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로 요리한 경제 이야기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경제학은 일반적으로 개별 경제주체의 의사결정을 다루는 미시 경제학부터 국가의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을 다루는 거시 경제학, , 환율이나 자유무역협정 등 국가간의 문제를 다루는 국제 경제학에 이루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와 사회현상을 복잡한 이론과 개념정립을 시도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학문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경제학이 사회현상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대표적인 사회과학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경제학이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거나 현실과는 괴리가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분들을 위해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 나왔다. 바로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인 장하준 교수의 신작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이다군나르 뮈르달 상 수상, 최연소 바실리 레온티예프 상 수상이 말해주듯 장하준 교수는 세계적인 경제학자이지만, 동시에 지금까지 십여권 이상의 책이 집필하여 45개국 이상의 국가에서 200만부 이상이 판매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특히,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나쁜 사마리아인들, 쾌도난마 한국경제, 사다리 걷어차기등 이미 대중에서 익숙한 베스트셀러들로 대중들의 경제학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경제학의 저변 확대에 기여해왔다.

 

 

물론 이전 도서들도 모두 경제학에 대한 지식과 이해도를 기반으로 사회현상을 쉽게 설명하면서도 깊은 통찰력과 아포리즘이 담겨 있는 훌륭한 도서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이번 신작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은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이는 이 책의 부제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의 부제는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로 요리한 경제 이야기>이다.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식재료들을 통해서 경제학이 바라보는 현실을 연결하여 설명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사실 작가 장하준 교수도 책에서 맺는말을 통해 밝히고 있지만, 경제학과 음식은 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장하준 교수는 이런 경제학과 음식의 유사성을 기반으로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섭취하는 것처럼 경제학을 어떻게 하면 맛있게 섭취할 수 있을지에 대해 독자들에게 촌철 같은 조언을 하고 있다. 이는 경제학도 음식만큼이나 다양한 관점과 시각에서 평가하고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또 새로운 이론과 현상을 대할 때 편견과 선입관을 떠나 열린 마음을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는 것, 음식을 먹거나 조리할 때와 마찬가지로 경제학을 요리할 때 사용하는 재료의 출처와 기원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등이다.

 

 

이러한 생각을 기반으로 저자는 수십가지의 음식과 식재료를 소재 삼아 가난과 부, 성장과 몰락, 공정과 불평등, 민영화와 국영화, 규제 철폐와 제한, 복지 확대와 복지 축소 등 따끈따끈한 경제의 현안들을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경제와 관련한 각종 고정 관념과 편견, 오해를 불식시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를 통해서 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경제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를 높이는 것을 넘어서 함께 더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방법과 비전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권의 책을 통해서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맛있는 음식과 식재료를 소개하면서 경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더 나아가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니... '이런 책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리뷰를 하면서 괜한 오버나 과장을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당신, 한번만이라도 이 책을 접해보길 진심으로 추천한다. 물론 책을 직접 읽으면서 이 흥미로운 내용을 알아가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지만, 책을 접하기 전에 책의 내용에 대해 미심쩍어 하는 분들을 위해 내가 인상 깊게 읽었던 대목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마음 같아서는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로 요리한 경제 이야기>18가지 이야기를 모두 소개하고 싶지만 지면 관계상, 또 직접 책을 읽을 독자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3개의 에피소드만 소개하는 점 양해 부탁 드린다.

 

 

첫번째 식재료는 '라임'이다. 라임은 괴혈병 치료와 예방에 효과적이란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20세기 이전에도 이는 비밀이 아니었다. 당시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조직 중 하나로 군림했던 영국 해군에게 이 '라임'이 없었다면 그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인류가 항해를 시작한 이후 19세기 중반까지 괴혈병으로 목숨을 잃은 선원은 200만명이 넘는다고 알려졌다. 영국 해군은 단호한 결정을 내리고, 이 방법을 효과적으로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발휘하여 선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영국 해군이 내린 단호한 결정은 항해를 떠나기 전에 선원들이 라임을 챙기도록 맡겨 두는 대신 배급품에 의무적으로 포함시키고, 선원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료에 이를 섞어서 모두가 반드시 비타민C를 섭취하게 조치한 것이다. 작가는 '라임'과 얽힌 역사적 사례를 통해 현재 인류의 화두인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괴혈병''기후변화' 문제의 공통점은 우리 모두 해결책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 해군과 '라임' 사례에서 보았듯이 그 해결책의 실천과정을 시장에서 각 개인이 내리는 선택에 맡겨 둘 수는 없다. 범사회적 행동을 가능케 하는 모든 매커니즘. , 정부, 국제적 협력, 국제협약 등을 총동원해서 해결책들이 실천에 옮겨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라임' 사례에서 깨달아야 하는 것은 개인 행동의 변화가 단호한 대규모 공적 조치와 함께 이루어질 때 사회 변화는 가장 효과적으로 발현된다는 사실이다.

 

 

두번째 식재료는 '멸치'이다. 멸치는 19세기 중반 페루가 누린 경제적 번영의 가장 큰 동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페루가 멸치를 수출해서 돈을 번 건 아니었다. 당시 페루는 바닷새의 구아노(마른 새똥)를 수출해서 국가적 번영을 누렸다. 구아노는 질산염과 인이 풍부하고 냄새가 그다지 역겹지 않아서 인기 높은 비료였을 뿐 아니라 화약의 핵심 재료인 질산칼륨이 들어 있어서 화약 제조에도 사용되는 등 활용도가 높은 자원이었다. 페루의 구아노는 태평양 연안의 섬들에 모여 사는 새들인 가마우지와 부비(얼가니새)의 배설물이다. 바로 이 새들의 주요 먹이감이 칠레 남쪽에서부터 페루 북쪽을 잇는 남아메리카 서쪽 해안의 영양소 풍부한 훔볼트 해류를 타고 이동하는 '멸치'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이 자원으로서 구아노가 차지하는 위상을 허물어뜨렸다. 1909년 독일의 과학자 프리츠 하버가 공기 중에서 질소를 분리하고 고압전류를 사용해 암모니아를 만들어 인공비료를 제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또 다른 독일의 과학자 카를 보슈가 인공 비료를 대량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면서 구아노는 비료계의 황제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구아노보다 더 중요한 질산염의 공급원인 초석의 가치도 없어졌다. 이처럼 천연자원을 대체할 인공 물질 제조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경제 체제는 기존 시장(구아노 시장)을 완전히 파괴하고 새로운 시장(화학 비료 시장)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갖추게 한다. 우리가 '멸치' 사례를 통해 깨닫게 되는 건 고도의 기술력을 갖추면 자연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기회와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식재료는 '닭고기'이다. 저자의 인도인 친구는 고국을 방문할 때 항공료가 월등히 싼 러시아 국영 항공인 아에로플로트를 이용했다. 그 친구와 같은 비행기를 탄 다른 인도인 승객이 본인이 채식주의자인 사실을 밝히며 승무원에게 닭고기 말고 다른 식사를 제공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승무원은 아에로플로트가 사회주의 항공사여서 특별 대우는 없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사례를 소개하며 서로 다른 필요를 가진 사람들을 모두 똑같이 대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공평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동한 사회적으로 불평등에 대한 논의가 오랫동안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 개인의 필요와 역량은 무시한 채 결과와 기회에만 초점을 맞춰 논의된 측면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진보주의 진영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결과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 공평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마다 다른 필요와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반대로 보수주의 진영에서는 기회의 평등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정한 경쟁이 되려면 개인 간의 역량이 어느 정도는 균등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닭고기 사례는 공정한 세상을 위해서는 기회의 평등뿐 아니라 결과의 평등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는 군침 도는 맛있는 음식과 식재료부터 출발하여 이와 연관된 사회현상과 경제이론까지 독자들이 맛있게 섭취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책이다. 이를 위해 경제학의 개념을 실제 생활에 대입해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며 쉽게 풀어내어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경제학이 실제 세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아이디어도 제시하고 있다. 이보다 더 맛있는 경제학 레시피가 존재할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