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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의 탄생
니겔 로스펠스 지음, 이한중 옮김 / 지호 / 2003년 8월
평점 :
품절
<동물원에 가자>
2007년 10월 18일 목요일 한겨레 매거진 <Esc>에는 동물원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표지 기사 제목은 ‘코식이가 쓰는 동물원대박과사전’이었고 한 장을 넘기면 ‘과천의 동물들은 이명박을 반대한다?’라는 다소 조잡하고 억지스러운 제목이 눈에 띈다. 그 기사에서 내 눈에 띈 이 책은 단박에 ‘읽을 책 목록’으로 들어왔다.
잔뜩 기대하고 읽어서인지 다소 실망이다. 깔끔하지 못한 번역을 충분히 고려하더라도 니겔 로스펠스라는 사람 자체가 글을 그다지 잘 쓰는 사람은 못되는 듯 하다. 책의 전체적인 구성인 목차에서부터 세부적인 소제목 하의 글에서까지 느낄 수 있는, 읽는 이를 뭔가 답답하게 만드는 느낌이 있다.
무엇보다 하겐베크라는 한 인물과 그의 사업, 회사를 중심으로 책을 서술하고 있는데, 주제가 ‘동물’이 아닌 ‘동물원’인 이상 사람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동물원이 아닌 하겐베크가 책의 주제라고까지 느꼈다면 오버일까. 물론 그가 현대의 ‘동물원의 탄생’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충분히 알겠지만 말이다.
제목에서 분명히 이 책이 ‘역사서’라는 냄새를 폴폴 풍기고 있는데도 그 냄새를 못 맡은 내 탓이 크겠지만 나는 이 책이 좀 다른 성격의 책이면 좋겠다. 작가가 살짝 언급한 동물원에 간 인간과 동물의 시선이 마주치느냐 안 마주치느냐의 문제, 동물원이 자연스러워질수록 동물들의 감금 상태는 은폐된다는 사실 등 따로 연구 주제로 삼아도 될 정도로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았다. 카프카의 <빨간 피터의 고백>이라는 작품이 모티브가 되었다는 이 책의 뒷표지에는 ‘빨간 피터’의 고백을 따라 동물원을 살펴본다고 되어 있지만 정작 빨간 피터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숲에 사는 사람들은 ‘인간이 숲을 보호하고 가꾼다.’는 말조차 인간이 얼마나 오만한지 보여줄 뿐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고 동물원의 역사를 알고 나면, 동물원이 동물을 보호하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이야기하고 또 일정부분 그것이 사실인 상황이 얼마나 아이러니한지 느끼게 된다. 정말로, 본문에 나오는 존 버거의 말마따나 동물원은 ‘이제 인간과 동물의 자연스러운 만남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기념하는 장소’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새끼를 잡기 위해 인간들이 어미를 죽이자 새끼 코끼리가 다리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어 뒷다리에 코를 감고 쓰러져서는 그대로 질식해 죽었다는 부분이다. 이건 자살이다.
사람 전시야 뭐 오늘날에도 그 형제들을 쉽게 볼 수 있지 않은가. 2002년에야 고국 남아공에 돌아온 사끼 바트만의 유해는 186년 동안이나 뇌와 생식기가 절단되어 병에 보관된 채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녀는 단지 다른 사람들보다 엉덩이가 조금 더 튀어나와 있을 뿐이었다. 영화로도 유명한 ‘엘리펀트맨’은 그리 머나먼 이야기가 아니다.
아직도 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흔한데 다른 동물까지 존중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기대일까. 브레히트의 ‘후손들에게’라는 시에 등장하는 구절이 생각난다. ‘그러나 너희들은, 인간이 인간을 도와주는 그런 세상을 맞거든 관용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생각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