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뒤로 상수는 혼자 쓸쓸히 거리를 걷거나 새벽 네다섯시에 깨어 우두커니 침대에 앉아 있을 때, 버스를 타고 가다가 옆좌석의 사람들이 크게 웃거나 자기들끼리 뭔가에 대해 열의있게 대화할 때그 가을의 오후가 떠올랐다. 자신을 그렇듯 풍성하게 하던 감정이어느 임시직의 계약종료와 함께 간편하게 사라져버린 데 대해. 그러면 늘 믿을 수 없다는 느낌이었다. 시작도 진행도 종료도 모두 마음의 일이었는데 그 마음을 흐르게 한 동력은 자가발전이 아니었다는 것, 황망한 가운데에서도 오직 그것만은 분명했다. 조교와 상수 사이에 있던 위계가 일종의 권력의 위치에너지를 생산해 감정을 만들어냈다는 것. 그런 상수의 분석은 스스로에게 여러모로 이로웠는데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랬다. 그렇게 생각하면 불특정한 상실감으로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단번에 괜찮아지는 느낌이었다. 아주 말끔하게, 이를테면 고속도로 같은 것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했다. 그 길의 끝이 이제 막 도로를 포장한 콜타르의 냄새처럼 고약한 냉소와 허무 그리고 자기를 감싸는 모든 감정은 애초에 어떻게 생겨난 것이었나. 상수가 실감했던 그 숱한 감지드은 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
"수능시험 날 졸리면 안되니까 늦잠 버릇 이제부터 꼭 고치시고요. 단백질, 비타민 같은 거 챙겨 먹고요."
조교는 그런 조언과 시험 잘 보라는 격려를 마지막으로 상수의시야에서 멀어졌다. 오함마처럼 단단한 그 몸이 멀어질수록 상수의마음은 봉쇄되는 기분이었다. 가을을 맞은 운동장에는 바람이 불때마다 낙엽들이 축포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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