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민혁 단편선 화점
오민혁 지음 / 거북이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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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으로 처음 접했을때 예리한 시각과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출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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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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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So we beat on, boats against the current, borne back ceaselessly into the past.)” - <위대한 개츠비> 중에서 -



  

김초엽 작가의 단편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나는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문장을 떠올렸다. 상실과 결핍, 몰이해라는 인간의 한계와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무심하게 흘러가는 세계 속에서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한 조각의 진실과 삶의 의미를 구하려 애쓰는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서로 닮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극복할 수 없는 신분의 한계 속에서 사랑이라는 감정 마저도 자본이 가진 물성으로서 회복하고자 했던 한인물의 실패담이다. 소설의 전반에 걸쳐 ‘up’이라는 단어는 총 202번 등장하지만 더 높은 곳으로 향하고자 했던 개츠비의 열망은 결국 그를 저 위쪽 어딘가가 아닌 파국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거야.” - p. 54,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중에서 -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내게 마지막 여행을 허락해주면 안 되겠나?” - p. 182, <우리가 빛의 속도로갈 수 없다면> 중에서 -

가윤은 이 우주에 와야만 했다. 이 우주를 보고 싶었다. 언젠가 자신의 우주 영웅을 다시 만난다면, 그에게 우주 저편의풍경이 꽤 멋졌다고 말해줄 것이다.” - p. 319,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중에서 -

 

어쩌면 불투명한 미래, 상처와 트라우마를 딛고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열망 속에서 불나방이 되어 불꽃 속에서 마지막 날개짓을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 아닐까? 유토피아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행복의 근원을 찾아 돌아오지 않는 순례자들을 찾아나선 데이지와 자신만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을 가지고 실패가 예견된 여정을 선택한 안나’, 삶의 의미를 찾아서 서로 다른 선택을 내린 재경가윤처럼 말이다. 불꽃 속에서의 마지막 몸부림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이런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이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면 이를 우리가 쉽게 재단할 수 있을까?

 

재즈의 선율을 따라 욕망이 흘렀던 시대에 살았던 개츠비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세월의 흔적을 걷어내고 바라보면 저마다가 직면한 세상에 맞서 살아가는 똑같은 인간만이 남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김초엽 작가가 그리는 미래의 어느 시점은 그 아득한 시간의 간극이 걷히면 또 다른 우리의 모습으로 남는다. 언젠가 우리도 현재와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와 비슷한 모습을 한 누군가와, 또는 <공생가설>의 이야기처럼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또 다른 누군가와 공존하면서 전혀 다른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김초엽의 소설은 다양한 시공간에 놓인 인간의 삶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올가 토카르추크의 소설을 연상시킨다.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올가 토카르추크의 작품들은 성좌(星座) 소설, ‘별자리 소설로 불린다. 인간의 삶은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직선적 사건이 아닌, 별자리처럼 시공간이 뒤섞인 원심형의 배열에 가깝다는 작가의 철학이 작품 속에 반영되어있기 때문이다. 별자리는 저마다 거리와 밝기가 다른 별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각각의 별들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제각기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별들은 인간의 가시거리를 아득하게 넘어서는 먼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각각의 별들의 위치와 움직임을 감지해내지 못하고 고정되어 있는 하나의 군집된 별자리로 인식하게 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으며 저마다 개별적 삶을 살면서도 타인과 또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한 시대를 이루고, 그것이 되풀이되고 순환되는 과정을 거쳐 역사를 구성하는 인간의 삶이 마치 밤하늘의 별자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대를 같이 호흡하면서도 온전히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고 누군가는 과거의 한때에 머무르고, 또 누군가는 과거의 기억을 넘어 미래를 향하는 것은 인간은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 (Kronos)' 보다 주관적이고 심리적 시간인 카이로스 (Kairos)'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우리를 구성하는 것인 동시에 미래를 꿈꾸고 호흡하게 하는 두번째 심장이다


 


 

우리가 아무리 우주를 개척하고 인류의 외연을 확장하더라도, 그곳에 매번, 그렇게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인게 아닌가.” - p. 182,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중에서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문제제기는 테드창의 단편 <거대한 침묵>과 맞닿아 있다. <거대한 침묵>에서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한 앵무새들은 인류에게 잘 있어. 사랑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지만 무심한 인류는 이마저도 인지하지 못한채 지성을 가진 또 다른 외계 생명체를 찾기 위해서 광대한 우주를 향해 고정되어 있는 아레시보 전파 망원경에만 귀를 기울인다. 우리는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편견과 집착에 사로잡혀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거나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과학기술이 가진 잠재력을 기반으로 특정 세계관과 시스템을 구성하고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다루는 것이 SF의 장르적 속성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기술이나 세계그 자체 보다는 그에 반응하는 인간에 주목하는 SF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이성과 기술이 구현해내는 세계에 대한 냉철한 분석 보다는 그러한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의 다채로운 감정과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김초엽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마치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공생가설> 속 류드밀라의 그림처럼 말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남겨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는 <위대한 개츠비><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소설은 단지 문제제기에 그치지 않고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그것은 인간의 감각으로는 온전히 느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외계생명체 루이의 연속성과, 분절되지 않은 루이의 존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스펙트럼>희진처럼 불가능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티끌 같은 희망이라도 진지하게 대하는 태도에 관한 것이었다. 또한 고통과 비탄으로 가득찬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그 세계에 함께 맞서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데이지처럼 이해와 관심을 바탕으로 타인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류드밀라의 행성을 볼 때 사람들은 무언가 놓고 온 것, 아주 오래되고 아득한 것, 떠나온 것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모르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 p. 104, <공생가설> 중에서 -

 

우리가 잃어버린것들, 두고온 것들, 무심히 지나쳐온 것들은 무엇일까? 상실과 결핍, 좋았던 기억, 행복했던 추억들이 모여 하나의 삶을 이루고, 그렇게 쌓아올린 하나 하나의 삶들이 모여서 시대와 역사가 되고 하나의 별자리를 이룬채 조용히 빛난다.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하고 그에 적절히 대응하며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와 신념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세상의 흐름에 떠밀리지 말고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아닐까? 비록 워프 버블조차 만들 수 없어서 빛의 속도에 한참 못미치는 구식 우주선이라 할지라도 그 방향만 정확하다면 말이다.

 

아무리 가속하더라도, 빛의 속도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한참을 가도 그녀가 가고자 했던 곳에는 닿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안나의 뒷모습은 자신의 목적지를 확신하는 것처럼 보였다.” - p. 187,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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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20-01-28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왠지 크레이지 트레인이 생각나는

잭와일드 2020-01-29 11:55   좋아요 1 | URL
오지오스본의 크레이지 트레인인가요?ㅎㅎ
 
[세트] 참선 1~2 세트 - 전2권 참선
테오도르 준 박 지음, 구미화 옮김 / 나무의마음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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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하나의 여정으로 본다면 우리는 모두 이 세계를 여행하는 방랑자라 할 수 있다. 이 여행은 언제 어떤 목적을 가지고시작된 것일까? 그 시작점은 저마다 다를지 몰라도 여행은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서 또, 미지의 세계에 대한 묘한 이끌림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기나긴 여정이 지속되면서 어느 순간 우리의 여행은 내면을 향해 침잠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따라서, 이 여행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타인을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내면을 향한, ’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은 말 없이 이어지는 사건과 행동의 연속일 뿐 절대로 우리가 어떻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떻다고 말하는 건 우리 자신이다.” (참선 2, p. 12)

 

 

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반응과 태도를 내세우며 세상을 살아간다. , 기억 속에 저장된 결코 보편적이지 않은 과거의 체험들을 현재의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되짚어 보고, 이 고통의 근원이 무엇인지, 또 그에 대한 변명들이 적절한 것인지 반성적으로 성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를 만드는 것은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동일한 사건을 두고서도 사람들이 서로 다른 언어적, 신체적, 심리적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그 사건을 대하는 삶의 방식과 철학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건을 경험하면서 개인은 자신만의 철학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창출해내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우리가 겪은 경험은 사건의 잔상과 흔적, 진실의 파편 속에서 원형만이살아남아 저마다의 삶의 방식을 구성한다.

 

 

자기 내면의 가장 깊은 곳으로 시선을 돌릴 때 비로소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눈을 뜨게 된다는 것.”참선 2, p. 246

 

 

본서 <참선>의 저자 테오도르 준박은 참선을 통해 발견한 멋지고 아름다우면서도 모순적인 진실은 바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비로소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정신적 통찰을 맑고 잔잔한 마음에 비친 세상의 모습을 왜곡하지 않고 깨끗하게 인식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를 위해서 먼저 세상을 투명하게 비출 수 있는 마음을 단련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정신적 통찰이란 명확한 인식을 의미하며, 이는 탁월함이나 재능이 아닌 내면의 평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면을 탐구하는 과정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저자는 이와 관련하여 데카르트식 회의론과 파스칼식 두려움 사이 (참선 1, p. 132)라는 재밌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학문적인 용어가 아니라 저자와 학부시절 절친한 친구이자 본 도서에 추천사를 쓰기도 한 세바스찬 승프린스턴대 교수와 저자 둘이서 만들어내고 교감한 개념이다. 데카르트식 회의론은 우주에 진리가 존재하겠지만 인간에게 과연 그 진리를 이해할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보는 철학적 입장이다. 반대로 파스칼식 두려움은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는 인간의 능력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확신하지만 우리가 살고있는 이 우주가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간주하는 철학적 견해를 의미한다. , 진리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주장과 반대로 존재하지 않는 의미를 찾으려 하는 데서 고통이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과연 진리란 어디에 위치해 있을까? 우리가 그토록 헤메는 진리는 인간의 인지능력의 한계를 지적하는 데카르트식 회의론과 거대한 무()의 공허감을 의미하는 파스칼식 두려움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해있지 않을까?

 

 

참선은 진짜 인간이 되는 길이지. 진정한 인간의 삶을 사는 방식이기도 하고 또 우리가 마음을 다스리고 단속하는 방법이지.” (참선 1, p. 158)

참선은 삶을 긍정하는 즐거운 가르침이자 수행법이다.” 참선 2p.125

 

 

저자인 테오도르 준박은 사실 환산스님이라는 법명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한국인 재미교포로 태어나 성장하면서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22살의 어린 나이에 한국에 건너와 출가한 후 30년간 불교의 전통적 방식으로수행한 승려였다. 하버드를 졸업하고 엘리트 지식인으로 그릴 수 있었던 빛나는 미래를 포기하고 언어도, 문화도, 생활방식도 생소한 한국의 절에서 깨달음을 구하기 위해 참선하는 것을 택한 것이다. 그가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된 데에는 그의 스승인 송담 스님의 존재 때문이었다. 불교에 귀의하여 수행한 30년 뿐만 아니라 환속하여 도시수행자가 된 지금도 그는 스승에 대한 존경심과 믿음을 잃지 않고 있다. 저자는 환속의 이유에 대해 명확히 밝히고 있진 않지만 어쩌면 그 이유 중 하나는 늘 깊은 산사가 아닌 일상 속에서 수행을 강조했던 스승의 가르침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거대한 진리 앞에서는 보잘것 없는 존재들이고, 진리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정진하는 수도자라는 점에서는 무엇을하고 어디에 있든 모두가 같은 입장에 놓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사의 고통 한가운데서 그 생사의 고통을 초월해야 한다.” (참선 1, p. 317)

우리의 불완전한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영원한 삶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 참선 2, p. 283

 

 

<참선>을 읽으며 놀라웠던 것 중의 하나는 저자의 진솔하고 겸손한 태도였다. 저자는 선각자로서의 자존심이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독자들과 같은 도반의 입장에서 함께 깨달음의 길을 걷고자 하고 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나는 정말로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 그리고 그냥 믿는 것에 관해 가능한 한 정직한 것이 좋다고 늘 믿어왔다.” (참선 1, p. 173)는 표현이나, 깨달음이라는 뭔가 모호하고 이상적인 것을 기다리느니 지금 참선을 하면서 살아있고, 깨어 있고, 행복하다는것을 좀 더 생생하게 느끼는 편이 훨씬 더 건강에 좋고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았다.“ 참선 2, p. 124같은 문장에 잘드러나 있다. 또한 저자는 진리를 구하는 수행으로서 참선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자세, 호흡, 화두라는 참선의 3대 요소중에서 몸이 이완되는 자세를 이해하고, 더 정확한 호흡법을 익힐 수 있다는 점에서 요가 수련을 적극 권장하기도 하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리 수행과 같은 마음 치유법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이는 형식과 권위에 얽매이지않고 초심을 잃지않은 영락 없는 구도자의 모습이다.

 

 

우리는 당신을 마음 기술 전문가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물질과 정보에 관한 전문가인 것처럼요.” 참선 2, p. 187

나는 물질적인 대상을 사용해 인간의 정신과 육체의 능력을 높이고 강화하는 것이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참선 2, p. 192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와 같고,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과 다름없다.”는 말을 남겼다. 그가 이러한 말을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 1950년대 비트 제너레이션 (Beat Generation)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산업화되어가는 미국의 현실 속에서 소외되어 가는 개인을 대변하여 동양철학, 성 해방, 환경운동 등을 주장하며 등장했다. 그 뒤를 이은1960년대 히피(Hippie) 운동은 소비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기성의 사회 통념, 제도, 가치관을 부정하고 인간성의 회복, 자연에의 귀의를 주장했다. 이들은 자연으로의 회귀와 평화를 외쳤고, 도덕보다는 자연스러운 감성, 이성보다는 자유로운감성과 즐거움을 추구했다.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의 정신적 지주였던 앨런 긴즈버그는 히피운동을 더 큰의식과 더 큰 개인을 향한 생각의 변화라고 평가하였다.

 

 

히피 무브먼트는 더 큰 의식과 더 큰 개인을 향한 생각의 변화다. 그 포용력과 배려심이 미래에도 시적이고 예술적으로확산되기를 바란다.” - 앨런 긴즈버그 (Allen Ginsberg) -

 

 

오늘날의 우리는 히피운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히피운동은 사회에 대한 분노와 절망감 속에서 현실을 거부하고 이상을 추구했던 젊은이들의 치기 어린 반항에서 비롯된 실패한 혁명에 불과한 것일까? 히피들은 현실적 제약에서 벗어나더 나은 세상을 갈망했고, 이를 다양한 방식으로 추구해나갔다. 세계 각지로 또 자신의 내면으로 여행을 떠난 이들도 있었지만, 반권위주의와 사회변혁의 분위기는 받아들이면서 정치와 환경운동 보다는 테크놀로지에 주목했던 이들도 있었다. 자유와 공생, 공유와 개방의 히피문화는 이들의 존재로 인해 오늘날의 PC와 인터넷, SNS로 구체화될 수 있었고, 애플과구글, 페이스북과 트위터라는 글로벌 혁신기업들도 탄생할 수 있었다.

 

 

히피들은 산업화 이면의 불평등과 사회 양극화, 소외되어 가는 개인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두 가지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그것은 자아를 찾기 위한 정신을 수련하는 것과 테크놀로지로서 사회를 변혁하는 것이었다. 테크놀로지는 현대사회를 이룩하는데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발달된 과학기술에의 지나친 의존은 물질적인 것에 집중하게 만들었고, 이러한 불균형은 현대사회가 안고있는 부조리와 병폐의 원인이 되었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모든 종류의진정한 종교 수행에서는 어떤 특정한 정신적 신체적 작용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의식에 내재된, 현실을 바꾸는 양자적 힘을 향상시키기 위해 기술을 사용해왔고, 이러한 기술과 참선의 결합과 균형이 미래를 여는 큰 지혜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생과 사에 관한 중요한 질문인 화두는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는 것이다. 삶의 혼란스러움을 종식시켜줄 지혜에 대한 갈망이나 상실과 결핍으로 인해 슬퍼했던 기억, 또 잃어버린 것을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답답함 등은 우리가 일상에서흔히 경험하는 것들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두고 온 것들은 무엇일까? 개개인이 켜켜이 쌓아 올린 저마다의 사연들은 상실과 결핍의 기억을 머금은 채 조용히 빛난다.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서 혹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 알수 없기 때문에 서로를 끝없이 갈구하고 또, 자신의 내면 속으로 침잠해들어간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 각자가 겪은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인간의 가장 놀라운 특징 중 하나는 서로에게 빛을 비춰주는 능력이다. 전 역사에 걸쳐 이 능력은 우리 인간 종을 계속 구원해왔다. 만약 우리가 참선을 통해 우리 내면의 빛을 발견하는 법을 배웠거나 배우기 시작한다면 의식적으로 많이 노력하지 않아도 우리가 가는 곳마다 우리의 사랑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 빛날 것이고,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랑을 느낄 것이다.” (참선 1, p. 334)

 

 

인생을 살아가는 간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씩 퇴보하고 소멸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삶의 흔적, 슬픔을 매개로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이해하고 위로를 건넨다. 인간은 초월적인 존재를 통해서도 치유 받을 수 없는, 오직 사람에게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 즉 사랑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면서 진리를 구하고자 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원칙 (Principle)을 지키며, 진실과 정의, 인간 고유의 본성을 회복하기 위해 타인을 향해, 또우리의 내면을 향해 작지만 흔들림 없는 발걸음을 묵묵히 내딛는 것뿐 아닐까? 2020년 한 해의 시작을 <참선>이라는 책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적절한 자기 조절 방법을 배우고, 열심히, 정직하게, 용기를 갖고 실천하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어보자. 자신의 가장 멋진 모습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법만 배우면 된다.” (참선1,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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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omy 2020-02-05 1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더 큰 의식과 더 큰 개인˝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인간 존재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평생 저의 화두 이기도 합니다. 과연 존재 본연이라는 게 있기는 한가?라는 회의도 들고요. 여하튼 소개해주신 책도 기회가 되면 꼭 읽어보겠습니다.^^

잭와일드 2020-02-05 20:08   좋아요 0 | URL
누구나 짊어지고 가야할 숙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읽고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단경로 - 제25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강희영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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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마음에 가닿기 위한 최단경로는 무엇일까? 목적지는 늘 같아도 늘 새로울 수 있는것은 매번 같은 곳을 다른 경로로 가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진심의 무게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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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단경로 - 제25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강희영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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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엣스허르 데이크스트라는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 가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경로를 찾는 알고리즘을 만들어냈다. 당시 26살이었던 그는 약혼자와 쇼핑을 마친 후 지친 상태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 문제에 대해 숙고했고, 그가 답을 찾는데 걸린 시간은 20분이었다.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최적경로를 찾는 데이크스트라 알고리즘은 이렇게탄생했다. 데이크스트라는 이론물리학, 전산학, 정보학 분야에 많은 연구를 남겼지만 대중들은 그가 남긴 그 어떤 심오한연구들 보다 젊은 시절 그가 잠시 생각해 얻은 최적경로 알고리즘을 많이 기억하고 있다. 그 이유는 현재까지도 네비게이션 시스템이나 구글 지도에 그의 알고리즘이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GPS 위성으로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수는 있어도 26세 청년의 그 20분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차를 타고 원하는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 어떤 경로를 선택해야할지 매번고민에 빠졌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최단경로를 추적하는 원리는 간단하다. 그것은 시작점과 도착점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교차점 마다 거리 값을 부여하고, 가장 짧은 거리의 경로만을 남겨둠으로서 최단거리를 계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동일한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다양한 네비게이션들이 다른 경로를 제시하는 이유는 저마다 고유한 알고리즘으로 변경하여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고유한 알고리즘에는 실시간 교통정보나 유료도로 사용여부, 교통신호나 과속 단속구간 등이 포함된다. ‘최단경로의 문제에 직면한 프로그램과 어플리케이션들은 이 같은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하여 그것들의 영향도와 가중치를 부여하면서 저마다의 최적경로를 산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요. 이건 배우지 않아도 아는 거죠. 아이가 엄마한테 뛰어가는 걸 보면 저렇잖아요. 중간에 차도가 있건, 횡단보도가멀리 있건, 신호등이 빨간불이건, 그런 건 다 무시하고 그냥 엄마한테 직진하는거죠. 기계들도 마찬가지예요.” (P. 31)

 

 

강희영의 <최단경로>을 읽으며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닿을 수 있는 최단경로에 대해 생각했다. <최단경로>는 소설 자체의 서사 이면에 존재하는 다른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 독특한 구성을 가진 소설이다. 그렇게 이야기들을 만나며 마치 혜서가 맡고 있는 새벽의 라디오 프로그램 애청자들의 사연을 듣는 것 같았다. 혜서의 새벽 라디오 프로그램을 청취하는 사람들은 주로 응급실 당직을 서는 간호사나 물류창고를 나서는 화물 기사, 도심을 파고드는 환경미화원들이었다. 그들의 노동이 좀처럼 눈에 띄지 않듯 그렇게 그들은 낮을 사는 사람들이 잠든 시간 속을 헤맸고, 나도 진혁이 남긴 궤적을찾아나서는 혜서의 뒤를 쫓으며, , 그러한 혜서를 바라보는 민주에 주목하면서 조용히 소설이 던지는 물음에 몰입할 수 있었다.

 

 

라디오 피디인 혜서는 전임 피디의 방송에서 알 수 없는 소리를 발견하고 그 의문을 풀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떠난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왜 쉬운 일을 이렇게 어렵게 풀려고 하는 건지, 왜 생각을 단순하게 하지 못하는 건지 고민한다. 그렇게 떠난 여정에서 혜서는 우여곡절 끝에 교통사고로 아이와 엄마를 잃은 애영을 만나고, 서로에게 또, 상대방의 삶에가닿기 위한 최단경로에 대해 생각한다. 한 사람에게 다가가기 위한 첫번째 단계는 그의 행적과 삶의 궤적을 따라서 걸어보는 것일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예상치 못한 삶의 단면들과 불편한 진실들을 만나게 된다. 이는 상대방을 이해해가는 과정인 동시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진실한 삶에 눈을 뜨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해란 타인과의 온도를 맞춰가는과정이며 이는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에는 착각과 오해로 지도에는 존재했었지만 실존하지 않는 사라진 섬 샌디섬과 실존하지만 지도에 반영되지 못한지도에 누락된 길이 등장한다. 이는 상실과 결핍이 누적된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삶에 대한 은유이다. 상실과 결핍의 경험은 삶의 온도를 변화시킨다. 상실과 결핍의 경험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공간 감각을 둔화 시키기 때문이다. ‘최단경로'가 항상 '최적'일 수 없는 이유는 삶의 상실결핍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삶 자체에 내재된 모순과 부조리 때문이다. 한 인간이 자신의 삶 중에서 완전히 컨트롤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삶 그 자체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라기 보다 삶이 던지는 질문에 적절히 응답하면서 대처해나가는 것에 더 가깝지않을까? 이러한 개별적인 삶들이 모여 이루는 세상을 과학적으로, 객관적인 데이터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이건 되고, 저건 안된다는 걸 가르쳐주는 일. 이걸 잘 할 수 있을까?” (p. 32)

 

 

데이크스트라는 최단경로 알고리즘을 발명하게 된 계기에 대해 묻는 인터뷰에서 가장 단순한 방법을 생각해야만 하는상황이 되면 그렇게 되더라.”라는 간략한 소감을 밝혔다. 종이와 펜이 없는 카페에 있는 상황이 역설적으로 모든 복잡한조건과 수식을 배제시키고, 놀랄만큼 간결한 형태의 최단경로 알고리즘을 산출해낸 것이다. 이 같은 모습은 다미안이낸 숙제를 혜서의 조언대로 완성한 애영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애영이의 과제에 대해 다미안은 평가와는 별도로 다음과 같은 피드백을 주었다.

 

 

애영씨 코드대로 경로를 설정하면 낯선 길이라도 좀 마음 편하게 즐기면서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단순하잖아요. 가까운운하를 찾아서 물길을 쭉 따라간다. 재미있었어요.” (p. 154)

 

 

애영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최단경로 알고리즘은 가장 빠른 지름길을 찾는 것이라기 보다는 가능한한 효율적 우회로를 찾는 공식에 가까운 것으로 이해한다. 여기서의 방점은 효율 보다 우회로에 찍혀야 한다. 어쩌면 한 인간이다른 인간에게 가 닿기 위한 것도 이러한 형태에 가깝지 않을까상대의 마음에 가닿기 위한 최단경로는 상대의 삶을이해하려는 노력의 기반 위에서 간결하게 진심을 다해 건네는 한 마디 말에서 비롯될 수 있다. 마치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서 서로를 한참 마주본 후 혜서애영에게 던지는 한 마디 말처럼 말이다. 어차피 서로를 향하는 최단경로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효율이라는 잣대는 그 두사람만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목적지는 늘 같아도 늘 새로울 수 있는것은 매번 같은 곳을 다른 경로로 가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진심의 무게를 느끼고 나서야 가능한 것일테니까 말이다.


 

둘은 그렇게 한참 서로를 마주보았다. “어디 가지 말아요.” (p.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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