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땅의 사계
알도 레오폴드 지음, 이상원 옮김 / 푸른숲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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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교훈적입니다. 이 책은 3부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1부는 저자가 1935년 위스콘신 강변 모래땅의 황폐한 농장을 장만해 살았던 경험을 담고 있는데  '모래땅의 사계'라는 제목으로 실려있습니다. 2부는 '이곳 저곳의 스케치'라는 제목으로 위스콘신, 일리노이와 아이오와, 애리조나와 뉴멕시코, 치와와와 소노라, 오리건과 유타, 매니토바의 환경파괴 현장을 고발하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글을 싣고 있습니다. 또 3부는 결론이라는 제목으로 네 편의 에세이를 싣고 있습니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1부 '모래땅의 사계'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인 레오폴드는 위스콘신 모래땅의 사계를 월별로 나눠 구석구석 은밀한 부분까지 풍부한 문체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2월 '훌륭한 참나무' 편에는 참나무 땔감에 대한 사색으로부터 얘기가 전개됩니다. 참나무의 나이테는 역사를 끌어안고 있죠. 그래서 저자는 나무를 베어가면서 각 시대가 안고 있는 역사의 얘기를 읽어갈 수 있습니다. 위스콘신 최후의 담비가 죽었던 1925년, 가뭄이 극심했던 1901년, 마지막 들비둘기가 사냥군의 총에 맞아덜어진 1899년, 참나무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원인에 대해 논쟁을 벌이던 1881년, 최후의 야생 칠면조가 죽음을 당했던 1872년...이런 식으로 말이죠. 3월 돌아오는 기러기를 바라보면서 저자는 1943년에서야 세계열강이 국제연맹을 결성한 인간의 모습을 씁슬하게 바라보죠, 기러기는 이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하나로 뭉쳐야할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매년 3월이면 목숨을 걸고 빙하지역을 떠나고 있으니 말이죠. 9월에는 관목숲에서 들려오는 울새와 개똥지바퀴, 두루미, 메추라기의 합창을 들을 수 있죠. 10월이면 낙엽송이 자아내는 황금빛 자연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 책의 2부 '이곳 저곳의 스케치' 편에 이르면 점차 파괴되는 야생 세계의 모습이 지역별로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3부에서 이 책의 결론을 펼쳐보입니다. 저자는 네편의 에세이를 통해서 자신의 자연보호 철학을 구체적으로 드러냅니다. 저자는 야외 여가활동이라는 이름으로 도로를 닥고 사냥감이 될 동물들을 늘려나가며 호텔과 골프장을 짓는 현대인의 왜곡된 자연친화 태도를 비판합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자연은 야생의 자연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인간에게 필요한 올바른 야외 여가 활동은 원시적이고 전통적이어서 일상 생활과는 대조적인 경험을 줄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에겐 이제 대지와 협조하려는, 또 동식물과 공존하려는 윤리의 회복이 요구됩니다. 따라서 자연과 대지를 단지 재화를 생산해내는 도구로 보는 농부의 철학도 넘어서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자연과의 인간이 공존하려면 자연을 경제적 가치로 보는 인간의 시각이 극복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자연을 인격적으로 유기적인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죠.
   평자들은 이 책을 '월든' 이래 최고의 자연보호서로 꼽고 있습니다. 이 책은 드물게 아름다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 환경문제에 대한 천박한 인식을 제거시키는 데 큰 도움을 제공합니다.  아름다움과 감동과 교훈이 있는 이 책을 여러분께서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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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읽는다
함인희 / 출판시대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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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조금 독특한 책인데요, 저자인 함인희 교수가 이화여대생을  대상으로 면접을 하고 여기서 다양한 사례를 추출해 이를 사랑의 진행과정에 따라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자들은 사랑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사랑에 대한 환상을 극복할 수 있게 되죠.
    사실 우리의 20대에게 가장 큰 문제는 사랑입니다. 이성을 만나고 호감을 갖게 되고 그러다가 연애에 빠지고 때가 이르면 결혼에 골인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이 다 고빕니다. 즉, '어떤 사람을 만나야할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서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은 영화나 소설 속의 주인공 같지는 않은데 계속 더 만나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만 만나야 하는 것인가?', '또 신체적 접촉은 어떻게 해야 되나... 키스만 하면 되나, 혼전에 육체적 관계를 맺는 것은 과연 문제인가?...', '결혼은 현실적인 작업인가 아니면 사랑만 있으면 되는 것인가?...', 또 '실연의 고통은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 생각해보면 사랑의 모든 과정은 이렇게 고비고비를 이룹니다.
    저자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어떤 정형화된 모범답안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사랑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또 이렇게 사랑을 하고... 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죠. 그리고 이를 통해서 스스로 자기의 사랑에 대해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책에 대해 사랑에 관한 'HOW-TO-DO'를 가르쳐주는 자조서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예를 들면 사랑은 첫눈에 반하는 운명적인 것이냐에 대해서는 이런 사례들을 제시합니다. 한 사례는 '어느날 우연히 건널목에 서 있다가 옆에 서있는 남자를 본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경험을 하고 용기를 내 이 남자에게 '빨간 신호에서 길을 건너는 겁니까 아니면 파란 불에서 건너는 겁니까 하고 물었더니 남자가 빨간 신호에서 건너는 겁니다 하더래요, 그래서 빨간 신호에서 길을 건너야할 것 같아서 차가 달려오는데도 불구하고 길을 건너려고 달려나가다가 남자의 제지로 만남이 시작되고 드디어 결혼에 이르게 돼 행복하게 살았다'는 얘기구요, 또 다른 사례는 이렇습니다. '한 눈에 팍 느낌이 오는 사랑, 그런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진정한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서 좋아하고 위해주고 더 관계가 두터워지는 것 같아요.'
    이렇게 여러 사람의 여러 사랑 얘기를 듣다보면 사랑에 대한 환상은 점차 사라지고 자기의 사랑 모습에 대해 냉정하게 생각해볼 수 있게 됩니다.
    이 책에 나오는 작은 글제목들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사랑의 시작', '사랑의 기다림', '만남 : 혹시나와 역시나의 반복', '데이트의 기능과 역기능', '호감에서 사랑으로', '첫 입맞춤 그리고 에로틱한 부딪침', '사랑은 동질성과 이질성의 조화', '사랑의 경험', '사랑의 장애물', '이별', '짝사랑, 못하는 사랑, 그리고 안하는 사랑', '여자의 사랑, 남자의 사랑', '남자도 사랑할 수 있을까?', '여성의 자가당착', '낭만적 사랑의 각본' 이런 것들입니다.
    우리 시대의 위기 중에는 가족의 해체가 있습니다. 가족의 해체를 초래하는 큰 원인 중의 하나는 이혼입니다. 그리고 이혼의 과정을 살펴보면 대개 잘못된 결혼에서 비롯되고, 잘못된 결혼은 사랑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됩니다. 사랑의 열병에 시달리는 우리의 20대들에게 사랑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 책은 그 어느 책보다 유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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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속의 라이벌
김진국 지음 / 뜨인돌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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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소설집에는 스무 편의 작품이 실려있습니다, 이 소설 속의 주제는 모두 성경 속의 인물들인데요. 이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렇습니다.
    '아담과 하와', '가인과 아벨', '사라와 하갈', '야곱과 에서', '모세와 바로', '삼손과 들릴라', '사무엘과 사울', '사울과 다윗', '모르드개와 하만', '욥과 사탄', '다니엘과 페르시아 장관들', '세례 요한과 나사렛 예수', '바리새 그룹과 예수', '마르다와 마리아', '빌라도와 예수 그리스도', '기돈과 살렘', '바나바와 바울', '바울과 율리오', '유오디아와 순두게', '사도 요한과 도미티안' 등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대비되는 두 인물을 주인공으로 해서 성서의 이야기를 소설로 구성하고 있는데요, 완전한 허구도 아니고 그렇다고 또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그린 다큐멘타리도 아닌... 그러나 그속에는 깊은 메시지가 있는 얘기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사실 외국의 경우에는 성서의 이야기를 소설로 구성한 많은 명작들이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예가 드물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나온 김진국 목사님의 이 작품집은 독자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합니다.
    얘기란 상상력이 풍부할수록 독자들의 흥미를 끌게 마련이죠. 물론 개중에는 상상력이 사실을 왜곡할 지 모른다는 우려를 갖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성서의 경우에는 그런 걱정이 더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가면서 당시의 세계를 상상하고 성서 속의 인물들을 생생하게 느끼도록 해주는 것은 상상력이죠. 이를테면 십자가 상의 두 강도에 대한 성서의 기록은 미미합니다. 그러나 저자는 상상력을 동원해 십자가 상의 두 사형수 '기돈과 살렘'의 얘기를 이렇게 구성합니다. 기돈과 살렘은 같은 마을에서 자란 동네 친구죠. 그러나 둘의 인생행로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살렘은 민족해방을 위해서 열심당에 들어가 헌신적으로 활동하다가 로마군에게 체포돼 사형에 처할 운명에 놓이게 됩니다. 반면에 기도는 주먹세계를 전전하다가 사람을 죽이고 역시 감옥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죠. 이 두 친구는 사형수가 돼 감옥에서 다시 만나는 기막힌 경우를 당하게 됩니다. 드디어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 양 옆으로 묶이게 됩니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에 기돈은 예수를 시험하다가 절망에 이르게되고 살렘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서 비로소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 두친구의 운명은 이렇게 정반대로 향하며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이죠.
    또 저자는 사무엘과 사울의 갈등을 통해서 신정에서 왕정으로 넘어가는 고빗길을 묘사하기도 하고 세례 요한과 나사렛 예수의 단 한 번 뿐인 역사적인 만남을 통해서 신과 인간, 하나님의 아들과 하나님의 종의 협조를 그리고 있습니다. 또 욥과 사탄 사이의 드라마틱한 대결을 통해서는 '스스로 지키시는 하나님의 정의'라는 주제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이 성서 속의 세계를 자유롭게 여행하는 기회를 발견하기를 소망합니다. 뼈에 살을 붙이고 피가 통하게 하고 숨을 열어놓는 것은 성서를 읽는 독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일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성서를 묵상하시면서 상상력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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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쓸쓸한 당신
박완서 지음 / 창비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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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는 '마른 꽃', '환각의 나비', '너무도 쓸쓸한 당신' 등 모두 아홉 편의 소설과 한편의 꽁트가 실려 있는데요, 치매노인을 둔 가족의 얘기, 노년에 만난 남녀의 연애 이야기, 이민간 노인들의 얘기 등 주로 노인들의 얘기가 주제로 다뤄지고 있는데요, 작가는 이 작품집에서 노년 세대에 대한 세밀하고 풍부한 묘사로 그동안 우리 문학이 도외시했던 허전한 한부분을 잘 메꿔주고 있는데요, 노년의 삶과 문학이 이렇게 즐겁게 만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줍니다.
     노년기의 연애 이야기를 그린 '마른 꽃'이란 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글의 화자인 노년의 여성이, 점잖고 우아해 보이는 노신사와 노부인이 바텐더를 마주보는 스탠드에 앉아 크리스탈 잔을 부딪히며 천천히 술을 마시는 장면을 보면서 저 나이가 되어야 비로소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진정한 화해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여전히 자신에게도 가슴의 울렁거림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장면이죠. 그러나 이 주인공은 여전히 젊었을 때와 다름없는 연애감정을 느끼면서도 그 속에 정욕이 비어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정서로 충족되는 연애는 겉멋에 불과하고 자신은 노년에 만난 새로운 이성과의 만남을 그럴듯한 겉멋을 부려본 것으로 치부하고 맙니다.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라는 작품은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을 둘러싼 노부부와 그 자손의 표정을 마치 한 장의 잘 찍은 사진처럼 그려내고 있습니다.  평생을 시부모 공양과 남편의 난봉질 속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내던 주인공의 어머니는 고생이 걷힐 무렵에 불치의 병에 걸려 시한부의 인생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내가 시한부의 삶을 살게됐다는 것을 알게된 남편으로부터 태어나서 처음으로 애정고백을 듣고 행복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런 속사정을 모르는 아들의 입장에서는 어머니의 죽음을 기다리는 심정이 마치 '길고 재미없는 영화의 끝을 기다리는' 심정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밖에도 이 작품집에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어머니를 모시려는 딸의 애달픈 노력, 그리고 치매 어머니와 점쟁이 처녀 사이의 화해를 그린 '환각의 나비', 나이가 들수록 추레해지는 남편의 모습을 애증의 시선으로 쳐다보는 아내의 모습을 묘사한 '너무도 쓸쓸한 당신' 같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이 단편집은 작가의 일곱 번째 창작집이 되는데요, 저자는 이 책의 서문에서 '늙은이 너무 불쌍해 마라, 늙어도 살맛은 여전하단다, 그래주고 싶어 쓴 것처럼 읽히기도 하는데 그게... 내가 아직도 사는 것을 맛있어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저절로 우러난 소리 같아서 대견할 뿐만 아니라 고맙기까지 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저자가 이렇게 자기작품에 대한 만족감을 표시하는 것도 이례적인데요,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이런 만족감이 괜한 것이 아님을 금방 느낄 수 있습니다. 아울러 말씀드릴 것은 이 책에는 즐거움과 함께 가슴 속에 묵직하게 드러앉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저자의 삶의 대한 통찰력에서 오는 것이죠. 이 책을 읽는 독자들께선 부디 이 묵직한 그 무엇을 이 책에서 반드시 챙겨가시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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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와 프리즘 - 양장본
이윤기 지음 / 생각의나무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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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책의 저자인 이윤기 씨는 1977년 '하얀 헬리콥터'라는 작품으로 등단해 그동안 '나비넥타이', '뿌리와 날개', '하늘의 문' 등을 발표한 소설가입니다만 우리에게는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등을 번역한 번역작가로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요즘 들어 그의 주변에는 그가 내는 진지하고 성찰적인 낮은 목소리를 사랑하고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찾는 가장 큰 미덕은 현대라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시대'에 드물게 드러나보이는 진지하고 정직한 시선입니다. 덜 익은 인스탄트의 언어가 아니라 독서와 침묵을 통해 절제돼 나오는 이윤기 씨의 언어에 대한 기대와 애정인 것이죠.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돼있습니다. 1부는 '내가 사랑한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저자의 인물기행이 실려있구요,  2부는 '신화는 힘이 세다'라는 제목으로 특히 저자의 전문성이 돋보이는 여러 글들이 수록돼 있습니다. 3부는 '청년들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돼있는데요, 우리 문화현상 전반에 대한 저자의 발언이 짧은 글로 실려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눈에 띄었던 몇가지 대목들을 소개해드리면 이렇습니다.
'문화의 뿌리와 날개'라는 제목의 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한때 설을 민속의 날이라고 불렀던 적이 있구요, 요즘엔 씨름을 민속씨름이라고 부르는데 이에 대해 저자는 '그러면 너희는 부모도 민속 부모라고 부르냐'며 몰아부치고 이를 야만시대의 언어라고 비판합니다. 그리고는 글의 말미에 개량 한복의 등장을 반기면서도, 개량 한복이 한복의 저효율성을 극복하기는 했지만 한복의 갖는 문화적 전통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까지도 포함하고 있는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는 시선을 피력합니다. 즉 날개는 있으되 뿌리에 대한 탐구는 착실하지 않다는 것이죠.
   1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서는 월든의 저자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 어린왕자의 저자인 생택쥐베리, 장자, 한비자, 퓌타고라스, 탈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이 등장하고 우리나라 인물로는 유일하게 북 플래너인 정병규 씨가 소개됩니다. 이 1부에서 저자가 특히 방점을 찍어 강조하는 인물은 니코스 카잔차스키입니다. 호메르스, 베르그송, 니체, 조르바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얘기하는 카잔차스키는 온몸을 불살라 싸워온 진정한 자유인의 표상이었습니다. 불같은 삶을 살다가 사라진 카잔차스키의 묘비명에는 생전에 그가 스스로 마련한 문구가 이렇게 쓰여있다고 합니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인이므로...'라고 말이죠. 아마도 저자는 카잔차스키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저자의 자연에 대한 애착과 관심, 무지와 비이성적 태도에 손쉽게 기대지 않으려는 엄격함, 그리고 문화에 대한 꼼꼼한 사랑이 드러나 있습니다. 사실 우리 시대는 삶의 속도가 너무 빨라져 있어서 사람들이 자인의 인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사라졌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히려 가장 뒤로 미뤄지고, 오히려 사소하고 쓸모 없는 것들에 삶이 매달려 있어서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세상은 소음 덩어리가 됐고 우리의 인생은 산만하고 번잡해진 것이죠. 이런 시대에, 책을 꺼내 읽기도 쉽지 않은 경박한 속도의 시대에, 애써 책방을 찾아들어 서가를 거닐며 숙성한 언어들과 만나서 인생을 성찰하고 우리의 삶터를 꼼꼼한 눈으로 바라보는 일은 어쩌면 가장 소중한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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