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받은 식탁 - 세계 뒷골목의 소울푸드 견문록
우에하라 요시히로 지음, 황선종 옮김 / 어크로스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1. 당신이 먹는 것을 말해달라

 

"Dis-moi ce que tu manges, je te dirai ce que tu es."

(Tell me what you eat and I will tell you what you are.)

본 직업인 법률가보다 미식가로 더 유명한 브리야 사바랭(Anthelme Brillat-Savarin)이 자신의 책 〈맛의 생리학 Physiologie du Gout〉에서 한 말이다.(1825) 그로부터 몇 십년 후 독일의 철학자 포이어바흐(Ludwig Andreas Feuerbach)는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에 관하여 Concerning Spiritualism and Materialism>라는 글에서 "Der Mensch ist, was er ißt."라고 했다.(1863) 구글 번역기로 돌리면 '사람은 자기가 먹는 무엇'이라는 뜻이 나온다. 바로 "man is what he eats."라는 명제다.

이런 말들보다 더 유명한 "you are what you eat."은 미국의 영양학자 빅터 린드라(Victor Lindlahr)의 말이다.(1923)

셋 다 특별히 심오한 뜻은 없어 보인다. '철학자' 포이어바흐가 끼어 있어 뭔가 다른 심오한 뜻이 있을 것만 같지만 물질적인 것에서 정신적인 것이 나온다고 생각했던 유물론자 포이어바흐의 말 역시 글자 그대로가 아닐까. '내가 먹은 것이 나를 형성한다'는 소리. 여기서 '취향'을 찾든 '음식의 인문학'을 찾든 '다이어트'를 찾든 그것은 받아들이는 사람 나름이겠다.

셋 중에 어떤 말이 가장 '정치적'인가?

 

 

2. 그들만의 식탁

이 책은 '차별'이라는 주제로 음식에 접근한다. 저자는 '음식'이라고 했을 때 보통은 떠올리기 힘든 '차별'이라는 정치적인 주제로 '낮은 곳'들을 취재했다. 저자는 이런 관점을 후천적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태생부터 이런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다. 저자 우에하라 요시히로는 전근대 일본의 최하층 신분이 살던 '부락' 출신이다.

 

1873년 일본의 부락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소개하는 음식들은 케이블TV의 '복불복쇼'에 나왔던 혐오식품(혹은 건강식품)이나 디스커버리채널의 'MAN VS. WILD'에서 주인공 베어그릴스가 먹는 날것들과는 다른 차원이다.

하지만 결코 무거운 책은 아니다. 에필로그에 나와있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에는 '폐쇄적이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니게 되는 부락 문제를 넓은 범위에서 다루면, 재미있는 글이 되고 많은 사람이 과심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자칫 무겁고 심각하게 빠질 수 있었던 주제를 '음식'이라는 소재로 접근한 발상이 놀랍다.

 

저자는 그들의 식탁에 찾아가 함께 식사를 한다. 취재 중 만난 미국 흑인이 "우리 집의 소울푸드가 가장 맛있다."고 한 것처럼, 사실 이방인이 '소울푸드'의 맛을 제대로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사실은 소울푸드가 단순히 음식, 맛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엇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저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들의 식탁에 앉아 함께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서술 방식은 건조하고, 맛에 대한 현란한 표현도 없다. 그저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담담하게 풀어낼 뿐이다. <지식e>처럼 고민거리를 한아름 안겨주는 것도 아니고, 읽으면서 약간 비슷한 느낌이 들었던 로버트 설리번의 <쥐들>이라는 책보다는 훨씬 흥미롭다.(사실 아마추어가 찍은 흑백 사진과 취재라는 형식 외에 비슷한 점은 거의 없다. 절판되어 구하기도 쉽지 않겠지만 쥐에 관심이 있지 않거들랑 읽지 말길. 나도 읽고는 버려버렸으니까.)

 

미국 흑인들의 프라이드치킨이라는 '익숙함'으로 시작해서, 각종 차별의 역사가 녹아있는 음식들로 '놀라움'과 '씁쓸함'을 선사하다가, 저자의 고향 일본 부락으로 돌아가 부락음식을 먹으며 추억을 회상하는 '따뜻함'으로 마무리한다.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소울푸드' 중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역시 '고슴도치 요리'였다. 이방인인 저자가 물어보자 '전혀 먹지 않는다'고 능청을 떠는 집시들의 태도, 식재료로는 듣보잡인 고슴도치를 먹는다는 사실, 고슴도치를 잡는 방법 등 모두 흥미로웠다.

가장 흥미를 끌었던 고슴도치 요리 이미지를 얻고 싶어 열심히 구글링을 해보았지만 이 정도.

 

 

 

3. 우리의 소울푸드

이 책은 열려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 읽고나면 자연스레 호기심이 생긴다. '우리의 소울푸드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개고기, 막창, 곱창, 순대, 족발, 어묵, 부대찌개, 닭똥집, 설렁탕, 각종 국밥 등등

 

개인적으로 떠오르는 것들을 적어보았다. 적다보니 기준이 애매하다. 서민들의 음식이 모두 소울푸드인가? '차별'이라는 정치적 행위가 있어야 원뜻에 충실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진짜 소울푸드는 내가 진짜 듣도보도 못한 음식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차별받은 집단은 대체로 가난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묶어서 생각해도 크게 벗어날 것 같진 않다.

 

일본의, 미국의, 네팔의 소울푸드가 아닌 우리의 소울푸드. 너무 무겁지 않게 않게 딱 이 책처럼만 해서 하나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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