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와 프리즘 - 양장본
이윤기 지음 / 생각의나무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 이 책의 저자인 이윤기 씨는 1977년 '하얀 헬리콥터'라는 작품으로 등단해 그동안 '나비넥타이', '뿌리와 날개', '하늘의 문' 등을 발표한 소설가입니다만 우리에게는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등을 번역한 번역작가로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요즘 들어 그의 주변에는 그가 내는 진지하고 성찰적인 낮은 목소리를 사랑하고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찾는 가장 큰 미덕은 현대라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시대'에 드물게 드러나보이는 진지하고 정직한 시선입니다. 덜 익은 인스탄트의 언어가 아니라 독서와 침묵을 통해 절제돼 나오는 이윤기 씨의 언어에 대한 기대와 애정인 것이죠.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돼있습니다. 1부는 '내가 사랑한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저자의 인물기행이 실려있구요,  2부는 '신화는 힘이 세다'라는 제목으로 특히 저자의 전문성이 돋보이는 여러 글들이 수록돼 있습니다. 3부는 '청년들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으로 돼있는데요, 우리 문화현상 전반에 대한 저자의 발언이 짧은 글로 실려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눈에 띄었던 몇가지 대목들을 소개해드리면 이렇습니다.
'문화의 뿌리와 날개'라는 제목의 글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한때 설을 민속의 날이라고 불렀던 적이 있구요, 요즘엔 씨름을 민속씨름이라고 부르는데 이에 대해 저자는 '그러면 너희는 부모도 민속 부모라고 부르냐'며 몰아부치고 이를 야만시대의 언어라고 비판합니다. 그리고는 글의 말미에 개량 한복의 등장을 반기면서도, 개량 한복이 한복의 저효율성을 극복하기는 했지만 한복의 갖는 문화적 전통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까지도 포함하고 있는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는 시선을 피력합니다. 즉 날개는 있으되 뿌리에 대한 탐구는 착실하지 않다는 것이죠.
   1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서는 월든의 저자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 어린왕자의 저자인 생택쥐베리, 장자, 한비자, 퓌타고라스, 탈레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이 등장하고 우리나라 인물로는 유일하게 북 플래너인 정병규 씨가 소개됩니다. 이 1부에서 저자가 특히 방점을 찍어 강조하는 인물은 니코스 카잔차스키입니다. 호메르스, 베르그송, 니체, 조르바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얘기하는 카잔차스키는 온몸을 불살라 싸워온 진정한 자유인의 표상이었습니다. 불같은 삶을 살다가 사라진 카잔차스키의 묘비명에는 생전에 그가 스스로 마련한 문구가 이렇게 쓰여있다고 합니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인이므로...'라고 말이죠. 아마도 저자는 카잔차스키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저자의 자연에 대한 애착과 관심, 무지와 비이성적 태도에 손쉽게 기대지 않으려는 엄격함, 그리고 문화에 대한 꼼꼼한 사랑이 드러나 있습니다. 사실 우리 시대는 삶의 속도가 너무 빨라져 있어서 사람들이 자인의 인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사라졌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오히려 가장 뒤로 미뤄지고, 오히려 사소하고 쓸모 없는 것들에 삶이 매달려 있어서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세상은 소음 덩어리가 됐고 우리의 인생은 산만하고 번잡해진 것이죠. 이런 시대에, 책을 꺼내 읽기도 쉽지 않은 경박한 속도의 시대에, 애써 책방을 찾아들어 서가를 거닐며 숙성한 언어들과 만나서 인생을 성찰하고 우리의 삶터를 꼼꼼한 눈으로 바라보는 일은 어쩌면 가장 소중한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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