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수도원 - 오드 토머스 세 번째 이야기 오드 토머스 시리즈
딘 R. 쿤츠 지음, 조영학 옮김 / 다산책방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딘 쿤츠의 ‘죽음을 보는 남자 오드 토머스’ 시리즈 중 첫 번째 이야기인 『살인예언자』에 이어 『악의 수도원』을 읽었다. 두 번째 이야기인 『죽음의 여신』을 건너뛰기도 하였지만 작품 자체의 분위기도 미묘하게 달라졌다. 첫 번째 이야기인 『살인예언자』가 ‘죽음을 감지하는 능력’을 가진 오드와 주위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면 세 번째 『악의 수도원』은 오드 혼자만의 이야기이다. 다만 이번 이야기에 등장한 이질적이고 초현실적인 존재 때문에 전작과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물론 오드 토머스가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유령과 함께 다니고 죽음의 냄새를 맡는 바다흐를 볼 수 있는 비현실적인 능력을 가진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살인예언자>의 이야기 자체는 묘하게 현실적이었다. 이것은 주인공인 오드의 특수한 능력을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 내어 현실적으로 보이게 만든 딘 쿤츠의 능력 덕분이다. 오드 토머스는 유령을 보고 바다흐를 볼 수 있고 비극을 예언할 수 있을 뿐 정확한 날짜도 알 수 없는 불완전한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사건을 완전하게 해결할 수 없을 뿐더러 주위 사람들이 희생되기도 한다. 오드 역시 그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가장 사랑하는 여인을 잃지 않았던가. 이런 점들이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는 오드의 이야기에 현실적인 면을 부여하고 있다.

『악의 수도원』에서는 폭설로 묻힌 수도원이라는 제한된 배경 덕분에 전편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수도원이라는 선한 공간에 선을 가장-자신은 선을 추구한다고 믿었지만-해 숨어든 악이 창조한 존재가 등장해 이야기 자체가 초현실적인 전개를 보여 준다. 유령이나 바다흐와는 달리 실체가 있는 존재가 등장했다는 것은 작가가 오드 혼자만의 싸움에 배려를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작을 인상 깊게 읽었던 나에게는 이런 이야기 전개는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이 작품에서 초현실적인 존재는 유령과 바다흐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이런 점을 극복하고자 양자거품 이론이라는 과학의 힘을 끌어왔지만 개연성은 부족한 느낌이다. 마치 유령의 세계에 터미네이터 같은 존재가 등장한 어색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오드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매력적이고 재미있다. 비록 주인공 오드가 깊은 슬픔과 절망 속에서 홀로 싸우고 있어도 그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유령들과 주위의 동료들, 여전히 오드를 지켜주는 연인의 이야기를 읽을 때면 유령의 존재를 볼 수 있는 오드가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삶과 죽음을 함께 가진 오드 토머스의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펼쳐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 고흐, 영혼의 편지 2 반 고흐, 영혼의 편지 2
빈센트 반 고흐 지음, 박은영 옮김 / 예담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20세기 초 초현실주의 잔혹극의 선구자인 앙토냉 아르토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들을 “꺼지지 않는 불길, 핵폭탄, 생생한 살덩이, 알갱이 하나하나를 모두 드러낼 분자들의 유성 폭격, 진정한 삶의 오브제가 울려 나오는 영원히 초인적인 음색, 오후 두 시에 내리비치는 태양의 작열하는 진실, 독보적인 자연의 재현을 통해 내면으로부터 뿌리째 뽑아낸 소용돌이치는 힘의 분출을 목적으로 하는 회화”라고 극찬했다(※『나는 고흐의 자연을 다시 본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로 반 고흐가 여전히 우리를 진하게 감동시키는 이유를, 앙토냉 아르토가 반 고흐와 그의 그림에 보내는, 시원한 대포 소리만큼 강렬한 찬사의 언어들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 점의 가식도 허용하지 않는 청청한(실금만 가도 ‘쩡!’ 하고 산산조각 날 것 같은!) 영혼의 팽팽한 시선으로 그려낸 삶의 핵에 가 닿는데 마음이 울지 않을 삭막한 심장이 있을까.

『반 고흐, 영혼의 편지 2』는 반 고흐가 자신의 천분이라고 믿었던 성직자의 길 대신 늦깎이 화가로 생을 다시 시작했던 1881년 이후 5년간 동시대 화가 안톤 반 라파르트와 주고받은 편지 모음집이다. 육신은 물론 영혼까지 아낌없이 불사르며 “오후 두 시에 내리비치는 태양의 작열하는 진실”을 화폭으로 옮긴 반 고흐의 예술가적 면모는, 쉼없이 그린 그의 그림들뿐 아니라 평생 영혼의 동반자였던 동생 테오와 동료 화가, 지인들과 주고받은 700여 통의 편지들에서도 엿볼 수 있다. 늘 삶의 진실, 자연의 진실과 담대하게 마주했던 그의 타협 없는 섬세한 감성은 역시 가식 없이 올곧고 투박한 편지 문장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근사한 말들로 장식하지 않아도 진실만을 소박하게 담고 있는 문장들은 그의 그림처럼 마음을 뒤흔든다.

안톤 반 라파르트와 주고받은 편지들에는 성직자에서 화가로 인생의 전환기에 선 화가의 고뇌와 새로운 결심, 화가로서의 자기정체성과 양심, 그리고 희망, 천재성이 무르익어가는 열정, 예술에 대한 강직한 신념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무엇보다 하층민들을 바라보는 진솔한 시선은 너무나 따뜻하여 눈물겹다. 내면에 응축되어 있는 모든 힘을 남김없이 폭발시킨 듯한 강렬한 붓질의 전성기 그림들이 탄생하기까지 무수히 시도해 본 초기 그림들은 색채가 어두워도 반 고흐의 인간적인 연민이 고스란히 묻어나 아름답다. 정규 교육의 형식적인 허식에 물들지 않은 자만이 담아낼 수 있는 화폭들은 진솔한 눈부심으로 우리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는 성직자로서도, 화가로서도 늘 죽을 힘을 다해 살았다. 화가로 두 번째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시점에는 더욱 그랬다. 그의 열정적인 신념은 신앙이 되어 그를 삼켰고 이제 나를 삼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밀레니엄 2 - 상 - 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꾼 소녀 밀레니엄 (아르테)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아르테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밀레니엄』 1부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던지라 손꼽아 기다리던 2부의 이른 출간 소식이 반가웠다. 전작과는 독립된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주요 등장인물이 전작에 이어 등장하며 종종 전작에 관련된 이야기도 있으므로 가급적 1부를 먼저 읽어볼 것을 권한다. 물론 전편의 이야기 자체로도 굉장히 재미있다. 스티그 라르손은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책의 내용을 보면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인데 책을 한번 잡으면 도무지 손에서 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으니 말이다. 이는 스티그 라르손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재능과 더불어 그가 창조한 캐릭터의 매력에 기인한 바가 크다. 특히 2부에서 개인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묘한 매력은 여전하며 동시에 숨겨져 있던 비밀이 드러나면서 어둡고 독특한 주인공의 모습을 보인다. 남자 주인공인 미카엘 블롬크비스크 역시 매력적인 캐릭터임에는 분명하고 다른 등장인물 역시 독특하고 개성있는 캐릭터를 가지고 있지만 주인공인 리스베트의 개성이 워낙 강렬해 다른 주인공들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밀레니엄』 2부에서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여자들을 증오한 남자들’이 등장한다. 여자들은 여전히 약하고 학대를 받는 존재이며 남자들을 여자들을 증오하고 지배한다. 다만 리스베트는 ‘여자들을 증오한 남자들을 증오한 여자’였다. 2부의 소제목이기도 한 ‘휘발유통과 성냥을 꿈꾼 소녀’답게 남자들에게 저항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남자들을 지능적이며 폭력적으로 처절하게 응징했다. 자신과 쌍둥이인 형제가 남자들에게 한없이 수동적인 캐릭터로 묘사된 것을 보면 리스베트가 얼마나 개성이 강한 캐릭터인지를 보여준다. 남성적이고 사회적인 시각으로 보면 리스베트야 말로 사회에서는 존재해서는 안될 인물이지만 인간적으로 본다면 그저 남성들과 권력에 의한 폭력의 희생자이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당한 것과 똑 같은 방식으로 악을 응징하려는 지극히 상식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빈약한 가슴을 확대하는 수술을 받고 야한 속옷을 고르는 전사 리스베트가 아닌 소녀의 모습을 보며 어린 시절의 어두운 과거만 아니었다면 평범하게 살아왔을 리스베트가 상상되었다.

이제 2부를 읽었으니 마지막 3부만 남았다. 리스베트 살란데르와 슈퍼 블롬크비스트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까 하는 기대감에 3부를 잔뜩 기대하고 기다리게 만들지만 3부를 끝으로 스티그 라르손의 이야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더 크다. 3부를 읽게 되면 이런 느낌은 훨씬 더하겠지. 2부 역시 1부와 마찬가지로 ‘일요일 밤에는 이 책을 읽지 말 것’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실의 상속
키란 데사이 지음, 김석희 옮김 / 이레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인도인의 삶은 카스트 제도의 영향 하에 놓여 있다. 사회적으로 카스트 제도를 개혁하려는 움직임과는 별개로 여전히 계급은 그들의 삶보다 위에 놓여 있다. 고단한 삶을 잠시라도 잊고자 대부분은 종교에 의지하지만 이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상층의 계급으로 태어나거나 상실의 땅을 벗어나는 것. 그들은 자유롭고 평등한 미국인이 되기를 원하지만 희망의 땅처럼 보이는 그곳 역시 돈이 지배하는 또 다른 계급사회일 뿐이다. 불평등한 삶은 희망의 땅에서도 여전하다.

히말라야 북동부의 도시 칼림풍에는 열 일곱의 소녀 사이와 은퇴한 판사인 사이의 외할아버지 제무바이와 개 무트, 시중드는 늙은 요리사가 살고 있다.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들이 일으킨 총기강탈사건을 통해 이야기는 이들의 삶을 과거로, 현재로 보여주며 인도 그 자체의 이야기를 그린다. 가난하고 비천하다는 이유로 가장 먼저 경찰의 조사를 받는 요리사의 유일한 희망은 미국에 가 있는 아들 비주다. 아들이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고 믿는 요리사였지만 비주의 현실은 영주권인 그린카드를 얻기 위해 어떤 일도 감수하려 하며 불법이민자가 되어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비참한 삶을 이어가는 존재일 뿐이다. 사이는 고아가 되어 외할아버지 곁으로 돌아온 후 가정교사인 지안과 사랑에 빠지지만 첫사랑인 지안은 네팔계 인도인으로 고르카 민족해방전선과 관계가 있었다. 바로 판사의 집에 난입한 소년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자신의 아내보다 자식보다 자신이 키우던 개 무트를 그리워하는 판사는 영국인에 대한 부러움과 자신에 대한 열등감과 모멸감으로 인도인을 싫어하는 인도인이 되었다.

키란 데사이는 『상실의 상속』에서 작품 속 등장인물의 삶을 통해 서구의 문화와 충돌하는 인도에서 살아가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 모습을 그린다. 과거 영국의 식민지 지배는 인도의 전통 문화와 정체성을 파괴하였으며 깊숙하게 남아 있던 카스트 제도를 돈이라는 다른 형태의 계급제도로 변모시켰다. 판사 제무바이는 과거에 인도인의 정체성을, 사이는 현재의 사랑을, 요리사는 미래의 희망을 상실했다. 요리사의 아들인 비주에게는 돈도, 사랑도, 정체성도 없었다. 그는 가난을 상속했으므로.

이것이 과연 인도만의 문제일까.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모두 다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부와 가난은 똑같이 상속된다. 가난한 사람의 삶과 운명은 가난처럼 냉혹하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비극은 가난한 사람이 이 책을 읽을 만한 마음의 여유조차 없다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착의 론도 오리하라 이치 도착 시리즈 1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추리소설이 어디까지 진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바로 서술형 트릭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식스 센스>가 영상을 이용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었다면 서술형 트릭을 사용한 작품들이야말로 텍스트로만 읽어야 하는 방법이다. 텍스트의 구성과 서술만으로 트릭을 만들어 내고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은 치밀한 구성이 없이는 힘들다. 물론 서술형 트릭을 사용한다고 해서 최상의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리하라 이치의 '도착(倒錯)' 시리즈 중 하나인 『도착의 론도』는 텍스트로 읽으며 즐길 수 있는 최상의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월간 추리 신인상에 응모하기 위해 <환상의 여인>이라는 작품을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야마모토 야스오는 친구가 지하철에 자신의 작품을 놓고 내리는 실수를 저지른다. 지하철에서 원고를 습득한 나가시마 이치로는 이것을 자신의 작품으로 위장해 신인상에 응모하기로 하고 술집 여자가 말해 준 ‘사라토리 쇼’라는 이름을 사용해 신인상에 응모한다. 한편 야마모토 야스오는 자신의 작품이 ‘사라토리 쇼’라는 이름으로 신인상 대상을 수상한 것을 보게 된다. 자신이 가져야 할 부와 명예 등 모든 것을 훔쳐간 사라토리 쇼의 가면을 벗겨내기 위해 야마모토 야스오는 자신의 작품을 도작한 사람을 추적한다.

오리하라 이치는 제목에도 큰 신경을 쓴 모습이 보이는데 작품의 가장 큰 주제가 되는 도작(盜作)과 도착(倒錯)이 일본어 발음(とうさく)이 같다는 것에 론도(주 선율이 반복되는 중간에 다른 주제가 끼어드는 것)라는 음악용어를 결합하여 이야기의 내용을 꿰뚫는 제목을 만들어 냈다. 책의 내용도 제목처럼 이야기가 얽히고 섞여 있어서 주의 깊게 신경을 쓰고 읽어 내려가지 않는다면 저자인 오리하라 이치가 엘러리 퀸처럼 자신만만하게 ‘이 트릭을 풀어보시겠습니까?’라고 도전하는 부분에 와서는 독자는 작가가 얄미워질 수도 있겠다. 물론 오리하라 이치가 자신만만하게 독자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것은 더 숨겨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좋은 추리소설에 해당하는 조건들 중 하나가 모든 트릭과 사건이 해결되었을 때 읽어온 책의 앞부분을 뒤적이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서술형 트릭을 사용한 경우 트릭이 사용된 경우가 더 그러한데 오리하라 이치의 『도착의 론도』는 작가가 마지막에 트릭을 밝힌 후 ‘아하 그래서 그랬구나’하며 책의 앞부분을 뒤적이게 만들었다. 그제서야 도착(도작)의 론도라는 제목이 이해되었다. 물론 작가가 여러 겹으로 꼬아둔 트릭에 속아 작가의 도전을 풀어낼 수는 없었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