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의 용어사전
나카야마 겐 지음, 박양순 옮김 / 북바이북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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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선물 상자가 있다. 겉에 선물 상자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쓰여진 제법 큰 상자다. 상자를 흔들어 보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상자 속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궁금하게 생각하고 여러 가지를 상상해 보며 온통 상자에만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결국 상자 자체와 그 안의 내용물이 무엇일까라는 것에만 집착하게 되면 상자 안에 들어 있을 지도 모르는 금속병정이나 곰 인형을 꺼내지 못한다.

『사고의 용어사전』은 책의 제목처럼 사전적인 개념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낡은 개념들에 새로운 무대를 만들어 주기 위한 무대일 뿐이다. 들뢰즈가 말한 것처럼 개념이 담긴 ‘상자’가 아니라 개념을 위한 ‘무대장치’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한다면 기존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부정하고 불모지를 옮겨다니며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일체의 방식, 즉 노마드(nomade)를 말한다. ‘놀이’라는 용어로 시작하는 이 책에는 ‘현상’, ‘은유’, ‘초월’, ‘존재’, ‘낯설게 하기’ 같은 철학적 용어뿐만 아니라 ‘뜨겁다/차갑다’라는 감각적인 용어, ‘게임’, ‘기계’, ‘화폐’, ‘거울’과 같은 일상용어까지 여러 철학자가 파헤친 개념을 다시 무대 위로 끄집어 낸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선물 상자에서 자신이 원하는 선물을 꺼낼 수 있는 것처럼 자기 스스로 창조한 개념을 무대에 올릴 수 있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이 책에 등장하는 개념들은 철학적인 요소들이다. 각각의 용어에 담긴 역사적인 의미와 배경에 대한 설명 그리고 등장하는 철학적 사유는 기존의 사전적인 의미와 함께 철학적 개념을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노마드(nomade)를 보자. 노마드는 유랑하는 유목민을 의미하며 정착 생활을 부정한다. 농경을 하며 살아가는 국가 형태를 부정하는 것이 본연의 모습이지만 공동체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한다. 얼핏 개개인 혼자만이 절대 자유를 갖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고독한 나’만으로는 진정한 자유를 가질 수 없으며 ‘우리’ 속에서 대비될 때만이 ‘나’는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이렇게 노마드는 탄생한다. 노마드 사상은 국가 형성 원리를 부정하지만 국가의 원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바로 ‘외부적 사유’이며, 이는 기본적인 태도를 교란시키며 다른 원리로 개조하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만들어 내는 강제적이고 지배적인 보편적 사고에 경계심을 갖고 이를 변화시키려 하는 것이 노마드다.

이 책은 완성된 것이 아니며 수많은 용어와 개념들이 추가될 수 있고 기존의 내용 또한 추가적으로 수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용어와 개념들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알고 여러 철학적 관점들을 비교해 보며 독자 스스로의 개념을 무대 위로 올릴 수 있을 때 이 책의 존재 가치는 더욱 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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