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은 왜 움직이지도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아무 일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지 항상 물어보는 아이들의 질문을 언급하며, 예술문화 비평가인 존 버거는 그런 불만을 단 하나의 의문으로 요약했다. “왜 이 동물들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못한가?” 버거의 답변은 그가 19세기 산업화 과정에서 ‘동물 주변화’라고 부르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것은 인간 경험의 중심에서 동물을 제거하는 일이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공공 동물원이 생겨나기 시작한 시점은 일상생활에서 동물이 사라지게 되는 시기였다. 사람들이 동물을 만나고 관찰하고 구경하러 가는 동물원은, 사실 그런 만남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기념하는 곳이다.”
2.
바라건대 분명히 밝혀졌으면 하는 점은, 모아 놓은 동물들이 우리의 시선에 보답해 주기를 얼마나 많이 바라느냐 하는 것과 상관없이, 그리고 그들이 우리의 시선을 피할 때 얼마나 많이 실망하느냐와 상관없이, 동물공원을 든든히 받쳐주는 뼈대가 무너져 내리는 시점은 정확하게 그들이 우리와 ‘마주 볼’ 때라는 사실이다. 결국 동물이 우리와 마주보며 우리와 자신이 처한 곤경에 대해 무언가를 아는 듯할 때보다 동물공원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더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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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요된 ‘침묵’이 아마 현대 동물원을 규정짓는 특징일 것이다. 만일 동물 한두 마리가 그에 반하는 행동을 할 경우, 가령 여태까지 잠잠하던 고릴라나 언제나 사랑스럽던 침팬지가 사육사를 맹렬하게 공격함으로써 대중 앞에서 자신은 우리가 마음대로 상상하고 싶어 하는 대로 항상 그러한 존재는 아니라는 점을 입증한다면, 그 동물은 신속하게 다시 침묵하도록 제재를 받거나, 아니면 영원히 그렇게 되는 처벌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혼자서 혹은 아이들을 동물원에 데리고 가서 야생동물을 구경한다. 그리고 이런 동물원은 다른 무엇보다 매력적으로 보인다.
3.
나머지 새끼 세 마리도 곧 잡혔다. 그 중 하나는 자기 코를 앞다리 사이로 밀어 넣더니 뒷다리에다 묶어서 ‘몹시 힘들게 숨을 쉬면서 땅바닥에 커다란 자루처럼 누워 있더니’ 질식해 죽었다.
4.
분명한 사실은, 해외로 진출한 유럽인들의 활동을 고발하려 한 쇼는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점이다. 신빙성을 상당히 강조하면서, 엄격하게 통제된 쇼의 환경 속에서 진행된 전 세계 토착 종족들의 전시를 통해서, 독일과 기타 유럽 국가들의 주요 도시 다수 대중들은 자신들의 식민지 소유물인 ‘원주민들’과의 직접적인 체험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이들 쇼는 식민지에 들이는 노력이 자기네 땅을 점유당한 토착민들 입장에서나 그런 땅을 점령하고 있는 유럽인들에게나 모두 유리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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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들과 해부학자들의 경우 쇼를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만 여겼다. 그래서 어떤 방식의 연구가 윤리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5.
그렇다고 이것이 사람 쇼의 마지막 장면이 된 것은 아니다. 다른 모습을 띄고 있긴 하지만 이들 쇼는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이들 쇼를 닮은 모습들이 토착 종족들에 대한 20세기 말의 다큐멘터리나 오늘날 미국 텔레비전의 낮 시간대 토크쇼에 나오는 ‘기괴한 쇼(freak show)’에서 보인다.
6.
빨간 피터가 말하는 요점은 인간들이 말하는 ‘자유’는(그가 든 예를 따르자면 공중그네 곡예사들이 공중을 떠다니는 동작) 원숭이 시절 그가 알던 자유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단지 자유에 대한 매우 구속적인 환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바는, 인간 사회에서 진정한 자유는 있을 수 없고 ‘트인 느낌’도 있을 수 없다. 다만 짧고 갑갑한 모방이나 연기가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7.
놀랍게도 빨리 하겐베크의 공원은 낙원에서 방주로 변했다. 야생상태에서는 사방으로 포위되었던 동물들이, 세상 동물들 최고의 친구이자 마지막 희망이 된 너그러운 노인의 손에서 도피처를 찾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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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거의 모든 동물원이 받아들인 방주의 비유는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동물원이 존재하는 데 상당한 정당성을 부여해주었다.
8.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겐베크에 대해 듣다가 사람 쇼 이야기를 하면 깜짝 놀라고 마는데,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이렇게 물어본다. “당신 이야기는 그가 실제로 사람을 동물 전시하듯 동물원에서 전시했다는 건가요?” 나는 대답하기를, 단연코 하겐베크가 사람을 동물처럼 전시하지는 않았다고, 그는 아주 분명히 사람을 사람으로 전시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이미 주장했듯이 이들 쇼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필수적이었다. 첫째, 관람객들은 자신들이 보고 있는 것이 실제로 회사가 주장하는 대로, 전시된 사람들이 ‘진짜’ 그대로라는 확신을 가져야 했다. 둘째, 전시된 사람들이 자신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열등하다는 확신을 가져야 했다. 즉 ‘원주민들’은 그 자연스러움이나 아름다움 때문에 존중되는 것이며, 그렇다고 해도 중요한 문화적 업적 면에서 볼 때 유럽인들보다 열등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9.
감금 상태의 고릴라는 다른 모든 이유보다 우울증과 외로움 때문에 죽는다는 당대의 일반적인 평가에 따라 이 장교는 고릴라에게 두 소년을 유럽까지 딸려보내 고릴라가 죽거나 팔릴 때까지 함께 살도록 한 것 같다. 이런 조치는 장교에게는 틀림없이 완벽하게 이치에 맞는 일이었을 테고, 하겐베크에게도 분명히 그러했을 것이며, 아마 두 아이들에게도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이치와는 별도로 이 사진은 독일어로 된 제목 때문에 더욱 증폭되는 아주 불편한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 뜻을 풀이하면 ‘오른편에 예언자, 왼편에 예언자, 가운데의 속물’이다.
1774년 괴테가 인상학자 요한 라바터와 교육 개혁가인 요한 베르나르트 바제도 사이에 앉아서 하게 된 저녁 식사를 기념하며 쓴 짧고 해학적인 시에서 따온 이 제목은, 해학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이 사진에 경솔함만 더해주었다. 식사에 대한 이야기에 다르면, 라바터와 바제도가 자신들의 여러 놀라운 아이디어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동안 젊은 괴테는 조용히 앉아서 자기 음식을 먹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고 한다. 두 사상가들은 정신에 대한 문제로 여념이 없는 동안 감각론자는 더 임박한 문제에만 집중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면 이 그림에서 그토록 당혹스럽다는 점은 대체 무엇인가? 나는 이 사진을 이 책을 마무리 짓는 데 도와준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준 바 있다. 그들의 반응은 상당히 다양했다. 어느 예술사가는 현대의 골고다, 즉 구세주 옆에 잇는 두 강도 이야기의 배경이 연상된다고 했고, 어느 빅토리아 시대 문학 전공자는 이 사진이 보는 사람을 포함하여 수치심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했으며, 미국의 인종 문학 전문가는 인종 문제를 제기했고, 한 스튜디오 미술가는 이 사진이 세 인물의 상대적 가치, 즉 예언자와 이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이 사진이 사로잡힌 존재를 보여주는 문제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기에 이 사진이 불쾌한 이유는 지쳐버린 듯한 침묵 속에서 상황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는 듯한 주인공들의 인상 때문이다.
이런 사진을 보다 보면 우리는 나름의 해석을 붙이는 상상을 하게 되는데, 하겐베크의 전시가 통제하려고 하던 바가 바로 그런 해석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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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웅변을 관리하는 것’은 사로잡힌 동물의 운명을 보고 상상하는 관람객들의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려고 하는 하겐베크 공원의 근본적인 수법이다. 하겐베크의 혁신적인 전시에서 너무나 공들여 창조해냈으며, 샌디에이고 야생동물공원과 디즈니의 동물왕국 같은 현대 동물원에서 너무도 잘 계승하고 있는 자유에 대한 환상은, 동물들에게서 드러나는 감정표현을 통제한다. 가령 우리 안에서 구부정하게 앉아있거나 팝콘과 핫도그와 솜사탕을 씹으며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동물 사진에서, 우리는 즉시 사로잡힘의 문제를 읽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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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상적인 환경은 동물 감금의 근본적인 성격을 가리고 있다. 사람 쇼에 전시된 사람들이 회사에서 구사한 전략에 저항했다면, 우리의 새 동물원 전시에서 동물들은 식물과 모형 나무 등에 둘러싸여 있어서 관람객들에게 의문을 제기할 만한 목소리를 내기에 훨씬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