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나에게 주5일제가 좋기는 좋다. 이제는 주6일제 회사를 다니기 힘들 정도다.
토/일요일 이틀 연속으로 쇼파위에서, 거실바닥위를 뒹구는 게 이제는 너무 편하다.

이 이틀 중 하루는 영화를 보고 나서 점심을 사 먹고, 오후에는 가볍게 백화점을 돌아다니는데 쓰고, 하루는 장보러 가까운 대형마트에 가서 두세시간 때우고 들어오는 데 쓰는 것 같다.

"그러지 말고 휴일엔 등산가자"고 많이들 꼬시나, 정작 임산부 본인께서는 등산가라는데도 불구하고 "임산부 놔두고 멀리 갈 수 없다"는 살신성인 정신으로 집에서 꼭 붙어있는 나에게, 대형할인마트는 휴일날 순례지나 다름없다. 여기라도 안 가면 하루 종일 너무 심심하고 발바닥이 근질근질한 것이다.

대형할인점을 이용하게 된 것은 상경 후 노량진, 신림동 고시원을 떠나 친구녀석이랑 노숙자처럼 살았단 휘경동 자취방을 거쳐, 까르푸가 500m 주위에 있던 버젓한 나만의 자취방을 갖게 된 2004년부터다. 이마트가 창동점을 시작으로 93년부터 시작되었는데, 그에 비해 나의 대형마트 순례의 역사는 짧다.

하지만, 난 참 잘 적응하고 있다. 과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폐장시간을 1시간 앞둔 밤 시간에 방문한다. 과일코너를 맴돌다 마이크잡이 아저씨가 "자, 12000원짜리 수박을 7000원!"라고 하는 순간 마침 지나가던 길이었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카트를 코너 앞에 파킹시킨다.

대형할인마트에서 가장 유의해야할 점은 필요하지않는 것까지 카트에 담아 과도한 지출을 일삼게 된다는 것일 것이다. 긴축재정이 꼭 필요해서이겠지만, 얼마전부터 우리집은 '미리 사야겠다고 생각한 매장만 들려 빠르게 담고, 빠르게 계산대로 나간다'는 노하우를 잘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20% 할인하는 지금 사두면, 나중에라도 쓸일이 있을 것' '사고 싶었던 건데 이번에 한번 사보자' '오랜만에 이거 한번 사먹어볼까'하는 견물생심을 이겨내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

어제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들었던 생각은 우리 사회에서 이 만큼 손님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데도 흔치 않다는 것이다. 마트의 직원들이 얼마나 친절하던가! 지나갈 때마다 직원들이 "행복한 쇼핑하십시오~"라고 정다운 목소리로 반겨주질 않나, 모든 시식코너를 이쑤시개 두개를 뭉쳐가며 찌르는 순례를 감행해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나도 처음부터 시식코너를 잘 이용했던 건 아니다. 경상도 총각의 자존심으로 애들이나 이쑤시개 들쑤시는 짓을 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저게 한번 맛 봤으면 싶었도 혼자서 카트 밀고 다니면서 하기 힘들었는데, 결혼을 하고 마트에 익숙해져서 이젠 '남자가 쪼잖하게'라는 생각은 버린지 오래고, 옆에 와이프가 있으니 '혼자서 하기 쑥스러웠던 짓'이 쉽게 허용이 된다. 어떤 땐 ㅅ시식코너 한 바퀴 돌고 오면 배거 넉넉히 부르거나 더 이상 먹기 싫은 정도가 되기도 한다. 내 입맛에 맞는 고기기 대여섯군데 정도 시식을 하고 있다면 더더욱... ㅋㅋㅋ

어제는 캍국수를 1000원에 먹었는데, 양은 적었지만 무척 시원하고 맛있었다. 칼국수를 먹으면서 카트를 둘이서 밀고 다니는 연인(부부)들, 카트 위에 작은 아이를 싣고, 옆에 와이프와 큰 아이들 몰고 다니는 아저씨, 딸과 다정하게 카트를 밀고 다니는 아줌마들을 유심히 보며 칼국수를 먹었다.
한편,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주말도 휴일도 없이 저렇게 일하기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서고 일하는 대부분의 여성노동자들이 아르바이트이거나 외주, 비정규직일 것이다. 시간당 4000원 남짓 쳐서, 한달을 일6시간, 주6일 일하고 나면 한달에 80~100만원 남짓 받는다고 한다.

한달 내내 거의 휴일도 없이 계속 서서, 밝은 웃음 지어가면서 나처럼 '마트에 와서라도 손님 대접 받고 싶어하는' 이런저런 사람들 상대하는데 월 100만원도 못 받아가는 저비용 구조에서 우리는 시중가 보다 10~20% 싼 가격에 구매하는 싼 재미를 느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소득 과노동을 기반으로 서로간의 쥐어짜는 이 시장경제의 굴레를 서로 강요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니, 우울해진다.

암튼, 내가 겪어본 마트, 상암까르푸, 일산백석 이마트, 일산호수공원까르푸, 덕양 이마트, 덕양 GS마트 중... 덕양 GS마트가 가장 친절하다. 서로 눈이 마주치며 지나갈 때 조차도 "행복한 쇼핑하세요'라고 친절하게 인사하는 직원들을 보면, 시켜서 의무감으로 하는 것 같지않고, '아 사람들끼리 저렇게 눈인사라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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