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계 살림지식총서 85
강유원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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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의 마지막까지 읽다보면 '왜 이렇게 아둥바둥하며 살아야할까?' 하는 질문이 절로 떠오르고, 그 복합적인 원인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다. 


2.


   
  '이게 아닌데'라는 의심은 헌신의 감소를 낳고, 헌신의 감소는 또다시 체제의 허약함으로 귀결되고, 그러다가 로마는 무너져 내린 것이다.
 
   

내가 알 수 없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할 텐데, 체제는 오히려 더 강화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어쩌면 '이게 아닌데'라는 의심은 극소수이거나 다수이되 힘없는 사람들만의 생각일 지도 모르겠다.


3.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약간 허망한 기분이 들 수 있다. 이 책에 소개된 마지막 고전인 다윈의 <종의 기원>의 끝줄에서 말하고 있듯, 이미 고대 서사시들은 알고 있었던, 세계의 쓸쓸함에 대해서 '수많은 세월이 지난 다음에도 또다시 같은 것을 알아차리는 건 너무 허망하다.' 마찬가지로 '알기 위해' 수많은 책을 자기 속에 넣어보고 빼보고 한 뒤에 알게 되는 것이 고작 '알 수 없음'이라는 것 역시 허망하다. 이 이야기는 수천년 전의 잠언 '너 자신을 알라'가 의미하는 바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내가 믿는 것처럼 '아는 것이 힘이기 이전에 과정으로서의 즐거움'이라면 그것은 자신의 무지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이다. 


4.
지식의 영역이 극도로 분화되고 분업화된 전문화 시대에 책날개에 적힌 저자의 계획은 다소 무리스러워 보이나 그만큼 용감하고 가치있어 보인다.  

 

   
  '철학은 객관세계를 잊은 채 공상에 몰두하고, 자연과학은 이간을 내버려둔 채 물신 숭배에 빠져, 그 둘이 도저히 화해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뭐든지 해볼 작정이다.' 
 
   

 

 

주요 고전들이 공상이 아니라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태어났음을 단단한 문체로 밝히고 있는 이 책은 저자의 이런 희망사항이 고스란히 투여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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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미술관 - 발칙함을 넘어 금기를 깬 천재 예술가들의 문제작
조이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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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되기, 보이스되기


처음에는 요즘 길바닥에 깔린 낙엽처럼 발에 차이는, 그렇고 그런 미술책 중에 하나겠거니 했다. 하지만 웬걸. 아니, 웬걸 말하기 전에 좀 아니다 싶은 것부터 말하자. 이 책의 초판은 <위험한 그림의 미술사>라는 제목을 달고 2002년에 나왔고, 개정판은 제목을 <위험한 미술관>으로 바꾸고 마지막 전시실에 요셉 보이스를 추가해서 2007년에 나왔다. 바뀐 제목에는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가상의 기획전시라는 의도가 깔려 있다. 그리고 각 장의 시작은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소설'로 시작된다. '읽는 즐거움과 당시의 시대 분위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려는 목적이다.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가혹한 평가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게는 이 '소설'로 인해 읽는 즐거움을 오히려 뺏긴 기분이다. 사용된 언어들은 평단의 언어면서 상황은 소설적 상황이라니. 너무나 어설퍼서 읽기 민망했다. 여기까지. 저자는 소설가가 아니므로 다양한 글쓰기의 시도에 박수를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읽는 즐거움'을 고려했을 저자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각 장의 앞부분에 있는 소설에 있는 즐거움은 '쓰는 즐거움'쪽이 더 크지 않았을까?) 

이 책의 미덕은 각 전시실에 소개된 미술가와 그 작품을 둘러싼 시대적 상황을 넓고도 깊게 다루고 있다는 데 있다. 물론 많은 미술 교양서적들이 표방하고 있는 가치이긴 하지만 그걸 제대로 해내는 책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대게는 작품 혹은 작가 자체, 혹은 그 작품이 불러일으킨 가십적인 센세이션들, 아니면 미학이거나. 책 자체에 대한 얘기는 아마도 이쯤에서 끝나지 않을까 한다.

 
일단 작품 하나 보고 간다.




책에는 같은 제목으로 더 멋진 사진이 실려 있지만 인터넷에서 아무리 허우적거려도 그 사진은 찾을 수 없고 우리집에는 스케너도 없어서 같은 제목의 다른 작품들을 골랐다. 어차피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건 낙서된 지폐나, 칠판, 맘모스 화석 앞에 서 있는 자신의 사진이 아니라 'Kunst(예술)=Kapital(자본)'이라는 메시지니까 뭐든 상관없으리라. 기억해둘 만한 공식이다. 더불어 다음 낙서도 기억해둘 만하다.



흔히들 이 두 사진의 시간차를 두고 그 사이에 이 작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궁금해하곤 한다. 그것은 두 번째 메시지가 일종의 '변절'로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 사람은 '미술은 돈이 안 된다'는 소리를 얼마나 들었을 것인가(자기가 자신에게 한 말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향해 이렇게 큰 소리 친 (혹은 절규한) 작가를,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기도 하고 내심 응원하기도 했으리라. 그런데 다시 칠해진 벽에 씌어진 말은 그렇게 낭만적인 응원을 보냈던 사람들을 무색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변절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여기다. '순수하고자 했던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런 속물이 되었나' 이것이 두 낙서를 대하는 대게의 느낌과 생각들인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볼 때는 두 낙서에 가치관의 변화라든가 하는 '변절'은 없는 것 같다. 내게는 같은 메시지의 다른 표현으로 보이니까 말이다. 보이스의 '예술=자본'은 이런 뜻일까? 예술은 자본, 즉 돈이다. 큰 만화로밖에 안 보이는 작품이 어째서 90억이나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 것도 잘만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 뭐 이런 소리일까? 아니면 자본에 얽매인 예술을 비판하기 위한 것일까?



'예술=자본'이라는 보이스의 말은 '예술(작품)은 자본(돈)이다'라는 말이 아니라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자본처럼 고정되지 않고 유통되면서 새로운 가치를 생산해 내는 것'이라고 한다. 다음은 보이스의 말이다.


인간의 능력이야말로 본질적인 자본이다. 비록 그것이 아주 적은 것일지라도 그렇다. 그 능력은 얼마든지 발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능력이, 그리고 능력과 더불어 자본 개념이 자본주의의 권력구조에서 해방되고 자치의 영역으로 옮겨지게 될 경우에만 계속적인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창조력이 바로 자본이다.



 
자본의 속성이 이렇게 매력적일 수도 있다니. 감동받았다. 무당, 사회개혁가, 교육가로서의 예술가였던 보이스에게 반했다는 말이 솔직하겠다. 보이스의 생애에서 지극한 선(善)은 지극한 미(美)와 같다는, 누구나 추구하고 싶어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의식에서 지워지거나 포기하게 되는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일까? 저자의 말로는 이 책이 보이스에 관해 가장 많이 담겨있는 책일 거라고 하던데,(보이스에 대한 책이 국내에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 책에 있는 내용만을 본다면 요셉 보이스는 진정 자기 삶을 예술로 만들었던 사람인 것 같다. 

이 책의 제4전시실은 소변기를 샘으로 둔갑시킨 걸로 유명한 뒤샹에 할애되어 있다. 이 책을 읽고 뒤샹에 대해서도 달리 생각하게 된 점이 많지만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제4전시실의 말미에(느낌상으로는 뒤샹과 보이스의 사이에 껴서)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던 워홀과 제5전시실에서 바쁘던 보이스의 비교 부분이었다.(물론 뒤샹과 보이스의 비교도 재미있엇다.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둘 다 '결과보다는 과정'으로서의 예술을 했지만 뒤샹에게 예술은 '생각'이고 보이스에게 예술은 '행동'이었다.)  

  

두 사람의 만남 후에 보이스가 했다는 말이다.

비록 워홀은 나와는 완전히 다른 극단적인 방법으로 작업을 하지만 그는 어떤 의미에서 내 형제와 같다


워홀! 보이스가 '뒤샹의 침묵은 과대평가되었다'고 한 것처럼 나는 워홀이 과대평가되었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워홀은 예술가의 역할을 굉장히 축소시켰다. 보기에 따라 이것을 확장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들만의 성'에 있는 것이 확장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미술/미술잡문] - 공공미술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그들이 말하는 '확장'이란 평론가의 역할이 아닐까? 말들은 훨씬 많아졌으니 말이다. 
워홀의 유명세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치적이거나 윤리적 인간이 되기보다 '미학적 인간'이 되도록 하는데 일조했다. 그가 죽은 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명성은 수많은 추종자들을 낳고 비슷비슷한 예술적 경향을 복제하고 있다. 무엇인가에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눈'일지도 모르겠다. 워홀의 작품은 시각적으로 충분히 매력적이고 대중적이지만 보이스의 작품은 개념적이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워홀보다 보이스가 유명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뿐만이 아니라 외국에서도 당연한 일이다.(독일에서는 예외라고 한다.) 워홀에게 있어서도 보이스의 그것과는 다른 맥락에서 '예술은 자본'이었다.

나는 내 심미안을 믿는다. 뒤샹과 보이스의 예술은 어느 쪽이든 아름답다. 하지만 워홀은 좀 아닌 것 같다. 어려운 이야기를 다 떠나서 일단 그의 작품을 보고 예쁘거나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안에 뭐가 들은 것 같지도 않다. 나에게 워홀은 프로이트와 같다. 선구자로서만 의미를 갖는 존재. 물론 그것이 대단한 것이라면 대단한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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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rime numbers are what is left when you have taken all the patterns away.
I think prime numbers are like life.
They are very logical  but you could never work out the rules,
even if you spent all your time thinking about them.

2.
Mother used to say that it meant Christopher was a nice name
because it was a story about being kind and helpful,
but I do not want my name to mean a story about being kind and helpful.
I want my name to mean me.

3.
Then I sniffed the air to see if I could see what the air in the garden smelled like.
But I couldn't smell anything.
It smelled of nothing.
And this was interesting, 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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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재언(心不在焉)                          마음이 거기에 있지 않으면
시이불견(視而不見)                          보아도 보이지 않고
청이불문(聽而不聞)                          들어도 들리지 않고
식이부지기미(食而不知其味)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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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를 들어, 내 감정이 아주 흥분되어 있는 밤에는 내 자신이 신처럼 연주할 수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사실, 그런일이 일어난다. 그러나 다른 날 밤에는 내 자신이 그저 단순히 콘서트의 마지막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고민한다. 이런 상태를 설명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어쨌든 피아노를 치고 있을 때는 나 자신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쏟아 붓게 된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 만약 지네에게 그 많은 관절을 어떤 순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묻는다면, 지네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2.
D.B: 당신이 천재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는지요? 만약 그렇다면 언제 그렇게 느꼈습니까?
G.G(글렌 굴드):…(중략)…당연히 나에게도 이 단어로 수식될만한 가치는 없습니다. 아주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실제로 이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상대적인 표현에 머무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3.
나에게 중요한 것은 음악과 만나는 것이지, 사람들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4.
그래서 주최측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기서 연주할 수 없습니다. 협주곡을 교향곡으로 대신해야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감기에 심하게 걸려서 더 이상 순회공연을 계속할 수 없게 됩니다." 오케스트라는 협주곡 대신에 교향곡을 연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옷을 두껍게 입는 것으로 타협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사회자가 무대에 나와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코트를 껴입고 목에 머플러를 두르고는, 웃음소리로 가득한 연주회장에 등장했습니다. 모자를 썼던 기억은 없지만, 손가락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잇는 하프 미트(half mitt)를 끼었던 건 분명합니다. 그리고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연주했습니다. 단지 그것뿐입니다. 그 후 온갖 신문 잡지에서 내가 모든 콘서트에 이런 복장으로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퍼트리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세상에 퍼지기 시작하면 거의 대부분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제멋대로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5.
나는 항상 연주가에게는 두 가지 카테고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사용하는 악기를 잘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전자에는, 역사책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믿는다면, 리스트나 파가니니와 같은 전설적인 사람들을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이전의, 악마에 홀렸다고 자칭하는 상당수의 명인들도요. 이 카테고리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들과 악기 사이에 어떤 관계가 존재하는지를 듣는 사람에게 인식시키려고 애스는 음악가들입니다. 그들은 이 관계가 우리의 관심 대상이 되도록 행동합니다. 두 번째 카테고리에 속한 음악가들은 반대입니다. 그들은 연주의 메커니즘이라는 문제를 생략하고, 자기 자신과 주어진 스코어 사이에 직접 관련이 있는 환상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합니다. 그 결과, 듣는 사람들이 연주보다 음악 자체에 관련된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을 도와줍니다.
…(중략)…
나는 그와 같은 장르에 속하는 연주가가 만들어내는 것은 하나의 '환상'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어떤 음악가도 자신의 악기의 기계적인 변천을 전체적으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략)…
연주가가 베토벤에게서 베토벤 그 자체를, 모차르트에게서 모차르트 그 자체를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은 분명히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도 이것은 '환상'입니다.

6.
나에게는 악마적인 명인의 신화 같은 것은 흩어지게 해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명인은 몇 개의 소나타 전체를 단번에 이해하죠. 모든 것을 한꺼번에 연주해 버립니다. 사후의 조작이 제공하는 여러 가지 선택은 거부하죠.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훌륭하고 성실하며 속임수가 없는 행동을 했다고 평가받습니다. 또, 약간의 미스터치가 남은 경우에도 그의 인간적인 약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사람들은 항상 어떤 작품을 처음 음에서 마지막 음까지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또는 그렇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음악적인 완전함과 혼동하는데,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 아주 화가나는 사고방식입니다.

7.
레코딩은 분명히 독재적인 것입니다. 그 최종 결과가 스튜디어에서 나올 때, 내 마음이 내키는 대로 다뤄지고 구성되며 그때의 내 기분에 따라서 방향이 정해진다는 의미에서는 말이죠. 반드시 다음 주에도 같은 방식으로 구성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거죠. 레코딩이 세상에 나왔을 때, 그것에는 완전히 나에 의한 착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민주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세상에 나온 후는 그것이 절대로 내가 들었던 것과 동일하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니까요.

8.
내가 통감하는 것은 모차르트가 항상 아이인 채로, 아이처럼 음악에 반응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철저한 노출증 환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이처럼 무엇보다 먼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했습니다.
…(중략)…
그런데 내가 보기에 모차르트는 어른이 갖고 있는 놀라움의 감각을 갖고 있다고 보여지지는 않습니다. 그가 색다른 것을 할 지수는 아주 낮습니다. 베토벤과는 반대로 그는 허를 찔러서 사람을 놀라게 하지는 않습니다. 베토벤이 의외의 조바꿈을 하는 것은 사람을 놀라게 해서, 작품에 혁신적인 내용이나 특성, 그리고 개성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모차르트의 경우는 전혀 다릅니다. 그것은 '싫어, 오늘밤은 침대에서 밥 먹을 거야'라고 외치면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것 같은 것입니다. 그가 놀라게 하는 방법은 그런 종류의 것입니다.
D.K: 그렇다면 그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G.G: 그것은 아마도 그가 아주 접근하기 쉬운 사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마음 편히 상공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의 작곡가입니다. 그의 음악은 다른 일을 하거나, 신문을 읽으면서 즐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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