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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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글을 좋아한다. 그의 글을 읽으며 어느 순간 내가 그의 소설보다 에세이에 더 애정을 품고 있다는 걸 깨달았던 적이 있다. 한 권 한 권 그의 책들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서가의 한 켠이 하루키의 책들로 채워지게 되었는데, 소설보다 에세이가 훨씬 많았던 것이다. 하루키는 에세이를 통해 일상의 빛났던 순간들, 여행과 음악, 책 등 다방면에 걸친 자신의 취향, 귀중하고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를 독자에게 건넨다. 하지만 우리네 삶이 그렇듯 그의 에세이는 마냥 즐겁고 유쾌한 에피소드만으로 채워져 있지는 않다. “세상엔 실로 갖가지 함정이,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은밀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아무 일 없이 매일 평온하게 살아가기란 그리 간단치가 않다.”며 삶의 아포리즘을 드러내기도 하고, 일정 수준의 경지에 올라선 작가답게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일은 모두에게 찬사를 받는 것이 불가능한, 본의 아니게 타인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는 비정한 세계에 속해 있다는 것, 또 그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작가가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작가의 숙명을 비장하게 언급하기도 한다.



한지혜라는 작가는 그녀의 첫 단편집 <안녕, 레나>를 통해 접했다. ‘삐삐‘, ‘PC통신‘, ‘2002 월드컵등 아련한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사물과 사건들, ‘임대아파트‘, '완행열차‘, ‘목욕탕등 현실의 바닥에 묶인 삶의 고단함에 주목한 인상적인 단편집이었다. 우리가 잊고 지냈거나 애써 외면했던 기억들, 현실의 불안과 부조리를 예리하게 파고드는 작가적 시선이 돋보였다.

 

 

그러니까 전부 진짜에요. 무엇을 쓰면 거짓말이 되지 않을까를 가장 먼저 생각했기 때문에 철저하게 내 안의 진짜가 아니면 쓰지 않았어요.”


  

우연히 접한 인터뷰에서 문학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접할 수 있었다. 문학은 결국 우리가 서 있는 이 곳, 우리를 울고 웃게 하고, 희망을 주기도, 절망케 하기도 하는 현실의 일상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녀가 언급한 진짜가 담고 있는 의미가 무척 궁금했다. 그 후 그녀의 글을 접한 건 신문의 칼럼을 통해서였다. 삶과 문학을 경계 짓지 않는 그녀의 문학론은 일상의 현실을 파고드는 산문에서 더 빛을 발할 수 있음을 그때 느꼈다. 그래서 그 칼럼들이 한권의 책으로 묶여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참 반가웠다.



삶이란 게 참 묘하다. 눈을 뜨면 날마다 새로운 날이지만 실상 삶의 관성은 어제를 포함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살아봤던 시간의 습관으로 살아보지 않은 시간을 더듬어가는 것, 현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과거인 그런 게 삶이라는 생각도 든다.“ (159)

 

 

영화 아메리칸 뷰티 (American Beauty)‘를 보면 오늘은 내 남은 인생의 첫 날이다. (Today is the first day of the rest of my life.)“라는 대사가 나온다. 날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지만 과거의 기억과 삶의 관성을 벗어나서 완전히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 가능할까? 오히려 삶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과거로 밀려나면서도 퇴보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에 더 가깝지 않을까?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며 과거의 기억은 우리의 삶 속에서 고동치는 두 번째 심장이자 미래의 삶에 대한 이정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개인은 현실의 삶을 살아내는 모더니스트 (Modernist)인 동시에 과거의 기억들을 탐구하는 역사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순간의 경험이, 체험이 삶을 대신할 수 없다고 말한다. 모든 개인은 자신만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삶은 순간의 단면을 정확히 포착한 사진 보다 각기 다른 시간과 빛이 누적되어 한 개인의 역사가 입체화된 한 장의 초상화에 가깝다. 사진이 인물의 순간적 속사(速寫)로 한순간의 단면을 담는 것이라면, 초상화는 긴 시간 동안 각각 다른 빛 속에서 일련의 특징, 감정, 생각을 가진 개인의 다양한 모습, 지금까지 한 번도 동시에 드러난 적 없었던 여러 부분을 깊이 있게 담아내기 때문이다. <참 괜찮은 눈이 온다>를 읽으며 초상화는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사람이고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가 일차적으로 중요하지만, 대상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작가적 시선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삶을 일정 시간 이상 바라본 시간성의 농축성이 어딘가 불분명한 선들로 이뤄진 한 사람의 형상을 오랜 시간 그 사람과 만나며 끌어 모은 세부사항들의 합성된 이미지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 있어 결과로서의 형태는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데 정말로 보탬이 되는 것은 좀 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언급하였듯이 삶은 모든 꿈의 성취를 허락하지 않는다. 어쨌든 영원히 이기기만 하는 인간은 없고, 세상 그 어떤 잘난 천재도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실패한 꿈을 대하는 자세, 그 태도가 삶의 색깔을 결정한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이 가는 이유이다.

 

 

한지혜 작가의 매력은 읽고 나면 우리가 살아가는데 정말로 보탬이 되는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알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타인을 섣불리 이해하려고 시도하거나, 세상을 안다고 자만하지 않는 것, 진실한 체험에 기반을 둔 담담한 위로를 건네는 것 등일 것이다. 인간은 의도의 유무를 떠나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해를 끼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 방식,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든다. 어쩌면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자신만의 잣대로 타인을 평가하고 규정해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삶의 흔적, 아픔을 매개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 이해하고 위로한다. 인간은 어둠 속에서도 희미한 빛과 온기를 나누며 오직 사람에게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진실과 정의, 인간 고유의 본성 속에서 자신만의 진짜를 탐구하며, 타인을 향해 작지만 흔들림 없는 발걸음을 묵묵히 내딛는 것뿐이다.

 

 

아프고 괴롭고 불안하고 막막한가.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의 삶이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다. 도망치지 마라. 원래 희망은 아프다. 그래서 꽃이 피는 것이다.“ (280)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며 작가가 언급한 아주 사소한 진지함으로 태산 같은 막막함을 훌쩍 뛰어넘는 순간을 느낀 기분이다. ‘살아 있는 당신들, 살아갈 당신들이 저마다의 힘으로 끝내 버티기를. 나는 가늘고 길게 쥔 펜으로 앞으로도 계속 당신들을 쓰고, 나를 쓰고, 이 삶을 기록해볼 작정이다.’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무엇보다 미더운 위로가 된다. 서가 한 켠에 자리를 마련하고 싶은 또 한명의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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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건축가 2019-11-15 0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상의 빛났던 순간들, 여행과 음악, 책 등 다방면에 걸친 자신의 취향, 귀중하고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를 독자에게 건넨다. 라는 하루키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와요. 좋은글 고마워요

잭와일드 2019-11-15 09:39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ㅎㅎ

막강현짱 2019-11-15 2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의 소설보다 에세이에 더한 애정을 갖는 1인이라 글이 눈에 들어왔네요^^

잭와일드 2019-11-16 00:02   좋아요 0 | URL
저랑 같은 생각이시군요^^