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콜드 블러드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트루먼 카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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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픽션은 차갑다. 냉혹하고 어둡다.
1959년 11월 미국 캔자스주 홀컴에서 평온하게 살던 한 가족의 넷이 살해된다. 목적은 물론 돈이다. 결국 40달러와 네 명의 목숨을 맞바꾼 셈인가.
당시 신문에 짤막하게 실린 이 사건을 작가인 트루먼 카포티는 범인들을 비롯 주위 사람들을 인터뷰해 이 차가운 사실을 기록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트루먼 카포티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작가이다.

딕과 페리, 이 두 청년은 우울하고 시니컬한 성향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딕은 이혼을 몇번 했지만 평범한 가정-부모의 사랑은 받을 수 있던-에서 자란, 평범하게 우울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페리는 불우한 가정과 참담한 환경-부모의 불화, 버려짐, 고아원, 방황, 끝까지 무관심했던-에서 자란, 그리고 예술적 재능을 확신하는 외롭고 어두운 그리고 감성적인 청년이었다.
물론, 당연하게도 주인공-이랄수 없겠지만-은 페리이다. 차가운 피를 가진 페리, 카포티는 이런 페리와의 인터뷰와 그의 삶을 되집어가면서 놀랍게도 그에게 애정을 가지게 된다. 페리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그를 인간적으로 보려 한다. 사실 이것이 이 <인 콜드 블러드>를 읽어 내려가는 내내 몹시 불편했다. 카포티는 딕에게도, 살해당한 가족들에게도, 서로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던 마을 사람들에게도 균형잡힌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오직 페리에게만은 예외였다. 카포티는 페리를 이해하려 했으며, 그를 동정했고 사랑했다. 카포티는 페리와 마주보고 있었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지 못했다.

살해된 가족들-홀컴에 사는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지만-은 너무도 평화롭게 그려지고 있다. 페리의 삶에 비해 행복한 고민들을 하며 살아가는 페리와 극하게 대비되는 삶이다. 사실,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테지만 많은 범죄의 이면에는 대부분 삶의 상처가 새겨져 있다. 그렇지 않던가?  주위에서 흔하게 보이는 비행청소년들의 대부분은 상처를 가졌다. 페리와 다르다고? 어째서? 나는 트루먼만큼의 페리에 대한 애정을 가질 수 없다. 페리를 본다면 사회적인 비극이지만 살해당한 가족의 입장이라면 어떤 사람의 무자비한 폭력에 희생당한 것이다. 페리-물론 딕을 포함해서-는 그 무자비하고 갑작스러운 폭력이다. 차가운 피와 예술적인 감수성을 지닌 서글픈 폭력이다. 물론 나는 카포티처럼 애정을 갖고 바라볼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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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알랭 드 보통 지음, 지주형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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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이라는 현대소설 기법을 배우면서 으레 거론되기 마련인 ‘마르셀 프루스트’라는 이름은 내게 현대소설사를 이루는 역사 속의 인물일 뿐이었다. 게다가 너무나 낭만적인 제목을 달고 있는 그의 긴긴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지루한 ‘고전’이라는 나의 고정관념 속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케케묵어 있었다. 그런데 알랭 드 보통이라는 범상치 않은 스위스 작가가 내 기억 속에 죽어 있는 마르셀 프루스트에게 손을 내밀고는 그의 두꺼운 책 무더기 위로 소복이 쌓인 먼지를 깨끗이 털어 안겨주었다. 그렇게 프루스트가 내 안에서 생동하기 시작했다. 프루스트는 보통의 재치 넘치는 글줄을 빌어 내 인생을 통째로 상담해 준다. 그것도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는 인생의 아홉 가지 고민들과 명쾌한 해결법을 들이밀면서 말이다.

첫째, 현재의 삶을 사랑하는 법. 오늘 당신은 행복한가? 당신이 오늘을 불행하게 살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에 애착을 가져야 한다. 몹시 허약했던 프루스트는 언제나 내일 당장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오늘을 부여잡고 살았다. 그에게 ‘내일’이 기약되었다면, 그는 아마 자신의 대작을 남길 수 없었을 것이다. 내일은 없다. 오늘이 있을 뿐.

둘째, 자신을 위한 독서법. 당신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실용주의자 의사인 그의 아버지가 쓴 《위생의 기본적인 요소들》 중 어떤 책을 선택할 것인가? 실용 정신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프루스트의 손을 들어주었다고 해서 자책하지 말자. 그도 문학의 치유 효과를 확신하며 평생의 대작을 썼다. ‘유용성’을 독서의 제1목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문학 나부랭이를 읽으면서도 그것을 찾으면 될 일이다.

셋째, 여유 있게 사는 법. 프루스트가 자신의 대작을 통해 가장 확실하게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이다. 주인공이 잠들기 전에 어떻게 뒤척이는지를 보여주는 데 30쪽을 할애할뿐더러 한 문장이 두서너 쪽에 걸쳐 있는데도 그의 책을 꼭 읽어야겠다면, ‘인내’보다 ‘여유’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앞뒤 설명 없이 잘려진 신문의 무미건조한 단신보다 앞뒤 정황이 지나치게 풍부한 그의 자~앙문이 당신의 삶을 더욱 여유롭게 할 것이다.

넷째, 훌륭하게 고통을 견디는 법. 프루스트만큼 무수한 고통을 안고 살아간 사람도 드물 것이다. 심한 천식과 발작적인 기침, 극심한 변비와 위경련,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드는 추위. 게다가 아들의 병구완이 취미인 어머니의 지나친 사랑, 동성애, 자신의 작품에 대한 친구들의 몰이해, 죽음에 대한 공포 등등. 그는 고통이 진정한 지혜와 강한 정신력을 얻는 지름길이라고 항변한다. 그러나 조심하라.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모두 그처럼 빛나는 족적을 남긴 것은 아니다.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삶마저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다섯째, 감정을 표현하는 법. 프루스트는 진부하고 상투적이고 구태의연한 표현을 혐오했다. 그에게 현실은 언제나 낯설었다. 어느 한순간도 똑같은 현실은 없는 것이다. 틀에 박힌 표현을 남발하는 것은 다채로운 현실을 무시한 처사로, 언젠가 그가 사정없이 찡그리는 표정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여섯째, 좋은 친구가 되는 법. 프루스트가 우정의 가치를 찬양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우정의 대화들은 “우리가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믿지 않게 하려는 거짓말”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는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열망이 너무나 강했다. 그가 우정을 다루는 방법으로 적극 추천한 것은 관계의 중심을 상대에게 두는 것이다. 내 말을 하기보다 상대의 말을 온전히 들어주고, 내 관심사를 피력하기보다는 상대의 관심사에 귀 기울여라. 그러면 사후에 당신을 위한 회고록을 기꺼이 써주는 친구들이 넘쳐날 것이다.

일곱째, 일상에 눈뜨는 법. 프루스트는 현재의 삶이 불만스러운 이유가 삶 자체의 치명적인 결함 때문이 아니라 그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어처구니없는 시선 때문이라고 말한다. 늘 똑같은 풍경이 지겨워지면 당신은 단 한 번도 그 풍경을 제대로 바라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을 크게 뜨고 생생하게 바라보라. 지금도 그 풍경이 빛바랜 낡은 사진 같은지.

여덟째, 행복한 사랑을 하는 법. 프루스트는 창녀가 매혹적이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이미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랑’이라는 욕망을 불타오르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거절’이다. 연인의 부탁을 일단 거절하라. 당신이 연인의 욕구를 완벽하게 채워주는 날, 사랑은 저만치 물러나 있을지도 모른다.

아홉째, 책을 치워버리는 법. 책을 숭배하지 말라는 것이 프루스트의 요지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그 배경이 되는 일리에 콩브레를 찾아가 감탄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잘라 말한다. 소설 속 콩브레는 꼭 일리에 콩브레가 아니어도 되는 허구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프루스트의 콩브레를 보더라도 자신의 콩브레를 발견해야 한다.

프루스트의 인생 상담 내용이 특별히 기발하지는 않다. 오히려 어떤 내용들은 뻔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가 제시하는 방법들은 묘한 설득력을 갖는다. 프루스트의 이야기들에서 해결법을 이끌어내는 보통의 재치와 기지 덕분이기도 하지만, 프루스트가 “삶을 낭비하지 않고 삶에 감사할 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남루한 일상이 맨 얼굴을 지루하게 들이밀 때, 삶의 의미가 퇴색될 때, 나 자신을 좀더 아끼고 싶을 때마다 프루스트와의 유쾌한 만남이 그리워질 것이다. 그럴 때마다 책장을 뒤적일 수 있으면 좋겠지만,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는 알맹이가 말끔하지 못하다. 성의 없이 만든 책이라는 것이 첫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낱낱이 드러난다. 프루스트를 좋아하냐고 묻기 전에, 최소한 그에게서 멀어지는 일은 없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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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울의 움직이는 성 1 - 마법사 하울의 비밀 하울의 움직이는 성 1
다이애나 윈 존스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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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행복한 결말이다. 그것도 모든 연인들이 제 짝을 찾는 사랑의 흐뭇한 결말. 제멋대로이지만 속 깊은 꽃미남 마법사 하울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 황야의 마녀가 내린 저주로 한순간에 할머니가 되고도 절망 없이 억척스러움을 보여주는 소피의 담대함, 문손잡이의 색깔을 달리하는 것만으로 여러 곳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마법의 움직이는 성, 투덜거리는 모습이 귀엽기만 한 별똥 캘시퍼……, 이런 기발한 상상력들이 안겨주는 유쾌함을 모두 제쳐두고, 엉뚱하게 ‘해피엔딩’을 이 소설의 장점으로 강조하는 것은 행복한 결말로 이끌기 위한 저자의 강한 의지가 나를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고 싶다는 욕구가 강렬하게 솟구친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아주 재미있게 보고 나서 뭔가 2%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애니메이션이 우리나라에서 개봉하기도 전에 발 빠르게 그를 등에 업고 짠 하고 서점에 얼굴을 들이민 소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사실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좋은 책보다는 상업성에 편승한 책은 눈살부터 찌푸리게 만든다. 정직하게 속살까지 드러내는 책이 좋다. 잠시 이야기가 옆길로 샜다. 어쨌든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서 중요하게 보여주는 반전 메시지가 참 뜬금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왠지 물과 기름처럼 이야기의 전체 줄거리와 따로국밥인 것 같았다. 이야기의 줄거리 자체도 뚝뚝 잘라먹은 흔적이 여기저기서 느껴졌다. 원작이 있으니, 비워진 곳을 어디 한번 기워볼까, 그런 마음이었다.

소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모두 읽고 나서 나는 많이 반성했다. 출판사의 생리에 맞춤하게 포장되어 나왔다고 눈 흘기던 내가 그 포장에 그만 눈멀어버렸던 것이다. 소설로서의 진가를, 그 순수한 즐거움을 잊고서.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나는 애니메이션을 기워보자던 앙큼한 생각을 깨끗이 지워버려야 했다. 나는 작가의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 독자의 눈에 읽히면 그 작품은 온전히 독자의 것이라고 믿는 오만한 독자이다. 원작 소설과 그것을 바탕으로 만든 애니메이션도 다르지 않았다. 같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지만 다이애나 윈 존스가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와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전혀 다르다. 별개의 독립적인 작품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다이애나 윈 존스의 소설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 나 있는 구멍을 완전히 메울 수는 없었다.

다이애나 윈 존스는 깜짝 놀랄 만한 상상력의 마법 공간을 환상적으로 펼쳐 보이는 내내 가벼운 깃털 같은 발랄함과 즐거움으로 나를 들뜨게 하더니, 결국은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는 결말 속으로 풍덩 밀어버렸다. 소설의 결말 부분에 급진전된 하울과 소피의 관계, 레티와 설리먼의 관계, 마사와 마이클의 관계, 그리고 그동안의 종잡을 수 없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하울의 조근조근한 변명은 갑작스러운 비약이라 하더라도 저자의 흐뭇한 의도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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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6
존 르 카레 지음, 강호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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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온갖 장치가 부착된 최신형 자동차나, 아름다운 본드걸은 없다. 007은 영화만의 스파이다. 만약 007을 보고 스파이의 매력에 반해 스파이가 되고자 결심한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일독할 것을 권한다. 아마 스파이가 되고자 하는 희망을 버리게 될 것이다. 그래도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스파이 체질이다.
어쨌든 스파이-일반적인 의미에서라면-란 냉전중에 태어난 부산물이다. 조직의 소모품인 우울한 스파이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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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렁 2015-05-24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로 스파이가 되려는 사람이 어디 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 알고서 보는거지, 혼자만 알고 있는 것 마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로저 젤라즈니 지음, 김상훈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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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상과학이라는 허무맹랑한 오역때문에 그동안(또는 여전히) SF라는 장르가 외계인, 로봇, 우주선등의 이야기로만 각인되어 온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부분이다.
탈장르라는 현상은 SF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굳이 장르소설이라 한정하지 않아도 이미 그 경계는 희미해지고 있다. 아메리칸 뉴웨이브의 정점에 있는 로저 젤라즈니의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도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이 중단편집에는 정통적인 성격의 SF부터 가벼운 소품에 이르기까지 로저 젤라즈니가 잘 차려놓은 밥상이다. 하나하나 새로운 맛이 있어 읽어가는 동안 계속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로 쓴 맛이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표제작인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는 이러한 여러 맛을 한번에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신화와 종교라는 기본 재료에 서정적인 서사를 가진다. 씁쓸할 수도 있는 영웅주의적, 남성주의적인 양념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악마차'와 '카멜롯의 마지막 수호자'같은 색다른 이야기를 가진 작품들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완만한 대왕들'같은 기발한 설정의 소품도 즐겁해 한다.

한장식 읽어나갈 수록 젤라즈니에 매혹되는 이야기 모음집이다. 크로스오버 SF라고 해야 할까. 르귄과 젤라즈니를 읽으면서 굳이 장르문학이라는 틀이 필요할까라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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