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 좌석

천장의 낡은 천을 떼어내고 마음에 드는 원단으로 교체한 다음 태양열로 작동하는 환풍기를 달았다. 운전석의 수납함에 그가 자주 사용하는 지갑, 선글라스, 손 세정제, 간단한 공구가 들어 있다. 세 개의 좌석 중 남는 자리에는 큰 배낭과 잡다한 물건이 담긴 바구니가 있고 내 전용석인 조수석 발밑엔20L 물통과 신발 등을 두고 수납함에는 젖은 신발 말리는 도구, 핸드크림, 선글라스, 지갑, (검문소를 통과할 때 빠르게 꺼내야 하는) 여권 등을 수납한다. 좌석뒤편에 테이블, 샤워 텐트, 앞창 단열재, 낚싯대 등이 있다.

뒷좌석

원래 가지고 있던 커튼으로 천장을 마감했다. 창고에서 뒹굴던 황동 수도관 을 잘라 커튼 봉을 만들고 오래된 공장에서 발견한 나무 가방 두 개로 주저및 양념 정리함, 필기구 정리함을 만들었다. 가지고 있던 서랍장에 자주 사용하는 전자제품과 책, 의약품을 보관한다. 서랍장 옆면에 선반을 달아 물건이 어지지 않도록 노끈으로 고저해고 소파 민 바구니에는 옷과 식자재를 보면한다.

우리 밴은 멀리서 보면 하얗고 예쁘지만(물론 우리 눈에만일지도 모른다) 가까이에서 보면 여기저기 흠집투성인 데다 색이바래 무척 낡은 티가 난다. 밴을 비울 때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보이는 곳에 귀중품을 두고 내리지는 않지만, 불안함은 적다.
그래서 그런지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밴을 보고 칭찬인지 욕인지 모를, 존경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놀라운 건 우리보다 훨씬 더낡은 밴을 타고 여행 다니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사실이다. 우리도 그들을 보면 ‘존경한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아, 물론 우리는칭찬이다). 낡은 밴을 타는 사람들은 서로를 보면 반가워서 도로위에서도 인사를 나눈다. 손을 흔들어주거나 깜빡이를 켜는 식이다. 그리고 무언의 응원을 나눈다. 소리도 요란하고 높은 곳을 오를 때면 가끔 쉬어가야 하지만 뭐 어때요. 예쁘잖아요. 힘내요.‘

또 하나의 장점은 밴 내부 수리를 할 때 전혀 부담이 없다는 사실이다. 깔끔하고 반짝거리는 새 차는 나사 하나 박기도 두려워처음부터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속 편할 거다. 하지만 우린 창문을 달기 위해 커다란 구멍도 뚫었고, 천장과 벽에 수없이 많은 나 사를 박았다. 구멍이 잘못 뚫리면 적당히 막았고 공사하면서 생긴 크고 작은 흠집들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저곳을다니며 군데군데 생긴 흠집 사이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처음여행을 가던 날, 길가 옆 논에서 빠른 속도로 달리던 트랙터가 돌을 날려 밴에 큰 흠집이 생겼다. 첫날부터 생긴 사고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우린 그 돌이 유리창에 날아온 게 아니라 다행이라며 웃어넘길 수 있었다. 만약 우리 밴이 흠집 하나 없는 새 차였다면 당장 경찰서를 찾아가고 난리를 치며 밴 라이프 첫날을 망쳐버렸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상처투성이 밴이 우리를 잘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이든다. 사람들에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딱 보면 아, 이 밴은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면서 고생했구나‘ 싶은 우리 집이다. 그래, 민낯을 가리기보단 당당해지자. 그 돈으로 오늘 좋은 와인이나 한병 더 사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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