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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순간 (50만 부 기념 우리들 에디션) - 공부에 지친 청소년들을 위한 힐링 에세이
박성혁 지음 / 다산북스 / 2023년 8월
평점 :
”질서의 신 오시리스도 조각조각 부서질 수 있다. 사랑이 끝날 때, 경력이 단절될 때, 소중한 꿈이 날아갈 때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익숙했던 질서가 사라진 자리에는 체념, 불안, 불확실, 절망이 들어찬다. 허무주의와 심연이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등장해 안정적이고 바람직한 삶의 가치들을 파괴한다. 결국 혼돈이 출현한다. “ - <질서와 혼돈> 中 에서 -
삶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안정된 상태라고 느끼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미지의 것이 느닷없이 닥친다. 이렇게 질서가 무너진 혼돈 속에서 우리 삶은 현실부정과 절망,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잠식되어 간다. 삶은 질서와 혼돈으로 점철되어 있다. 안정된 질서 속에 갑자기 혼돈이 찾아오기도 하는 반면, 모든 것을 상실한 듯한 절망적 순간에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기도 한다. 삶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질서와 혼돈의 경계 위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삶에서 인생의 의미가 빛을 잃어가고, 절망과 두려움이 고개를 드는 순간과 마주칠 때 우리는 무엇에 의지하며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학부시절 오랜 기간 꿈꾸었고 치열하게 준비하였던 행정고시에서 최종적으로 탈락했을 때, 나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 인생에서 처음 경험해보는 실패는 그동안 내가 투자했던 시간과 노력의 무게만큼이나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다. 수험생활을 하면서도 정해지지 않는 혼돈의 시간 동안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삶의 무작위성이 너무나 무섭게 느껴졌지만, 이제 눈앞의 현실이 되어 목을 죄어오는 삶의 조건들 앞에서 나는 숨이 막히고 두려워 남몰래 여러 차례 눈물을 흘렸다. 세상은 내 편이 아닌 것만 같았고, 조각나고 깨어진 꿈을 추스리고 새로운 꿈을 꾸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 시절의 나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정처 없이 거리를 배회하듯 그냥 되는 대로 아무런 목표 없이 하루하루를 흘려보냈다. 그러던 중 남들에 비해 뒤쳐진 채 불과 얼마 전까지 생각지도 않았던 취업시장에 급하게 눈을 돌렸다. 다행스럽게도 그 중 한 기업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나는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기나긴 혼돈 끝에 찾아온 질서였다. 하지만 취업을 한 뒤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애초에 목표로 했던 곳에 취업했던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꿈을 쫓다가 실패한 후 인생의 선로에서 이탈하여 가까스로 도착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받아준 회사에는 감사했지만, 회사는 나에게 새로운 꿈이라기보다는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다. 직장인으로서의 조직생활은 힘들었고, 또 다른 절망과 혼돈, 안정과 질서가 반복해서 찾아왔다. 질서가 무너질 때면 원망과 현실부정 그리고 두려움이 찾아왔다. ‘왜 하필 나에게, 지금 이 순간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하는 세상에 대한 원망이 마음속에서 고개를 들었고,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가장 두려웠던 건 눈앞의 현실이 되어 다가올지도 모를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였다. 불안과 두려움은 자가 증식하며 다른 모든 감정을 잠재우며 무한정으로 퍼져 나갔다. 삶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내 마음 깊은 곳 심연에 머물고 있는 괴물은 점점 더 포악해져갔다. 삶의 의미는 빛을 잃어갔고, 절망과 두려움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수험생으로서 일정한 루틴을 오랜 기간 유지했던 성실함은 회사생활에 적응하고 새로운 질서와 안정을 만들어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에도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고, 회사가 성장하면서 직장인으로서 나도 성장하면서 결혼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이 책 <이토록 공부가 재밌어지는 순간>을 만났다. 업무상 필요에 의해서 물류 관련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당시 나는 IT회사의 기획팀에 근무하고 있었고 운송, 보관, 포장 등 물류의 전 단계에 걸쳐 센서, 제어기술 등의 IT기술을 접목해 물류운영의 효율화와 비용 절감을 이뤄내는 스마트물류가 각광 받고 있었다. 신규 사업 진출을 검토하기 위해서 물류업 전반에 대한 이해도 필요했고, 회사 차원에서도 사업운영을 위해 물류관리 자격을 갖춘 인력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회사에서는 하루하루 바쁘게 돌아가는 기획팀 업무를 수행하고 집에 돌아오면 이제 막 결혼한 신혼으로서 행복하지만 새롭게 경험하고 적응해야할 게 너무나 많은 좌충우돌의 삶을 살고 있었다. 내가 가진 삶의 조건들 속에서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서는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작고 사소한 판단이 모여 내 하루를 이루고, 그 하루가 결국 내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지금의 나를 좀 더 강하고, 좀 더 지혜롭고, 좀 더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p. 57)
수험생활을 하면서도 한계에 부딪치거나 매너리즘에 빠질 때면 합격수기를 읽으며 마음을 다잡곤 했었다. 이번에도 주어진 시간과 조건하에 성공적인 시험 준비를 위해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있던 중에 지인의 추천으로 <이토록 공부가 재밌어지는 순간>을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에세이라는 생각에 가볍게 생각하고 훑어봤지만,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특히, "내 인생은 단 한 번뿐이고, 나는 세상에서 내 인생을 가장 귀하게 여겨야 할 사람이다. (p. 56)“는 아주 단순하지만 쉽게 잊고 지낸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오늘 하루를 어떻게 채울지에 대한 작은 결정들이 모여 인생이 된다는 내 수험생활을 지탱했던 기본 원칙이자 신조를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인생'이라는 건 현실의 나로부터 까마득하게 멀리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오늘 하루쯤 마구 낭비해도 내 삶의 전체, 즉 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 삶을 구성하는 하루하루가 이미 '내 인생'을 이루는 작은 조각들이기 때문에 “오늘 하루는 내 인생을 만드는 귀한 재료 (p.198)" 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 따로, 내 인생 따로는 애초에 성립될 수 없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채울지 내가 내린 결정들이 모여서 내 인생을 이루고, 나를 만드는 것이다. 이 단순하고 당연한 체험적 진리는 앞으로 살아갈 수많은 날들이 있는 젊은 시절에는 참 깨닫기 어려운 것 같다. 내가 이를 처음 체감했건 소설 <대망>을 읽고서였다.
"인생...이라고는 하나 그것은 순간 순간의 누적에 지나지 않는다. 한 순간의 만남을 소중히 한다....아니, 순간의 만남에 정성을 다해 대하려는 다도(茶道)의 마음이야 말로 인생 그 자체를 충실하게 하는 진실을 말해준다." - <대망> 中 에서 -
"인생은 순간의 누적이다. 순간의 만남을 소중히 하고, 정성을 다하는 것이 삶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진실이다."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룬 소설을 읽으며 난세를 수놓은 수많은 명장과 영웅들 속에서 유독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건 인생에 대해 읊조리듯 말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삶에 관한 아포리즘이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장이 넋두리를 늘어놓듯 한 이 말은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정말 그렇지 않을까?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삶 앞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진실은 우리에게 주어진 이 순간을 충실히 보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함으로서 삶의 순간, 순간이 켜켜이 쌓여 종국에는 일생이라는 기적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 <이토록 공부가 재밌어지는 순간>에도 언급되고 있지만 인간과 동물의 중요한 차이 중 하나는 인간은 ‘카이로스‘의 시간을 산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은 인간의 정신 안에서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며, 심리적 시간인 ‘카이로스‘가 된다. 반면 동물은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의 적용을 받는다. 동물에게는 시간의 흐름을 걸러내는 장치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물들은 단지 이곳에서 지금 이 순간을 견디며 항상 현재를 살 뿐이다. 반대로 인간은 생애 전반에 걸쳐 자신을 개념화하는 존재 즉, 시간을 인식하는 동물이다. 우리는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를 모두 책임져야 하는 존재다. 현재의 우리는 미래에 매여 있는 동시에 우리의 미래도 현재를 기반으로 설계될 수밖에 없다. 결국 현재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채울 것인가가 누군가의 삶이되고 인생이 된다.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렇게 순간에 충실하게, 의미 있는 시간들로 하루하루를 보내도 삶은 여전히 예측 불가능한 영역에 자리해 있고, 질서와 혼돈이 뒤섞여 있다. 이때, “공부는 인생에 보탬이 될 지식과 지혜를 얻는 '멋진 탐험'이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조만간 막이 오를 본격적인 인생을 위한 '마음 단련' (p. 63)"이라는 저자의 말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정말 그렇지 않을까? 공부는 학생시절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인생 전반에 걸쳐 삶을 탐구하는 수도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공부란 내 인생을 보다 다채롭게 만들어줄 '지식'을 얻는 탐험이자, 풍성하게 만들어줄 '지혜'를 얻는 탐험 (p. 59)"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절망과 혼돈의 시기를 극복한 원동력은 영원한 삶에 대한 지향이 아닌 당장의 삶, 내일에 대한 믿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일이 반드시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오는 활기가 희망의 불씨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믿음으로 쌓아올린 매일 매일의 삶이 도피처를 만들고, 메마른 삶에 활기가 되어 내일을 이루고 희망이 된다고 믿는다.
“한계는 절실히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걸러내기 위해 존재합니다. 내가 무언가를 얼마나 강렬하게 원하는지 깨닫게 해주는 기회죠. 한계라는 건 다른 사람들을 멈추게 하려고 거기 있는 겁니다. 뜨겁게 원하는 나 말고요.“ (p. 135)
삶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혼돈과 절망의 시간에 심연에 들어앉아 있는 괴물은 점점 존재감을 드러내며 삶을 집어삼킨다. 하지만 진정한 삶은 혼돈 너머에 자리해 있다. 괴물 앞에서 존재의 부정적인 요소들을 견디며 힘없는 먹잇감처럼 숨죽이고 움츠리지 않고 맞서 싸울때 우리는 진정한 삶을 되찾을 수 있다. 삶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느낄 때, 절망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맞설 때, 새로운 길이 열리고 고통의 해독제가 되어줄 새로운 삶의 목적을 갖게 된다는 걸 나는 살면서 절실히 체험했다. 심연의 어둠이 비록 두려울지라도 회피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눈을 맞출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어려움과 그에 딸린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짊어질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삶을 수용한다는 것은 자발적이고 실천적인 선택을 내리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 책임이란 다름 아닌 강인한 의지와 용기를 가지고 주어진 삶의 조건을 받아들이며 그 삶을 살아내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상실과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양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을 기꺼이 짊어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현실의 삶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연약하고 불완전한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 앞에서 용기를 가지고 상황에 대응하고 그 안에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시간들로 하루하루를 충실히 채워나가며, 희망 찬 내일에 대한 믿음으로 자신의 한계를 지워나갈 때 혼돈 속에서도 질서는 세워질 수 있고, 우리가 꿈꾸는 삶 또한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토록 공부가 재밌어지는 순간>은 청소년을 위한 에세이지만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모범답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삶이 던지는 시험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각자가 서로 다른 시험에 응하고 있다는 것을 종종 망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답을 모방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모범답안을 찾는 것으로는 세상이 던지는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없다. 공부란 어떤 것이고, 우리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청소년부터 더 나은 삶을 꿈꾸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성인들에게 <이토록 공부가 재밌어지는 순간>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