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예수체험
박두진 / 다산글방 / 1997년 2월
평점 :
품절


 . 이 책은 연령별로 성별로 또 신앙의 진보와 보수를 아우른 26명의 예수체험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곽노순, 김경재, 김흥호, 박종열, 박종천, 윤성범, 최완택, 이현주, 한희철 이런 분들은 신학을 전공하거나 목회를 하는 분들이구요. 박두진, 강은교, 김신용, 박상우, 송 영, 이승우, 이윤기 같은 분들은 문학을 전공한 분들입니다. 또 한승헌 감사원장의 글과 불교를 전공하고 가르치는 서경수 박사 같은 분의 글도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예수체험 고백은 기독교신앙에 대한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편견을 극복시켜 줍니다. 사실상 제한적인 인간이 인간의 감각을 초월해 존재하는 하나님을 통전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부분적으로 만나고 부분적으로만 이해할 뿐입니다. 덧붙인다면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더 알아갈 뿐인 것이죠. 그래서 신앙에 대한 열린 태도가 없다면 타인에 대한 근거 없는 정죄를 저지르게 되고 하나님의 진리를 오히려 폐쇄적으로 만들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이 책에 소개된 26명의 다양한 예수체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민중신학자인 박재순 씨는 국가 보안법에 걸려 옥살이를 하던 중 감옥 쇠창살 밖에서 자라나는 새싹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이화대학교에 재직 중인 김흥호 목사님은 세 번의 성령체험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체험을 통한 신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곽노순 목사님은 노자라는 동양 철학자의 통찰력에 의지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다 깊이 만나게 됐다고 고백합니다. 또 한신대 김경재 교수는 극적인 신비경험을 하지는 못했지만 성서 연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증언합니다. 소설가 이승우는 다가오는 분으로서의 예수를 고백하고 시인 배경란과 차옥혜 씨는 연인과 바람으로 표현합니다. 한승헌 변호사는 고난의 길을 걷는 인간 예수를 사랑하며 이현주 목사님은 자기를 죽여 남을 살리는 밥으로서 예수를 표현합니다. 물론 이분들의 예수체험을 이렇게 간략한 언어로 소개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일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은 일생을 통해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사건이며 또 이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가 매일 새롭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제 만난 예수는 오늘 만난 예수와 다르며 또 내일 만나게 될 새로운 예수와도 다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양극의 논리가 횡횡하던 지난 시대에,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으로 편가름을 하고 극렬하게 상대방의 신앙노선을 비난해왔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이 부끄럽고 비효율적인 싸움은 지금도 꼬리를 내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예수로부터 나왔지만 종국은 서로를 예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 방식과 언어로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합니다. 아니 저마다의 다양한 모습 속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다가가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체험은 개개인의 능력의 발현이 아니라 전적으로 은총인 것입니다.  
   이 책에 소개된 스물 여섯 분의 다양한 신앙체험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풍성하게 펼쳐줍니다. 그래서 이 책의 출간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흙과 농부와 목자가 만나면 - 단강마을이야기
한희철 / 두란노 / 1998년 1월
평점 :
절판


     '흙과 농부와 목자가 만나면'의 저자인 한희철 목사님은 지난 88년 크리스챤 신문사에서 공모한 신인문예를 통해서 등단한 시인입니다. 그동안 '내가 선 이곳은', '소리새', '하나님은 머슴도 안 살아봤나?', '여기엔 아무도 읍습니다', '홀로 숯을 구우며' 등 여러 권의 책을 냈구요, 오늘 소개해드리는 '흙과 농부와 목자가 만나면'이란 책은 올해 초에 발표한 것입니다. 아마 기독교잡지를 보시는 분은 심심치않게 단강마을에서 보내는 편지란 제목으로 발표되는 한희철 목사님의 글을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한 목사님이 시무하는 단강교회와 마을사람들의 얘깁니다. 5년 전에 저도 '단강마을의 크리스마스'라는 성탄특집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 단강마을을 취재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이 책의 주인공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광철씨, 허리가 기역자로 굽은 변관수 할아버지,  성탄절에 세례를 받은 허석분 할머니, 마을 보건소장인 유보비 집사, 홀로 남아 고향을 지키는 마을반장 이병철 씨, 승학이 할머니, 그리고 한목사 가족 등... 그동안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다들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단강마을의 인물들입니다. 한목사는 이들과 함께 삶을 나누면서 이들의 얘기를 꾸준히 글로 담아냅니다. 긴 글도 없고 가슴이 와장창 무너질만한 그런 거창한 얘기도 없지만, 도시화의 물결에 밀려 점차 쇠락해가는 외딴 한 농촌 마을의 정경은 어찌할 수 없는 애틋함과 정겨움으로 독자들의 가슴을 적십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름을 짓는다면 '돋보기로 보는 세상'... 이런 것일텐데요. 우리는 그동안 큰 생각에 너무 집착해왔습니다. 한꺼번에 갈아치우는 세상 같은 것 말이죠. 전도도 대규모로 해야하고 선교도 크게 해야하고 또 그러려면 큰 교회도 있어야 하고 많은 돈도 있어야 하죠. 그러나 이렇게 하는 데에는 구멍이 많게 마련입니다. 사람 삶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보다는 외형적인 성과에 집착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단강마을의 얘기에서는 돋보기로 꼼꼼이 자연관찰하듯 인생을 바라보는 구체적인 시선이 돋보입니다. 한희철 목사라는 예민한 돋보기를 통해서 우리의 구체적인 이웃을 꼼꼼하게 보살피고 있는 것이죠. 저는 이 돋보기로 보는 한희철 목사의 글쓰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시선을 느낍니다.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소외받지 않고 이렇게 보살펴질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역사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굳이 오늘 소개해드리는 '흙과 농부와 목자가 만나면'이 아니라도 한목사가 쓰신 글이나 책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구해보시길 애청자 여러분께 권면하고 싶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의 번잡한 마음도 어느 정도 가라앉을 것이고 또 우리도 그 누군가에 의해서 보살펴지고 중보의 기도를 받을 지 모른다는 위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백을 보는 눈
허태수 / 당그래 / 1998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쓰신 허태수 목사님은 춘천에서 성암교회를 담임하고 계신데요, 이전에도 이미 '삶은 금식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존재의 가벼움에 이르는 명상', '거기 시들지 않는 기쁨이 있으니' 같은 책들을 내셨구요, 이번에는 오늘 소개해드리는 '여백을 보는 눈'이라는 책과 '자기포기'라는 책을 동시에 발표했습니다.
   춘천은 무척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소양강변에 가면 눈물나게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볼 수 있구요, 서울 같은 대도시처럼 귀퉁이까지 꽉 막힌 것이 아니라 중심만 조금 번잡할 뿐, 변두리는 산과 강을 향해 확 트여있어서 자연과 문명을 더불어 누릴 수 있는 공간입니다. 저자가 시무하는 성암교회는 도심보다는 변두리 쪽으로 중심이 향해 있어서 맑은 공기가 넉넉한 곳입니다. 여백을 보는 눈이란 책은 이런 환경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책에는 모두 192가지의 작은 얘기들이 실려 있는데요, 일부를 소개해보겠습니다.
  '춘천은 닭갈비와 막국수 외에도 인형극 축제와 판토마임으로도 이름이 났다. 마임배우 유진규도 춘천에 산다. 며칠 전에 만난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드라마나 연극, 영화 같은 것들은 말로 하지만 판토마임은 순전히 몸으로만 해야 합니다. 말은 일절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를 믿는 것도 판토마임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말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보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글도 있습니다.
   '...목사님 이제 기적이 일어나겠지요?.. 그럼요. 하나님은 늘 막다른 골목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지요.. 나는 집사님께 그렇게 대답했었다. 그때는 집사님이 말하는 기적이 유방암에서 고침을 받는 것으로 생각을 했었다. 그때 그녀는 이미 숨쉬는 것이나 몸을 움직이는 것이 전혀 자유롭지 않았었다.  거의 생명이 꺼져가는 상태였다. 그리고 얼마 후 집사님은 하늘나라로 가셨다. 알면서도 살 가망이 없는 줄 알면서도 이제 기적이 일어난다고 하던 집사님의 말을 이제야 알 것 같다. 그에게 있어서 기적은 유방암이 낫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드디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그에겐 기적이 아니었을까?'
    또 이 책의 102쪽에는 아무 글도 없이 책 한가운데 큰 점을 찍어놓고는 이렇게 적어  놓습니다. '점 밖에 보이지 않는다면 난 아직 멀었군 하고, 흰 여백이 그대를 보고 웃거든 기뻐하라. 꿈을 깼으므로...'  이 책의 제목인 여백은 보는 눈은 바로 여기서 나온 것이죠.
    이 책은 마치 우리시대의 복음서를 읽는 느낌을 줍니다. 복음서의 비유가 대부분 삶의 언어로 기록된 것처럼 이 책은 많은 작은 얘기들도 주변의 삶에서 채취한 생활언어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의 나이는 이제 불혹을 갓 넘었습니다. 언어의 성숙함은 물리적인 나이에서 오는 게 아니라면 저희들은 허태수 목사에게서 삶을 깨우는 말들이 앞으로도 샘솟듯 계속 솟구쳐나올 것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도 너에게 자유를 주고싶다 - 딸에게 주는 사랑, 자유, 그리고 명상 이야기
홍신자 지음 / 안그라픽스 / 1998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딸에게 주는 사랑, 자유, 그리고 명상 이야기'라는 작은 제목이 달려 있는데요. 이 제목대로 딸에게 어머니가 들려주는 대화체로 쓰여져 있습니다.     저자인 홍신자 씨는 현재 경기도 안성의 죽산에 정착한 세계적인 무용갑니다. 그녀는 2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무용을 시작해 세계무대에서 주목받는 무용가로 성장했지만 어느날 훌쩍 인도로 떠나 라즈니쉬 밑에서 명상 수행을 합니다. 이후 다시 무용계에 복귀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다가 지난 93년에는 한국에 영구귀국해 죽산마을에 터를 잡고 창작할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가 진정한 사랑을 안 것은 나이 마흔이 넘어 딸을 낳고부터이다. 그날부터 내 가슴에서 분출하는 뜨거운 기운이 사랑임을 알았다....' 아마 나이 마흔이 넘으신 분은 이 문장의 맛을 잘 느끼시리라 생각되는데요.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사랑을 아는 것', 그리고 사랑을 '진정으로' 하게되는 것은 마흔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이렇게 마흔이 되고서야 비로소 알게된 진정한 사랑은 '자유'라는 것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돼 있죠. 그래서 이 책의 모든 글들은 바로 이 사랑에서 발원해서 자연스럽게 자유라는 주제로 흘러갑니다.
    저자는 명상, 가족, 사랑, 자연과의 교감 같은 주제들을 '오로지 자신을 태우는 데 몰입하라', '여행은 깊은 밤을 잊게 한다', '보름달이 뜨면 달을 향해 절을 한다', '비가 와도 바닷물은 넘치지 않는다', '너도 언제가는 자연을 향해 웃음을 터뜨리게 될거야'...같은 제목으로 독자와 자신의 딸에게 얘기해줍니다.  
     그리고 이 책에는 잘 찍은 여러 장의 사진들도 함께 삽입돼 있는데요. 사진은 말이 배제되어 있지만 그 덕으로 언어를 통해 덧칠되지 않아서 오히려 더 구체적이기도 하죠, 이 책에 실린 저자의 유학 초기 검은 선글라스를 낀 모습이나, 표정이 동작보다 더 좋은 춤 장면들, 그리고 눈을 지긋이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찻잔을 든 정지된 모습, 따스한 햇빛을 받으며 아주 편안한 자세로 평상에 누워있는 사람들의 모습,  문이 닫힌 중국집 철제 셔터 앞에서 긴장이 다 풀어진 채 한가하게 서있는 모습... 이웃 홍씨 할머니 장례식을 뒤따르는 장면... 공연 도중 짬을 내 딸과 의자에 나란히 앉아있는 잠깐의 모습, 죽산에서 바라본 해거름 무렵의 풍경.. 그리고 하늘을 향해 눈을 감고 서있는 딸의 순진무구한 모습 등은 글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습니다.
     저는 문화평론을 하는 조병준 씨가 홍신자 씨와의 한 인터뷰에서 인용한 말이 생각이 나는데요. 이런 내용입니다. '숲을 보세요. 하루 종일을 자라고 있어도 나무가 자라는 걸 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무는 분명히 자라고 있어요.'라는 말이죠. 좀 추상적으로 말씀드리면 저는 나무가 자라는 속도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획득하는 속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현대인에게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죠.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바라봐 줄 수 있는 은근하고 깊은 관심이 있을 때에야 가능할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케스 - 매와 소년
배리 하인즈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1939년 영국 북부의 광산촌에서 태어난 배리 하인즈에 의해서 쓰여졌는데요. 작가의 탄광촌의 경험과 대장간 조수, 광산 감독 견습, 2년 간의 체육교사 경험 등이 책의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중학교 졸업생인 빌리 카스퍼란 소년인데요. 바람 난 어머니와 집을 떠난 아버지, 그리고 동네 깡패인 이복 형이 그의 가족입니다. 그는 신문을 배달하면서 나름대로의 생존방식을 찾아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환경은 불우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세상을 아무렇게 사는 소년은 아닙니다. 그는 주위 사람을 괴롭히지 않았고 세상과 비굴하게 타협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학교에서는 열등생이었고 사회에서는 주변인의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빌리가 유일하게 마음을 쏟는 대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폐허가 된 성벽 위의 매 둥지에서 꺼내다 키운 매입니다. 매의 이름은 케스였죠. 케스는 소년의 손에서 훈련을 받았지만 야성을 상실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야성의 매, 케스는 바로 빌리의 꿈을 반영하는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은 인간 사회에서 주변인이 되어버린 소년 빌리와 야생 매와의 우정을 축으로 얘기를 전개해가고 있습니다. 야성의 세계는 우리 시대가 점차 상실하고 있는 원시성을 의미하죠. 그리고 제도 교육과 기성사회의 권태로운 모습 속에서 열등생과 주변인의 자리로 내몰리고 있는 소년의 모습은 확대해석하면 현대인의 허약한 위상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현대인은 야성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야성의 세계를 부단히 파괴해가면서 현대성을 구축하고 있죠. 그런데 현대인이 야성의 세계와 만나는 순간 그동안 잃어버렸던 꿈을 되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소설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빌리가 케스와 묘기를 부리는 장면입니다. 주변인 빌리가 꿈을 회복하는 순간인 것이죠.
   그러나 케스 매는 경마에 빠진 빌리의 이복형 주디에 의해서 죽임을 당합니다. 빌리의 아름다운 순간은 짧게 끝나고 마는 것이죠. 이야기는 이렇게 비극적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러나 야성의 매 케스는 소년을 떠났지만 케스와 빌리 사이에 존재했던 순간들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자는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지만 독자는 소년이 케스 매와 함께 했던 순간들을 가슴에 품고 일생을 살아가게 될 것임을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그의 가슴엔 꿈이 살아있는 것이죠. 현대인의 비극은 바로 이 꿈의 상실에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 작품의 결말이 반드시 비극일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이 소설은 배경이 되고 있는 당시 영국 탄광촌의 풍경을 읽을 수 있게 해줍니다. 또 답답 한 학교 현실을 묘사하기도 하고 가족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줍니다. 이 소설은 언뜻 읽으면 한 소년이 성장소설로만 보이지만 이렇게  생각보다 많은 얘기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