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도 너에게 자유를 주고싶다 - 딸에게 주는 사랑, 자유, 그리고 명상 이야기
홍신자 지음 / 안그라픽스 / 1998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딸에게 주는 사랑, 자유, 그리고 명상 이야기'라는 작은 제목이 달려 있는데요. 이 제목대로 딸에게 어머니가 들려주는 대화체로 쓰여져 있습니다. 저자인 홍신자 씨는 현재 경기도 안성의 죽산에 정착한 세계적인 무용갑니다. 그녀는 20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무용을 시작해 세계무대에서 주목받는 무용가로 성장했지만 어느날 훌쩍 인도로 떠나 라즈니쉬 밑에서 명상 수행을 합니다. 이후 다시 무용계에 복귀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다가 지난 93년에는 한국에 영구귀국해 죽산마을에 터를 잡고 창작할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가 진정한 사랑을 안 것은 나이 마흔이 넘어 딸을 낳고부터이다. 그날부터 내 가슴에서 분출하는 뜨거운 기운이 사랑임을 알았다....' 아마 나이 마흔이 넘으신 분은 이 문장의 맛을 잘 느끼시리라 생각되는데요.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사랑을 아는 것', 그리고 사랑을 '진정으로' 하게되는 것은 마흔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이렇게 마흔이 되고서야 비로소 알게된 진정한 사랑은 '자유'라는 것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돼 있죠. 그래서 이 책의 모든 글들은 바로 이 사랑에서 발원해서 자연스럽게 자유라는 주제로 흘러갑니다.
저자는 명상, 가족, 사랑, 자연과의 교감 같은 주제들을 '오로지 자신을 태우는 데 몰입하라', '여행은 깊은 밤을 잊게 한다', '보름달이 뜨면 달을 향해 절을 한다', '비가 와도 바닷물은 넘치지 않는다', '너도 언제가는 자연을 향해 웃음을 터뜨리게 될거야'...같은 제목으로 독자와 자신의 딸에게 얘기해줍니다.
그리고 이 책에는 잘 찍은 여러 장의 사진들도 함께 삽입돼 있는데요. 사진은 말이 배제되어 있지만 그 덕으로 언어를 통해 덧칠되지 않아서 오히려 더 구체적이기도 하죠, 이 책에 실린 저자의 유학 초기 검은 선글라스를 낀 모습이나, 표정이 동작보다 더 좋은 춤 장면들, 그리고 눈을 지긋이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찻잔을 든 정지된 모습, 따스한 햇빛을 받으며 아주 편안한 자세로 평상에 누워있는 사람들의 모습, 문이 닫힌 중국집 철제 셔터 앞에서 긴장이 다 풀어진 채 한가하게 서있는 모습... 이웃 홍씨 할머니 장례식을 뒤따르는 장면... 공연 도중 짬을 내 딸과 의자에 나란히 앉아있는 잠깐의 모습, 죽산에서 바라본 해거름 무렵의 풍경.. 그리고 하늘을 향해 눈을 감고 서있는 딸의 순진무구한 모습 등은 글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습니다.
저는 문화평론을 하는 조병준 씨가 홍신자 씨와의 한 인터뷰에서 인용한 말이 생각이 나는데요. 이런 내용입니다. '숲을 보세요. 하루 종일을 자라고 있어도 나무가 자라는 걸 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무는 분명히 자라고 있어요.'라는 말이죠. 좀 추상적으로 말씀드리면 저는 나무가 자라는 속도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획득하는 속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현대인에게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죠.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바라봐 줄 수 있는 은근하고 깊은 관심이 있을 때에야 가능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