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관계의 배치를 바꾸지 않는 구원이란 있을 수 없다. 구원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운명에 대한 사랑이다. 어떤 조건, 어떤 열악한 상황에 있더라도 자신에 대한 존중감을 버리지 않을 때, 자신을 ‘있는 그대로’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저항과 투쟁이 있겠는가. 어떤 권력이나 자본도 그런 존재를 회유하거나 훼손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운명애’야말로 구원과 혁명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구도의 열정과 혁명적 분노가 함께 갈 수 있는 길! 그렇다면, 운명을 사랑하는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흐름에 참여할 수 있을 때, 그것이 곧 혁명이 아닐까. 거꾸로 혁명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자신의 운명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을 바꾸려는 투지로불타는 사람이 자신에 대한 긍지와 존중감이 없다면 그건 비슷하지만 가짜다.

혁명과 운명애, 변혁과 영성(靈性), 평행선처럼 달려온 이 두 쌍을 음양오행이라는 매트릭스 안에서 조우하게 하는 것이 이 공부의 목표다. 음양오행에는 안팎이 없다. 내가 곧 우주고 자연이 곧 나의 연장이다. 그야말로 ‘내재적평면’이다. 개인과 사회,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공공연한 것과 은밀한 것이나누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무의식보다 더 깊은 심연까지 다 탐구의 대상이자 혁명의 과정이다. 아니, 혁명이란 존재의 심연에 대한 탐사, 그리고 그것을 통한 대자유에의 여정에 다름 아니다. 하여, 이 매트릭스는 우주로 통하지만 그것은 곧 ‘나에게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고로, 몸과 우주, 그리고 운명은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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