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9주년을 맞은 지난 11일 미국 뉴욕의 테러 현장에서는 그라운드 제로 인근에 들어설 이슬람 사원을 둘러싼 찬반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졌다고 한다. 9·11 직후에 코란과 이슬람 관련서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과는 약간 대조된다. 자유주의적 관용의 태도도 그만큼 줄어든 것인가. 종교 간 갈등이 가열되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하나의 국가이자 하나의 국민”이라며 단합을 촉구하고, 9·11 테러가 이슬람이 아닌 테러 집단의 소행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젝은 그런 ‘생색내기’적 태도가 종교적 불관용보다 더 나은 태도라고도 보지 않는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9·11 이후 서방 매체에서는 ‘아이러니 시대의 종말’이란 말이 자주 등장했다고 한다. 포스트모던적 해체의 언어유희 시대는 끝났으며, 우리에게는 확고하고 명확한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우파 논객인 조지 윌은 미국의 ‘역사로부터의 휴가’가 끝났다고도 선언했다. 어떤 변화를 가져온 것인가?  

 

   
 

“자유주의의 관대한 태도라는 고립된 망루를 깨부수는 현실의 충돌과 문화 연구는 원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the impact of reality shattering the isolated tower of the liberal tolerant attitude and the Cultural Studies focus on textuality.)

 
   

 

원문을 병기한 것은 잘못 번역됐기 때문인데, 현실의 충격이 자유주의적 관용의 태도와 텍스트성 중심의 문화 연구라는 고립된 탑을 무너뜨렸다는 것으로 읽힌다. 텍스트주의 혹은 텍스트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은 ‘포스트모던적 해체의 언어유희(postmodern deconstructive sliding of sense)’라는 표현에 이미 실려 있는데, 지젝이 주로 겨냥하는 것은 데리다의 해체론, 혹은 그 아류이다. 흔히 영어권에서는 데리다와 라캉 모두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의 ‘원흉’으로 자주 지목되는데, 지젝은 둘의 입장을 분명하게 구별한다. 방한 시에 가진 한 대담에서 지젝은 이렇게 말했다.  

 

   
 

“적어도 앵글로 색슨적 관점에서 라캉은 “의미가 해체되어야 한다, 주체는 무의식적 메커니즘에 의해 지배된다, 등등……”을 입증했다고 간주되고 있는데,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저는 데리다적인 해체의 영역과 라캉적인 정신분석의 영역이 총체적으로 양립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이에 대해 점점 더 커다란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두 사람이 “총체적으로 양립 불가능하다”는 것은 둘 중 누구 하나가 더 옳다는 게 아니라 그 둘 사이의 직접적 대화는 전혀 불가능하다는 의미에서입니다.”(‘철학과 정신분석의 만남’, <철학과현실>, 2003년 가을호)

 
   

 

요컨대 지젝이 보기에 데리다와 라캉의 대화 혹은 만남은 불가능하다. 이 불가능은 위상학적 불가능이다. 하이데거 철학 전공자로서 젊은 시절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의 일부를 슬로베니아어로 옮기기도 했지만 지젝의 입장은 데리다와는 비판적인 거리를 두며 말 그대로 ‘라캉주의’ 계보에 속한다. 그것도 조금 더 좁혀 말하면 ‘라캉주의 좌파’에 해당한다.

라캉주의 좌파란 무엇인가? 잠시 에둘러 가본다. 이름만 놓고 보자면, 프로이트 좌파가 그런 것처럼 라캉과 마르크스의 이론적 접합을 떠올릴 수 있다. 이것은 물론 혁명적 정치에 회의적이었던 프로이트나 라캉의 이론을 고스란히 계승한 것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새롭게 전유한 입장에 가깝다. 프로이트와 라캉 정신분석학의 잠재적 전복성을 헤겔-마르크스적 사유를 통해 선구적으로 전유한 것은 지젝과 슬로베니아라캉학파였다. 영어권 데뷔작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1989)에서 지젝이 목표한 것은 이데올로기 이론에 기여하고 싶다는 바람 외에 라캉 정신분석의 기본 개념에 대한 개설을 제공하는 것과 ‘헤겔로의 회귀’였다. 중요한 것은 이 세 가지가 서로 연계돼 있다는 점이다. 그는 ‘헤겔을 구출하기’ 위한 유일한 방안이 라캉을 경유하는 것이라고 믿으며, 이러한 라캉적 독법과 헤겔의 유산이 이데올로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렇게 하여 지젝은 라캉주의 좌파의 핵심 인물이 된다.

하지만 ‘라캉주의 좌파’란 말을 만들어낸 스타브라카키스에 따르면, 급진민주주의의 이론가 라클라우와 무페 또한 라캉 정신분석학을 중요한 이론적 모태로 삼고 있으면서 지젝과는 ‘건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주변에 카스토리아디스와 버틀러 같은 인물들도 포진시킬 수 있다. 라캉주의 좌파는 지젝을 핵심으로 하여 일종의 이론적 동심원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정치적 입장은 조금 달라서 라클라우와 무페가 ‘개혁가(reformist)’ 타입이라면 지젝은 ‘혁명가(revolutionary)’ 타입이다.

문제는 지젝 자신의 이론적․정치적 입장이 변화해왔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모든 가능한 체제들 중에서 최악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것도 그보다 낫진 않다는 것이다”라는 처칠의 주장을 반복하던 초기의 입장을 그는 철회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젝과 정치(Zizek and Politics)>(2010)의 저자들은 아예 급진민주주자로서의 지젝(지젝1)과 전위적 혁명가로서의 지젝(지젝2)을 구분하기도 한다. 정리하자면 라캉주의 좌파의 이론적 지형은 ‘라클라우-무페와 지젝1’ 대 ‘지젝2’의 대립 구도라고 말할 수 있다. 라캉주의 좌파 내의 ‘온건파’와 ‘강경파’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겠다. 물론 이것은 공시적인 구도이며, 발생론적 차원에서 보자면 ‘지젝1→지젝2’의 순차성을 갖는다. 그렇다면 라캉주의 좌파의 최초의 입장은 무엇이었나?   

 

 

지젝이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의 서두에서 동구권 변혁기의 ‘가장 숭고한 이미지’로 제시하고, <라캉과 정치>의 결론에서 스타브라카키스가 다시금 환기시켜주는 것은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정권을 무너뜨린 반란자들의 깃발 사진이다. 공산주의의 상징인 붉은 별이 잘려나가고 국기 중앙에 단지 구멍만 뚫려 있을 뿐인 국기다. 이 국기의 이미지는 이전의 주인 기표가 헤게모니를 상실했으나 아직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지 않은 중간적 국면의 ‘열린’ 특성에 대한 현저한 표지다. 지젝은 이 이미지를 실재라는 구멍을 둘러싸려는, 정치적 재현의 공간 안에서 정치적인 것을 보여주려는 정치적 시도의 가장 놀라우면서도 숭고한 표현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만약 오늘날 비판적인 지식인의 책무가 있다면, 그것은 특히 새로운 질서가 안정화되고 이 새로운 질서가 대타자 안의 결핍을 비가시적인 것으로 만들려고 시도할 때 이 구멍의 자리를 점유하는 것이다.”

스타브라카키스의 부연 설명을 보태자면, “정치적인 실천이 관련되는 한, 우리의 윤리적인 책무는 단지 정치 현실 안에서 이러한 결핍의 제도화를 시도하는 것뿐이다. 이러한 책무는 진실로 그리고 급진적으로 민주주의적인 책무다”이다. 그 책무의 핵심은 모든 정치 제도와 정치 세력의 한계를 가시화하고, 모든 유토피아적 상징화와 그러한 상징화가 차지하려는 실재(구멍) 사이의 거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이 ‘급진적 민주주의’론의 요체다. 간단히 말하면 이 ‘구멍’을 끝까지 권력의 공백으로 보존하는 것이다. 동구권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성장한 지젝 또한 일단은 이러한 입장에서 출발한다. 슬로베니아라캉학파의 일원으로 지젝을 영어권에 처음 소개하면서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조차도 “포스트마르크시즘적 시대에 사회민주주의적 정치 프로젝트를 구축하는 문제”에 대해 ‘이론적’으로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 필독서가 되리라고 지젝의 데뷔작이 갖는 의의를 한정했었다. 하지만 지젝은 이듬해 슬로베니아 대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이후에 더 본격적으로, 그리고 전방위로 열정적인 ‘이론 투쟁’을 개시한다. 그 투쟁은 간단히 도식화하면 ‘민주주의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순수정치에서 정치경제학으로’라는 이행의 궤적을 그린다. 이러한 이행의 중요한 계기는 레닌주의에 대한 그의 새로운 사유가 아닐까 싶은데, 이 경우 레닌은 “마르크스는 괜찮아, 하지만 레닌은 뭐야?”라고 할 때의 레닌이다.

<지젝이 만난 레닌>(교양인, 2008)에서 지젝은 한마디로 ‘레닌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고 다시 따져 묻는다. 그의 기본 문제의식은 무엇이었나? “우리가 양보할 수도 없고 양보해서도 안 되는 ‘레닌주의적’ 입장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오늘날 실질적인 사상의 자유는 현재 지배적인 지위에 있는 자유민주주의적이고 ‘탈이데올로기적인’ 합의에 의문을 제기할 자유를 의미하며, 그것이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다원적 경합을 허용하며 그것에 의해서 유지되는 체제지만, 지젝이 말하는 레닌주의적 제스처는 어떤 근본주의적 태도를 가리킨다. 오늘날 재발명되어야 할 레닌의 유산은 ‘진리의 정치’라고 그는 주장하며, 근본적 좌파의 목표는 ‘원칙 없는 관용적 다원주의’와는 정반대라고 선을 긋는다. 이러한 입장은 ‘좌익 소아병’에 대한 레닌의 비판을 상기시키는데, 그가 보기에 정치적 극단주의 혹은 과잉 근본주의는 항상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전치 현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국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투쟁하거나 국가로부터 거리를 두는 저항을 위해 후퇴한다”라는 식의 양자택일은 거짓된 것이라는 인식이다. 지젝이 보기에 양자는 동일한 가정을 공유한다. 즉 국가 형태는 거기에 그대로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장악하거나 그로부터 거리를 취하는 것뿐이라는 가정이다. 하지만 지젝은 <국가의 혁명>에서 레닌이 주장한 교훈을 상기시켜준다. 혁명적 폭력의 목표는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있지 않고 국가 권력을 변형시키고 그 기능 방식과 토대와의 관계 등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있다는 교훈이다. 그가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핵심이 거기에 있다. 지젝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민주주의의 철폐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사용하는 방식이다”라고 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을 인용하면서,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핵심은 민주주의라는 텅 빈 형식적․절차적 틀 자체에 ‘계급적 편향’이 기입되어 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급진적 민주주의에서 변화된 지젝의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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