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발견..

 

 

‘가만있자,어떻게 말해야 하나.포착할 수 없는 사고의 외곽선을 보존하려 한다면 물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 버려 남은 것은 광선에 의해 뜨거워진 매력을 상실한 몇 개의 물방울뿐이리라.그리하여 인간은 서서히 산다는 것의 어려움속에서 존재의 절망으로 이전하게 된다.’ -장필립 투생의 <사진기>중에서-..

 

홍상수의 영화를 볼때마다 느끼는거지만 상당히 익숙하면서도 생경하다.같은영화를 반복해봐도 그렇고,다른영화를 섞어봐도 그렇다.같으면서도 다른.언제부터인가 홍상수의 영화를 볼 때면 단단히 각오를 하고 긴장한 상태로 화면을 응시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도대체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것이었을까?.. 언젠가 그런 글을 읽었던 적이 있다.이 세상이 만약 하루,혹은 1년,그리고 몇백,몇천년으로 이루어진 합집합이 아닌 오직 긴 하루였다면..나는 사회과학을 전공했으므로 자연과학적인 사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둘다 모두 할당된 시간은 같지 않을까?..다만 방식의 차이이다.긴하루엔 오직 현재만이 있고,과거와 미래는 없다.결국 근본은 같은 것.다만 형식의 변화로 인해 우리는 끊임없이 의미부여를 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홍상수를 아우르는 여러 코드가 생활의 발견에서도 그대로 답습된다.일상,우연한 만남,비슷한 패턴의 반복..명확하게 은유된 어떤 것을 붙잡고 싶은데,쉽지 않다.사실 그런 기질은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밑줄쫙 긋고 죽어라고 한가지 의미로만 외웠던 잘못된 강요에서부터라고 변명하고 싶다.그런데,실은 그게 아니다.비슷한 생활의 패턴,결국 비슷하게 살아간다.똑같다는 것은 어찌보면 가장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인게 아닐까?..홍상수영화에서 발견하는 삶의 일상성은 그렇기에 지리멸렬하고 감추고 싶은 어떤 치부이다.무심한 척 연기해내는 연기자들을 보는건 그리 편하지만은 않다.

 

내가 홍상수영화에서 주목하는 매개체는 ‘술’이다.늘 그게 궁금했다.영화안에서 자주 등장하는 술은,현실을 더 적실하게 보여주는 지독한 은유인지,아니면 현실을 잊게 만드는,혹은 현실과 좀 더 떨어져 바라보게 만드는 일종의 해방구인지.이것도 쓸데없는 나의 의미부여일지도 모르지만.. 극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주인공들의 섹스씬뿐이다.그런데 그것마저도 너무나 일상적이며 자연스럽다.추상미가 봉긋한 두 가슴을 잡고 ‘내 가슴 이뻐요?’ 라고 묻던 그 장면.일종의 정면대결.삶은 이런거에요..라는 하나의 몸짓.

 

삶의 비극성을 언제쯤 깨달을 수 있을까.

 

‘대국적인 견지에서 보면 삶은 비극적인 것이다.바짝 가까이에서 보면 삶은 터무니 없을만큼 치사스럽다.’ -장 그르니에의 <섬> 중에서-..

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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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리릿 2003-11-25 0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상수 감독 영화를 아주 좋아합니다. 특히 생활의 발견이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홍상수는 상당히 완벽주의자가 아닐까합니다. 소품과 조명, 그리고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여러 장치들을 구사하는데 있어서 흠잡을 때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보기. 전에 <강원도의 힘>을 보고 극장을 나오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 주위의 사물들이 영화의 한장면 같았습니다.

특히 <생활의발견>이 재미있었던 건.. 브라운관에서 보았던 인물들이 오히려 익숙함을 더해주었지않나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다른 영화의 주인공보다 김상경이 참 매력적인 캐릭터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