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늦었습니다."
이윽고 침묵을 이기지 못해 상수가 먼저 말을 걸었다. 조교는 그런 상수를 바라보다가 "우리 뭐 약속이 되어 있었어요?" 하고 물었다. 상수는 ‘다‘나 까로 끝나지 않는 그 생경한 어미의 문장을 마음 속으로 한번 되새겨보았다. 있었어요? 하는, 상수도 쓰고 상수의친구들과 강사들도 다 쓰지만 유독 이 오함마 같은 남자는 쓰지 않을 것 같았던 그 청량한 문장을.
"제가 지각을 했거든요."
그러자 조교는 상황 판단이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러면 여름을 보내는 동안 이 운동장에서 내내 열띠게 진행되었던그 작업에 착수해볼까 하면서 상수가 운동화 끈을 고쳐 매는 순간,
조교가 상수에게 "이제 안해요. 제가 계약이 끝났어요" 하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교는 왜 그런지 좀 말갛게 웃었는데 그때야 비로소순박하고 천진하고 어딘가 세상일에 좀 심드렁한, 깃털처럼 가벼운이십대의 미소가 그 얼굴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런데 그 순간상수는 뭔가 당황스러운 느낌이었다.
"끝났다고요, 선생님?"
"수능 삼주 남기고 누가 얼차려를 받습니까. 저도 뭐 임시직이었고요."
상수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강렬한 강도로 자기를 다그치고 닦달했던 상태가 그냥 기숙학원과의 계약이 끝나면 사라지는것이었다니. 그렇다면 대체 자기를 그렇게 조련할 수 있는 권리는 애초에 어떻게 생겨난 것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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