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는 종족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강수정 옮김 / 예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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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조이스 캐럴 오츠가 1938년에 태어났으니 그녀는 벌써 일흔의 노작가인 셈이다. 작가로 긴 세월 살아오는 동안 게으름 피우는 일 없이 부지런히 작품들을 써왔으니(장편소설, 단편소설, 그리고 이외 대부분의 문학 분야에서 발표한 작품들이 모두 천 편이 넘는다니 오츠의 근면성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현재 생존한 미국의 여성 작가들 중 가장 대표적인 대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자라는 종족』은 그런 오츠가 2005년에 출간한 단편집으로, 여러 매체에 발표한 단편들을 ‘여성(The Female of the Species)’이라는 주제어 안에 모았다. 책 제목에 ‘종(種, Species)’을 포함시킨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여기에서는 생물학적 종의 뜻뿐만 아니라 사회학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이 단편들은 대체로 미스터리 매거진에 처음 발표된 작품인데 이 사실도 놀랍게 다가온다. 문단을 통해 등단하는 우리나라의 뿌리 깊은 고정관념과는 달리 미국의 경우에는 순문학과 그 외에 대중문학(미스터리, 판타지, SF 등을 포함한 장르문학)을 구분하는 일이 무의미하겠지만, 오츠처럼 문학의 경계에서 자유롭게 행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게 전혀 낯설고 이색적으로 보이지 않는 문학적 토양이 부럽기만 하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모두 ‘여자’가 주인공인 이 단편집에 실린 아홉 단편들도 그런 문학의 경직된 경계에서 한없이 자유롭다. 나이가 어리든 많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딸, 엄마, 아내, 연인인 여자가 늘 있고, 그녀를 속박하는 남자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그 자리에는 살인이라는 극한에 치닫게 되기까지의 섬세한 심리 묘사가 밀도 있게 구조화되어 있다. 단 한 문장도 허술하게 허튼 곳에 있지 않다. 모든 문장은 그 자리에 그 자체로 빛난다. 그 문장들이 그녀들에 대한 깊은 공감을 끌어내게 하고 등골이 서늘한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한다. 얼핏 읽으면 무엇 때문에 여자들이 잔혹해지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오츠는 그것이 무엇이라고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오츠의 문장들 가운데 문득 싸늘한 불꽃이 이는 것이 있다. 그 문장이 여자들의 서늘한 진짜 속내를 드러내준다. 

원서에는 ‘Tales of Mystery and Suspense’라는 부제가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이것이 ‘여자’라는 미스터리와 서스펜스의 향연으로 다가온다. 여기서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는 소설의 특정 분야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단어 자체의 원뜻까지 중의적으로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잔인하기 그지없는 덩치 큰 남자 사이코패스가 등장해 도끼를 휘두르지 않아도 여성만으로도 그토록 강렬한 공포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것은 여성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치명적이고 본질적인 공포다. 그것을 불러내면 아름답고 우아하고 귀여운 그녀들은 잔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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