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상속
키란 데사이 지음, 김석희 옮김 / 이레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인도인의 삶은 카스트 제도의 영향 하에 놓여 있다. 사회적으로 카스트 제도를 개혁하려는 움직임과는 별개로 여전히 계급은 그들의 삶보다 위에 놓여 있다. 고단한 삶을 잠시라도 잊고자 대부분은 종교에 의지하지만 이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상층의 계급으로 태어나거나 상실의 땅을 벗어나는 것. 그들은 자유롭고 평등한 미국인이 되기를 원하지만 희망의 땅처럼 보이는 그곳 역시 돈이 지배하는 또 다른 계급사회일 뿐이다. 불평등한 삶은 희망의 땅에서도 여전하다.

히말라야 북동부의 도시 칼림풍에는 열 일곱의 소녀 사이와 은퇴한 판사인 사이의 외할아버지 제무바이와 개 무트, 시중드는 늙은 요리사가 살고 있다.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들이 일으킨 총기강탈사건을 통해 이야기는 이들의 삶을 과거로, 현재로 보여주며 인도 그 자체의 이야기를 그린다. 가난하고 비천하다는 이유로 가장 먼저 경찰의 조사를 받는 요리사의 유일한 희망은 미국에 가 있는 아들 비주다. 아들이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고 믿는 요리사였지만 비주의 현실은 영주권인 그린카드를 얻기 위해 어떤 일도 감수하려 하며 불법이민자가 되어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비참한 삶을 이어가는 존재일 뿐이다. 사이는 고아가 되어 외할아버지 곁으로 돌아온 후 가정교사인 지안과 사랑에 빠지지만 첫사랑인 지안은 네팔계 인도인으로 고르카 민족해방전선과 관계가 있었다. 바로 판사의 집에 난입한 소년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자신의 아내보다 자식보다 자신이 키우던 개 무트를 그리워하는 판사는 영국인에 대한 부러움과 자신에 대한 열등감과 모멸감으로 인도인을 싫어하는 인도인이 되었다.

키란 데사이는 『상실의 상속』에서 작품 속 등장인물의 삶을 통해 서구의 문화와 충돌하는 인도에서 살아가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 모습을 그린다. 과거 영국의 식민지 지배는 인도의 전통 문화와 정체성을 파괴하였으며 깊숙하게 남아 있던 카스트 제도를 돈이라는 다른 형태의 계급제도로 변모시켰다. 판사 제무바이는 과거에 인도인의 정체성을, 사이는 현재의 사랑을, 요리사는 미래의 희망을 상실했다. 요리사의 아들인 비주에게는 돈도, 사랑도, 정체성도 없었다. 그는 가난을 상속했으므로.

이것이 과연 인도만의 문제일까.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모두 다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부와 가난은 똑같이 상속된다. 가난한 사람의 삶과 운명은 가난처럼 냉혹하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비극은 가난한 사람이 이 책을 읽을 만한 마음의 여유조차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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