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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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는 늙은이와 병든 자들을 돌보지 않았다. 싸움터에서 다친 자들은 쓰러진 자리에 두고 돌아갔다. 쓰러진 자들은 싸움을 끝내고 돌아가는 군대의 멀어져가는 말발굽 소리를 들으며 비바람 속에서 죽었다. 이러한 죽음은 전사(戰士)에게 마땅했고, 아무런 공치사도 없었다. - P13

식량이 모자랄 때는 아이와 젊은이가 먹고 늙은이는 굶었다. 배고픔이 남세스러워서 늙은이들은 스스로 나하에 몸을 던졌다. 병들고 배고프면 늙은이들은 무리를 지어서 마을에 서 사라졌다. 늙은이가 젊은이를 낳았으나 늙은이는 누구의부모도 아니었다. 늙은이들은 목소리를 낮추어서 수군거리다가 그믐달 뜨는 새벽에 나하 강가에 모여 쪽배를 타고 하류로 내려갔다. 젊은이들은 늙은이들의 수군거림을 눈치챘지만 아는 척하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나루터에 목선 한 척을매놓고 말린 양고기와 끓인 말 피를 몇 덩이 실어놓았다. 배에 오를 때 늙은이들은 아무런 짐도 지니지 않았다. 늙은이들의 움직임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배가 바다에 닿기까지얼마나 걸리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 하구에 수백만 년동안 모래가 쌓여서 섬이 생겼고 크고 검은 새들이 그곳에서날개를 퍼덕거렸다. 이 섬의 이름은 명도(溪島)라고 시원기는 전한다. 초나라 늙은이들이 탄 배가 명도에 닿았을 때 늙은이들은 모두 배 안에서 죽고, 썩은 살점은 새들이 뜯어 먹었다. 섬의 해안에 늙은이들의 뼈가 쌓여 밤이면 푸른 인광을뿜어냈다. 명도에 가본 사람은 없지만, 이야기는 입으로 전해졌다. 『시원기』는 새벽에 늙은이들이 강물을 따라 사라지는풍속을 돈몰(吃沒)이라고 적었다. 하류로 흘러간 늙은이들은돌아오지 않았고, 젊은이들은 돈몰한 늙은이들의 뒷일을 말하지 않았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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