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만에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작가가 돼보는 게 어때요.
다시 생각해달라는 내 물음에 대한 답은 없었다.
그 사람은 끝까지, 정말이지 끝까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고, 내게 뭔가를 가르치려 들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를 위한 선택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눈을 감고 그의 번호를 지웠다. 눈꺼풀에 인 두로 지져놓은 것처럼 그의 번호가 선명히 떠올랐지만 언젠가는 이것조차 기억에서 지워지리라 생각했먹
두다.
결국에 우리는 함께 따뜻한 파스타 한 접시조차 제대로 먹지 못했다.
대신에 나는 농약을 마셨다. 차가운 아메리카노에농약을 부으며, 이 커피조차도 그에게는 미제의 산물 이자(이름이 아메리카노이기까지 하니) 제3세계 노동 착취의 결과물로 보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게 웃 겨서 한참을 웃다가 눈을 감았다.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엄보
다시 눈을 떴을 땐 중환자실이었다. 공교롭게도 엄 마가 입원해 있던 아산병원이었다. 위세척을 마친 뒤 혈액투석을 하고 있는데 발치에 엄마가 서 있는 게 보였다. 내가 바랐던 얼굴은 아니었다. 내가 아는 우리 엄마는 이런 상황에서 소리를 지르며 나를 때리거나 냅다 울어버리거나, 주님, 으로 시작하는 기도의 형식을 띤 한탄을 시작하거나 일단은 뭐가 됐든 아침 드라 마처럼 감정을 터뜨리고 보는 사람이었는데, 그날의 엄마는 그저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 너무 애쓰지 마. 어차피 인간은 다 죽어.
그게 엄마가 할 말이냐고, 묻고 싶었다. 왜 이렇게됐는지 묻는 게 순서가 아니냐고, 사실은 내내 내게묻고 싶은 말이 있지 않았냐고, 물어봐야만 할 게 있지 않냐고, 묻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묻고 따지고 싶었지만 목구멍으로 인공호흡기가 삽관이 돼 있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박상영 <우럭 한 점 우주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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