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가진 자들은 냉소적이지 않다.
자신들의 사상을 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압제의 희생자들도 냉소적이지 않다.
그들은 증오로 가득차 있으며
증오란 것은 다른 강한 열정들과 마찬가지로
부수적인 일련의 믿음들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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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년 12월 6일
오늘은 도서관의 내 자리 곁에
스트라스부르의 부르조아지임에 분명한 노신사가 앉았다.
나는 그가 처음에 대학의 노신사가 아닐까 생각하였으나,
그는 앉자마자 가방에서 '프랑스 스와르'를 꺼내서 표제도 읽지 않고
크로스 워드로 곧장 달려갔다. 그것이 이상하게도 나를 실소케했다.

이 부르조아지의 머리속에는 지금 무엇이 들어있을까?
가로, 세로의 빈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
그는 접속사에서부터 천문학 등에 이르는 광범위한 인간의 지식을
단어로 집약시키고 있을 것이다.
단어로 집약시킨다. 그 단어 속에 들어있는 인간의 노력을
완전히 무화시키면서 말이다.
그 부르조아지야말로 모차르트나 바하의 음악을 들으면서
태연히 인간을 학살할 수 있는 개같은 자식들의 후예인 것이다.
나는 그가 사르트르의 '구토'속에서 갑자기 나를 놀라게 하기위해서,
아니 즐겁게 하기 위해서 튀어나온 희극배우같이 느껴졌다.
도서관에 점잖게 앉아,
몇 시간이고 퀴즈풀이에 전념하는 스트라스부르의 부르조아지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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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정치가들은 천재적이었다.
'들어찬 주장마다' 들어차서
'울랴고 왔던가 웃으랴고 왔던가'를
심각히 고민하는 대중을 위하여
더 많은 양주장 설립 허가를 발급한다.

매춘제도를 금지하는 법률을 통과시키라는
여성단체의 호소는 당일치 신문 기사로만 현실적 가치를 얻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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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한 하늘가에

내 가슴이 파랗게 부서지는 날

코스모스는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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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놉티콘- 정보사회 정보감옥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63
홍성욱 지음 / 책세상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그동안 (나에게는) 개념적 존재였던 '빅 브라더'가

실제 사회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그 역사와 사례, 그에 반하는 운동들을 살펴보고 있다.

 

푸코에 대한 다른 학자들의 비판도 재미있었던 부분.

 

 

 

불신의 제도화.

 

감시와 역감시.

 

권리와 권리의 충돌.

 

통치자가 있었다. 통치자는 권력을 가졌다.

통치자를 감시하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의회를 만들었다. 의회도 곧 권력화 되었다.

의회를 감시하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시민단체를 만들었다. 다음은?

 

이미 미국에서 60-70년대 개발되었던 화상 전화는

사람들이 전화받는 자기 모습을 보이기를 꺼려했기 때문에

실패하였지만 오늘날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권리는 항상 협상되고 조정된 권리이다.

 

 

 

파놉티콘에서 권력은 시선의 비대칭에서 나왔다.

오늘날 전자 파놉티콘에서

권력은 시선이 아닌 정보의 비대칭에서 나온다.

 

푸코도 후기에 지적했듯 권력이 항상 감시하고 통제하고..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도 생각나고..

 

 

파놉티콘을 생각해낸 벤담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란 명제로

유명한 공리주의자,자유주의자라는 점도

곰곰히 생각해볼 만한 문제이다.

-다수가 갖는 정당성에 대한 사상적 뿌리일까? 

 

 

 

어쨌거나,

다른 학자들은 가벼운 에피소드 정도로 생각했던

벤담의 파놉티콘에 관심을 기울이고 하나의 담론을 만든

푸코의 시선이 놀랍다.

 

조지 오웰의 빅 브라더 개념도 참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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