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poptrash > 인터넷 서점과 나의 인연

문득 알라딘을 돌아다니다가 이런 생각을 했어요. 도대체 나는 왜 인터넷 서점을 이렇게 죽치고 돌아다니는가? 하는. 생각해보니 참 이유도 없고, 누가 뭘 주는 것도 아닌데, 항상 카드빚에 허덕이면서도 저는 거의 매일매일을 먹고살기위해 넝마를 줍는 넝마주이라도 된 것 처럼 인터넷 서점을 돌아다니고 있으니까요. 정말 이상하죠? 그렇다고 제가 뭐 책을 연구하는 사람이라거나, 책으로 밥벌어 먹는 사람이라거나 최소한 책을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이런건 또 아니거든요.

나름의 역사(?)를 더듬어 보았습니다. 여러가지 개인적인 메모를 참고해보자면 제가 인터넷 서점의 효용(?)에 본격적으로 눈을 뜬 것은 2002년 초경이더군요. 당시, 대학 2학년의 겨울 방학을 아주 무료하게 집에서 뒹굴뒹굴 거리면서, 국문학과 생이라는 나름대로 '학과의 압박'을 받으면서 책을 좀 읽어 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그 당시의 표현을 빌자면 이렇습니다.

"책을 사고 싶지만 (돈이 없어...)"

사실 저는 책을 좋아하긴 해요(사랑하진 않습니다). 아니, 책을 사고 모아놓는 것을 좋아하지요. 어렸을 때 막내 삼촌이 서점을 해서 항상 그 속에서 살았거든요. 그렇다고 제가 뭐 고전 명작들을 읽어댄건 아니었습니다. 그럼 이러고 안있겠죠 아마. 당시 나이또래에 맞는 그런 어린이용 책들을 즐겨 읽었어요. 그래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등의 일들은 별로 좋아하질 않게 된 것 같네요. 나쁜 것만 알아가지고.... 아무튼 그래서 저는 책을 읽기로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책을 사야했고, 하지만 돈이 없네요. 그래서 저는 잔머리를 굴리죠. 그 당시의 표현을 빌자면 이렇습니다.

"Yes24가 좋다.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_-;) Book Review 라는 곳에다 '일정 수준 이상의' 글을 쓰면, 그래서 그것이 10개가 되면 5000원의 전자쿠폰을 준다고 한다. 그 중에서 또 꼽아서 100000원을 준단다!! 노는 김에 그거나 해야지.. (;;) 금정연의 독서일기... 나중에 모아서 그거나 내야지. 장정일이 별거냐... (-_-;)"

그래서 저는 리뷰를 쓰기 시작한거에요. 아주 현실적인 이유에서. 사실 저는 어느 정도는 현실적인 인간이라, 현실적인 이유가 없으면 일을 하지 않지요. 학교 레포트도 아닌데 독후감을 쓸 필요는 없잖아요? 단, 돈이 생긴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이런 식으로요. (;;)

처음에 리뷰를 쓴 것은, 제가 존경해 마지 않는 이승훈 선생님의 수업교재였던(;;) '한국 모더니즘 시사' 였습니다. 그리고 역시 또 다른 수업시간에 교재로 썼었던 '환상과 미메시스' 였네요. 솔직히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진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그냥 갯수나 채워보자 라는 생각으로 생각나는 것들을 무작위로 쓰려고 했던것 같아요. 그게 2002년 1월 19일 이었으니, 어느덧 만으로 꽉꽉 채워 2년이 넘는 세월을 인터넷 서점을 유랑하면서 보냈네요. 하 참, 기가막히는군요. (;;)

그리고 세 번째로 리뷰를 썼던게 바로 기형도 전집이었습니다. 나름대로 문학소년의 감성으로. 그랬더니 그만 이게 이주의 마이리뷰에 덜컥(!) 선정되고 만거에요. 5만원, 아싸(;;) 사실 이것야말로 인터넷 서점으로의 중독에 진정한 첫걸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입니다. 마치, 친구따라 간 카지노에서 덜컥 잭팟을 터트리고 망가진 인생처럼... (;;) 그렇다고 뭐 인생이 망가졌다는 건 아니지만 그냥 그렇다는 거지요 뭐. 아무튼 그렇게 리뷰를 쓰다가 처음 10개를 채우고, 5천원을 받게되었습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지요. 10편 중에 한 반이 수업교재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쿨럭;) 근데 갑자기 회의가 들더군요. "내가 별로 감명깊게 읽지도 않은 책들을 단지 개수만 채워서 5천원을 위해서 쓴다는게 얼마나 무의미한가?" 라는, 나름대로 작가주의적인 회의였습니다. 만약 이주의 리뷰에 선정되지 않았었다면 전혀 하지 않았을 그럴 생각이었죠. (;;) 한마디로, 되도 않는 걸로 채워서 5천원 씩 받느니, 차라리 정성들여 써서 5만원 받자,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네. (쿨럭쿨럭;) 어린 마음에 꿈을 꾼 것이지요. 그리하여, 몇 편 더 써보다가... 당연히 소 쥐잡기 식으로 된 이주의 마이리뷰가 다시 선정될 리도 없었고, 정성들여 쓰자니 또 귀찮고... 해서 저의 인터넷 서점 이용은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그나마 알량한 리뷰라도 쓰던 처음의 시작과는 달리, 그야말로 오직 구매만을 위한, 소비 일변도를 달리게 되었죠. 아아, 그 수많은 카드빚의 시작. 그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니(;).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이자모여 태산- 뭐 그렇고 그런 겁니다.

하지만 중간중간에 마이 리뷰를 가뭄에 콩나듯이지만 쓰긴 했고, 그래서 얼마후에 다시 황금가지판 '셜록 홈즈전집'에 대한 마이 리뷰로 이주의 마이 리뷰에 선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때 뤼팽 전집도 나오고 해서 아무튼 붐 비슷한 것이 일면서 출판사랑 yes24랑 공동으로 베스트 리뷰를 선정하여 10만원을 주는 이벤트를 했을 거에요. 그래서 저는 생각했죠. "이런 기회를 놓칠쏘냐..." (-_-;;;) 지금이나 그때나, 잔머리 굴리기는, 그리고 가난하고 절박하고 구질구질 하기는 마찬가지였던거죠. (쿨럭;)

저는 또다시 잔머리를 굴립니다. "마이 리뷰 한개가 아니라 두개, 아니 그 이상을 올리면 당선 가능성이 더 높아지지 않겠는가?" 말 그대로였죠.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엄마이름으로 아이디를 한개 만들었어요. (--;) 그리고 리뷰를 썼죠. 그래서 그 때 선정이 되었던걸로 기억합니다. 엄마 이름으로 올린게 선정이 되었나, 제 이름으로 올린게 선정되었나 아니면 둘다 선정되었나는 기억이 잘 안나네요. 아마 엄마 이름이 되었거나, 둘 다 되었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겁니다. 그야말로 운이 좋았지요. 그리고 나중에 소박한 삶인가? 하는 책으로 여성신문사에서 이벤트 공모를 한게 하나 더 있었습니다. 역시 10만원 가량의 베스트 리뷰 시상하는 거였는데, 거기는 엄마 아이디로 응모를 해서 선정이 되었어요. 그리고 그 당시 yes24 웹진에서 하는 책에 빈칸 넣기 퀴즈에 응모해서, 신의 지문과 우주의 역사 호두껍질 속의 우주 그리고 풍속의 역사 등등의 까치글방 역작 시리즈들을 탔지요. 이 때가 제 인터넷 서점 인생(;)에 있어서 황금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2002년 여름.

여기까지만 읽으신 분은, 그 놈참 구질구질하네 혹은 정말 대단하다 (그러니까 논스톱에서 옛날 양동근, 혹은 지금의 MC 몽을 보면서 드는 생각;)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는데요, 사실 적자 게임이었어요. 뭐 한 마이리뷰 등등으로 한 50만원 되었다고 치면 실제로 쓴돈은 한 100만원은 되니까. 그렇습니다. 2002년도에 책을 한 150만원어치는 샀던것 같네요. yes24에서만. (알라딘 관계자분들이 보시면 싫어할텐데;;)

그렇게 카드빚의 압박에, 생활고에, 바쁜 일상에 리뷰는 더이상 쓰지 않게 되었지요. 솔직히 '이젠 이룰건 다 이루었다.' 라는 식의 심정이 든 것도 사실이었어요. (-_-;) 그렇게 하다가 군대에 입대를 했습니다. 2003년 2월의 일이었는데요, 이렇게 저렇게 일해서 모은 돈으로 카드빚은 대충 대충 힘겹게 넘기고, 모자란 부분은 다른 경로를 통해 카드 빚이 아닌 그냥 빚으로 용도 전환하고 (;;) 해서 군생활을 하게 되었죠. 근데 또 운좋게도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보직이 되었습니다. 전경으로 차출 당하야 경찰서에 근무하게 되었는데 행정병 비슷한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남는 시간 틈틈이 책도 읽고 하던 어느날,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소위 말해서 '짬'이 된 거죠. (-_-;) 그래서 또다시 인터넷 서점의 세계로 돌아왔습니다. 그 당시 좋아하던 하루키의 새 책도 나오고, 해서 한참을 둘러보다가 또다시 카드 번호를 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어요. 이미 빚은 충분히 있고, 밖에서 처럼 일을 해서 카드비용을 매꿀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생각했지요. 아, 그래, 다시 리뷰를 쓸 때가 왔다. (-_-;)

이번엔 알라딘이었습니다. 알라딘에서는 이주의 마이리뷰 외에 한달에 한번 이달의 마이리뷰를 선정해서 무려 30만원을 시상했으니까요. 저는, '이왕 노릴거면 큰걸 노리자'라는 굳은 신념으로 정들었던 yes24를 떠나 알라딘에 새 둥지를 틀게 되었지요. 이렇게만 말하면 제가 무슨 김중배의 다이아몬드에 흔들리는 심순애라도 된 것 같은데요(;) 사실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yes24는 너무 커질대로 커져버려서 무슨 공동구매니 등등 하는 것으로 사이트가 공룡처럼 되어버렸고, 이미 인터넷 서점이라고 하기엔, 그러니까 서점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그런 소소하고 정겹고 책냄새가 나는 그런 모습에서 너무나 멀어지게 되었어요. 또한, yes24에는 등록도 안되어있던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 몇몇이 알라딘에서 팔고 있었다는 것도 한가지 이유가 되겠지요.

그렇게 알라딘으로 옮겨와서 처음에는 좀 적응을 못하다가 리뷰를 올리기 시작했고, 두 번째로 올렸던 해변의 카프카 마이 리뷰가 선정이 되면서 완전히(totally) 알라딘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요, 저는 이런 사람이에요. (-_-;;) 알라딘에서도 카드 꽤 많이 긁었지요. 가끔씩 생각하는건데, 인터넷 서점에서 저란 사람의 성향을 알고 미끼를 던지는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도 들어요. 그러니까 저는 5만원 적립금이 생기면, 5만원 내에서 사고 싶은 걸 고르고 골라 5만원어치 사는게 아니라, '아싸 5만원 있으니까 부담이 적네' 하면서 10만원어치를 사는 사람이거든요. (-_-;)

요즘에야, 그냥 책 읽은거 기록해둔다는 식으로 마이리뷰를 올리는데요. 알라딘 서재가 생긴 이후로 그냥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글 올리듯이 맘 편히 올릴 수 있게 되었거든요. 이젠 뭐 바라지도 않습니다. 물론, 받으면 좋지만요. (-_-;;)

욕망의 역사네요. 저는 돈을 위해서 글을 쓰는 일 좋아해요. 이를테면 5만원짜리 마이리뷰를 겨냥하고 쓴 글은 제가 5만원을 기대하고 5만원어치의 노력을 해서 쓰는거잖아요. 참 속물 같지만요, 그냥 소박하게. 차라리 정직하니까요. 여기서 제가 말하는 돈을 위해서 글을 쓴다는 건 무슨 권력에 빌붙어서 글을 써먹고 살아간다더나, 돈을 위해 잘못된 정치적 사상을 선전선동하는 글을 쓴다던가, 쓰레기 같은 작품을 양산해서 돈을 벌어먹는다던가 (몇몇 베스트셀러 작가처럼) 그런게 아니잖아요. 그냥 소소한 아르바이트 정도? 만약 저의 신념이나 영혼이 들어가 있는 글이라면, 돈 몇푼- 그게 얼마나 큰돈이라도 그런 걸 위해서 쓰지는 않겠지요. 물론 제 영혼이 올곧이 들어가 있는 글을 쓰고, 그것이 공감을 받아 돈을 벌게 될 수 있으면.... 좋겠지만요.

그냥 그렇다는 말이에요. 쓰다보니 글이 이상해졌네요. 흑흑. 구질구질하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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