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영혼의 편지 2 반 고흐, 영혼의 편지 2
빈센트 반 고흐 지음, 박은영 옮김 / 예담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20세기 초 초현실주의 잔혹극의 선구자인 앙토냉 아르토는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들을 “꺼지지 않는 불길, 핵폭탄, 생생한 살덩이, 알갱이 하나하나를 모두 드러낼 분자들의 유성 폭격, 진정한 삶의 오브제가 울려 나오는 영원히 초인적인 음색, 오후 두 시에 내리비치는 태양의 작열하는 진실, 독보적인 자연의 재현을 통해 내면으로부터 뿌리째 뽑아낸 소용돌이치는 힘의 분출을 목적으로 하는 회화”라고 극찬했다(※『나는 고흐의 자연을 다시 본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로 반 고흐가 여전히 우리를 진하게 감동시키는 이유를, 앙토냉 아르토가 반 고흐와 그의 그림에 보내는, 시원한 대포 소리만큼 강렬한 찬사의 언어들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 점의 가식도 허용하지 않는 청청한(실금만 가도 ‘쩡!’ 하고 산산조각 날 것 같은!) 영혼의 팽팽한 시선으로 그려낸 삶의 핵에 가 닿는데 마음이 울지 않을 삭막한 심장이 있을까.

『반 고흐, 영혼의 편지 2』는 반 고흐가 자신의 천분이라고 믿었던 성직자의 길 대신 늦깎이 화가로 생을 다시 시작했던 1881년 이후 5년간 동시대 화가 안톤 반 라파르트와 주고받은 편지 모음집이다. 육신은 물론 영혼까지 아낌없이 불사르며 “오후 두 시에 내리비치는 태양의 작열하는 진실”을 화폭으로 옮긴 반 고흐의 예술가적 면모는, 쉼없이 그린 그의 그림들뿐 아니라 평생 영혼의 동반자였던 동생 테오와 동료 화가, 지인들과 주고받은 700여 통의 편지들에서도 엿볼 수 있다. 늘 삶의 진실, 자연의 진실과 담대하게 마주했던 그의 타협 없는 섬세한 감성은 역시 가식 없이 올곧고 투박한 편지 문장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근사한 말들로 장식하지 않아도 진실만을 소박하게 담고 있는 문장들은 그의 그림처럼 마음을 뒤흔든다.

안톤 반 라파르트와 주고받은 편지들에는 성직자에서 화가로 인생의 전환기에 선 화가의 고뇌와 새로운 결심, 화가로서의 자기정체성과 양심, 그리고 희망, 천재성이 무르익어가는 열정, 예술에 대한 강직한 신념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무엇보다 하층민들을 바라보는 진솔한 시선은 너무나 따뜻하여 눈물겹다. 내면에 응축되어 있는 모든 힘을 남김없이 폭발시킨 듯한 강렬한 붓질의 전성기 그림들이 탄생하기까지 무수히 시도해 본 초기 그림들은 색채가 어두워도 반 고흐의 인간적인 연민이 고스란히 묻어나 아름답다. 정규 교육의 형식적인 허식에 물들지 않은 자만이 담아낼 수 있는 화폭들은 진솔한 눈부심으로 우리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는 성직자로서도, 화가로서도 늘 죽을 힘을 다해 살았다. 화가로 두 번째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시점에는 더욱 그랬다. 그의 열정적인 신념은 신앙이 되어 그를 삼켰고 이제 나를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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