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톨른 차일드
키스 도나휴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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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시 「The Stolen Child」는 아이를 훔쳐 가고 그 자리를 아이 대신 차지하여 인간의 삶을 새롭게 시작하는 요정에 관한 유럽의 ‘체인즐링(Changeling) 전설’을 노래한다.

   
  호수에 잠긴
슬루 숲 바위 언덕,
나뭇잎 무성한 섬이 있다.
날개 퍼덕이는 황새가
조는 물쥐를 깨운다.

우리는 딸기와
훔친 빨간 버찌가 가득 잠긴
요정의 술통을 거기 숨겨두었다.

이리 오너라, 인간의 아이야.
거친 들판 물가로
요정의 손에 손을 잡고 이리 오너라.
세상은 네가 알지 못하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나니.
 
   

이 요정을 키스 도나휴의 『스톨른 차일드』에서는 ‘파에리’라고 부른다. 인간의 아이를 자신과 바꿔치기하여 조금도 흐르지 않는 영원한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길 소망하는 숲의 아이들. 이 마법 같은 소설의 영감이 되어주었다는 예이츠의 시를 찾아보면서 우리나라에는 ‘체인즐링 전설’의 원형을 간직한 이야기가 없을까에 문득 생각이 미쳤다.

머릿속을 한참 뒤져서 겨우 찾아낸 옛이야기는, 함부로 버린 손톱과 발톱을 먹고 인간으로 변신하는 쥐 이야기였다. 그 손톱과 발톱의 주인은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에 따라 어린아이가 되기도 하고 영감님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전설에서는 쥐에게 자기 자리를 빼앗긴 사람이 집을 떠나는 시련을 겪긴 하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와 쥐가 가짜임을 증명하고 제자리를 찾는다. 그때 자신이 진짜임을 증명하는 열쇠가 되어주는 것은 ‘고양이’다.

파에리는 요정에게 도둑맞은 아이이기도 하고, 다른 아이를 바꿔치기하는 요정이기도 하다. 파에리가 인간의 아이를 바꿔치기하면 파에리는 그 아이의 삶을 대신 차지한다. 그리고 그 아이는 자신과 자기 삶을 훔친 파에리 대신 파에리 무리의 구성원이 되어, 또 다른 아이를 바꿔치기하여 인간의 삶을 이어갈 순서가 돌아올 때까지 파에리로 긴 기다림의 시간을 인내해야 한다.

그러니까 맨 처음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파에리들은 원래 인간의 아이였다. 그런데 파에리는 인간이었던 유년기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 기다림은 너무나 길어져 파에리가 인간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을 때는 부모도, 자신으로 살아갔을 파에리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자기 시간을 소진하고 그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당연히 인간이었던 자신으로 살지도 못한다. 파에리가 인간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또 다른 아이를 바꿔치기하여 그 아이로 인간의 삶을 이어가는 것뿐이다.

파에리의 진정한 비극은 그들에게만 시간이 멈추어 결코 자라지 않는 어린아이의 육체 속에서 영혼은 나이 들고 성장한다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몸에 갇힌 채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영혼의 영원한 삶은 영생의 축복이 아니라 억겁의 고통이다. 그래서 파에리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자신에게도 시간이 흐르는 인간이 되는 순간을. 그것이 또 하나의 파에리를 만드는 일일지라도.

드디어 원래 ‘구스타프 웅게르란트’라는 이름의 인간 소년이었던 파에리가 헨리 데이를 훔치고 그의 삶을 가로챈다. 『스톨른 차일드』는 ‘나는 파에리였다!’는 가짜 헨리 데이의 고백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여 자신의 모든 것, 엄마, 아빠, 쌍둥이 여동생, 이름, 인생을 도둑맞고 ‘애니 데이’라 불리는 진짜 헨리 데이의 파에리 삶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그토록 인간이길 소망하여 자기 고통을 애니 데이에게 떠넘긴 헨리 데이는 행복했을까? 헨리 데이에게 자기 자리와 시간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파에리가 된 애니 데이는 불행하기만 했을까?

어른이 된 헨리 데이와 아이로 성장을 멈춘 애니 데이는 모두 필사적으로 자신을 되찾으려고, 자신을 놓치지 않으려고 기억을 뒤진다. 헨리 데이는 혹시 자기가 가짜임이 들통 나지 않을까, 파에리들이 다시 자신을 찾아오지 않을까 늘 가슴 졸이면서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럼에도 온전히 헨리 데이가 될 수 없었던 그는 파에리가 되기 이전 유년의 자신과 자기 삶, ‘진짜 나’를 찾아 나선다. 애니 데이는 헨리 데이에게 이름을 빼앗기고 기억의 망각이 진행되는데도 그 기억, 부모와 쌍둥이 여동생이 함께 있는 자기 집의 ‘진짜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쓴다. 현재의 ‘나’를 밀쳐두고 ‘진짜 나’라고 믿고 있는 과거의 ‘나’를 찾기 위한 매개로 헨리 데이는 ‘음악’을, 애니 데이는 ‘종이와 연필’을 선택한다.

그들이 과거의 ‘나’를 데리고 현재의 ‘나’로 돌아오는 시간은 또 다른 ‘나’를 조우하는 화해의 순간이다. 애니 데이는 자기 삶을 가로채어 어른이 되었으면 행복해야 할 헨리 데이가 조금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헨리 데이는 자기 삶을 빼앗긴 애니 데이와 파에리들이 그의 아이를 훔쳐 갈까 봐 두려워하지만 여전히 아이로 머물러 있으면서 그를 두려워하는 애니 데이에게 진심으로 미안해진다. ‘나’는 누구일까? 빼앗긴 ‘나’일까, 빼앗은 ‘나’일까. 언제든 나는 지금 이 순간 현재의 나 자신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현재까지 나와 함께 내 생에 휘말린 사람들과 기억들이다. 그리운, 돌아가고 싶은, 아쉬운 시절에 덩그러니 남겨진 내가 아니라.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이미 나는 그때 내가 아닌 것을.

헨리 데이와 애니 데이, 그리고 파에리들의 이야기는 마지막 마법과 요정 세계의 분위기를 유지하지만, 그들에 대한 안타까움은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 안타까움 가운데도 절로 웃음 짓게 해주는 아름다운 장면들도 많은데, 그중에서도 애니 데이와 스펙이 도서관 지하에 마련해 놓은 비밀 공간에서 책을 읽고 멋진 부분은 서로에게 읽어주면서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좋았다. 애니 데이는 (빼앗기고도) 충분히 행복해 보였다. 오히려 (빼앗고도) 헨리 데이를 지켜보는 일이 아슬아슬 가슴 졸였다. 빼앗고 빼앗기고도 자신에게 남은 환경에 불안해하면서 적응하고 사랑하고 성장하면서 생을 이어 나간다. 헨리 데이와 애니 데이가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열쇠가 되어주었던 것은 바로 서로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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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는 종족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강수정 옮김 / 예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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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캐럴 오츠가 1938년에 태어났으니 그녀는 벌써 일흔의 노작가인 셈이다. 작가로 긴 세월 살아오는 동안 게으름 피우는 일 없이 부지런히 작품들을 써왔으니(장편소설, 단편소설, 그리고 이외 대부분의 문학 분야에서 발표한 작품들이 모두 천 편이 넘는다니 오츠의 근면성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현재 생존한 미국의 여성 작가들 중 가장 대표적인 대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자라는 종족』은 그런 오츠가 2005년에 출간한 단편집으로, 여러 매체에 발표한 단편들을 ‘여성(The Female of the Species)’이라는 주제어 안에 모았다. 책 제목에 ‘종(種, Species)’을 포함시킨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여기에서는 생물학적 종의 뜻뿐만 아니라 사회학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이 단편들은 대체로 미스터리 매거진에 처음 발표된 작품인데 이 사실도 놀랍게 다가온다. 문단을 통해 등단하는 우리나라의 뿌리 깊은 고정관념과는 달리 미국의 경우에는 순문학과 그 외에 대중문학(미스터리, 판타지, SF 등을 포함한 장르문학)을 구분하는 일이 무의미하겠지만, 오츠처럼 문학의 경계에서 자유롭게 행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게 전혀 낯설고 이색적으로 보이지 않는 문학적 토양이 부럽기만 하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모두 ‘여자’가 주인공인 이 단편집에 실린 아홉 단편들도 그런 문학의 경직된 경계에서 한없이 자유롭다. 나이가 어리든 많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딸, 엄마, 아내, 연인인 여자가 늘 있고, 그녀를 속박하는 남자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그 자리에는 살인이라는 극한에 치닫게 되기까지의 섬세한 심리 묘사가 밀도 있게 구조화되어 있다. 단 한 문장도 허술하게 허튼 곳에 있지 않다. 모든 문장은 그 자리에 그 자체로 빛난다. 그 문장들이 그녀들에 대한 깊은 공감을 끌어내게 하고 등골이 서늘한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한다. 얼핏 읽으면 무엇 때문에 여자들이 잔혹해지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오츠는 그것이 무엇이라고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오츠의 문장들 가운데 문득 싸늘한 불꽃이 이는 것이 있다. 그 문장이 여자들의 서늘한 진짜 속내를 드러내준다. 

원서에는 ‘Tales of Mystery and Suspense’라는 부제가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이것이 ‘여자’라는 미스터리와 서스펜스의 향연으로 다가온다. 여기서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는 소설의 특정 분야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단어 자체의 원뜻까지 중의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잔인하기 그지없는 덩치 큰 남자 사이코패스가 등장해 도끼를 휘두르지 않아도 여성만으로도 그토록 강렬한 공포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것은 여성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치명적이고 본질적인 공포다. 그것을 불러내면 아름답고 우아하고 귀여운 그녀들은 잔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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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캡틴 2 오브리-머투린 시리즈 2
패트릭 오브라이언 지음, 이원경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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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국내에 출간된 패트릭 오브라이언의 오브리-머투린 시리즈 제1편 『마스터 앤드 커맨더』에 이어 비교적 빠른 시간인 1년 만에 두 번째 작품인 『포스트 캡틴』이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19세기 초 유럽의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해양모험소설로 바다를 배경으로 치열하게 경쟁했던 당시의 사회의 모습을 정밀하고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당시의 사회는 영국, 프랑스, 스페인 같은 강대국들이 대륙은 물론 해상에서도 패권을 쥐기 위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 시기는 바다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므로 바다를 둘러싼 싸움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특히 나라에 의해 공인된 해적이기도 한 사략선들의 등장으로 해상전에서의 승리는 해당 배의 장교와 선원들의 부로 직접 연결되는 것이었기에 해상의 충돌은 더욱 치열하고 거칠었다. 저자인 패트릭 오브라이언은 치밀하고 정교한 고증을 통해 범선들 간에 펼쳐지는 해상전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책의 말미에 있는 해상 용어 정리를 살펴보면 범선에 관련된 것은 물론 항해술과 포격술과 같은 함상 용어에 대한 고증이 얼마나 자세하고 섬세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결국 오브리-머투린 시리즈는 단순한 해양모험소설을 넘어 당시의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모습은 물론 강대국의 패권을 잡기 위한 나라들 간의 역학 관계를 정밀하게 그려낸 역사소설이기도 하다.

오브리-머투린 콤비와 선원들은 작은 슬루프급 전투함 소피 호를 타고 큰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이해관계 덕분에 군 지휘부에게 자신의 배마저 잃게 되고 하루하루를 고달프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잭 오브리에게 기이한 함선을 맡아보지 않겠느냐는 의뢰가 들어오고 잭 오브리는 당연히 의뢰를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새로 맡게 된 함선은 의뢰 내용 그대로 기괴한 함선이었다. 폴리크레스트라는 이름의 배는 기형적인 설계 덕분에 다른 뱃사람들에게도 비웃음만 사는 배였다. 잭 오브리는 스티븐 머투린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소피호와 함께 활약했던 선원들을 모아 다시 바다로 향하게 된다.

이 작품은 시리즈이므로 전편을 읽지 못했다면 첫 작품부터 읽을 것을 권한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영화로 만들어진 전편의 이야기인 <마스터 앤드 커맨더 : 위대한 정복자>에서 러셀 크로우와 폴 베타니가 연기한 오브리-머투린 콤비를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아쉬운 것은 이제 두 번째 이야기가 나온 시점에 작가의 미완성인 유작을 포함해 전 21권인 방대한 오브리-머투린 시리즈가 과연 몇 권이나 국내에 출간될 수 있을 것일까 하는 것이다. 물론 독자의 입장에서도 빠른 시간 내에 다음 편이 나오길 바라고 출판사에서도 힘내어 전 21권 모두 무사히 출간되기를 바란다. 물론 시간은 꽤나 걸리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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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의 용어사전
나카야마 겐 지음, 박양순 옮김 / 북바이북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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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선물 상자가 있다. 겉에 선물 상자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쓰여진 제법 큰 상자다. 상자를 흔들어 보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상자 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궁금하게 생각하고 여러 가지를 상상해 보며 온통 상자에만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결국 상자 자체와 그 안의 내용물이 무엇일까라는 것에만 집착하게 되면 상자 안에 들어 있을 지도 모르는 금속병정이나 곰 인형을 꺼내지 못한다.

『사고의 용어사전』은 책의 제목처럼 사전적인 개념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낡은 개념들에 새로운 무대를 만들어 주기 위한 무대일 뿐이다. 들뢰즈가 말한 것처럼 개념이 담긴 ‘상자’가 아니라 개념을 위한 ‘무대장치’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한다면 기존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부정하고 불모지를 옮겨다니며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일체의 방식, 즉 노마드(nomade)를 말한다. ‘놀이’라는 용어로 시작하는 이 책에는 ‘현상’, ‘은유’, ‘초월’, ‘존재’, ‘낯설게 하기’ 같은 철학적 용어뿐만 아니라 ‘뜨겁다/차갑다’라는 감각적인 용어, ‘게임’, ‘기계’, ‘화폐’, ‘거울’과 같은 일상용어까지 여러 철학자가 파헤친 개념을 다시 무대 위로 끄집어 낸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선물 상자에서 자신이 원하는 선물을 꺼낼 수 있는 것처럼 자기 스스로 창조한 개념을 무대에 올릴 수 있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이 책에 등장하는 개념들은 철학적인 요소들이다. 각각의 용어에 담긴 역사적인 의미와 배경에 대한 설명 그리고 등장하는 철학적 사유는 기존의 사전적인 의미와 함께 철학적 개념을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노마드(nomade)를 보자. 노마드는 유랑하는 유목민을 의미하며 정착 생활을 부정한다. 농경을 하며 살아가는 국가 형태를 부정하는 것이 본연의 모습이지만 공동체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한다. 얼핏 개개인 혼자만이 절대 자유를 갖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고독한 나’만으로는 진정한 자유를 가질 수 없으며 ‘우리’ 속에서 대비될 때만이 ‘나’는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이렇게 노마드는 탄생한다. 노마드 사상은 국가 형성 원리를 부정하지만 국가의 원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바로 ‘외부적 사유’이며, 이는 기본적인 태도를 교란시키며 다른 원리로 개조하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만들어 내는 강제적이고 지배적인 보편적 사고에 경계심을 갖고 이를 변화시키려 하는 것이 노마드다.

이 책은 완성된 것이 아니며 수많은 용어와 개념들이 추가될 수 있고 기존의 내용 또한 추가적으로 수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용어와 개념들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알고 여러 철학적 관점들을 비교해 보며 독자 스스로의 개념을 무대 위로 올릴 수 있을 때 이 책의 존재 가치는 더욱 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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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스페셜 꽃의 비밀 - 꽃에게로 가는 향기로운 여행
KBS 스페셜 <꽃의 비밀> 제작팀 지음, 신동환 엮음 / 가치창조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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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면 무언가가 떠오를까? 연인을 위해 장미꽃을 한아름 안고 행복한 모습으로 가는 남자를 떠올릴 수도 있고 잘 손질된 화단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할머니를 떠올릴 수도 있으며 아카시아 향기가 듬뿍 밴 달콤한 꿀이나 향수를 떠올릴 수도 있겠고 꽃잎의 수를 세며 피보나치 수열을 생각하는 학생의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꽃의 이미지는 한가로움이다. 목을 길게 뽑아 줄기차게 해를 좇는 해바라기도, 더운 아스팔트 옆에 줄줄이 피어 있는 코스모스도, 길가에 무리를 지어 색색으로 피어 있는 이름 모를 들꽃에서도 한가로움이 느껴 진다. 봄에 잠깐 피고 길가에 수북하게 쌓이는 벚꽃처럼 애처로운 꽃들도 있긴 하지만 여름에 잠깐 살기 위해 몇 년을 땅속에서 지내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여유롭지 않은 사람이 있던가? 꽃은 어쨌거나 한가로운 존재다. 

『꽃의 비밀』은 꽃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려준다. 프롤로그의 말처럼 것처럼 꽃은 인간의 삶에서 절대 떼어 놓을 수 없는 존재다. 태어난 후 첫 생일에 꽃을 선물 받는 것으로 시작해 학교의 입학과 졸업식장에서도 꽃을 선물하며, 사회생활과 결혼식장에서도 꽃으로 축하를 해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음에 이르러도 꽃은 항상 인간의 가까운 곳에 놓여 있다. 이처럼 꽃은 인간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고 있지만 어쩌면 이것은 꽃에 대한 인간들의 집요한 짝사랑으로 보인다. 네덜란드의 ‘튤립 공황’은 꽃에 대한 집착과 탐욕이 낳은 꽃과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큰 재앙이다. 꽃을 투자의 대상뿐 아니라 자신을 가꾸는 데 사용하는 것도 인간이다. 1kg의 장미향이 가득한 오일을 얻기 위해 필요한 장미의 양은 1ha(1000제곱미터)다. 이처럼 인간은 꽃을 소비하고 집착하며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꽃은 인간에게 무한한 행복을 주는 존재다. 가장 자연스러운 미소라는 ‘듀센 미소’를 짓게 하는 것과 굳이 피보나치 수열을 들지 않더라도 꽃의 완벽한 조화로움은 인간에게 가장 편안함을 주는 힘이다. 

꽃은 꽃말을 가지고 있다. 이름 말고도 각각의 꽃에 모양과 향기와 신화 속에서 찾은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꽃이 인간과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친숙하게 지내왔는지를 보여준다. 꽃은 그저 자연의 일부로 피어 있을 뿐인데 인간은 항상 꽃을 가까이 하며 살아왔다. 꽃이 주는 것은 진정한 행복함이다. 꽃의 조화로운 모양도, 은은하게 퍼져 나가는 향기도, 빨갛고 파랗고 노란 자연의 색도, 인위적이고 가식적인 미소가 아니라 자연스럽고 행복한 진짜 미소를 짓게 하는 데도 꽃보다 좋은 것이 있을까? 주위에 작은 꽃을 심은 화분을 두자. 작은 기적이 그대에게 올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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