은 아름다운 여성이다. 아름다운 여성은 주위의 남자들이 균형을 잃게 만들고, 우주에 그야말로 불안정을 초래하며, 모든 것에 편파성의 색조를 입힌다.”

여기서도 떠오르는 영화는 몬테네그로 영화가 아니라 이탈리아 영화 <말레나>(2000)이다. ‘세기의 미녀’라는 모니카 벨루치 주연의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 말레나는 마을에서 모든 남성의 시선 끌어 모으는, 그럼으로써 “주위의 남자들이 균형을 잃게 만들고, 우주에 그야말로 불안정을 초래하는” 여인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2차 대전이 한창인, 햇빛 찬란한 지중해의 작은 마을. 이 마을의 매혹적인 여인 말레나가 걸어갈 때면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그녀를 훑어 내리고 여자들은 시기하여 쑥덕거리기 시작한다. 레나토는 그녀를 연모하는 열세 살의 순수한 소년이다. 남편의 전사소식과 함께 말레나는 욕망과 질투, 분노의 대상이 된다. 남자들은 아내를 두려워해 그녀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고, 여자들은 질투에 눈이 멀어 그녀를 모함한다. 결국 사람들은 독일군에게까지 웃음을 팔아야 했던 말레나를 단죄하고 그녀는 늦은 밤에 쫓기듯 어딘가로 떠나게 된다. 레나토만이 진실을 간직한 채 마지막 모습을 애처롭게 지켜볼 뿐이다. 그리고 1년 후, 전쟁의 상처가 아물어 갈 때쯤 말레나가 다시 마을에 나타난다. 그녀의 곁엔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이 불구가 되어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도 근원적인 폭력은 말레나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폭력 이전에 말레나를 무자비하게 탈맥락화함으로써 ‘숭고한 대상’의 지위로까지 고양시키는, 소년-레나토의 순수한 연모의 시선에 자리한다. 이러한 폭력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이러한 테마는 1920년대 이래로 소비에트 교수법의 변치 않는 요소 중 하나였다. 섹슈얼리티는 본래부터 병리적인(patho-logical) 것으로서, 냉정하고 균형 잡힌 논리를 특수한 파토스로 오염시킨다, 성적 자극은 부르주아의 부패와 연결된 귀찮은 방해꾼이다, 라고 소비에트는 인민들을 교육했다.(57쪽)

 

다시 말해서 소비에트 사회는 섹슈얼리티에 가장 적대적인, 그래서 가장 금욕적이며 무성적인 사회였다(라이히나 마르쿠제의 기대와는 달리 사회주의 유토피아가 성애적/향락적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관대한 성 관념은 과연 진보적인가?). “실제로 1920년대에 소련에서는 성적 자극이 병리적 상태임을 심리-생리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한 수많은 ‘유물론적’ 연구가 진행되었다. 사실 섹슈얼리티에 대한 위생지상주의적 관용에 비하면, 반페미니즘 성향의 소비에트의 연구 성과가 진리에 훨씬 가까운 것이다”라는 게 지젝의 평가다.

인용문에서 ‘성적 자극’은 ‘sexual arousal’의 번역인데, ‘성적 흥분’이 더 적합할 듯하다. ‘병리적 상태’에 해당하는 것은 ‘성적 자극’이라기보다는 ‘성적 흥분’이어야 하겠기 때문이다. 그걸 입증하기 위해 많은 소비에트 연구자들이 유물론적 연구를 시도했다는 것이고, 이러한 사실이 “위생적이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라는 식의 성에 대한 관용적 태도보다 소비에트 사회의 진실에 더 가깝다는 얘기다. 자유로운 성, 프리섹스는 공산주의가 아닌 자본주의의 구호다. 이런 결론이 어떻게 ‘선물’에 해당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즐거운 추석 연휴가 되시길. 우리는 한 주 건너뛰고 다시 ‘실재계 사막’으로 돌아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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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랑의 폭력 혹은 폭력적 사랑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9-16 23:35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12회를 발췌해놓는다. <실재계 사막> 2장으로 바로 들어가기가 애매해서 아침에 지방에 내려가기 전에 부랴부랴 예전에 쓴 글을 보완했다. 애초엔 '팜므파탈' 얘기를 좀 다루려고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가 않았다. 연휴에 여유를 좀 얻었으면 하고 바라는 수밖에...  <실재계 사막>의 2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사랑의 폭력’ 혹은 ‘폭력적 사랑’에 관한 한 문단을 읽는다. 지젝의 <죽은 신을
 
 
또왔어요 2010-09-22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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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츄판다님의 재반론 성격의 글이 올라왔어요
읽어보세요
 


 

현실을 허구로 오인하지 말라”라는 주장과 함께 지난 회에 다룬 건 신체 자해자들이나 <피아니스트>의 여주인공의 ‘실재에 대한 열정’이 피하고자 한 것이 비현실성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실재 자체라는 지젝의 지적이었다. 그렇다면 이 ‘실재의 열망’, ‘실재에 대한 열정’은 거부되어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런 입장을 취하게 되면 마지막까지 가기를 거부하는 태도, “외양들(appearances)을 보존하자”는 태도밖에 남지 않기 때문이다. 20세기의 ‘실재의 열망’이 던졌던 문제는 그것이 실재에 대한 열망이 아니라 단지 가짜의 열망이었다는 데 있고, 이 가짜의 열망이 외양들 배후에서 무지막지하게 실재를 찾으려고 노력했다면, 그런 노력은 실재와 마주치기를 회피하려는 궁극적 전략이었다는 데 있다.(<탈이데올로기>, 23쪽; <실재계 사막>, 61쪽)   

 

 

 

어떻게? 이번에는 프란시스 코폴라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1979, 감독판 2000)을 예로 들어보자. 지젝을 즐겨 읽은 독자라면 친숙한 예이기도 할 텐데, 영화 속에서 말론 브란도가 연기한 주인공 커츠(쿠르츠) 대령은 “프로이트적 의미의 ‘원초적 아버지’에 해당하고, 어떠한 상징적 법에도 종속되지 않은 외설적 향락의 아버지, 소름끼치는 향락의 실재와 직접 대면하려고 나서는 절대적 주인을 대신한다.”(<탈이데올로기>, 27쪽; <실재계 사막>, 65쪽) 중요한 것은 그가 야만적인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서구 권력 자체의 필연적인 결과물로 제시된다는 점이다. 커츠는 완벽한 군인이었지만 군 권력 체계와 자신을 과도하게 동일시했고 결국은 체계가 제거해야 할 과잉이 되었다. “이 영화의 궁극적 지평은 권력이 그 자신의 고유한 과도 잉여를 낳고, 자신이 싸우고 있는 상대를 모방해야 하는 작전을 통해 이 잉여를 없애야만 하는 과정에 대한 통찰이다.” 즉 여기서 문제는 체계로부터의 병리적 일탈이 아니라 체계 자체가 필연적으로 생산해내는 과잉이다. 윌라드는 커츠를 제거하는 비밀 작전에 투입되는데, 그의 임무는 공식 기록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작전을 지시하는 장군의 말대로 “그것은 결코 없던 일이다.”

9·11 이후 공식 매체에 의해 ‘근본악의 화신’으로 그려지고 있는 빈 라덴이나 탈레반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그러한 묘사에 가려진 것은 이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지원 아래 소련과 맞서 싸운 게릴라부대의 일원이었다는 이면적 진실이다. 또 파나마의 노리에가 역시 전직 CIA 요원이었다. 이런 경우들에서 공통적인 것은 미국의 싸움이 그 자체의 과잉과의 싸움이라는 점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지젝은 파시즘과의 전쟁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덧붙인다. 자유주의 서방 국가들이 공산주의 국가(소련)와 힘을 합쳐서 그 자체의 과잉(파시즘)을 파괴해야 했던 것이 2차 세계대전이었다. 미․영과 소련 사이의 반파시즘 동맹을 모델로 삼자면, <지옥의 묵시록>의 보다 전복적인 버전은 윌라드가 베트콩에게 커츠를 제거해주도록 부탁하는 게 되었을 거라고 지젝은 말한다. 교훈은 무엇인가.  

 

   
 

<지옥의 묵시록>의 지평선 너머에 있는 것은 그 계통의 악순환을 일으키는 집단적인 정치 활동의 전망이 되는데, 그 계통은 그의 초자아 과잉을 만들어내고, 그 다음엔 그것을 완전 제거하도록 강요된다. 더 이상 초자아의 외설성에 의지하지 않는 혁명적인 폭력이다. 이런 ‘불가능한’ 행동은 진정한 모든 혁명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이다.(<실재계 사막>, 66쪽)

 
   

 

이 대목은 다소 부정확하게 번역됐는데, 첫 문장은 “What remains outside the horizon of Apocalypse Now is the perspective of a collective political act breaking out of this vicious cycle of the System which generates its superego excess and is then compelled to annihilate it”을 옮긴 것이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지평 바깥에 있는 것, 그러니까 거기에 빠져 있는 것은 정치적 집단행동이란 전망인데, 이 정치적 행위란 체계의 악순환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벗어나는’ 것이다. 체계의 악순환이란 이미 예시된 대로 체계가 그 자체의 과잉으로서 커츠와 같은 ‘초자아적 과잉’을 만들어내고 또 그것을 제거해야만 하는 악순환을 가리킨다. 혁명적 폭력은 더 이상 그러한 초자아적 외설성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렇게 ‘불가능한’ 행위, ‘불가능해 보이는’ 행위가 모든 진정한 혁명적 과정의 표지가 된다.

그러한 행위를 회피한다면 ‘실재에 대한 열정’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다. 그리고 그 핵심은 권력의 더럽고 외설적인 이면과의 동일시이다. 그 동일시는 영웅적 수임이라는 제스처를 취하는데, 그것은 “누군가 그 더러운 일을 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놔두자!”(<실재계 사막>, 70쪽)가 아니라 “누군가 그 더러운 일을 해야만 한다면, 그래 하자!”(Somebody has to do the dirty work, so let's do it!)라는 태도다. 이것은 “그래 내가 책임진다!”라고 말한다는 점에서,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는 ‘아름다운 영혼’적 태도의 뒤집힌 거울상이다(“우리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보아요”라는 말에서 나는 가끔 ‘아름다운 영혼’을 느낀다). 우리가 우파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세가 또한 그러한 ‘영웅적’ 태도에 대한 찬양이다. 국가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것은 차라리 쉽다.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국가를 위해 범죄까지 저지르는 것이다, 라는 논리가 그러한 찬양에는 깔려 있다.

지젝이 실제로 거론하고 있진 않지만 그가 사례 목록에는 1980년대 이란 콘트라 사건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레이건 행정부가 이란에 비밀리에 무기를 판 돈으로 니카라과 우익반군 콘트라를 지원한 스캔들이다. 이 사건에 대한 의회 청문회에서 작전의 ‘악역’을 맡았던 올리버 노스 중령이 당당하게 국가를 위한 자신의 애국심과 신념을 밝혀서 ‘영웅’으로 부상하기도 했었다.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지만 그것은 국가를 위한 것이었다는 변호였다. 레이건에서 노스가 있었다면, 히틀러에겐 히믈러가 있었다. 이건 지젝이 직접 들고 있는 사례인데, 히믈러는 1943년 10월 4일 포젠에서 SS 지휘자들에 대한 연설을 통해 유대인 대량학살이 “우리 역사의 영광스러운 한 페이지이자 결코 씌어진 적도 결코 씌어질 수도 없는 한 페이지”라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여자와 어린아이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는 물음과 직면하게 됩니다. 나는 여기서도 전적으로 명쾌한 해결책을 찾기로 했습니다. 나는 남자들을 절멸시키는 것이 스스로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즉 그들을 죽이거나 죽이도록 한 일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아이들이 자라나서 나중에 우리의 아이와 손자들에게 복수하도록 내버려두는 것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이 민족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도록 하는 어려운 결단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바로 다음날 SS 지휘자들은 히틀러가 소집한 회의에 참석해야 했는데, 히틀러는 전황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최종 해결책’을 공개적으로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히믈러가 ‘총대’를 맨 터라 그들 간에 공유된 음모를 넌지시 암시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독일 국민 전체는 이것이 사활이 달린 문제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후방의 다리는 파괴되었다. 오직 전진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지젝은 실재에 대한 ‘반동적인’ 열정과 ‘진보적인’ 열정을 이론적으로는 대립시킬 수 있으리라고 본다. ‘반동적’ 열정이 법의 외설적 이면에 대한 보증․배서라면, ‘진보적’ 열정은 (‘정화에 대한 열정’에 의해 부인된) 적대라는 실재와의 대면이다. 좌파와 우파 모두에서 실재(계)는 적대를 도입하는 과잉적 요소를 파괴함으로써 접촉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여기서 지젝은 실재를 우리가 직접 대면할 수 없는 ‘끔찍한 괴물(terrifying Thing)’로 보는 표준적인 비유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궁극적인 실재는 상상적인 베일이나 상징적인 베일에 감춰진 어떤 것이 아니다. 기만적인 외관 밑에 우리가 직접 쳐다보기엔 너무나 두려운 ‘궁극적 실재라는 괴물(ultimate Real Thing)’이 존재한다는 생각 자체가 궁극적인 외관(ultimate appearance)이다. 이 실재라는 괴물은 그 존재를 통해서, 혹은 존재한다는 가정을 통해서 우리의 상징적 세계의 일관성을 보장해주는 한편, 그 구성적 비일관성(적대)과의 대면은 회피하게 해주는 환영적 유령(허깨비)일 뿐이다.

나치의 이데올로기를 예로 들자면, “그의 실재계로서의 유대인은 사회적 적대감을 감추기 위해 불러낸 허깨비이다. 다시 말해 유대인이란 인물 덕분에 우리는 사회적 전체를 유기적 통일체로 인식할 수 있다”(<실재계 사막>, 73쪽). 여기서 ‘인물(figure)’은 ‘형상’이라고 이해하는 게 낫겠다. 사회적 적대를 유대인 형상에 투사함으로써, 즉 덮어씌움으로써 유대인을 배제한 사회적 전체의 통일성이 보증된다는 얘기다. 이것은 ‘여성-괴물(Woman-Thing)’, 괴물 같은 여성 형상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기능을 갖는다. 남성이 붙잡을 수 없는 이런 형상은 성관계의 구성적 교착 상태, 즉 구조적 불가능성과의 대면을 회피하도록 해주는 궁극적 환영(허깨비)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위 ‘팜므파탈(femme fatal)’은 남성적 곤경의 투사로 다시 이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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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실재에 대한 반동적 열정과 진보적 열정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9-14 14:09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11회를 발췌해놓는다. 원고가 밀려 있어서 오늘 아침까지 헉헉대며 쓴 것이다. 내주엔 한 주 쉴 예정이어서 그나마 숨통이 좀 트일 것 같다. 아니, 트이기를 바래본다.   “현실을 허구로 오인하지 말라”라는 주장과 함께 지난 회에 다룬 건 신체 자해자들이나 <피아니스트>의 여주인공의 ‘실재에 대한 열정’이 피하고자 한 것이 비현실성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실재 자체라는 지젝의 지적이었다. 그렇다면, 이 ‘실
 
 
nana35 2010-12-22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를 거듭할수록 줄어드는 조회수가 흥미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