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자들
정혁용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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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는 시장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주의 극단에 위치해 있다국내 택배시장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업체간 치열한 경쟁으로 택배 단가는 지속적으로 하락중이다이러한 무한경쟁 속에서 회사는 비용절감을 위해택배기사를 비정규직 개인사업자로 고용하고 택배기사들은 줄어가는 본인 몫의 수익을 지키기 위해 비정상적인 근무시간을 소화해내고 있다. 9 to 6 (8시간 근무)라는 정상적인 근무시간의 두배에 달하는 6 to 10 (16시간 근무)를 선택한 건 개인사업자로 등록된 택배기사 본인들의 선택이다하지만 그렇게 일하지 않으면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 없도록 건당수수료가 설정되고 이것이 시스템화되어 버린 현실에서 과연 그것이 그들의 선택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쩐지 인생 같네요.” 청림이의 말에 담배를 비벼 끄며 내가 말했다.

누구에게도 그렇게 간단한 인생은 없지 않을까?” (P. 152)

 

<침입자들>의 화자는 현재 택배일을 하고 있지만이름도 과거의 행적도 베일에 싸인 정체불명의 인물이다다만 그의 예사롭지 않은 칼솜씨와 인내심주위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사랑하는 딸을 잃은 상처 등에서 그가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아왔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사람들은 그런 그를 그가 택배 배달을 맡고 있는 동네이름인 행운동으로 부른다. ‘행운동’ 뿐만 아니라 소설 속에 등장하는 택배기사들은 비정상적인 수익구조에 대항하여 여가 시간가정을 돌볼 시간심지어는 자신의 허리까지 희생하며 살아간다그렇게 부모 초상이 나도팔다리가 부러져도 그날 택배는 그날 배송하는 노력과 희생의 대가는 근사하고 행복한 삶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현실을 근근이 버티며 삶을 이어나가게 해줄 뿐이다.

 

페테 회는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에서 이런 문장을 썼다. ‘나는 항상 패배자들에 대해서는 마음이 약하다반에서 뚱뚱한 남자애아무도 춤추자고 하지 않는 사람들그런 사람들을 보면 심장이 뛴다어떤 면에서는 나도 영원히 그들 중 한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P. 61)

 

하지만 현실의 삶에 지친 이들은 이들 뿐만이 아니다. ‘행운동은 택배 일을 하면서 어린 나이에 시작한 사회생활에서 상처를 받은 마크스’, 우울증 환자 춘자’, 동네를 누비는 바보 마이클’,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다짜고짜 강의를 늘어놓는 경제학 교수를 만난다이들이 현재 살고 있는 표면적인 삶의 단면들은 정상인의 시각으로는 쉽게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하지만 이들이 살아온 흔적들을 더듬어가며 이들이 어떤 상처와 아픔을 안고 삶을 살아왔는지 알게되는 순간 이들의 현재의 삶을 이해하고 서로를 위로하게 된다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택배기사저마다의 상처를 안고서 예상치 못하게 조금씩 어긋나고 비뚤어지는 현실의 삶을 바로잡으며 힘겹게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 동일한 입장에 있는 것이니까또한 소설의 화자인 행운동의 말처럼 정말로 간단해 보이는 삶도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인생은 없는 법이니까.

 

소설 속 행운동처럼 나도 영화 하나를 인용하며 서평을 마칠까 한다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살인마는 안톤 시거는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을 살인의 대상으로 선택하고 동전 던지기를 통해 살인 여부를 결정한다이는 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삶의 우연성을 상징하는 것이다동시에 '전부를 걸어야만 전부를 얻을 수 있다.'는 안톤 시거의 말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한 번씩 주어진 삶에 임하는 진지한 탐구 자세와 의지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 모범답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많은 사람들이 삶이 던지는 시험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각자가 다른 시험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 못한 채 타인의 답을 모방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모범답안을 찾다가 실패하게 된다우리는 우리에게 부여되고 스스로 계발한 재능을 토대로 세상이 던지는 질문에 각자의 답안을 작성하면 되는 것일 뿐이다내가 그랬듯이 다른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현실의 삶을 견디는데 도움을 받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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